파란 문 뒤의 야콥
페터 헤르틀링 지음, 김의숙 그림,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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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열 살 무렵부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세 명의 가족을 잃었다. 내가 열 살엔 할머니, 열다섯 살엔 아버지를, 열여덟 살엔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열다섯에 맞이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다시는 더 이상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 다시는 아버지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어버이 날이 끔찍하게 싫었고 친구들이 자기들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아버지 없는 날 놀리거나 하는 것은 분명 아닐지라도 난 주변사람들을 피하게 되었다. 자기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 눈치를 보는게 싫었다. 사람들을 만나 내가 입는 상처가 싫어 사람들 만나는 것이 겁이났다. 내 안에 그런 기억들이 있기에 난 야콥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고 안타까움이 훨씬 더 컸던 책이다.


아버지를 잃은 야콥에게 학교 친구들이 주변 사람들이 보냈던 시선을 잊을 수 없다.
“ 어린 것이 안 되었구나.”
“ 불쌍해라, 가엾어라.”


불쌍하거나 가엾은 것이 아니라 슬픈 것 뿐 것뿐이라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섣부른 동정을 보내고 있었다. “ 아버지 없는 가여운 아이” “ 아버지도 없는 불쌍한 아이!”  야콥은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 내가 정말 가엾고 불쌍한 아이인가?  난, 너희들이 동정 할 만큼 그렇게 불쌍하지도 가엾지도 않아! 쥐뿔도 모르면서.......  난 불쌍하게 아니라 슬픈 것뿐이라고.’
야콥은 절규를 하지만 아무도 야콥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못한다.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은 엄마에게도 슬픔이었고 충격이었다.
 
‘남편과 함께 했던 시간, 남편과 함께 했던 추억. 다시는 함께 무엇을 할 수 없구나. 더 이상은 만져 볼 수도 안아 볼 수도 없구나.
이제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고 야콥도 혼자 키워야 하는 구나.‘


엄마는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파란 색으로 대문을 칠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엄마는 대문을 파랗게 칠했고, 자기 안에 이는 슬픔을 각종 취미 생활의 바쁨으로 위장했다.
더 큰소리로 웃고 더 큰소리로 떠들지만 그 웃음은 웃음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어설픔 웃음과 바쁨이 슬픔을 털어내려는 절절한 몸짓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엄마가 엄마만을 위한 굿을 하고 있는 동안 야콥도 야콥 나름대로의 굿을 하고 있었다. 섣부른 동정의 시선을 피하여 자기 안으로 피신을 하고 있었다. 파란 대문 안 자기 방에 틀어박힌다.



‘오롯이 나만을 이해 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나만을 이해 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던 야콥은 자기만을 온전히 이해 해 줄 상상의 친구 슈닙젤을 만들어낸다. 슈닙젤과 함께 있는 야콥은 행복하다. 야콥은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야콥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찬성을 하거나 야콥이 하고자 하는 일을 부추긴다. 이제 야콥은 섣부르게 자신을 동정하고 위로하는 친구는 없다. 야콥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슈닙젤이 있을 뿐이다. 그런대로 야콥은 이 생활이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야곱만의 세계에서의 행복일 뿐, 더불어 사는 현실 세계에서 야콥의 생활이 그대로 인정 되어지고 받아질 수는 없다. 야콥이 원하는 일에만 반응하는 슈닙젤과는 만드는 세계와는 별개로 야콥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회, 야콥 밖의 세계에서도 나름대로의 주문은 계속 되어지고 있었다. 자기 안의 세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자기 밖의 세계에서 바라보여지는 야콥은 이상한 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야콥이 가장 사랑하는 엄마마저도. 마치 머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처럼 엄마는 야콥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야콥은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데 엄마는 야콥을 이해하지 못한다.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엄마, 숙제도 안 해오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아무렇지도 안은 채 행동하는 야콥을 야콥 밖의 세계에서는 ‘문제아’로 보고 있었다.
‘내가 문제아? 왜? 어째서? 뭐가 문제냐고!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엄마는, 선생님은, 어른들은 자기 안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고 점점 비틀어진 사고로 이상하게 행동하는 야콥이 불안하기만하다.
‘도와주고 싶다. 도와야한다.’
엄마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야콥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 보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야콥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야콥은 아버지를 잃은 야콥에게 보냈던 주변의 시선을 잊을 수 없다. ‘쥐뿔도 모르면서......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고....... 값싼 동정이나 하는 주제들에...... 내가 뭘 어쨌는데.....’ 그러면서도 엄마가 만나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고 싶다는 것.  결국 엄마는 야콥을 청소년 보호청에 보내고자 한다.


‘엄마마저 나를...... 도망쳐야 한다. 청소년 보호청 사람들이 오기 전에 도망쳐야한다.’  숨어버린 야콥을 찾은 어른들은 상상 속에만 있는 줄 알았던 친구 베노를 데려 온다. 그리고 베노가 가져온 기타를 통하여 야콥은 파란 문 밖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야콥의 슬픔은 야콥의 슬픔이고 엄마의 슬픔은 엄마의 슬픔일 뿐이다. 비록 한 가지 사건일지라도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 다르다. 어떤 감정이든 그 감정은 당사자의 것이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 할 뿐이다. 내가 야콥을 만나면 야콥을 가만히 안아주고 야콥에게 내 어깨를 빌려줄 뿐 섣부른 동정을 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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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맨 우리 아빠 신나는 책읽기 10
배서연 지음, 설은영 그림 / 창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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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낯설다. 작가 소개란에 특별한 작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신인 동화 작가인 듯싶다.

2004년에 작품집이 나온 것으로 보아 새로운 작품집이 있지 않을까도 싶지만 이 책을 읽는 현재까지 인터넷 서점에 검색되는 바는 없다.

매미와 햄스터, 은지가 벼슬한날, 마스크 맨 우리 아빠, 하느님 잠깐만요. 이렇게 총 4편의 동화가 있다.

'은지가 벼슬한 날'은 외출할 때 소변이 마려운 아이가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에 참다 오줌을 싸고 "벼슬을 했어!"라는 나무라는 말에서 제목을 가지고 왔는데 아이의 심리가 잘 그려져 있다. 에둘러 말하는 어른의 "조금만"을 아이가 어찌 이해하랴.

'마스크 맨 우리 아빠'는 자식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빠(부모)와 아빠의 모습의 추레함에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아들의 맘을 그리고 있다. 물론 아빠를 피하던 어느 날 아빠가 뺑소니차를 쫓다 다쳐 아이들이 아빠를 영웅시하자 슬그머니 아빠와의 화해를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소재와 결말은 좀 식상하긴 하지만 아빠를 모른척하는 아이의 발상은 재미있다.

'하느님, 잠깐만요.'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할머니가 이웃의 전도로 교회 나가면서 천당을 갈 수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야긴데 할머니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죄 짓고 열심히 회개하면서 그렇게 보통 사람들은 사는데 할머니는 자신의 양심에 비춰 떳떳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비죽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남들이 뭐라하든 내 양심에 비춰보아 떳떳지 못하면 그건 비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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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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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직도 읽어요?"

"그러게 아직도 읽고 있다.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잘 안 되네."

그렇다. 이 책을 나는 참 어렵게 읽었다.

소설처럼 줄거리만을 따라 갈 수는 없는 책이고, 설렁 설렁 읽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은 책이다. 킥킥대지도 못 하고.... 생각 하나를 하면 그 생각에 꼬리를 물고 나를 반추하게 하는 책이었다. 반추 할 것이 있으니 쉽게 책장을 덮어 버릴 수도 없고....


나는 평소에 나는 돈이 인간을 따라와야지 인간이 돈을 따라가려하면 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돈은 얼마를 버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왔다. 돈? 누구도 돈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한발자국만 움직여도 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막강 위력을 발휘한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면서 과연 나는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남자들은 가족의 부양의 의무를 지어야했다. 때문에 돈에 대하여 남자들은 적극적인 사고를 가져야 된다고 배워왔다. 남자들이 벌어 오는 돈을 여자들이 쓰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한 경비로 쓰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남자가 벌어 오는 돈을 실질 적으로 쓰고 있으니까 '남자가 벌어 오는 돈, 그것이 곧 내 돈 '이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었다.

정말 남편이 벌어 오는 돈이 내 돈일까?

정말 남편의 통장에서 자기 임의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얼마일까?

내 경우, 남편 명의의 통장에서 생활비 외에 임의로 백만 원 정도만 빼어 내도 가슴이 콩닥댄다. 내 임의로 빼낸 돈을 딱히 나쁜데 쓰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남편의 돈이 내 돈이라는 공식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백만 원 정도 말없이 빼 쓴다고 남편이 그 돈의 용도를 묻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 마음은 빼낸 돈에 대하여 '나도 이 정도는 쓸 권리 있어,' 라는 둥 핑계를 댄다.

남편 돈이 내 돈이 아니라면 나의 경제력은? 제로!

왜? 남편은 다만 얼마만이래도 돈이 있는데 나는 왜 없는 거지? 남편만큼 나도 배웠고 남편 일할 때 나도 무언가는 열심히 했는데 왜 내게는 남는 것이 없는 거지?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하여 적극적 노력을 했다면 나는 돈을 벌기보다는 잘 쓰는데 더 관심을 두고 생활을 해 온 탓은 아닐까?

내 돈이 한 푼도 없다는 현실 인식은 남의 등에 업혀 평생을 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경제적 힘의 균등이 깨어지는 순간 힘의 균형을 이루는 추는 한쪽으로 치우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내 주장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내가 기르고 있는 딸들에게 눈이 갔다. 이 아이들에게 돈에 대하여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이 아이들도 남자 하나 잘 만나면 그 남자의 등에 꼭 붙어 살아가면서 불안을 느껴가면서 살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사는 세상도 변하고 있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 변할 텐데 지금의 경제관을 가지고 살기는 힘들 텐데 아이들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돈은 힘이자, 권력이자, 안정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돈은 인간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어 졌다. 인간이 돈을 적절히 지배하여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이 돈에 대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고 돈을 적절히 지배하도록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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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쟁이 경시 대회 작은거인 5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강봉승 그림, 조병준 옮김 / 국민서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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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랄슨 선생님 구하기>에 이어 앤드류 클레먼츠의 글을 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바비>도 참 재미있게 보았는데 <잘난 척쟁이 경시대회>도 참 재미있게 보았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다루어 왔고  컴퓨터를 좋아하는 제이크. 제이크는 누구에게조 지기 싫어하는 케빈, 남들이 자신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마샤를 보면서 잘난 척 하는 아이들이 꼴불견으로 느껴진다.
어느날 3,4,5,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 경시대회가 열린다. 각 학년 대상에 에 부상으로 주어지는 그가 꿈에 그리던 최신형 컴퓨터에 눈이 먼 제이크는 늘 함께하던 친구 윌의 제안도 무시한 채 단독 출전을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뭔가 흥미로운 것을 찾아라. 이것을 ‘관찰’이라고 한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본 다음,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해라.이것을 ‘의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설, 방법, 결과, 결론에 이르는 보고서를 작성하라."
제이크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도 반납하고 과학경시대회를 준비하며 상으로 받을 컴퓨터만을 생각하던 중 한심한 인간으로 전락한 자신을 보게 된다. 승리를 위하여 케빈이나 마샤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학 경시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제이크는 자기가 혐오하던 잘난 척쟁이가 되어간다. 변해가는 자신에 놀라고 있을 때 친구 윌이 과학경시대회를 포기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윌은 자신은 도저히 케빈과 마샤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데 자신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게 부질 없는것 처럼 느껴져서 포기한다고 말을한다. 자기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아이들이 포기했다고. 제이크는 아이들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케빈과 마샤의 전략이라고 말을한다. 
 케빈과 마샤의 전략대로 과학 경시대회를 치르게 할수 없다는 생각을 하던 제이크는 윌을 설득하여 함께 전자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둘이하는 연구는 즐거웠다. 윌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다.
과학경시대회의 결과 대상은  피트에게 돌아갔다. 그것은 당연하다. 피트는 과학이 좋아서, 알고 싶어서, 즐겁게, 잘난 척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오래도록 실험관찰을 해왔다. 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상을 받는게 당연하다. 제이크는 준우승을했다. 비록 제이크는 컴퓨터를 상으로 받지는 못하지만 친구 윌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에 만족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기 전에 반드시 조건을 건다'는 말에 쓴 웃음을 짓는다. 제이크와 윌이 전자석을 만들면서 보여주는 과학적 사고가 우리 교육계의 현실과 비교되어 부러웠다. 잘난 척쟁이가 되지 않으려는 제이크의 노력을 보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나름대로 바로 서고저 노력한다는 생각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중학년 이상의 아이들이라면 무난히 볼수 있을듯하고 고학년 이상이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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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는 괴물 나에게는 선물 내친구 작은거인 12
길지연 지음, 선현경 그림 / 국민서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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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딱 팔딱 빗속을 뒤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는 두레.

나는 성냥팔이 소녀! 생일인데 /맛있는 잡채도 못먹고 /케이크에 촛불도 못 켜고/개를 키우고 싶어요, 하면 캭! 엄마 고함소리!/그럼, 고양이는요? 하고 물으면/오! 맙소사./소녀는 다시 물어 보지요./아빠는 언제 오세요? /잠잠!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이 노랫말로 전부가 보여진다. 

그래, 두레는 초등학교 2학년 아홉살이다. 아빠는 아프리카로 동물 사진을 찍으러 가셨고 지금은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엄마는 백화점 디스플레이를 해 주기도 하고 문학박사가 되기 위하여 공부도 하면서 때로 대학게 강의를 하기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느라 바쁘다.

오늘은 두레의 생일, 케Ÿ弱?잡채를 좋아한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만 엄마는 캭!

두레가 엄마의 고함을 잠재우는 방법은

"아빠는 언제 오세요?"

학교에서 돌아오던 두레는 병든 강아지를 주워온다.

엄마의 반응은 이미 예상하던 바.

그러나 병든 강아지를 내칠 수 없어 병이 낳을 때 까지만이란 한시적 조건을 달아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 강아지의 병이 낳아감을 바라보면서 두레는 엄마와의 약속이 떠올라 병이 천천히 낫기를 바란다. 강아지의 병이 천천히 낫기를 바라는 마음을 조금 더 강하게 다루어 주었으면 싶은데 너무 변죽만을 울린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강아지의 병이 낫자 엄마는 애완동물 동호에 사람중 강아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강아지를 주기로 약속을한다. 놀란 두레는 아빠가 두고 간 차 속에 강아지를 숨겨두고 기른다.  강아지를 가져 가기로 했던 사람이 오고  두레는 강아지가 오토바이에 치여 죽었노라 거짓말을 한다.

강아지를 가져 가기로 했던 사람은 두레에게 귓속말로 강아지를 나쁜 사람이 가져 갈지 모르니까 잘 숨겨 두라고 한다.(두레가 강아지를 숨겨 놓은 것을 어떻게 알았지. 이 사람은?)

결국 강아지는 나쁜 아이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는 걸 두레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구해 집으로 데리고 돌아 온다. 엄마는 다시 강아지 가져 가기로 했던 사람에게 연락을하여 강아지를 주어 버린다.

화가 난 두레를 보면서 어른들이 하는 짓이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레와 강아지의 관계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덜컥 일을 저지르는 엄마의 행동에 나도 화가 났다. 과연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두레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두레의 동의 하에 일을 진행 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이 대목에서 내 딸아이는 화를 냈다. 아이들도 눈 높이에 맞게 설명을 하면 이해를 한다.)

강아지를 보낸 일로 인하여 두레와 엄마의 관계는 말을하지 않을 정도로 소원 해지고 엄마에게 나름대로의 시위도 한다.  마레의 행동, 귀엽다.

엄마와 불편한 관계 너무 오래갔다. 이렇게 어떤 문제 앞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오래동안 시위를 할 수 있나?

마레가 엄마에게 화해를 하기로 한 싯점, 엄마는  보냈던 강아지를 다시 찾아 오면서 이야기는 해피엔딩!

아이들이 읽었을 때 재미있게 읽기는 하겠구나 싶다. 아이들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는 출판사의 평이나 작가의 의도에는 맞는 책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어른의 모습은 영 아니다.

이 책에서 내가 화가 난 부분은 어른들이 아이를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비록 아픈 강아지라도 잘 돌봐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일방적이라는 생각이다.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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