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찌개 메뉴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업데이트라면 업데이트였다. 예전엔 그냥 순두부찌개였는데 원조순두부, 버섯순두부, 김치순두부, 햄순두부, 이런 식으로 메뉴판이 추가되어 있었다. 나는 김치순두부, 선배는 버섯순두부, 후배는 원조순두부를 시켰다. 앞에 뭐가 붙은 순두부찌개는 500원이 더 비쌌다. 그래보았자 셋이 먹어도 채 만 원이 넘지 않는 저렴한 식단. 우리는 이 식당에 와서 다른 걸 먹어본 적도 없고 시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조건 순두부였다.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순두부를 몇 숟가락씩 떠서 밥에 얹어먹거나, 아예 뚝배기 채 푹 쏟은 다음 솔솔 비벼주신다. 넓직한 스댕 대접은 아무리 지저분하게 비벼도 나름의 맛깔스런 운치가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무생채를 같이 넣고 비벼주면 더 좋고 그 위에 계란부침을 얹은 다음 한 입 쑤욱, 목구멍을 타고 뜨끈한 밥덩어리가 내려가는 순간 더 이상의 포만감이란 없다.

  점심을 먹기 전에 T 선배와 먼저 만나 도서관 앞에서 후배 W를 기다렸다. 밥 먹으러 가는 내내 입이 귀에 걸려 통화중이었다. 목하 연애 중이신 스물여섯의 청년. 얼마나 만났어? 6개월 조금 넘은 것 같은데요. 그럼 뭐 헤어질 때 됐네. 후배를 향한 나의 독설은 여전했지만 능글맞은 웃음으로 패스, 하는 녀석 또한 옛날과 다르지 않았다. 셋이 나란히 걷다 보니 독수리 오형제를 표방하던 그 시절이 떠올라 다같이 웃었다. 지금 여기에 없는 두 사람은 내 동기들이다. 복잡한 가정사로 바짝바짝 말라가던 한 친구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황인숙을 닮았던 다른 친구는 벌써 아이를 둘이나 낳아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들이나 안주에 취해 헉헉거리던 나나 우리에게 내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전혀 꿈꾸지 않았던 그 내일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T 선배는 대학원을 마친 후 남이섬의 환경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후배는 국문과 졸업반이라 한창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새 알고 지내온 시간이 선배와는 8년, 후배와는 6년이었다. 너도 늙었다, 는 말에 잠시 충격 먹었다. 진짜 몇 살로 보이냐고 진지하게 묻자 내 나이에서 서너 살을 감해주었다.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금새 표정이 밝아지는 나를 보고 역시 너는 단순해, 역시 선배는 간단해, 장난스런 눈빛들이 스쳤다. 사실 원래 내 역할이란 게 그랬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한 방에 모든 걸 단순화시키는 사람이었다. 마구 복잡하게 엉켜있는 사연의 실타래를 한 방에 불태워버리는 미니멀리즘의 귀재. 저도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는 안 그래요. 참하고 반듯하고 진지하고... 선배는 음, 하긴 그렇겠지, 라고 말해서 나를 놀래켰다. 그냥 웃고 말자고 한 이야기였는데 선배가 민망해질까봐 잠깐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봐줬다.

  선배는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과 매일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낮에는 장작도 패고 밤에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읽으며 남이섬에서의 일상을 보내고 있단다. 내가 대뜸 현실적인 청사진을 펼쳐놓자 아직은, 이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마음이 맑은 사람이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영수 시간에 배웠던 것보다 고등학교 시절 정치경제 선생님이 겨울 내내 트럭을 몰고 다니며 배추장사를 도왔던 이야기를 더욱 감동적으로 기억하는 나로서는, 선배를 보면서 아쉬움도 들고 내가 가진 것들이 협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선생은 수능에 날 것은 안 가르치고 섬에서 장작 팬 이야기만 한다는데요, 라며 강짜를 부려댈 학부모가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기에 뭐라 더 말할 수는 없었다.

  후배는 김종삼 시인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다고 했다. 국문과 교수들은 순문학을 지키려는 위세인지, 대충 쉽게 통과해서 졸업시켜 주는 일은 없을거라며 못을 박았단다. 학부생들의 모자라는 열의와 교수들의 넘쳐나는 자존심이 어긋나고 있었다. 대개 학부제로 전환된 현 시점에서 국문학을 열망해서 국문학도가 된 학부생이 몇이나 될 것이며, 기왕 배정됐으면 죽기 살기로 공부하라는 교수들의 조언에 성실히 귀 기울일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후배는 졸업논문 보다도 취약한 영어실력을 더 걱정하고 있었고 그게 현실이었다. 캠퍼스는 신입생들의 짧은 스커트와 산뜻한 청바지로 푸르게 팔랑이고 있었지만 그들도 언젠가 그들이 전혀 꿈꾸지 않았던 내일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은 이상으로서 높고 아름다울 뿐. 성취도와 만족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공대 출신인 Y 선배가 뒤늦게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과 거기다 J 선배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Y 선배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졸업하자 서운한 마음에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엄청난 착각을 했던 선배였다. 몇 년 전에 어느 자리에선가, 기도 안 차는 그 실상을 파악하고 나는 억울해서 놀래 자빠질 지경이었다. 멤버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는 데에 충격은 배가되었다. 완전 마녀사냥이었는데 당시엔 마녀사냥이란 말도 유행하지 않을 때라서 나는 애매모호한 얼굴로 선배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채 주거니 받거니 술만 마셨다. 바로 옆자리에는 내가 진심으로 흠모했던 다른 선배가 앉아있었기에 나의 억울함은 하늘에 솟았다 땅에 내리꽂히다를 반복하며 공중을 맴돌았다. 우리 어머니가 그러는데 나는 외국어를 전공하는 여자랑 결혼하게 된다던데. 아하핫... 아마 국제 결혼 하실라나 보네염... 하나는 지르고 하나는 주워섬기며 우리는 그런 시덥잖은 대화를 주고받았고 주변 멤버들은 우리에게 만리장성을 쌓게 한답시고 하나, 둘 자리를 피해주는 시늉까지 서슴지 않았다. 평소에는 공연히 예민하고 깐죽거리기 좋아했던 사람인데 역사학, 이라니 한 번 놀라고 반듯하고 착실한 공무원인 J 선배와 사귀고 있다니 두 번 놀랐다. 아무튼 그 선배 덕분에 나는 그 이후로 나이 많은 남자에게 함부로 친절하거나 다정하게 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한 가지, 후배들에게 욕 먹을 각오하고 조목조목 쓴소리를 해대던 선배는 그 어처구니없는 헤프닝만 빼면 비교적 순수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 부디 J 선배의 건투를 빈다.

  사람들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T 선배는 내게 대학원의 인간관계란 때로 매우 정치적이야, 라는 무거운 충고를 해주었다. 뭔지 알 것 같기는 하다.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하긴 요즘 초등학생들은 우리 때와 다르다지만, 그것이 순수하기만 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톱 발톱에 삼지창을 감추고 다닐 것도 아니지만. 나는 선배에게 나무만 열심히 패지 말고 밥도 열심히 먹으라고 엄마 같은 인사를 했다. 실제로 셋 다 예전보다 여위어 있었고 탱글탱글했던 옛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사람이란 연애를 해야 하는걸까. 스윗박스의 제이드 빌라론이 옆의 사람 뒤통수를 때려서라도 사랑에 빠지라고 하더니만, 여자친구가 있는 후배만이 화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헤어지고나서 술 생각나면 그 때나 연락해라. 나는 기어이 독설로 마무리했지만 후배의 능글맞은 미소를 보고는 안심했다. 나쁜 녀석, 상당한 미인과 사귄다던데 정말 밉살맞은 녀석이 아닐 수 없다고 선배와 나는 능글맞게 웃었다.

  내 큰 목소리 때문에 어김없이 몇몇 낯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돌아봤고, 몇 년 사이 많이 달라진 캠퍼스 주변 탓에 내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순두부찌개 맛이 건재하다는 사실은 위안을 주었지만 나는 밥을 비빌 때 고추장을 깜빡했다는 것을 깨닫고 문득 우울해졌다. 한 번도 깜빡한 적이 없었는데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테입을 다시 돌리고 싶었다. 우리의 대화는 예전처럼 잘 이어졌고 잘 이어지지 않을 때조차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단순함은 예전과는 달리 어느 부분에서인가 억지스러웠고, 선배의 맑음은 환함이 아니라 어느만치의 그늘로 느껴졌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검은색 가죽가방을 어깨에 둘러맨 채 다시 학교로 향하던 후배의 모습도 다소 안쓰러웠다. 여기서 자본주의니 신자유주의니를 운운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었고 이미 지나온 시간과 기억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돌려본다 한들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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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7-03-1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면 항상 그런 아쉬움들은 남는 거 같아요. 그래도 다들 재미있어 보이네요. 순두부에 고추장도. ^^

BRINY 2007-03-1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보이세요~ 학교생활!

깐따삐야 2007-03-1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만나면 반갑고, 아쉽고 그래요. 예전엔 순두부찌개에 고추장 팍팍 넣고 비볐는데 이젠 자극적인 맛보다는 담백한 맛에 길들여진 건지도 모르죠.^^

BRINY님, 학교 다닐 때... 그 때가 참 좋지 아니한가,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07-03-1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 선배가 제이 선배와 사귄다는 사실은 제게도 충격이네요. 흐음, 인간사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인가봐요. 업그레이드된 순두부가 생각나는 계절이네요

깐따삐야 2007-03-1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그러게나 말이에요. 도끼 선배, 이제는 부디 안착해야 할텐데 말이죠. 순두부는 드실 수 있나요? 콩에 관한 안 좋은 추억이 많아 보이셔서.^^

레와 2007-03-1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 학교 앞에도 기가막힌 순두부집이 있었는데..
들리세요??? 저 침 넘어 가는 소리~ (꿀~~~꺽!)

꽃이 피면 더욱 그리워요..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학교..

깐따삐야 2007-03-13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순두부찌개 맛있죠.^^ 저도 봄이 오면 캠퍼스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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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책을 비롯해서, 아니 특히 책에 대해서 회의가 엄습할 때가 있다. 곁에 있는 단 한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쌓여가는 책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의 반성은 습관성이다. 그 습관성 반성은, 비록 지성인이었지만 정말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족 한 사람, 친구 한 사람 건사할 줄 몰랐던 무능한 생활인들의 취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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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인 직감에 의해 그녀의 여린 성정을 알아채고는, 너라면 나를 절대 모질게 내치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었을 뿐.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단지 살고자 하는 욕구이자 본능이다. 얼마나 많은 커플들이 부조화와 불공평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을 한 채 살아가고 있는가. 그녀가 밤을 지새워가며 그를 걱정하고 있을 때 그는 그녀를 그런 식으로 길들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편해서 만났다, 고 말하는 대신 사랑해, 란 말로 자존심을 지키려 들었다. 문제는 그녀가 남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고급한 여자였다는 것. 단지 편함, 만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그 여자일 필요는 없었다. 파국의 원인은 한 쪽으로 기우는 지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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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 노래방에 가면 이성을 잃고 휘젓고 다닌다는 것. 시화반을 맡아오고 있다는 것. 어떤 선생님은 나를 알게 된 후 세 번을 놀랐다고 한다. 나는 의외나 예외, 반전을 즐기는 인간이 아니다. 내, 외면의 불일치는 수치스러울 것도 없지만 자랑할 만한 소지의 것도 아니다. 나는 저혈압일 때의 내 모습을 사랑한다. 냉동건조커피 반 스푼의 농도. 프림도 설탕도 넣지 않은, 적당히 은은하고 향긋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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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그 어떤 말 보다도 아빠가 무심코 던진 저 말씀이 가슴을 콱, 막았다. 나는 아빠를 닮았다. 그래서 자신감이 있었다. 내 마음을 거울 삼아 모든 심정과 행동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잘 모를 수도 있는 2% 안에 진실이 숨어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에르노가 <아버지의 자리>에서 웅변적으로 그리고 있듯, 내가 내 아버지의 딸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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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운서가 후회, 라는 말을 꺼내자 작가 한 강은 "그 순간의 최대치였다"라는 나지막한 응대로 질문을 무색하게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나름대로의 시간에 나름대로의 빛깔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작가는 아니더라도, 나는 왜 지나온 날들에게 저런 평범한 위안조차 주지 못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에겐 그 때 그 순간이 최대치였던 거에요. 스스로에게 모질어 상처를 입히는 사람은 타인을 대할 때도 다르지 않다. 필요한 건, 위장이 아니라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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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3-1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은 깐따삐야님이 팔색조..라는 사실..^^

깐따삐야 2007-03-1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역시 영특하신 큰오라버님. ㅋㅋ
 


  토끼처럼 귀여운 영화를 보려던 참이었다. 휴 그랜트와 드루 베리모어라니, 이보다 더 사랑스럽기도 어려운 조합이다. 알렉스(휴 그랜트 분)는 끊임없이 엉치뼈를 흔들어대고 소피(드루 베리모어 분)는 토실토실 앙증맞은 표정으로 가슴에 녹아든다. 영화는 모자람도 넘침도 없다. 다정한 사람끼리 나란히 앉아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고, 같은 씬에서 동시에 웃을 수 있게끔 배려한, 베스트셀러의 요목을 제대로 숙지한 로맨틱 코메디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곱창을 먹은 것은 잘한 일이었지만 약간 시장기가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본 다음, 딸기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창밖의 봄비를 구경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80년대,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인기 듀오 '팝'의 멤버였던 알렉스는 이제는 주부들 사이에서나 기억되고 있는 한물 간 가수다. 각종 시시한 행사에 불려다니며 힘겹게 엉치뼈를 흔들어대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전같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최고 인기 가수인 코라 콜만이 알렉스에게 듀엣을 제의해 온다. 하지만 알렉스에겐 주어진 짧은 기간 동안 직접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임무가 맡겨지고 한창 고심을 하던 중, 화초에 물을 주러 왔던 소피에게서 놀라운 작사 능력을 발견한다. 알렉스의 말을 그대로 빌려오자면 노랫말을 떠올리는 소피는 그야말로 입만 열면 옥구슬. 사실 그녀는 작가 지망생이었지만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후로 꿈을 포기했었다. 알렉스와 소피는 낮밤을 함께 하며 'Way back into Love'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코라는 이 노래를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하지만 자기 식으로 노래를 바꾸어 부르려 하는 코라를 소피는 인정하려 하지 않고, 이 과정에서 알렉스와 심하게 틀어지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예전에 김광한 씨가 진행하던 쇼비디오자키, 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Wham의 Last Christmas의 뮤직비디오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아마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시디나 MP파일이 흔하지 않을 때라서 당시에 내가 팝송을 접할 수 있는 매체는 심야 라디오 방송과 오빠가 듣던 오래된 테입들, 그리고 쇼비디오자키 정도였는데 Wham의 저 뮤직비디오를 보고 난 후로 곧바로 팬이 되었다. 과거에 뉴키즈온더블럭이 내한 공연을 하러 우리나라에 왔을 때 소녀들이 실신하여 실려가고, 한바탕 나라 안이 떠들썩했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그저 웸의 노래가 나오면 야, 정도의 환호성과 함께 반가워하고 좋아했다. 그 무렵, 내가 녹음해서 선물했던 테입에는 상대의 취향이나 시기와 계절을 막론하고 언제나 웸의 래스트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영화 속 알렉스와 그룹 팝은 나로 하여금 창창하던 시절의 조지 마이클을 떠올리게 했다. 그 촌스러운 멜로디와 민망한 엉치뼈 댄스를 보며 어깨가 들썩이고 구두굽이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아, 팝의 고전이란 역시! 혼자 감탄하기까지 했다.

  주름이 짜글짜글한 휴 그랜트도 늙긴 늙었더라마는 다행히 귀엽게 늙어가는 듯 했다. 그가 숀 코네리나 마이클 더글라스 만큼 늙으면 과연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여전히 궁금하지만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화초에 물 주러 온 귀여운 할머니를 홀려서 알콩달콩 재미나게 지낼 것 같긴 하다. 할머니였든, 아줌마였든, 아가씨였든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라면 그를 내치지 못한다. 여자들은 누구나 그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랑에 빠질 수밖에. 행운의 사나이, 부실한 엉치뼈마저도 사랑스러운. 드루 베리모어는 '웨딩싱어'에서 만큼 젊고 싱그럽진 않지만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메디 여주인공의 전형을 보여주기에는 무리가 없다. 마르고 닳도록 빼고 또 뺀다는 요즘 헐리웃 풍조에 비하면 여전히 살짝 통통하다 싶은 체구이지만, I need inspiration~ Not just another negotiation~ 하는 그녀의 노랫말과 스키니함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정곡을 찌르는 위트 넘치는 대사와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두 배우, 귀에 익은 듯한 아름다운 노래들이 즐거운 하모니를 이루며 사랑을 찾아가는 길(Way back into love)에 대해 이야기하는, 군더더기 없이 다정다감한 영화였다.

  알렉스와 소피는 서로를 위해 잃었던 꿈을 찾아준다. 과거의 영광에 매여있던 알렉스, 과거의 미련에 의지했던 소피. 그들은 과거로부터 벗어나 이제 함께 시작하자고 노래한다. 내가 언제나 나다워도 편안한 것, 싸우지 않고 우아하게 비껴가느니 서로 치고받고 하더라도 함께 갈 수 있음을 깨닫는 것.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로맨틱 코메디가 사시사철 끊임없이 주입하곤 있지만 사실 별 효력은 없는, 사랑을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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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7-03-0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
예전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골라 테잎 선물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그게 어느덧 시디로 바뀌더니, 요즘엔 아예 시도도 안하고 있네요..^^;;


이번주 하루 시간내서 꼭 보러가야겠어요! 이 영화~

바람의 심술이 굉장한 오늘입니다.!
날려가지 않게 조심조심하셔요~

깐따삐야 2007-03-05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이 영화 추천합니다. 기분이 좋아지실 거에요.
 

  신입생들은 어쩜 그리 표가 날까. 거리에 쏟아져나온 아이들 중에서 신입생을 골라내라면 어렵지 않게 솎아낼 수 있겠어. 갓 빨아놓은 빨래라 해도 새 옷과는 엄연히 다른 것처럼.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보며 저 여자는 신입생이구나, 짐작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지는군. 비록 어두운 색이었지만 사람들은 내 구두가 새 것이라는 걸 보았을거야. 비도 왔는데 낡은 것을 신고 갈 걸 그랬어.

  갑자기 주어진 여유가 아직은 낯설어. 오래 전, 당신에게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나. 당신이 해주었던 실용적인 조언들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누군가 도움말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토닥일 줄도 알게 되었다는 거. 불안한 거야 있지. 나는 소심증 환자라서 불안하지 않으면 더 불안해지곤 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의 정체마저도 알고 있다는 거. 당신이 재미없는 표정으로 상상했던 것처럼 나는 조금 어른이 되어버렸어.

  나에 대해 아쉬워했지만 나는 결국 교사가 되었어. 당신의 과대평가가 좋았지만 내 그릇의 크기는 내가 잘 아니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여러모로 부적격했어. 아마 공부를 핑계로 잠시 숨어있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있지. 오늘 근처 중학교 운동장에서 입학식이 있었는데 까만 교복 속에서 꼬물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외경심 비슷한 감정이 생기더라. 간사함이 물씬 배어있는 그 불건전한 마음을 오래오래 혐오하긴 했지만. 아직은 아이들이 그립거나 하진 않아.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오직 나로서의 내가 그리웠을 뿐야.

  당신을 생각할 때도 있었어. 지금도 어쩌다 간혹. 미안하지만, 몹시 한가할 때만 그런 것 같긴 해. 놓친 풍선이 높이높이 떠오르다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봐. 그립고 자시고 할 게 있는가. 꼼꼼한 당신은 놓친 게 아니라 놓았다고 정정하겠지. 하지만 의외로 둔감한 당신은 내가 팡,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걸 알아야만 해. 어디엔가 있다, 고 생각했고 그러는 편이 나았어. 그리움은 부재의 인정이니까.

  요즘 내가 기다리는 건 513번 버스와 세탁을 맡긴 옷, 알라딘에 주문한 책과 올리브유로 튀겼다는 치킨 정도. 오늘처럼 달이 뜨면 소원을 세 가지씩이나 빌고, 다시 싹싹 빌고나서 얼른 소원을 바꾸어 말하기도 했는데 그 연례행사를 사촌동생에게나 시켰어. 예전에 내가 소망하던 일들을 모두 이룬 것도 아닌데 무엇을 기다렸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버스는 약간의 오차가 있을지언정 반드시 오고 내가 이용하는 세탁소는 저렴하면서도 정확해. 알라딘도 예전에 주문하지도 않은 초등학생용 문제집이 한 번 끼어 온 것 말고는 착오가 없었고, 치킨체인점은 서로 과다경쟁 속이라 늘상 신속배달이야. 나는 어느새 확연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기다리게 되었나봐. 

  당신이 한 약속들을 잊는 사이,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들을 지키며 살아왔어. 항상 몇 퍼센트 쯤은 아쉽곤 했지만 그건 나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적 결함일테니까. 누군가를 좋아한 적도 있어. 그러는 중에 당신이 해주었던 말을 반복하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했지. 정답은 없었어. 가끔 절대치인 것처럼 말하던 당신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치기도 했어. 긍정의 말을 얻기 위해 소년을 연기하던 능청스러움에 경악하기도 했고. 지금이라면 웃어제낄 타이밍에 묵묵히 슬퍼하고 있었다니. 나 자신이 안쓰럽다 못해 귀여웠지. 하지만 사랑이란 게 결국은 상대와 열라 놀아주는 일, 아니겠어.

  길에서 당신을 닮은 사람을 본 게 아니라 사실은 나를 닮은 사람을 보았어. 스무 살 무렵의 나. 그렇게 떠오른 게 당신이야. 그 아이는 하나도 예쁘지 않았어. 스무 살이란 나이만으로도 날아갈 듯 고와야 할텐데 말이지. 당신이 나를 예쁘다고 한 건 나를 홀리기 위해서였나봐. 정말로 중요한 건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거라는 둥의 말은 하지 말도록. 나 너무 많이 크지 않았어?

  좁힐 수 없는 거리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 감정의 훼손 없이 기억 속에서 당신을 다시 불러낼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겠지. 당신은 좋은 인생 선배였고 선생님이었어. 비록 나의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착취하고 고맙단 말을 남발한 사실을 보건데, 어쩌면 그 덕에 출세까지 했는지 모른다는 의심이 가시지는 않지만. 시작할 때부터 원래 염두해 두었던 분야가 있었는데 연이 닿을 지는 모르겠어. 사심없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빌어줘. 컨셉은 정했어. 조용한 커피 같은 사람. 웃지 마.

  지금이라면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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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3-0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the stars~~♬

깐따삐야 2007-03-0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좋은 노래죠.^^

부리 2007-03-05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분, 멋지시네요.

깐따삐야 2007-03-0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저는 약속을 그닥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쿨럭~
 



   내가 어서 스무 살이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대학에 가면 수학을 안 배워도 되기 때문이었다. 소심한 탓에 늘상 수학책을 붙들고는 있었지만 내게 있어 수학책이란 그저 하나의 물체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교과목에 비해 확연히 처지는 점수 때문에 늘 고민스러웠고 주변 사람들 대다수가 나의 수학 성적에 대해 함께 염려해 주기도 했다. 아예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 더 몰두하는 건 어떨까,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게 말처럼 포기가 안 된다는 것이 또 문제였다. 오로지 욕심 때문이었다.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나와주던 다른 교과목에 더 집중해봤자 그다지 전체적인 점수 상승이 있을리 없으니, 역시나 부족한 수학에 좀더 매진해야 한다는 결론이 떨어졌다. 결국 나는 굉장히 열심히 수학 공부를 하는 것 같긴 한데, 모의고사만 보면 늘상 반타작 언저리를 웃도는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는 학생이었다. 종종 수학 선생님들을 까닭도 없이 미워하고 수학 교과서 귀퉁이에 상스런 욕을 써놓았던 것은 모두 수학에 대한 원한 때문이었다. 영어가 효자였다면 수학은 발목 잡는 귀신 같았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니. 사랑할 게 그렇게도 없었더냐, 싶었지만 너무나도 따듯하고 서정적인 영화라서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십 년 전에 이 영화가 나왔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 바뀌었을까. 수리에 약한 천성이야 쉽게 변할 리 없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수학 교과서 귀퉁이에 끄적였던 욕 만큼은 슬쩍 지웠을지도 모르겠다. 왜 그 때 그 시절 수학 선생님들은 첫 시간마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다, 라며 잘난 척만 하셨을까. 루트 선생님처럼 수학과의 엄청난 인연을 풀어놓진 못하더라도 오일러의 공식 정도만 차분차분 읊어주셨다면 3.14 원주율과 허수 i와 네피어 수, e가 無로 합일되는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수학의 신비한 매력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서툰 목수가 연장 탓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이 선생 욕한다지만,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루트 선생님의 수업은 내 일생 가장 재미있는 수학 수업이었다.

  사고로 인해 1시간 20분의 기억력 밖에 갖지 못한 박사(테아로 아키라 분)는 그러한 특수한 상황과 독특한 성품 때문에 무려 9명의 가정부를 갈아치운 상태다. 새 가정부로 일하게 된 싱글맘, 쿄코(후카츠 에리 분)는 박사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아까 말했던 거잖아요, 라는 말을 금칙어로 정한다. 쿄코의 신발사이즈를 묻는 것으로부터 반복되는 일상은 우애수, 완전수 등 다양한 수의 성질을 발견하고 깨달아 가는 흥미로운 수학 수업과도 같다. 엄마 없이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하는 쿄코의 아들을 걱정한 박사는 쿄코의 아들이 방과 후에 자신의 집에 오게 하도록 하고, 아이에게 모든 수를 감싸 안아주는 '루트'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박사와 루트는 야구와 숫자를 매개로 친밀한 우정을 나누게 되지만 한때 박사가 앓아 눕는 사건을 계기로 세 사람은 헤어질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교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수식처럼 맺어진 인연은 이후로도 따스하게 지속되고 루트는 수학 교사가 되어 수업 첫 시간,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소개한다.


박사가 사랑한 오일러의 공식 : 모순되는 것들이 통일이 되면 zero가 된다.

  박사에게 루트는 매일 새롭게 만나는 아이다. 박사는 납작한 루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현명한 마음이 가득 차 있을 것 같군, 이라고 말한다. 아마 날마다 이런 말을 듣고 자라는 아이는 저절로 현명해지지 않고는 못 배길런지도 모르겠다. 루트가 머리를 다친 날, 쿄코는 야구 코치에게 왜 아이를 박사님한테 맡겼냐고 화를 내고 박사의 우울한 표정을 눈치챈 루트는, 엄마가 씌워주려는 모자를 내팽개친다. 어느새 현명한 마음으로 가득 찬 아이는 엄마가 하는 말이 옳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현명한 마음이란, 의리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쿄코는 그녀가 항상 신고 다니는 하얀 운동화처럼 깨끗하고 상큼하다. 오물조물 바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향긋한 냉이를 코끝에 갖다대며 활짝 웃음 짓는 그녀는 천성이 고운 여자, 의 모습을 발랄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박사처럼 수리에 능하지는 못하지만 순수한 직감 만큼은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본능적으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것을 시의적절하게 배려할 줄 안다. 루트에게 박사님한테는 절대로 전에 말했던 거잖아요, 라는 말을 해선 안된다고 이르는 쿄코는 착하고 사려깊다. 어쩌면 그동안의 가정부들은 그거 아까 말했던 거잖아요, 라고 신경질을 부리다 스스로 좌절했는지도 모를 일. 매일 매일 현관에서 신발 사이즈를 묻고 답하며 시작되는 똑같은 일상에 대해 그녀는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하지 않는다. 쿄코는 이상적인 여자다.

  박사에게 그냥 지나쳐도 좋을 숫자란 없다. 그는 쿄코의 신발 사이즈에서, 그녀의 생일날짜에서, 야구선수의 등번호에서, 루트의 열한번째 생일에서, 자신이 차고 있는 손목시계의 넘버에서, 갖가지 의미들을 찾아내고 새로운 의미들을 부여하기도 한다. 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는 수학과 사랑에 빠진 천재였다. 1시간 20분의 기억력밖에 갖지 못한 건 신이 그에게 내려준 소박한 축복인지도. 일상의 자잘한 내용물들을 모두 기억하고 그것들에 반응하며 살아간다면, 그가 수와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는 기쁨이 다소 줄어들었을지도 모르니까.

  특별한 소재를 다룬 특별한 영화였다. 멀어진 지금, 이제는 좋고 싫고 할 것도 없지만 수학에 대한 나의 오랜 반감을 반감시켜주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영화의 힘은 막강하다. 루트의 든든한 포용력과 소수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에 대해 미리 좀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가시질 않았다. 수학을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박사의 말처럼 밤하늘의 별의 아름다움이나 들판에 피어난 꽃과 같이,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직감과 감성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수식의 아름다움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내가 수와 친해지지 못했던 것은 천성이 아니라, 잘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쿄코와 루트처럼 사심 없이 다가섰다면 나는 수학과 우애와 의리를 돈독히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블레이크의 시로 끝을 맺는다.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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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7-03-0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맙소사! 영화도 있군요!!
전, 책으로 읽었어요.
마음이.. 가슴이 .. 어찌나 따뜻해지던지..
감동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린 느낌이였어요!!

이 책을 읽고, 버스번호도 예사롭지 않았다는...^^


깐따삐야 2007-03-02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아.. 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