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암슈타인 / 친구들 / 꿈속의 집 / 렘볼트 혹은 어느 주정뱅이의 하루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인웅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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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만 헤세의 유작. 헤세의 세 번째 아내이자 마지막 아내이며, 그와 함께 묻힌 유일한 아내인 니논 헤세는 남편이 죽은 후 1965년에 열다섯 편의 유작을 모아 《Hermann Hesse: Prosa aus dem Nachlass》, 대강 “헤르만 헤세의 산문 유품” 정도로 읽히는 책을 발간한다. 출판사 지만지의 “편집자 일러두기”에 분명하게 이렇게 쓰여 있다. 이 가운데 역자가 “작품성이 높은 네 작품을 선정해 번역한 것”이 이 책이다. 본문은 215페이지에서 끝난다. 이후에 해설이 35페이지, 헤세의 연보가 12페이지, 역자 소개와 저작, 그리고 논문 목록이 31페이지 달려 있다. 즉 안 읽어도 인류평화에 그리 영향을 주지 않을 분량이 78페이지에 이른다. <한스 암슈타인>은 31쪽, <꿈속의 집>은 49쪽, <렘볼트 혹은 어느 주정뱅이의 하루>는 15쪽 밖에 안 되는데 부속 잡글이 78페이지라고? 이미 생을 마감한 이인웅 전 외국어대 교수의 논문 목록을 알고 싶다고 내가 언제 말한 적 있어? 이래놓고 정가가 22,800원이다. 원서가 열다섯 편의 산문, 번역서가 여기서 달랑 네 편 싣고 말이지. 저번에도 그러더니 지만지 또 이 지랄이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어도 이렇게 열이 풀풀 나는데, 행여 내돈내산 했으면 심장병 도질 뻔했다.


  나는 유고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냥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에 끌려 읽었지, 유고집이란 건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가 왜 젊은 시절에 쓴 글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그거 눈에 보이는 거 같지 않나? 왜 작품을 쓰다가 중도에 쓰기를 그만 두고 책상 서랍에 쑤셔 놓았는지 뻔할 뻔 자 아냐?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건 헤르만 헤세였기 때문이다. 결론은 헤르만 헤세가 아니라 헤르만 허세. 역시나.

  제일 앞에 실은 <한스 암슈타인>은 한스 암슈타인이라는 철부지 청년의 줏대 없는 사랑 이야기. 1903년이니까 분명히 20세기 작품이지만 괴테나 휠덜린이 눈썹을 휘날리던 18세기 시절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헤세 여사님도 책에 관해 조예가 깊었던 걸로 쓰여 있다. 그러면 이런 작품은 남편의 유지를 유념해서 그냥 불 싸질러야 마땅하지, 이렇게 책으로 내 놓으면 어쩌냐는 말이다. 한 번 활자로 찍히면 죽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을.

  <친구들>은 가장 긴 소설로 125쪽 분량이다. 하지만 그동안 읽었던 헤세의 작품에 다 들어 있는 내용이다. <데미안>과 <싯다르타> 등등. 출연진들이 대학생인 것만 다르고.

  나머지 두 편의 미완성 작품은 입에 올리기 싫다. 이런 책은 읽지 않는 것이 속 편하고, 내지 않는 것이 국가 경제를 위해 이바지하는 일이요, 아마존 밀림의 보존에 기여하는 일이다. 말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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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3-28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심 화나심이 보입니다. 저도 공감해요. 유고집 저도 신뢰하지 않는데 작가가 생전에 출간하지 않은덴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본인이 젤 잘 알죠. 그걸 굳이 굳이 찾아내 출판하고 낭비하고 이름에 먹칠하고... 왜 그러는걸까요...
저도 알지만 말을 않겠습니다. 엊그제 저도 당한 일이라...
이건 당한 거예요^^

Falstaff 2024-03-28 16:13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이제야 PC 앞에 앉았군요.
지만지가 이런 짓 자주 합니다. 특히 단편집 원본에서 한 두 작품만 떼어 단행본 한 권 만드는 일이요.
이 책은 유고집 유감에다가 지만지 출판사가 하는 짓까지 다 합해서 왕창 열 받았답니다. ㅎㅎㅎ 열 내봐야 뭐합니까, 명만 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