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가 아기를 낳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친구와 친구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은 것이다. 아내 되는 사람은 나의 초중등 동창이며 남편 되는 사람은 중등 동창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7년간의 연애 끝에 이들은 결혼에 골인했고 더 이상의 비유를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천사처럼 예쁜 딸내미를 낳았다. 비 오는 주말, 마트에 들러 기저귀 꾸러미를 사들고 다른 두 친구들과 함께 신혼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아직 세상에 나온 지 2개월밖에 안된 윤아는 앙증맞은 손싸개를 한 채 발가락을 꼬물꼬물, 입술을 옹알옹알하며 비 오는 주말의 눅눅함과 노곤함을 싹 가시게 해주었다. 윤아는 이미 평균 체중을 넘어선 채 잘 먹고 잘 자며 쑥쑥 자라고 있는 중이었다.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동그랗고 맑은 눈, 웃을 때 살짝 도드라지는 볼살이 꼭 제 엄마를 빼닮은 것 같았다. K는 아기 아빠 어릴적이랑 똑같다고 하는데 사실 누굴 닮은들 어떠랴. 아기는 그 자체로 예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K가 윤아를 안아보라고 했을 때 솔직히 겁이 났다. 하지만 꼭 한 번 안아보고 싶기도 했다. 아기가 안아주고 싶을만큼 예뻐서이기도 했지만 안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윤아는 나에게 안기자 발을 쪽쪽 뻗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좀 무거웠고 꼬무락거리며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신기하고도 무서웠다. 가슴과 손에 아기의 따듯한 체온이 전해져왔고 간혹 눈웃음도 치다가, 찡그리기도 하다가, 를 반복하는 표정은 너무나 귀여웠다. 친구들은 나에게 아기 안은 폼이 난다면서 좋아했지만 윤아를 엄마에게 다시 안겨주고 나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느껴졌다. 휴우- 하는 한숨과 함께. 능숙한 솜씨로 우유를 먹이고 아기를 어르고 하는 K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란 저런 것이구나. 나와 같이 까불고 소리 지르고 하던 중학생 시절의 K는 온데간데 없고 아기를 애틋하고도 정겨운 눈으로 바라보는, 따뜻하고 의젓한 엄마 K가 그 곳에 있었다. 아기가 예쁠 때는 예뻐도 힘들 때는 정말 내가 왜 애를 낳았나, 싶을만큼 힘들 때도 많다고 푸념했지만 엄마가 된 K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아름답고 성숙해 보였다. K와 H 부부, 그리고 윤아가 지금처럼 계속 건강하고 행복하길 빈다.

너도 낳아야지. 그러는 너는. 나도 낳아야겠지. 돌아오는 길에 미혼인 친구들끼리의 심심한 대화. 솔직히 지금은 결혼에 대해서도, 아기를 낳는 것에 대해서도, 절대 자신이 없는데. 누군가 다 준비시켜놓고 코앞에 대령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두렵고 자신이 없는데. 그런데도 신혼부부는 부러웠고 아기는 참 예뻤다. 생각해보면 인생이 별 게 있나 싶기도 하다. 바로 그런 게 행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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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7-0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라는게 별건가요...다 닥치면 잘하지 않나 싶어요..^^
가끔 제자신을 봐도 제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문뜩 문뜩 드는 이유는 잘 자라고 있는
주니어 때문이랍니다..^^

깐따삐야 2006-07-03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음... 일리 있는 말씀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막상 닥치면 잘할 것 같은데 좀 닥쳐줬음 좋겠어요. ^^

비로그인 2006-07-0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소한 행복, 소소한 일상들. 어쩌면 무섭고 두려운데 어느 순간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는 일들이 모여서 일상이 되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는 도저히 못하겠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당장 해버리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 때에는 하지 않는 순간이 작다거나 무언가를 결심하는 순간이 크다거나, 그 비중을 떠나서 두가지 모두가 나를 이룬다는 생각이 듭니다.

깐따삐야 2006-07-0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비중을 떠나서 두 가지 모두가 나를 이룬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매사에 있어서 심사숙고한 다음 결정은 가능한 한 빠르게, 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잠깐 생각하고는 결론을 내리는 시점에 뭉개면서 질질 끌지 말구요. 제가 좀 그런 편이거든요. ^^

비로그인 2006-07-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사숙고한 다음 결정은 빠르게, 라는 대목에서 으윽, 소리가 나올 뻔 했습니다. 전 오래 생각하고(생각하다가 또 잠깐 쉬기도 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시점에서 질질 끌기도 아주 잘하거든요.ㅠ.ㅠ

깐따삐야 2006-07-0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de님, 머리가 아파서 오래 생각하지도 못하고 대충 결론을 내린 다음, 그 결론이 마음에 안들어서 질질 끌다가 그래도 별로 뾰족한 수가 안 떠올라 결국 맨 처음 내렸던 결론으로 귀결되어, 종종 아메바라는 말을 듣는 저보다는... 그래도 신중하다, 라는 느낌이 팍팍 전해져오는 Jude님이 훨씬 나으신 겁니다. ^^

마태우스 2006-07-03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낳고 기르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전 진작에 포기했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애낳는 거, 부럽지가 않더라구요

BRINY 2006-07-0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지나가는 말로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구요. 아무 생각없이 나이차서 결혼해야한다는 생각으로 결혼했고, 너희들 기르기도 너무 힘들어서 귀엽고 예쁜지도 몰랐다구요. 어머니는 그래서 본인도 이제 귀여운 손자손녀를 보고 싶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솔직히 그런 의무로만 가득찬 가정환경이 저도 너무 힘들었구, 남들 다 한다고 해서 결혼하고 애 낳을 일 아니라는 거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깐따삐야 2006-07-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아기가 보기에 좋았더라, 하는 것과 실제로 낳고 기르는 것은 분명 다른일일거에요. 불안정하고 험난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저 녀석한테도 해맑게 웃던 아기 시절이 있었을텐데, 그저 방긋방긋 웃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 기쁨을 주던 시기가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고 두려워지기도 하고 그렇답니다.

BRINY님, 어쩌면 멋 모를 때 결혼하고 아기 낳는 일이 행복의 첩경인지도 몰라요. 저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깨달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부담감만 자꾸 자꾸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