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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이라서 아이들을 일찍 집에 보내고 이런저런 밀린 업무를 하고 있던 중에 친구 S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전 메신저 상에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착잡한 마음을 호소했던 친구였다. 연애 기간도 2년을 채워가고 있었고 남자친구가 그녀보다 네 살 연상이어서 더 이상 지체할 이유도 없기에 슬슬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 건, 시부모님이 될 분들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 분들은 며느리가 될 내 친구와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하신다고 했다. 맏아들이니 과히 무리한 제안도 아니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 집에는 아직 미혼인 예비 시동생과 예비 시누이가 함께 살고 있었고 더군다나 예비 시누이는 S의 대학 동기이기도 했다. 결국 S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시부모님 되실 분들은 특별히 하고 계신 일이 없는데다 시누이가 될 친구도 무슨 시험인가를 준비 중이었고 밥벌이를 하는 건 S의 남자친구와 시동생 뿐이었다. S가 그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면 S는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관둬야 할 형편이고 그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시어머니 되실 분이 취직은 내가 시켜줄테니 걱정 말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이미 환갑을 바라보시는 분이 무슨 능력이 뻗쳐서 오십만 청년실업시대에 취직을 시켜주신다는 말씀인가. 과년한 딸내미도 집에서 놀고 있는 판국에 며느리 자리 취업까지 알선해 주실만큼 발이 넓으시단 말씀인가. 고민 끝에 S는 시집에 들어가서는 못 살겠다, 고 말했고 남자친구는 딱 2년만 같이 살다가 독립하자고 했단다. S가 위와 같은 대강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었을 때 내가 맨 먼저 했던 말은, 그런데 있잖아. 과연 딱 2년일까. 그 말이 지켜질까, 였다. 지금은 2년이라고 하지만 2년이 20년이 될지, 그보다 더 길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S는 내 말이 맞다면서 시어머니 되실 분이 무섭다고도 했다. S를 처음 보시자마자 한 말씀이, "넌 왜 이렇게 구두굽이 높으냐. 여러모로 건강에 안좋으니 낮은 거 신고 다녀라." 였단다. 곱게 들으면 고마운 말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대면에 저 정도 말씀을 하실 분이면 S를 쥐락펴락 하고도 남으실 분 같긴 했다. 극성스런 시어머니한테 쥐어 사는 것도 나름 편하고 이로운 일일 수는 있겠지만 똑똑하면서 극성스러우냐, 그냥 극성스러움 그 자체냐는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아직 판단보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S는 그냥 두려워만 하고 있었다.

제 머리도 못 깎고 남의 머리도 못 깎지만 남의 머리에 관심만 많은 내가 S에게 남자친구를 사랑하냐고 물었다. 정말로 사랑하냐고. 그러자 S는 잘 모르겠다고,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했다. 우문현답이요, 박수를 쳐주고 싶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당최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대답이기도 했다. 역시나 겁대가리 없는 로맨티스트인 나. 제법 깐깐하고 현명했던 순간은 깡그리 삭제되고 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야! 그렇게 확신도 없음서 무슨 결혼은 결혼이냐. 진짜 사랑하고 아끼면 시댁 식구니 뭐니 그보다 더한 거라도 껴안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로 힘들어 하면서 그게 사랑이니, 사랑이야?! 그러자 학교 때부터 내 말을 곧잘 존중해 마지 않았던 S, 문득 목소리 톤이 바뀌면서 그렇지? 사랑하면 다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맞어. 곧 찜찜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으나 나는 또 무책임하게 네가 잘 알아서 하리라고 생각한다, 라면서 이야길 맺었다. 그리고는 얼마 후, S가 그 사람과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사람이 쉽게 받아들여? 응, 내가 시집에 들어가서 살기도 싫고 돈 없는 시집도 싫다고 말했거든. 오, 저런. 너무 과하게 때렸당. 그런가? 근데 그 사람도 나같이 속물적인 여자는 필요 없대. 두주째 서로 연락 안하고 있어. 진짜 헤어진거야? 그렇다니깐. 난 정말로 오빠를 사랑하진 않았나봐. 네 말이 다 맞는 것 같애.  

네 말이 다 맞는 것 같애... 네 말이 다 맞는 것 같애... 이 말이 내 가슴에 무슨 공명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S도 그 동안 많이 힘들어 했고 오랜 친구로서 S가 더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물론 있었지만 사랑하면 다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랑하지도 않는데 무슨 결혼이냐고, 온통 그 쥑일놈의 사랑으로 뒤범벅을 해놓은 내 조언을 받아들이고 난 후 저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내 말에만 전적으로 의지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 쯤은 알지만 그래도, 왠지 미안했다. 정말 서로에게 질려버린 경우에도 그 놈의 정 때문에 헤어지기가 쉽지 않은건데 S와 S의 남자친구는 여전히 서로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S에게 좀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할 것을, 사랑 운운하며 혼자 흥분한 내 자신이 참 싫었다.

그런데 오늘 오후, S에게서 온 전화. 우리 다시 연락하고 있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 ㅠ.ㅠ 기왕 그렇게 된 거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며 무탈하게 잘 이어졌음 좋겠다. 아웅다웅 톰과 제리.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둘만의 속사정을 누가 알겠는가. 정말 사랑하면 내가 생쥐여도 고양이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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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7-07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네요...현실적으로 부딪칠 상황은 정말 많을 커플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연락한다고 하니...두사람의 정도 보통은 아닌 듯 하네요...^^
깐따삐야님이 한시름 놓은건 아닌가 모르겠어요...ㅋㅋㅋ

깐따삐야 2006-07-0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글쎄요. 그게 그렇게 확실치가 않은 문제이고 제 편에서는 앞으로도 줄곧 확실치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짓은 더 이상 안할테지만 친구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신중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아직은 막연한 느낌 뿐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아요.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1
노경실 외 지음, 윤종태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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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어느 모임에 갔을 때였다.

이야기 도중에 어떤 남자선생님이 나에게 묻기를, "파마는 왜 하신거에요?" 

퍼뜩 들었던 생각은 파마 머리가 나한테 그렇게 안 어울리나, 이제 좀 안면 트고 지내게 생겼다지만 별걸 다 묻고 그러네, 였다.

"생머리보다 관리하기 편해서 하는데요."

"요즘 대개 파마를 안하지 않나요? 생머리들 많이 하고 파마를 하더라도 길러서들 하고..."

"예... 그렇긴 하죠. 근데 저는 이 머리가 편하고 좋으네요."

"그런데 렌즈는 안하세요?"

"눈동자에 직접 닿는거라서 아플까봐 못해요."

별걸 다 묻는 남자 선생님과 대화하던 중 끼어드신 또 다른 남자 선생님 왈, "근데 웨딩촬영 하면 이쁘시겠다."

"그래요? 근데 현 상태로는 맞는 웨딩드레스가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흐흐."

같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는 성별 구분이 없는 동료 내지 친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나는 저런 질문들 속에서 잠시 당황했다.

아마도 그 선생님들은 "살은 언제 빼실 거에요? 치마는 안 입으시나요?" 이런 질문들이 목구멍까지 치미는 것을 간신히 참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처음 보자마자 묻고 싶었던 것을 그래도 예의 상, 체면 상, 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많이 변했고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더 크게 변하겠지만 저런 종류의 질문들을 즐겨 받는 쪽은 여전히 여자들이다.   

시각에 약한 남자의 본능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이성과 합리의 시대에 언제까지 짐승처럼 본능, 본능하면서 떼만 쓰고 있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에는 그러한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고정관념을 뒤엎는 여섯 편의 패러디 동화들이 실려 있다.

이것이 어찌 '어린이를 위한' 것이기만 하겠는가.

남자 어린이 뿐만 아니라 남자 어른에게도 두루두루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입으로는 개성 추구를 외치고 있지만 남자들이 요기 좀 봐주었으면 하는 심사로 온갖 겉치레를 하면서 백마탄 왕자님, 외제차 모는 재벌을 기다리는 여자 어른들도 읽어보면 좋겠다.

이미 굵어지고 굳어진 머리는 바뀌지 않더라도, 외모만 중요하게 여기는 왕자에게 실망하고 유리 구두를 자기 발로 깨부수는 신데렐라나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여 항해사로 새출발을 하는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편이 쉽다, 는 아니어도 이 편도 괜찮다, 라는 감 정도는 오지 않을까 싶다. 

여섯편의 동화들이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읽는 맛, 읽는 재미가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정성껏 매만졌다 싶은 친절한 우리말로, 진정한 행복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통해서 성취해야 한다는 씩씩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텔레비전 속의 드라마는 여전히 능력 있는 남자를 가운데 두고 여자들끼리 치고박고 하는 구도를 이루지만 아마 머잖아 능력 있는 여자를 가운데 두고 남자들끼리 죽네사네 하는 화면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뭐든 바람직하진 않지만 남자들이 긴장을 탈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 착하디 착한 콩쥐도, 신데렐라도, 인어공주도, 사또니 왕자니 다 필요없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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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K가 아기를 낳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친구와 친구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은 것이다. 아내 되는 사람은 나의 초중등 동창이며 남편 되는 사람은 중등 동창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7년간의 연애 끝에 이들은 결혼에 골인했고 더 이상의 비유를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천사처럼 예쁜 딸내미를 낳았다. 비 오는 주말, 마트에 들러 기저귀 꾸러미를 사들고 다른 두 친구들과 함께 신혼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아직 세상에 나온 지 2개월밖에 안된 윤아는 앙증맞은 손싸개를 한 채 발가락을 꼬물꼬물, 입술을 옹알옹알하며 비 오는 주말의 눅눅함과 노곤함을 싹 가시게 해주었다. 윤아는 이미 평균 체중을 넘어선 채 잘 먹고 잘 자며 쑥쑥 자라고 있는 중이었다.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랗고 맑은 눈, 웃을 때 살짝 도드라지는 볼살이 꼭 제 엄마를 빼닮은 것 같았다. K는 아기 아빠 어릴적이랑 똑같다고 하는데 사실 누굴 닮은들 어떠랴. 아기는 그 자체로 예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K가 윤아를 안아보라고 했을 때 솔직히 겁이 났다. 하지만 꼭 한 번 안아보고 싶기도 했다. 아기가 안아주고 싶을만큼 예뻐서이기도 했지만 안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윤아는 나에게 안기자 발을 쪽쪽 뻗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무거웠고 꼬무락거리며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신기하고도 무서웠다. 가슴과 손에 아기의 따듯한 체온이 전해져왔고 간혹 눈웃음도 치다가, 찡그리기도 하다가, 를 반복하는 표정은 너무나 귀여웠다. 친구들은 나에게 아기 안은 폼이 난다면서 좋아했지만 윤아를 엄마에게 다시 안겨주고 나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느껴졌다. 휴우- 하는 한숨과 함께. 능숙한 솜씨로 우유를 먹이고 아기를 어르고 하는 K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란 저런 것이구나. 나와 같이 까불고 소리 지르고 하던 중학생 시절의 K는 온데간데 없고 아기를 애틋하고도 정겨운 눈으로 바라보는, 따뜻하고 의젓한 엄마 K가 그 곳에 있었다. 아기가 예쁠 때는 예뻐도 힘들 때는 정말 내가 왜 애를 낳았나, 싶을만큼 힘들 때도 많다고 푸념했지만 엄마가 된 K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아름답고 성숙해 보였다. K와 H 부부, 그리고 윤아가 지금처럼 계속 건강하고 행복하길 빈다.

너도 낳아야지. 그러는 너는. 나도 낳아야겠지. 돌아오는 길에 미혼인 친구들끼리의 심심한 대화. 솔직히 지금은 결혼에 대해서도, 아기를 낳는 것에 대해서도, 절대 자신이 없는데. 누군가 다 준비시켜놓고 코앞에 대령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두렵고 자신이 없는데. 그런데도 신혼부부는 부러웠고 아기는 참 예뻤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별 게 있나 싶기도 하다. 바로 그런 게 행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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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7-0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라는게 별건가요...다 닥치면 잘하지 않나 싶어요..^^
가끔 제자신을 봐도 제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문뜩 문뜩 드는 이유는 잘 자라고 있는
주니어 때문이랍니다..^^

깐따삐야 2006-07-03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음... 일리 있는 말씀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막상 닥치면 잘할 것 같은데 좀 닥쳐줬음 좋겠어요. ^^

비로그인 2006-07-0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행복, 소소한 일상들. 어쩌면 무섭고 두려운데 어느 순간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는 일들이 모여서 일상이 되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는 도저히 못하겠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당장 해버리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 때에는 하지 않는 순간이 작다거나 무언가를 결심하는 순간이 크다거나, 그 비중을 떠나서 두가지 모두가 나를 이룬다는 생각이 듭니다.

깐따삐야 2006-07-0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비중을 떠나서 두 가지 모두가 나를 이룬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매사에 있어서 심사숙고한 다음 결정은 가능한 한 빠르게, 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잠깐 생각하고는 결론을 내리는 시점에 뭉개면서 질질 끌지 말구요. 제가 좀 그런 편이거든요. ^^

비로그인 2006-07-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사숙고한 다음 결정은 빠르게, 라는 대목에서 으윽, 소리가 나올 뻔 했습니다. 전 오래 생각하고(생각하다가 또 잠깐 쉬기도 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시점에서 질질 끌기도 아주 잘하거든요.ㅠ.ㅠ

깐따삐야 2006-07-0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머리가 아파서 오래 생각하지도 못하고 대충 결론을 내린 다음, 그 결론이 마음에 안들어서 질질 끌다가 그래도 별로 뾰족한 수가 안 떠올라 결국 맨 처음 내렸던 결론으로 귀결되어, 종종 아메바라는 말을 듣는 저보다는... 그래도 신중하다, 라는 느낌이 팍팍 전해져오는 Jude님이 훨씬 나으신 겁니다. ^^

마태우스 2006-07-03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낳고 기르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전 진작에 포기했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애낳는 거, 부럽지가 않더라구요

BRINY 2006-07-0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구요. 아무 생각없이 나이차서 결혼해야한다는 생각으로 결혼했고, 너희들 기르기도 너무 힘들어서 귀엽고 예쁜지도 몰랐다구요. 어머니는 그래서 본인도 이제 귀여운 손자손녀를 보고 싶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솔직히 그런 의무로만 가득찬 가정환경이 저도 너무 힘들었구, 남들 다 한다고 해서 결혼하고 애 낳을 일 아니라는 거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깐따삐야 2006-07-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아기가 보기에 좋았더라, 하는 것과 실제로 낳고 기르는 것은 분명 다른일일거에요. 불안정하고 험난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저 녀석한테도 해맑게 웃던 아기 시절이 있었을텐데, 그저 방긋방긋 웃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 기쁨을 주던 시기가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두려워지기도 하고 그렇답니다.

BRINY님, 어쩌면 멋 모를 때 결혼하고 아기 낳는 일이 행복의 첩경인지도 몰라요. 저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깨달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부담감만 자꾸 자꾸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
 



후텁지근하고 불쾌지수가 높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심신은 무기력하고 입맛도 쌩쌩 돌아주지 않는다.  너무 긴 장마는 말고 잠깐의 시원한 소나기가 그리운 오후. 오늘의 저녁 메뉴는 모밀국수. 육수에 열무김치 국물을 섞어 새콤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일품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식탐은 모밀국수를 보니 냉면도 함께 떠오르는구나. 아무것도 할 줄은 모르면서 끊임없이 먹을 줄만 아는 이기적인 식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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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6-3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고 시포요~

blowup 2006-06-30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냉국수 종류에 토마토를 넣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어울리나요? 식감이)
저만 불만인 건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봐요.^^

Mephistopheles 2006-07-0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모밀국수도 맛있지만..그 소반에 받쳐 나오는 모밀도 맛있어요...^^
(토마토야...그냥 몸에 좋으니까...하나 넣어준다가 아닐까요..^^)

깐따삐야 2006-07-0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

namu님, 보기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기 때문이 아닐까요? ^^

메피스토님, 모밀소바를 말씀하시는 건가 보네요. 그것도 맛있어요~
 
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경쾌한 문체와 길지 않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일견 가벼운 듯 읽히지만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소설이 전하는 진지한 메시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몹시 슬프고 비극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강간범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하루는 아버지의 신실한 사랑과 우정과도 같은 형의 애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강간범의 DNA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심하게 증오하고 거부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속박당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루가 고스란히 강간범의 DNA를 물려받아 비슷한 길을 걸었다면, 나 자신 쾌락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은 결코 악이 아니다, 라고 말할만큼 철저한 악인이었다면 하루는 오히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난 아버지를 닮아서 이런거라구. 이러한 DNA 결정론자같은 선언이란 얼마나 무모하고도 속 편한가.

인간이 그렇듯 DNA만으로 결정지워지는 존재라면, 인간성과 도덕률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DNA 안에 담겨 있다면, 아마 전 지구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갈등과 전쟁, 대량학살이 끊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피는 못 속인다, 는 말은 그만큼 피에 연연하며 살고, 혈연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에 관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는 자신의 DNA를 미워함으로써, 자신이 친아버지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위험하고도 피로한 삶을 택했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넘어서기 위해서, 연쇄방화사건을 일으켰으며 친아버지를 찾아내어 살해하고 하루 자신도 이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어릴적부터 하루의 뇌리 속에 강간범의 자식이라는 쐐기를 박아놓은 사회의 편견 탓이 크겠지만 말이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멋진 화가로, 한 여자와 따듯한 사랑을 나눌 줄 아는 평범한 청년으로 살 수도 있었던 하루가 중력을 거스르려는 삐에로의 몸짓처럼, 웃고 있지만 힘에 겨운 곡예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픽션임에도 유감스럽고 안타까웠다.

하루의 말처럼 즐겁게 살면 지구의 중력 같은 건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DNA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이 가장 즐거운 삶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평범한 하루가 연쇄방화범, 존속살해범이 된 것은 DNA가 아니라 DNA에 얽매였던 하루 자신과 사회의 고정관념 때문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그 어둡고 진중한 메시지를 되새겨볼 때, 책 겉표지에 실린 '그래, 가끔은 생의 중력을 잊고 사는 거야, 그네를 타고 하늘을 씽씽 나는 피에로처럼' 이란 글귀는 우스꽝스럽다 못해 슬프기 짝이 없다.

그네를 타고 씽씽 나는 피에로처럼 읽어야 할 소설을 그렇게 읽어내지 못한 내가 이상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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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6-24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엔에이 결정론의 비극이군요... 저도 나이들면서 점점 유전자를 믿게 되지만, 인간의 의지와 노력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님 말씀대로 고정관념이 더 큰 역할을 했겠지요??

깐따삐야 2006-06-24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저도 늘 엄마로부터 듣는 얘기 중의 하나가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아빠를 쏙 빼닮았다, 는 것인데 그 지적이란 게 장점이 아니라 단점을 이야기 할 때만 나온다는 것이죠. ㅋ 제 생각엔, 자식이 부모를 원래 닮은 구석도 있겠지만 어떤 말을 계속 듣다보면 그와 정말 비슷해지거나 그에 역행하려 들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단순한 사람이라면 더욱 더 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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