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레타 페이지터너스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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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올레타>는 2022년, 이사벨 아옌데가 여든 살에 발표한 장편이다. 2022년은 세계보건기구가 공식적으로 선언했듯 세 번째 펜데믹으로 전 인류가 불통의 시기로 진입했을 때이다. 아옌데는 이때로부터 백 년 전인 1920년의 라틴 아메리카를 떠올렸다.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이르렀던 1918년에 유럽을 휩쓸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전장에서 죽어간 인명의 몇 배에 달하는 수천 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지만 유럽 열강들은 각국의 피해자 현황을 발표할 수 없었다. 국력 혹은 국격의 노출과 관련된 사안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전쟁 당시 중립을 선언하고 정말로 세계대전에 참가하지 않았던 스페인이 유일하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발생을 인정하고 자국의 피해 상황을 발표하는 바람에 졸지에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게 됐던 펜데믹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기승을 부리다가 2년 후인 1920년에 라틴 아메리카에 상륙했다. 그러니 라틴 아메리카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펜데민은 백 년 만에 도래한 재앙이었으며, 아옌데는 이것에 착안해 1920년에 태어나 2020년에 생을 마치는 ‘비올레타 델 바예’라는 순혈 스페인/포르투갈 혈통 백인 여성의 한 생애를 소설로 구상하게 됐다.

  책의 판매 부수에 최대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출판사와 서점은 백 년 터울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펜데믹에 방점을 두어 책 광고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1920년 펜데믹은 주인공이 이제 막 태어날 시기이니 굳이 질병을 연결시키려면 앞으로 펼쳐질 아이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비유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전세계 모든 인류 가운데 파란만장하지 않았던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또한 2020년의 펜데믹 때 주인공의 나이는 백 살. 한 세기를 살아 이제 오직 편안한 휴식만 기대하고 있는 잘 늙은 노인하고 면역력이 생기지 않은 유행 질병과 그리 큰 연관은 없을 듯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사벨 아옌데 역시 두 번의 펜데믹에 걸쳐 생을 살았던 여성을 착안해 작품을 시작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아예데의 시각에는 수백만에서 수천만의 생명을 앗아간 질병보다 20세기 여성운동에 더욱 관심을 집중했다. 교조적 가톨릭이 국민의 사상을 장악했던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성이 스스로의 삶을 위해 개선, 개선을 넘어 혁신해야 할 관습과 행동, 법률은 넘치고도 넘쳤던 것이었으니. 그리하여 이 책을 읽기 전에 책 광고에서 초점을 맞추었던 펜데믹에 집중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알리고 싶다. 아옌데가 늘 그러하듯이 이 작품 역시 진보적,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읽어야 마땅하다.

  (여기까지 쓰고 마누라 님 저녁 드신다기에 아욱국 끓여드리고 겸사겸사 국 안주로 막걸리 한 통 해치웠다. 내가 끓였어도 진짜 맛있다. 장사할 만큼은 안 되지만 이 정도면 B+. 술 기운 퍼지기 전에 얼른 써야겠다. 속도를 올리자!)


  하긴, 벌써 독후감 쓴지 십년이다. 그간 2천 권 이상 읽었을 거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 동안 썼다. 이제 사실 지겹기도 하다. 그냥 훌훌 책이나 읽고 말지 싶다가도 여태 해온 지랄이 있는데 여기서 말긴 좀 아까운 생각이 들어 계속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만 두어야 할 터. 무슨 광명을 보겠다고 여태 키보드를 두드려대고 있나, 한심할 때도 있다. 뭐라?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고맙습니다.


  “전염병이 발생한 1920년 폭풍우가 몰아치던 금요일에 이 세상에” 온 비올레타 델 바예는, 성인이 된 후, 즉 초경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삶이 연속되는 임신한 상태이거나 막 출산한 산모이거나, 그도 아니면 자연 유산에서 회복하는 시간으로 채워진, 한 때는 이 나라 수도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데뷔당트, 즉 이제 사교계에 정식 데뷔한 상류사회 처녀였지만 이젠 잦은 임신과 출산, 유산으로 체형이 바뀌고 기력마저 소진한 마리아 그라시아 델 바예 여사의 5남 1녀 가운데 막내로 세상에 비집고 나왔다. 이때 맏아들 호세 안토니오는 열일곱 살이었다. 맏오빠는 늙을 때까지 막냇동생 비올레타의 가장 가까운 곳에 머물며 세상에 둘도 없는 우호관계를 이어가다가 동생의 집에서 숨을 거두는데, 하여간 비올레타가 세상에 나올 때 어머니 마리아 여사가 나이를 아는 유일한 아들이 호세 안토니오 뿐이었다. 호세 안토니오는 수천 명이 사망한 최악의 지진이 발생한 해에 출생했으며, 생일은 물론이고 나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머지 네 아들들 역시 이 나라의 큰 환란이 생겼던 해에 태어났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즉, 어머니는 늘 출산 또는 유산 이후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출산할 때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에서 천장에 고정시켜 놓은 고리에 연결한 줄(또는 천)을 잡고 아이를 낳는 모양이다. 우리의 비올레타가 세상으로 나올 당시에 평생 숫처녀로 살게 될 피아 이모가 아이를 받았는데, 의학과 약초에 관한 지식이 대단했던 피아 이모는 정작 아이가 나올 때 제때 받지 못해 그만 거꾸로 떨어뜨려 바닥에 콩, 머리를 찍어 갓 나온 아이의 이마에 혹이 솟아버렸다. 당연히 아들일 것이라 생각한 아빠가 자신이 직접 조립한 라디오 통신을 통해 유럽과 북미를 휩쓰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소식을 듣고 집에 도착해 첫 딸 비올레타를 보았고, 이마에 솟은 희한한 혹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자 그때까지 처녀였던 필라르 큰이모는 매부한테 원래 그렇게 나오는 아이도 있는 법이라고 조금 있으면 가라 앉는다고,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고 (암시랑토 않다니께!) 안심시킨다. 아버지 아르세니오 델 바예 선생은 할아버지 때부터 건사해온 집안의 부wealth가, 자신의 대에 이르러 열세 명의 남매 중에 열한 명이나 살아남아 부친의 재산 일부만 유증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속칭 “동물적인 감각”으로 남의 돈을 빌려 투기 비슷한 돈 놓고 돈 먹기 사업이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고, 형제 자매들의 신뢰를 깨면서까지 할아버지의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을 하는 사람은 거대한 재산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별로 없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저택은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생전 처음 딸이 태어났으니 얼마나 귀여웠겠는가. 아들만 키운 나도 전혀 몰랐다. 근데 손녀가 생기니까 집안에 딸이 있는 것이 얼만큼 축복인지, 이해한다, 이해해.

  아버지 아르세니오 델 바예 선생은 라틴 아메리카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상륙하자마자 라디오 통신을 통해 이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예방책을 미리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제재소의 신뢰할 수 있는 벌목꾼 두 명을 데리고 와 소총으로 무장시키고 아무도 저택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자신도 영국에서 밀수한 웸블리 리볼버를 한 정 사들여 혹시 모를 무단 침입 보균자를 막으려 한다. 이런 노력은 결실을 맺어 대가족 가운데 펜데믹 피해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거봐, 작품하고 펜데믹은 시대상 말고는 관련이 없다니까.

  이후 비올레타는 세상 버르장머리 없는 천방지축으로 성장한다. 아들한테는 도무지 볼 수 없는 딸 아이 특유의 다정다감이 아버지를 그만 녹여버렸던 것. 아버지가 얼마나 편애했는지 성격이 버릴 정도로 예뻐해주는 바람에 정말로 비올레타는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안하무인이 되어 버렸고, 이게 급기야 아버지를 향해 몇 번 터져, 화딱지가 난 아버지로 하여금 비올레타를 전담할 영국인 가정교사를 들이기로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가정에 들어온 미스 테일러.

  조세핀 테일러. 키가 조금 작고 대신 살집이 좀 있는 밀wheat색 금발의 20대 여성.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스 테일러는 비올레타의 반항기를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했지만 사회의 바람직한 행동규범들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조세핀 테일러는 영국인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차티스트 운동에 가담한 죄와 왕에 대한 반역죄로 기소되어 1846년에 교수형에 처해졌고 처형 후에 온몸이 난도질당한 아일랜드인 할아버지에 자부심을 갖는 여성이었다. 미스 테일러는 숨이 다 할 때까지 비올레타 주위에 머물며 조언과 도움을 멈추지 않는 인물이다. 몇 년 후에 비올레타와 함께 참석한 델 바예 가문의 파티에서 만난 남장 페미니스트 테레사 리바스와 연인관계를 이어가며, 테레사와 함께 부르주아가 된 비올레타의 인식의 각성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 백인 부르주아 출신의 1920년생. 우리는 안다. 비올레타가 사춘기를 맞기 전에 특히 금융업에 전력하고 있는 아버지 아르세니오 델 바예 선생한테 닥쳐올 역사적으로 높은 파도를.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1929년 9월이 오고, 미국의 주식시장이 한 순간에 폭락했으며 비올레타의 나라 역시 국가 파산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삶의 급격한 하락을 맞게 된 시민들은 시위에 참여해 급격하게 정국이 심하게 불안해졌는데, 이 순간에도 맏오빠 호세 안토니오는 다섯 살 많은 비올레타의 가정교사 미스 테일러에게 석류석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반지를 동원한 청혼을 거절당하면서, 이후 30년 동안 반지를 품 안에 지니고 살게 된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자기 사업에 동참하게 했던 맏이 호세 안토니오는 그동안 수없이 자산 관리에 관해 사업주인 아버지에게 빚을 줄이라 고언을 해왔다. 그러나 모험적 투자의 매력에 빠진 아버지 아르세니오는 자신의 주관대로 사업을 밀고 나갔으며, 그 결과로 델 바예 집안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털터리가 된 상태. 아르세니오 델 바예 선생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소설작법 제 7장 3절, 작품에 총이 나오면 언젠가 한 번은 발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 웸블리 리볼버에서 뛰쳐나온 총알이 자기 관자놀이를 관통시키게 만든다. 이 모습을 처음 본 아이가 바로 비올레타.

  그리하여 아버지도 잃고, 집도 절도 잃은 델 바예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두 이모와 외할머니, 어머니, 큰오빠 호세 안토니오와 비올레타는 가정교사 미스 테일러의 동성 연인 테레사 리바트의 시골집으로, 네 오빠는 친척집으로. 저 남반구 남쪽의 한대지방 농촌으로 내려간 델 바예 가족들은 말 그대로 유배, 또는 피난의 시절을 겪을 수밖에. 이후 비올레타가 살아야 하는 남은 삶은 무려 85년 이상이다. 그러니 나는 적어도 작품의 85퍼센트를 숨겨놓았다는 말이다.


  전형적인 라틴 아메리카의 부르주아 백인 시선으로 쓴 작품이다. 델 바예 가문은 애초부터 특혜를 안고 살았다.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돈을 버는 다양한 방법을 선천적으로 체득한 진골 가문이다. 비록 한 시절 불운을 만나 아버지 아르세니오 델 바예 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담을 겪었으나 다섯 아들 다 다시 사회의 훌륭한 지위와 부를 확보해 상류계급으로 복귀한다. 비올레타의 아들은 조국의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공포정치의 희생자가 될 순간 극적인 도움을 받아 노르웨이로 탈출해 그곳에 정착한다. 딸은 미국에서 히피 생활과 중증의 마약중독이라는 지옥을 거치지만 악당이면서 지하의 막강한 권한을 지닌 생물학적 아버지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딸의 아들, 즉 비올레타의 손자 역시 좋은 교육을 받아 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비올레타가 낼 모래 환갑을 맞을 손자 카밀로에게 주는 편지라고 해도 큰 까탈이 없다. 비올레타는 새로 사업을 시작한 오빠 호세 안토니오를 도와 남매가 다시 상당한 부를 축적하며, 이것을 이용해 여성의 인권을 확장하기 위한 사업을 모색한다.

  당연하지. 부를 이루는 법, 자신의 계급을 유지시키는 방법을 세습적으로 알고 있는 구성원들이니까. 하지만 이것을 작품으로 만드는 좌파 작가라면 이 계급 구성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 대중들, 일반 시민들에 대한 미안함이랄까 겸연쩍음이랄까, 하여간 어떤 종류가 됐건 간의 유감또는 부채감은 적어도 한 번쯤 표시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곤란한 처지를 만나더라도 누군가 한 명은 이 가족을 도울 은인이 있고, 망해버렸을지언정 좋은 교육을 받아 다시 부흥시킬 아이디어를 낼 만한 사업계획을 꾸릴 수 있는 계급과 애당초 한 번 만난 환란을 피할 생각조차 못하고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대중이란. 씁쓸하다. 하여간 나는 씁쓸했다. 자신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환경을 특권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부르주아일 수도 있다는 씁쓸함. 내일 독후감을 쓸 그레이엄 그린은 “윗양반과 잡것”의 관계라고 했다. 윗양반과 잡것은 딱 한 방면에 국한하는 것이 아닐 터. 윗양반이 늘 당연하게 행사하는 권한과 습관과 인맥과 이를 다 합쳐 그들이 말하는 “능력”은 애초에 잡것들에게는 접근이 금지된 특권인 것을 그들은 모른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좋다. 그러나 진보를 주장하는 작가라서, 활자를 통해 자기 생각이 드러난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져야 하는 것이……. 이런 의미로 읽으면 이 작품은 부르주아 계급으로 편향, 굴곡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별점으로 이야기하자. 생각 같으면 이런 한계 때문에 별 세 개 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역시 이사벨 아옌데가 이야기를 꾸며 나가는 힘이라니. 차마 네 개 아래로 떨어뜨릴 수 없다. 이야기의 힘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대신 읽을 때는 눈을 똑바로 뜨시라는 말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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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4-02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흥미롭네요. 푹빠져서 읽었어요. 이야기의 힘과 눈 똑바로 뜨라는 말까지 담아갑니다.

Falstaff 2024-04-02 16: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근데 꼭 잘난 척한 거 같아서 영 송구하기도 합니다. -_-;;

잠자냥 2024-04-02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4-02 16:37   좋아요 1 | URL
아욱국 잘 끓인 거요? ㅎㅎㅎ 거참 우연인지, 오늘 또 아욱국 끓여 먹었답니다.
잠자냥 님은 계속 쓰셔야지요. 바로 앞에 있는 거 같은데, 결국 순간이 오고야 말지 않겠습니까? ㅎㅎㅎㅎ

stella.K 2024-04-02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십년 동안 이천 권! 굉장하십니다. 근데 왜 안 쓰시려구요? 계속 쓰십시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또 모르잖습니까? 쓰고 싶어도 못 쓸 때가 올지. 계속 쓰시길 응원합니다.
이 책 언젠가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4-04-02 16:38   좋아요 1 | URL
안 쓰겠다는 건 아니고요, 이젠 독후감 쓰는 일이 자꾸 징글징글해져서 말입죠. 그럴 때가 됐다 싶기도 하잖아요? ㅎㅎㅎㅎ

Falstaff 2024-04-0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노무 서재는 우짜 휴대폰으로는 답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놔서리.... 혹시 쓰는 방법을 저만 모르는 건가요?

stella.K 2024-04-02 16:45   좋아요 1 | URL
엇, 저 스마트폰으로 쓰는건데. 북플 까셨죠? 그럼 안될 리가 없을텐데요.

Falstaff 2024-04-02 17:28   좋아요 1 | URL
앗, 북플 안 깔았습니다. ㅎㅎㅎ 그렇군요. 그냥 지내는 걸로....

stella.K 2024-04-02 21:21   좋아요 0 | URL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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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화? 한자어로 繁花? 화려하게 핀 꽃, 만발한 꽃이라고 이해하면 될까?

  1952년 12월생. 중국에서 이 시절에 지식분자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팔자 참. 아니나 다를까, 열여섯 살이던 1969년에 헤이룽장성, 저 멀고 먼 북쪽의 꽝꽝 언 땅인 흑룡강성으로 하방을 당해 1976년에 상하이로 돌아왔다. 무려 7년 동안 어린 청소년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이 책 <번화>는 2012년에 발표해서 마오둔 문학상, 시내암 상, 루쉰 문화상 등을 탔단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상하이를 무대로 변호사 후성(滬生), 대 아프리카 잡화 무역업을 하는 후성의 친구 아바오(阿寶), 아바오가 열 살 때 영화표를 사러 줄 섰다가 친하게 된 샤오마오(少馬)의 이야기다. 두 권 1,156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이지만 쇤네는 189페이지까지 읽고 때려 치웠다.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로 접어들지 않았겠지만, 독자로 하여금 확 몰입하게 하는 스토리 라인도 없고, 읽고 읽고 죽자사자 읽어온 연애 이야기도 진짜 별 거 없고, 전혀 야하지도 않으며, 젊은이들의 인생관이 심금을 울릴 것 같지도 않은 데다가, 옛 중국문학의 서술기법이라고 하는 화본話本 형식의 문장이, 적어도 189 페이지까지 읽었으면 이젠 적응할 만한데도, 도무지 그렇지가 않았다.

  화본 형식이 뭐냐고? <삼국지 연의>나 <수호전>이나 뭐 하여간 중국 고전 소설에서 사용하던 거라는데 갑식이가 말했다, 점period 찍고, 중얼중얼. 을순이가 물었다. 이렇고 저러냐? 이런 게 쉬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이걸 1,156 페이지까지 읽는 건 그만두고 2백 페이지도 못 가서 근육경련에 마그네슘 부족은 분명 아닌데 눈꺼풀까지 발발 떨리는 현상이 일어났으니, 만수무강은 못하더라도 괜히 서둘러 숟가락 놓을 일은 없어야겠기에 눈물을 머금고(진짜야?) 접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한 거라서 웬만하면 죽자사자 읽는 것이 예의범절이요 에티켓인 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어쩌냐, 당장 죽겠는 걸.

  내가 사는 도시 시민들에게 미안한 바가 작지 않다. 뭐 다 인생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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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4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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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자기가 인간으로 현현한 신인줄 아는 자만 덩어리 잡놈. 여자: 가스라이팅 당하는 걸 즐기면서 마지막 천사의 이름을 갖고 싶어하는 악마. 초대받은 여자: 눈에 뵈는 게 없는 소시오패스. 복장 여러번 터질 각오하시고 읽기 바람. 보부아르 이름 값으로 별 하나 엣다 먹어라, 더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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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30 2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사실은 2별 보부아르 이별인가요?! ㅋㅋㅋㅋㅋ <레 망다랭>이 더 좋은가 봅니다?!

Falstaff 2024-03-30 21:26   좋아요 1 | URL
넵! 망다렝이 훨씬 좋았습니다! 이 작품 다음에 쓴 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요, <초대받은 여자>가 분명히 실존주의 작품이라는 거. ㅋㅋㅋㅋ
 
단순한 과거 을유세계문학전집 131
드리스 슈라이비 지음, 정지용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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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는 슈라이비. 그는 1926년 프랑스령이었던 모로코의 마자간에서 파트미 페르디와 그의 독실한 이슬람교 아내 사이에서 소설 중에는 일곱 형제, 순서대로 카멜, 드리스, 압델 크림, 나짐, 마디니, 자드, 하미드 가운데 둘째 아들로, 실제로는 (역자의 주장에 따르면) 세명의 누이를 포함한 열 남매의 일원으로 마자간, 현재 지명으로 엘 자디다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엔 다른 형제와 같이 기숙 쿠란 학교에 다니다가 라바의 프랑스계 ‘게수 초등학교’에 다녔다. 시설도 형편없고 저승사자 같은 교사한테 학대 비슷한 교육을 받다가 프랑스 학교에 들어갔으니 갑자기 뇌활동이 활발해져 눈부신 학업성취를 이끌어 냈다. 저절로 큰 기대를 갖게 된 아버지 슈라이비 씨는 드리스를 카사블랑카에 있는 프랑스 “기독교” 사립 리세 리예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는데, 여기서도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작문, 독일어 등 주요과목은 최우등이거나 차석을 차지해 일찌감치 “신세계”를 배우기 위한 재목으로 선택받기에 이른다. 근데 문제는 이게 위키피디어에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쓴 소설 <단순한 과거>의 한 대목이라는 점. 하지만 나는 그게 사실일 거라고 믿는다. 역자의 해설에 의하면 1954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에 발표한 데뷔작 <단순한 과거>가 자서전과 소설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니까. 막내아들 하미드가 실제로는 뇌수막염으로 죽었고 엄마는 여든 살이 넘게 장수한 반면, 소설에선 막둥이는 아버지한테 맞아 죽었으며 엄마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 다르다고 했다.

  드리스 슈라이비가 <단순한 과거>를 발표해서 데뷔작부터 스타덤에 오른 다음 해 1955년에 카틀린과 결혼해 다섯 아이를 낳았고, 1978년에 스코틀랜드 여성 시나 맥칼리언과 재혼해 또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았으니, 도대체 언제까지 낳은 거야? 그건 아빠 닮았구먼.

  위의 두 문단을 보면, 실제로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소설 속에서 아버지 파트미 페르디, 실제로는 진짜 자기 아버지 파트미 슈라이비 씨일 수도 있는 아버지는, 설마 고의로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한 순간 열을 받아 휘두른 주먹으로 막둥이 아들을 때려 죽였으며, 얼마 후 자기 주관이라고는 1도 없이 그저 어려서는 아버지, 커서는 남편, 늙어서는 아들들, 삼종지도의 길만 충실하게 걷던 어머니도 삶에 얼마나 넌더리가 나던지 그냥 창문에서 자유낙하를 감행해 자살함으로써, 위대하신 알라의 품에 들지 못하고 억겁을 세월을 지옥의 유황불에 불살라지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니 주인공 드리스 페르디가 프랑스로 유학길을 떠나기 전까지 시절을 묘사한 이 소설에서 가정의 폭군으로 존재한 아버지와 (요새 이런 말이 유행이던데) 시스템 적으로 그런 폭군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던 이슬람 문화, 어려서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아 부정은 하지 못 할지언정, 이슬람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반항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으로 보면 이 소설이 나온 1954년은, 모로코를 위시해서 튀니지와 알제리, 이렇게 마그레브 지역에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모로코에서 영재로 인정받아 식민 모국인 프랑스로 유학을 해 화공학을 전공한 미래의 모로코 인재라는 작자가 모국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로 소설을 써서, 이슬람교와 모로코의 가치와 문화에 거칠게 저항했다는 점이 당시 모로코 식자들한테 매우 마땅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을 읽어보면 같은 프랑스 기독교 학교에 다니더라도 프랑스인 또는 백인이 아니라 모로코인이 학생일 경우에 받아야 했던 차별 같은 것도 묘사가 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괴물 폭군 아버지와 이슬람의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문화에 대한 저항이 하도 커서, 프랑스 백인 문화에 대한 반감을 모국의 독자들이 체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


  라마단. 난 이게 뭘 말하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허공에 해 있을 때 밥 안 먹는 날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며? 무함마드가 쿠란의 첫번째 경구를 받은 날을 기념하는 거란다. 올해는 3월 10이부터 4월 8일까지라고. 이슬람에 관해 불경스러운 말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서 갑자기 내 입도 무거워진다. 그래도 쿠란의 경구를 받았으면 좋은 날 같은데 왜 밥을 안 먹지? 드리스 슈라이비에 의하면 마시지도, 먹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섹스도 못하는 기간이라고 한다. 책을 열면 첫 장면이 라마단의 스물네 번째 밤이다. 때는 1940년대 초. 모로코의 전통이 깊은 도시 페스 거리엔 훈족처럼 거지들이 떠돌았고, 이 거지들은 지난 13세기부터 천삼백 년 동안 내려오는 이슬람의 종이었던 같이 ‘나’ 드리스 페르디는 이슬람교의 결정체인 군주의 종 신세였다. 여기서 말한 ‘군주’가 바로 아버지 파트미 페르디를 일컫는다. 페스 시 앙고라 거리에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집에서 군주는 상체를 똑바로 펴고, 앞을 똑바로 보고 앉아 있다. 별로 차갑지는 않았지만 권위적이었고, 별로 권위적이지는 않았지만 그 앞에 서기만 하면 그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은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집에서는 전지전능했다는 것이다. 3년 간 성지순례를 다녀온 아버지. 성지에 가 검정 돌에 손을 대고 묵상을 한 사람들에게 부치는 단어 ‘핫지’를 이름 앞에 달아 ‘핫지 파트미 페르디’라고 불리는 차tea 전문 도매상인.

  핫지 파트미 페르디의 일곱 아들은 태어나면 1년 동안 젖을 먹고, 2년 동안 울었다. 이게 유아기에 할당된 최소한의 자유 시간이었고 이 기간이 지나면 곧바로 공포 속에서 자라며 침묵을 배워 나갔다. 이렇게 엄한 훈육이 다 선한 인간을 만드는 건 아니라서 맏이 카멜은 아무 생각 없고 무책임했으며 주인 앞에서 완벽한 꼭두각시 노릇을 했지만 집 밖에 나가기만 하면 할 짓은 다 하고 다녔다. 라마단 24일차 밤에도 카멜은 식구들이 자기를 기다리느라 밥도 안 먹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명백하게 술에 취한 채 다 늦게 사창가에서 귀가했다. 드리스는 아버지 앞에 따로 앉아 있고 나머지 다섯 아이들은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어 벽에 드리운 다섯 그림자로 불안한 시간과 배고픔을 견디고 있었고. 살벌한 우리의 군주. 당장이라도 가볍지 않은 폭력이 발생할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 어머니는 기도한다.

  “저의 군주이자 주인에게 헌신하는… 그리스인과 러시아인의 성자들이시어, 작은 사고가 나거나, 계단에서 넘어지거나, 알 수 없는 세균에 감염되거나, 독일군 폭탄이 터지거나, 아무거나 좋으니, 저를 죽여주세요…. 그리스인과 러시아인의 성자들이시어…….”

  그리고 드디어 군주는 카멜의 몸을 잡아 벽에 밀쳐 누르고, 내동댕이친다.

  “이것이 다 네가 자랑스럽게 마신 포도주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네가 조금 전에 품었던 반항심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칼 내놓아라.”

  집안 저 구석에 버려져 있던 주머니칼을 시간 날 때마다 닦고 기름치고, 날을 세운 칼. 형이 들어오면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서 칼날을 군주의 목에 꽂아버리겠다고 각오를 다지던 칼이었다.

  군주가 내리는 가장 큰 벌. 그건 여기, 집에서 머무는 것. 각자는 파렴치한 행동과 증오와 과부생활과 분노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히 너, 드리스 페르디. 하루 종일 굶은 나는 저녁 식사를 거절하고 일어난다. 너무 오래 기다려 배 고프지 않았고, 내일부터 더 이상 금식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군주가 하사한 보리빵 한 덩이는 창문 밖 거지에게 적선해버렸다.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부자관계. 사회적으로도 억압적일 수 있는 이슬람 문화. 프랑스 학교에서 벌어지는 노골적인 차별. 프랑스 학교에서 바칼로레아 시험을 보아 압도적 성적을 거둔 드리스. 그러나 면접관에게 드리스는 요구한다.

  “제 요청은 이곳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선생님, 혹시 더 하실 말씀이 있는가요? 예를 들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든가, 영광스럽게도 친근하게 대해 주었는데 오히려 저의 태도에 격분하셨다든가? 제가 혁명가의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든가? 그래서 결과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하실 말씀이 있나요?”

  면접관은 마지막으로 남은 최종 심사에서 빵점을 주겠다고 협박하지만 드리스는 오히려 평온하다. 이제 세상에서 드리스는 완전한 소외를 만나게 된 것.

  세상에 마지막 남은 한 명은 누구? 죽으나 사나 군주, 아버지 밖에 없었다. 전쟁과 미군에 의하여 사업이 결딴난 줄 알았던 군주는 카사블랑카 근방에 어마어마한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 토마토 농장을 만들고 있었는데, 거 참, 잘 나가다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군주가 먼저 드리스에게 화해를 청하고, 면접관은 모종의 거래를 통해 빵점 처리를 하지 않았으며, 화공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괴물 아버지. 많이 읽었다. 그의 난데없는 화해신청. 그거 가능해?

  어떻게 하다 보니 결론을 말해버리고 말았네? 정말 이렇게 끝나냐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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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3-29 0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진위청, <번화>
화요일. 이사벨 아옌데, <비올레타>
목요일. 그레이엄 그린, <코미디언스>
금요일. 존 밴빌, <케플러>
아옌데, 그린, 밴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stella.K 2024-03-29 12:13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이리 마치시니 진짜 예고편 같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4-03-29 16:0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다음 주 독후감은 별거 없을 듯하네요. ^^;;

그레이스 2024-04-04 0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큭큭거리며 보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왜 밥을 안먹지?˝에서 웃어버렸네요.
궁금한게 있는데... 폴스타프님 현실 말투가 이러신지...?

Falstaff 2024-04-04 16:4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기분 좋습니다. 근데 웃기지 않아요? 좋은 날에 왜 밥을 안 먹어요? 잔치라도 할 판인데 말입죠.
말투... 좀 세다고 하더군요. 물론 저는 아닌 거 같습니다만. ㅎㅎㅎ
근데 천성은 비둘기파에 마음 약하고, 그래서 영화보다가 질질 짜고 그래요.
 
한스 암슈타인 / 친구들 / 꿈속의 집 / 렘볼트 혹은 어느 주정뱅이의 하루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인웅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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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헤세의 유작. 헤세의 세 번째 아내이자 마지막 아내이며, 그와 함께 묻힌 유일한 아내인 니논 헤세는 남편이 죽은 후 1965년에 열다섯 편의 유작을 모아 《Hermann Hesse: Prosa aus dem Nachlass》, 대강 “헤르만 헤세의 산문 유품” 정도로 읽히는 책을 발간한다. 출판사 지만지의 “편집자 일러두기”에 분명하게 이렇게 쓰여 있다. 이 가운데 역자가 “작품성이 높은 네 작품을 선정해 번역한 것”이 이 책이다. 본문은 215페이지에서 끝난다. 이후에 해설이 35페이지, 헤세의 연보가 12페이지, 역자 소개와 저작, 그리고 논문 목록이 31페이지 달려 있다. 즉 안 읽어도 인류평화에 그리 영향을 주지 않을 분량이 78페이지에 이른다. <한스 암슈타인>은 31쪽, <꿈속의 집>은 49쪽, <렘볼트 혹은 어느 주정뱅이의 하루>는 15쪽 밖에 안 되는데 부속 잡글이 78페이지라고? 이미 생을 마감한 이인웅 전 외국어대 교수의 논문 목록을 알고 싶다고 내가 언제 말한 적 있어? 이래놓고 정가가 22,800원이다. 원서가 열다섯 편의 산문, 번역서가 여기서 달랑 네 편 싣고 말이지. 저번에도 그러더니 지만지 또 이 지랄이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어도 이렇게 열이 풀풀 나는데, 행여 내돈내산 했으면 심장병 도질 뻔했다.


  나는 유고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냥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에 끌려 읽었지, 유고집이란 건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가 왜 젊은 시절에 쓴 글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그거 눈에 보이는 거 같지 않나? 왜 작품을 쓰다가 중도에 쓰기를 그만 두고 책상 서랍에 쑤셔 놓았는지 뻔할 뻔 자 아냐?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건 헤르만 헤세였기 때문이다. 결론은 헤르만 헤세가 아니라 헤르만 허세. 역시나.

  제일 앞에 실은 <한스 암슈타인>은 한스 암슈타인이라는 철부지 청년의 줏대 없는 사랑 이야기. 1903년이니까 분명히 20세기 작품이지만 괴테나 휠덜린이 눈썹을 휘날리던 18세기 시절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헤세 여사님도 책에 관해 조예가 깊었던 걸로 쓰여 있다. 그러면 이런 작품은 남편의 유지를 유념해서 그냥 불 싸질러야 마땅하지, 이렇게 책으로 내 놓으면 어쩌냐는 말이다. 한 번 활자로 찍히면 죽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을.

  <친구들>은 가장 긴 소설로 125쪽 분량이다. 하지만 그동안 읽었던 헤세의 작품에 다 들어 있는 내용이다. <데미안>과 <싯다르타> 등등. 출연진들이 대학생인 것만 다르고.

  나머지 두 편의 미완성 작품은 입에 올리기 싫다. 이런 책은 읽지 않는 것이 속 편하고, 내지 않는 것이 국가 경제를 위해 이바지하는 일이요, 아마존 밀림의 보존에 기여하는 일이다. 말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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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3-28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심 화나심이 보입니다. 저도 공감해요. 유고집 저도 신뢰하지 않는데 작가가 생전에 출간하지 않은덴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본인이 젤 잘 알죠. 그걸 굳이 굳이 찾아내 출판하고 낭비하고 이름에 먹칠하고... 왜 그러는걸까요...
저도 알지만 말을 않겠습니다. 엊그제 저도 당한 일이라...
이건 당한 거예요^^

Falstaff 2024-03-28 16:13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이제야 PC 앞에 앉았군요.
지만지가 이런 짓 자주 합니다. 특히 단편집 원본에서 한 두 작품만 떼어 단행본 한 권 만드는 일이요.
이 책은 유고집 유감에다가 지만지 출판사가 하는 짓까지 다 합해서 왕창 열 받았답니다. ㅎㅎㅎ 열 내봐야 뭐합니까, 명만 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