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29
이문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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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재. 1959년 김포생. 나는 서울 출생이지만 김포 사람이다. 시인과 성씨도 같다. 조부모, 부모도 김포 문중 납골당에서 사이좋게 한 방에서 명복을 누리시고 있다. 그래서 처음 이이의 시집을 읽었을 때부터 어어, 이거 혹시 우리 문중 사람 아녀? 이랬다는 거 아닌가. 근데 다행이다. 시집을 읽어보니 원래 평안도 웅진 사람인데 전쟁 때 부모가 형과 누나를 솔가하여 꽝꽝 얼어붙은 바다 위로 인천, 태안을 거쳐 저 남도 끝자락까지 피난을 해 먹고 살다가 김포로 옮긴 다음에 시인을 낳은 거란다.

  이문재는 1990년대부터 읽었으니 세월이 꽤 됐고, 기중 좋아하는 시인으로 시집이 탁 보이면 척 골라 읽는 수준이었다. 근데 이젠 그짓도 그만 해야겠다. 내가 만일 이이의 동생이라면 다시는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는 못할 거 같다.



  문자 메시지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문학동네, 《지금 여기가 맨 앞》, 2014)



  이문재는 문학동네 시집과 이번 시집 사이에 팍 늙어버렸다. 그래서 위에 소개한 문자 메시지를 보낼 생각도 안 할 거 같다.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이 시집을 읽으면서 제일 읽을 만했던 것은 다른 시인도 아니고 무려 나희덕이 쓴 발문 “생각을 생각하는 시, 꿈을 꾸게 하는 꿈”이었다. 같은 시인 그룹의 선배 시인이 자기 시집에 발문을 써 달라고 하니 아무리 나희덕이라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지. 나희덕도 국문학 박사님이니 그럴 듯한 발문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리하여 한 마디 꽝, 하는 데:

  “시집 제목부터가 재귀적 표현이다. 수록된 시들의 제목을 일별해보아도 ‘고통이 말해주지 않는 고통’ ‘혼자의 혼자’ ‘혼자 혼잣말’ … 등 동어반복과 재귀적 허용이 잦은 편이다. 시집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반복과 변주는 그야말로 ‘이문재식 문장법’이라고 부를 만하다. 1부만 해도 재귀적 문장이 수두룩하다.” (p.164)

  정말 그렇다. 그래서 책의 뒷표지, 가끔 책 판매를 위한 카피 역할을 하는 뒷표지에 뭐라 적어 놓았느냐 하면,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듯이

  시를 쓰게 하는 시가 있다.

  밥을 먹게 하는 밥이 있듯이

  삶을 살게 하는 삶이 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살도록 하는 죽음들이 있다.



  뭔 시집의 카피가, 말이 많았다.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시를 읽어보자. 다행히 짧은 시다.



  눈동자



  눈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눈동자다


  눈동자는

  다른 눈동자가 필요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눈동자는

  내 눈앞에 있는 다른 눈동자다 (전문.  p.11)



  원래 시인들이 하는 말이 이렇지 뭐. 그냥 내 앞에서 나를 봐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이렇게 한 거다. 사실은 나를 봐줄 필요까지도 없고 그냥 앞에 있어 주기만 해도 좋을 사람 하나.

  그러나 시집의 저 뒤로 가면 이 눈동자에게 작지 않은 일이 생긴다.



  눈동자 2



  눈동자가 위기에 처했다

  눈동자가 눈동자를 찾지 않는다


  눈동자를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다른 눈동자가 내 눈동자를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


  눈짓으로 말한 적이 언제

  서로 눈빛을 마주친 적이 언제였는지


  눈동자가 위험하다

  눈동자가 눈동자를 잃어버렸다  (전문. p.125)



  에그. 시인이 좀 외롭구먼. 늙으면 다 조금씩 외로워지는 것이지 뭐. 하긴 시인이니까 이리 엄살도 떨고 그러는 거겠지만. 근데, 그래서 당신 눈동자가 잃어버린 눈동자는 몇 알이나 되는 거야? 같은 단어 이리 줄을 이어서 이게 시입네, 하니까, 재귀적으로 눈동자 눈알을 주욱 나열하니까 성질 좀 풀리시나 보다.

  초장부터 까탈을 부리는 건, 시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다. 확실하게 말하자. 지금 나는 이 시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했지, 조금도 시가 잘못된 것이란 의미는 담지 않았다. 틀림없이 시 읽는 수준이 별볼일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용기도 있을 거라 여기면 정확하게 맞는 생각이다. 무엇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너도 봄날



  거울 속의 거울

  마주 보는 거울은 떼어놓기

  눈동자는 다른 눈동자와 마주 보게 하기

  눈동자 안에 다른 눈동자 빛나게 하기

  반짝이는 눈동자에게

  꿈을 꾸게 하는 꿈 말해주기

  시를 쓰게 하는 시 서로 읽어주기 (전문.  p.12) * 원문은 모든 행이 한 연인데 그냥 붙여 인용했음.



  단어를 연속해 가져다 놓음으로 강조의 의미도 줄 수 있고, 의미를 확장할 수도 있고 하여간 여러 시적 표현이 가능한 연상작용을 의도했을 수 있겠지만, 앞에서 눈알이 툭 튀어나오고, 몇 페이지 건너 다시 눈알이 툭 튀어나오고, 저 뒤에서 또다시 눈깔이 툭 튀어나오면 이거 뭐 가자미 눈깔도 아니고, 동태 눈알도 아니고, 죽어도 못 잊는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누이동생의 눈동자도 아니지, 많고 많은 눈동자에 뭐가 그리 좋은 것이 많다고, 서로 눈알끼리 마주보게 해야 하느냐는 것. 낸 앞의 눈동자 모두 선하고, 아름답고, 눈길만 닿았다 하면 찌르르 아랫배가 찌릿하고, 다 그럴 거 같지? 그 많은 눈동자 속에서 몇 알, 몇 쌍은 당신의 눈동자를 읽으면서 저걸 어떻게 뒤통수를 칠까, 몇 대나 때려줄까, 지갑에 얼마나 들었을까, 애먼 생각을 하는 눈알도 수다하게 있을 수 있다. 시인도 다 알면서 저리 예쁜 눈동자만 골라 생각하라고 하는 거다. 그게 시니까. 좀 독하게 평하는 거 같은데, 나는 한 마디로, 나희덕이 말한 재귀적 표현을 지극하게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쁜 말이 안 나가지.

  1959년생이니 이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자리에서는 은퇴를 했을 거 같고, 그럼 명예교수? 아, 그 참. 명예교수들이 문제라니까. 열라 시 쓰고, 공부하고, 발표하고, 제자들에게 만날 올림을 받으며 살다가 갑자기 툭. 여태 가오가 있었으니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황지우는 말했다는 거 아냐.

  “성님, 시는 이십대에나 쓰는 거 아뉴?”



  엄마 전화기



  엄마 전화기가

  여전히 살아 있다

  세상 떠난 지 1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원을 켜면 문자메시지가 와 있고

  부재중 전화도 제법 있다 어쩌다

  진동이 울리면 받을까 말까 망설여진다

  전화기가 죽으면 엄마가 또 죽을까 싶어

  충전을 계속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죽은 엄마 전화기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살아 있는 나 때문임이 분명하다 며칠 전에도

  너무 힘들어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나도 거기로 가고 싶은데 엄마 나 가도 되나

  답 문자 기다리는 대신 엄마 전화기 속으로

  이니셜과 별명이 많은 엄마의 사생활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수백 번 넘게 열어본 우리 엄마

  그래서 그렇게 비상금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빠와 매번 심하게 다퉜고 그래서 그래서

  요양원에 있는 엄마의 엄마한테 달려갔고

  그래서 그날 새벽 차를 몰고 동쪽 바다로 향했고

  그래서 엄마가 그래서 엄마는 그래서 나도

  그날 이후 눈을 들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엄마 전화기를 버리지 못하고 겨우 견뎌왔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이렇게 한 살 더 먹기 전에

  죽은 엄마 두번째 생일이 오기 전에

  전화기를 엄마한테 돌려줘야겠다

  매번 다짐하곤 하는데 다짐하긴 하는데   (전문. p.24~25)



  이번 이문재 시집을 읽으면서, 이 시집을 마음에 든다고 말하지 않기로 작정하게 만든 시. 이 시의 화자가 누굴까? 시인의 엄마? 시인의 아내? 아이쿠, 시인의 아내는 취소. 멀쩡히 살아 있는 분일 확률이 높은데 산 사람을 그리 말하는 건 사람 할 일이 아니다. 그럼 시인의 삶 속 특정한 여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는 늙은 시인의 어머니, 2년 전에 돌아가신 모친을 말하는 것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이 시를 언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문재가 환갑이 넘어 돌아가신 것 같다.

  그런데 이거 뭐 이렇게 궁상이야 싶다. 세상에 어머니 보낸 사람이 시인 한 명인가? 자실 만큼 자신 나이가 부끄러울 것도 같은데, 뭐 그렇다고 꼭 이렇게 내놓고 큰 울음을 울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지만, 아이고, 난 딱 싫다. “죽은 엄마”를 얼른 잘 보내드리는 것도 나이 든 자식이 할 일. 내 이야기를 해서 안 되기는 했지만, 난 죽은 엄마가 꿈에서도 잘 오시지 않는 게 그렇게 고맙더만. 생과부로 두 아들 키우느라 뼈빠지게 고생하다 간 엄만데도 돌아가시자마자 팍 보내드렸는데, 그것도 괜찮은 일이란 걸, 시인은 모르는 모양이다.

  시집 안 읽어본 분은 모르시겠지. 이 시집의 가관은 2부 이후부터 나온다.

  이미 55세도 아니고, 60세도 아니고, 65세 정년퇴직한 명예교수라는 분이, 뒷방으로 물러났으면 거기서 좀 고요히 여생을 즐기면 될 것을 세상살이 거의 모든 잡사에 끼어들어 한 마디를 하고 싶어한다. 그거 참. 정치, 경제, 사회, 환경, 세계정세 같은 거에 빠지지 않으려 하니, 나중에 시인의 엄마처럼 세상 등질 때 얼마나 아쉽겠느냐고. 제발 좀 그러지 마시라. 쓸데없이 말 많고 참견 많은 꼰대를 주책바가지라 하는 것도 아실 터인데. 오랜 팬이라서 이런 말도 올려주는 거란 것도 이해해줄 연치의 시인이라서 오랜만에 속 다 터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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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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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집중해서 읽고 있는 작가 가운데 한 명. 제니퍼 이건. 퓰리처상을 받은 발랄한 <깡패단의 방문>에서 시작해 거의 데뷔작이라고 봐도 좋을 소설집 《에메랄드 시티》에 이어 2006년에 출간한 <킵>까지 왔다. 앞에 읽은 두 작품과 많이 다르다.

  나는 작품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작가의 이름 하나만 가지고 선택해 읽었는데, 그래서 읽는 도중에 적어도 두 번 “이게 뭐야?” 크게 판을 뒤집는 광경을 제대로 감각할 수 있었다. 아예 노골적으로 대놓고 작품이 픽션이라 선언한다. 이런 건 읽을 때마다 메타 픽션인 걸 알면서도 꼭 깜짝 놀란다.


  대니 킹.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다. 킹의 아버지는 여러 형제 가운데 한 명이었고, 형제들끼리 우의가 돈독하여 자주 가족 모임을 가졌는데, 대니는 사촌들 가운데 하위, 레이프에 관한 기억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세 명이 “함께” 즐거웠다는 말이 아니다. 개별적으로 두 명의 사촌하고 친했다는 말이지. 둘 중에 특히 하위하고. 하위는 자기가 만든 아이들 게임 “터미널 제우스”에 대니를 끼워주어 어린이 시절에만 공감할 수 있는 독특한 놀이를 즐기게 해 주었는다. 하위는 많고 많은 사촌들 가운데 딱 한 명, 킹 가문에서 입양한 사촌이라 삼촌들이나 고모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척했고, 사촌들은 은근히 왕따를 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집단 놀이를 해도 하위만 끼워주지 않거나 소위 ‘깍두기’ 역할만 하게 만드는 식으로. 그러니 성격이 좀 비뚤이지겠지? 그래도 놀이를 만들 만큼 머리가 좋았는데, 그게 사촌들 눈에는 괴짜에다가 루저로 보여 날이 갈수록 따돌림이 심해져, 끝내 대니 역시 하위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십대의 하위에게는 일종의 외상성 경험으로 작용을 해 하위가 가지고 있던 양순함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성마르고 노심초사하는 성격으로, 환상적으로 망가졌다는 소문이 킹 가문에 흘러 들어왔다. 마약 복용으로 체포되었다고? 그런 애를 입양하다니 다 노엄 잘못이야. 유전자 잘못이라고. 우리 집안에 없는 유전자를 갖고 끼어 들어와서 말이지.

  하지만 하위는 일찌감치 집을 나가 좋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주식 채권 딜러 일에 혁혁한 전공을 쌓아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에 비견하는 업계의 월계관이란 월계관은 다 수집해버렸고, 재산 역시 무지막지하게 많은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라 서른다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돈벌이에서 은퇴해버리고 보다 그럴듯한 삶을 위하여 폴란드인지, 오스트리아인지, 체코인지, 독일인지 모를 곳에 있는 9백년 된 고성을 사서, 그걸 호텔로 리빌딩해 편안한 나머지 삶을 도모하고 있다. 앤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벤지와 젖먹이 딸이 있다. 이제는 누구도 그를 ‘하위’라고 부르지 못한다. 대신 본명인 하워드를 갖다 바친다. 대니 조차도.


  대니는 어린 시절에 레이프와 한패가 되어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큼 짜릿한 일은 세상에 없다고 믿으면서, 그러니까 대강 껄렁껄렁한 십대를 보낸 후에 집을 떠나 뉴욕에 정착해 사는 척을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다닐 때 미식축구로 이름을 날려 대학은 졸업한 거 같다. 도무지 먹고 사는 일에 능숙하지 못해 친구의 소개로 별로 건전하지 않은 식당의 바지 사장으로 들어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나마 괜찮게 먹고 살았는데, 이런 업소의 바지 사장들이 항용 그러하듯 그럴 때가 되니까 업주 또는 물주, 그것도 아니면 보스의 눈 밖에 나, 아마도 한 바탕 제대로 두드려 맞고 쫓겨난 거 같다. 이 와중에 20대 초반까지 몸 바쳐서 투신했던 미식축구 선수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무릎에 추가 상해를 입어 장애 수준에는 살짝 미치지 못할 만큼의 통증이 유발, 다리를 약간 절고 있다.

  딱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처지에 떨어진 순간, 저 동유럽 모처에서 연락이 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오스트리아인지, 독일인지, 체코인지, 폴란드인지 모를 곳의 오래된 성을 구입한 사촌 하위가 대니한테, 성의 개조를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돈과 편도 비행기 티켓을 보내왔다. 도시에서 완전하게 탈출해 조용하고 여유롭게 유럽의 흑림에서 살고 싶어하는 하위와 달리 전형적인 도시인인 대니는, 그러나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어 ‘폰 아우스블링커’ 성에 가서 하위, 앞으로 하워드라고 불러야 하는 사촌의 따까리 또는 당번이나 보좌관, 아니면 다행스럽게 넘버 투 일을 하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들기를, 워낙 심심산골이라 와이파이라는 건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인터넷도 터지지 않고, 당연히 폴더폰이었을 휴대폰도 그냥 플라스틱 뭉치 또는 휴대용 무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아, 내복 몇 개, 스웨터 몇 장을 넣은 샘소나이트 트렁크와 함께 세상 어느 곳에서도 전파를 발송하고 접수할 수 있는 위성용 안테나까지 장만해 깊고 깊은 동유럽의 산악지역으로 떠나 폰 아우스블링커 성벽 앞에 섰다. 성문이 아니라 성벽 앞에. 무너져가는 성 앞. 이게 첫 장면이다.


  그리고 레이프. 레이프의 멋진 점은 그가 무엇을 하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죽었다 깨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대니가 살면서 제일 짜릿했던 경험이 레이프와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었다니 10대, 하이틴 시절 이후에 별로 바람직하게 살지 않았을 거 같은데, 제니퍼 이건은 이 건에 대하여 끝내 모른 척한다. 그리하여 독자의 권한으로 넘겨 짚어 보건대, 레이프는 일찌감치 뉴욕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진출해 이러저러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쏜 권총 총알이 상대의 머리통을 관통해버린 것을 알았다. 정신이 번쩍 든 레이프는 그길로 스스로 경철서에 출두해 자기 죄를 고백하고 선처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이리 도망가고 저리 숨어 다니다가 끝내 체포되어 거의 무기수 비슷한 처지로 떨어져 교도소 2인실에서 살고 있다. 하필이면 같은 방에 사는 흑인 재소자가 푸시 업을 하루에 750회씩 하는 어마어마한 덩치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이 데이비스 덕분에 다른 방에 사는 더러운 호모 새끼들이 레이프의 엉덩이를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감히 더듬어 대지 못하는 덕도 본다. 그렇게 산다.

  다시 말하건대 이건 전적으로 독자인 내가 다시 그려보는 사촌 세 명의 훗날 모습니다. 레이프가 작품에 나오는 수감자, 더 뒤로 가면 감히 21세기 또는 20세기 말에 저격병이 망루를 지키고 있는 미국 교도소의 이중 철조망을 뚫고 무사히 탈옥에 성공하는 ‘레이’와 동일인이라는 아무 증거도 없기는 하지만 뭐 독자가 그렇게 생각하겠다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레이프 말고 레이라고 쓴다.

  레이는 처음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어마무시한 압박을 느끼는 데이비스를 잠깐이나마 피하기 위하여 교도소가 마련한 재소자 성격 개조 프로그램의 일환인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다. 강사는 딸 둘을 키우는 돌싱녀이자 현재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홀리. 그러니까 아직 정식으로 강의를 맡을 자격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교도소에서 험한 재소자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홀리한테까지 강사 자리가 밀려올 수 있었는데, 심지어 지원자가 없으니 재소자와의 대면이라는 위험수당까지 붙어 홀리 수준의 가방끈으로는 어떤 강사도 받지 못하는 급료를 받았다.

  범죄자 레이가 원래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다는 건 그럴 수 있는 일. 다만 독서량이 모자라 처음부터 기막힌 글을 뽑아내지는 못했다. 하여튼 처음 적어낸 이야기는, 선생 또는 강사와 침대에서 한 탕 벌이는 남자의 이야기. 일종의 패관문학이었겠지. 그러나 재질이 있는 레이의 두번째 이야기가 무엇이었는고 하면, 바로 저 동유럽, 오스트리아인지, 독일인지, 체코인지 모를 흑림 속 산악지역의 9백년 된 성과 성 안에 솟은 공략할 수 없는 탑, 이른바 아성牙城the Keep, 그리고 성이 팔렸음에도 결코 아성에서 퇴거하기를 거부하는 97세의 남작부인. 아성 지하에 미로처럼 뻗어 있는 지하 동굴과 심지어 9백년 묵은 포도주, 고문 도구, 현대인은 생각도 못할 옛 시절의 갖은 무기 종류.

  여기가 하위와 대니가 얼굴을 맞대고 있을 폰 아우스블링커 성일까?

  책을 읽는 도중에 여러 번, 적어도 몇 번은 머리 속이 헝클어지는 즐거움을 맛보실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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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10-01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근데 내용은 기억이 희미해요ㅋㅋㅋ미로같은 성 지하에서 오래된 와인 먹고 분수대 위로 올라와서 어쩌구저쩌구 했던 거 같은데.. 읽으면서 어드벤처 게임 같다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

Falstaff 2026-10-01 16:37   좋아요 1 | URL
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니퍼 이건의 입심이 보통이 아닙니다. 주목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고요. ㅎㅎㅎ
 
솔 벨로 1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2
솔 벨로 지음, 김현우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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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이면 재미난 책을 올해 가장 더울 때 읽었다. 에어컨을 켜고 자면 우라질 적정온도와 바람의 세기, 풍향 같은 것에 여간해 적응하지 못해 밤새 쪽잠을 피할 수 없고, 그나마 새벽에 눈이 떠진다. 어쨌든 덥지 않게 잔 건 좋긴 하지만 하루 종일 졸리고, 후텁지근하고, 얼음을 탔거나 말거나 하여간 찬물만 들이켜 뱃속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아서, 서늘한 도서관 열람실, 시민 혹서기 피난처이기도 한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기는 읽지만 도무지 컨디션이 엉망이다. 이런 상태로 읽었다. 겨우 520쪽 분량의 책을 3일 반이나 걸려 읽기는 읽었어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읽는 것도 무리인 것이 예약 대기중인 이용자가 두 명이나 있어 대출기일 연기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혹서기에 가끔 겪는 일인데, 이번엔 솔 벨로의 절묘한 소설집 《솔 벨로 1》이 걸려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 줄은 알겠는데, 이게 문장과 문장, 구절과 구절 눈에 들어오면서 즉각 무릎을 쳐야 마땅하거늘 도무지 천근 같은 눈꺼풀이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대뇌 전두엽이 졸음에 겨워 접수를 거부한다. 한여름만 아니었어도 즉각 집으로 후퇴해 낮잠 한 번 때린 다음에 다시 책 읽기를 이어가면 쉽게 해결되겠건만, 그 생각으로 가방 챙겨 집에 돌아올 수도 없다. 집엔 전기료 무서워 거실 큰 에어컨도 철수해버렸다. 그러니 무시무시한 습기와 온도를 버티면서 책을 읽는 건 포기. 그래서 여름 들면 읽는 양도 팍 준다. 지금이 그 시즌이다. 열흘 동안 네 권.


  《솔 벨로 1》 안에는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전부 솔 벨로처럼 유대인계 미국인이고, 예술 부분에 크게 한 자리하고 있거나 핏줄 속의 유전자 혜택을 받은 부르주아들이다. 딱 한 편만 빼고. 첫번째 작품 <그린 씨를 찾아서>는 유대인인 것처럼 보이는 백인 미국인. 시절은 공황기. 서른다섯 살의 시카고 토박이 조지 그리브. 당시에는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았던 대학 졸업자. 라틴어와 프랑스어도 자유롭게 사용하며, 대공황 직전까지 성 올라프 대학교에서 고전문학 강사도 했고, 1926년부터 공황이 덮치기 전까지 2년 동안 문학 연구원에 다녔지만 당연히 해고당했다. 이후 스톱앤숍에서 육류 통조림 판매 일도 하고, 골드불래츠에서 창문 차양도 팔았고, 심지어 신발 판매원이기도 했다. 주로 특정일, 특정 시간에만 일하는 시간제 노동이었는데, 이는 될수록 많은 실업자에게 조금이나마 소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했던 당시 정부의 정책이었던가 보다.

  지금은 프레리 애비뉴에 있는 지역 구호소에서 일한다. 이 일자리도 쉽게 구한 건 아니었다. 시 법률 고문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학교 친구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친한 친구가 아니었지만 갑자기 조지 그리브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구해준 자리였는데 은근히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어할 수 있어서 그걸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배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것쯤이야. 맡은 일은 사무실의 가장 말단. 심지어 사환이라 불러도 별로 이상할 거 없는 일이었으나 그런 거에 신경 쓸 시기가 아니었다.

  조지에게 작업 명령을 내리는 직속 상사는 조지보다 어린 나이의 레이너. 레이너가 일을 주었다.

  이곳 지역 구호소에서 보호해야 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은 대개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창고 건물이었던 프레리 애비뉴의 구호소에 출두하여 서류에 서명하고 생활보조금을 수령해 가야 하지만,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당했거나, 질환이나 장애 등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들 한테는 임시직을 포함한 특정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보조금액에 해당하는 정부발행 수표를 건네주어야 하는데, 사무실의 젊은 수석 레이너가 조지 그리브가 바로 이 일을 시킨 거였다. 1940년대 말, 미시간호에서 불어오는 얼음바람이 건물 사이를 칼처럼 베며 횡행하던 한 겨울에.

  그리하여 그리브는 프레리 애비뉴의 건물에서 외투와 모자 차림으로, 속주머니에는 수표책을 두툼하게 지닌 채로 길거리 포도에 발을 딛고 섰는데, 아뿔싸, 레어너의 사무실에 장갑을 벗어 그냥 두고 나온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솔직히 대학을 설렁설렁 나온 것도 아니고 유대인스럽게 열심히 열공, 닥공해서 대학의 고전문학 강사와 문학 연구원硏究院의 연구원硏究員 생활도 하던 인텔리겐치아 출신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이 약간 빗나갔거나, 아니면 신분상의 이유로 도피중일 지도 모르는 털리버 그린 씨를 찾아 시카고의 흑인 전용 주거구역의 음산한 지역에 있는 아파트 3D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 반가울 수 없었겠지? 아니다. 우리의 주인공 조지 그리브는 대공황의 손톱에 하도 할큄을 당해 이런 일쯤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하여 낡기는 했지만 실크 바지를 입은 복지사의 자격으로 흑인 구역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추운 날, 몸에 아무런 천도 걸치지 않은 완전 나신으로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내려와 문을 열어준 50대의 뚱뚱한 흑인 여성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말 다 하고, 할 일 다한 것처럼 스스로를 위안해가며 하루 일을 끝마치는 일.

  이게 《솔 벨로 1》 제일 앞에 실은 1951년 작품 <그린 씨를 찾아서>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오기 마치의 모험>, <허조그>, <비의 왕 핸더슨>, <오늘을 잡아라>, <험볼트의 선물> 같이 장편소설로만 알려진 솔 벨로스러운 작품을 읽으려면 점점 더 책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오기 마치의 모험>은 하도 오래 전에 읽어 가물가물한데, 내 기억에 그 책을 읽다가 잠깐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적어도 해당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는 오리무중을 헤매는 당나라 군졸처럼 정처를 잃거나, 저 앞으로 책을 넘겨 안개가 덮치기 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한 번 더 읽기를 해야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솔 벨로의,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한 철학, 예술, 역사, 종교 등에 관한 사색이, 좋은 말로 하면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 같고, 좀 비껴서 말하자면 잘난 척 하나는 정말 세계챔피언 급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오기 마치의 모험>은 두 권 분량의 길고 긴 로드무비였으나, 이 책 뒤편에 실린 두 작품,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와 <오늘은 어땠나요?>는 길어봤자 1백쪽과 1백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라, 읽다가 맥을 놓치는 경우가 생겨도 가뿐하게 뒤로 돌아가 다시 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유대인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무지막지한 과시와 지적 허풍과, 뭐니뭐니해도 세상 어떤 민족과도 비교 불가능한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피력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으로 채점했는데, 초두에 말했듯 하도 더워 컨디션이 망가진 내 탓이지, 이 책 《솔 벨로 1》 안에 든 작품들에 별 하나를 깔 만한 흠을 발견했거나, 하다못해 있기는 있지만 오탈자가 눈에 거슬리는 수준이라든가, 현대문학이 나한테 만원 꿔 갔는데 아직 안 갚고 떼먹어서도 아니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아무리 독후감을 후지게 썼어도 이것 때문에 일독을 머뭇거릴 필요가 1도 없다는 걸 꼭 말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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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의 긴 여행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유디트 헤르만 지음, 우영주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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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디트 헤르만, 신간이 나온 걸 알아챈 순간 곧바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 헤르만의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장편소설일 듯하다. 이이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이 감각적인 문장이 가득한데, 비록 한여름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딘가 섬뜩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서늘함이 도사리는 글들.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 그러니까 30년은 채 되지 않은 때,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화자 ‘나’가 현재 마흔일곱 살이니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중소도시의 신축건물 원룸 꼭대기 층에 살며 담배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나’는 담배공장 생산 라인에서 담배를 일정 길이로 절단하는 기계 앞에서 불순물을 거르는 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공정에 서서 일한다. 자동장치라 알아서 처리를 하지만 혹시 불순물이 끼어 있을 경우 ‘나’가 제거하는데, 독자는 칼날이 위에서 아래로 철커덕 내리치는 공정에서 맨 손으로 제거하는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공장에서 유일하게 귀마개를 하고 일을 하는 직원. 함께 일하는 동료한테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는 ‘나’. ‘나’의 즐거움은 5층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며 주유소가 바라보이는 전경을 내려다보는 일. 여름엔 주유소에 달려 있는 작은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도 일과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이 작은 가게에서 일이 벌어진다.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사서 계산을 하려는 순간, 문을 열고 깔끔한 검은 양복을 입은 백발의 중년 신사가 등장한다. 167cm, 절대로 작지 않은 키의 ‘나’를 보더니 “적당히 작은 키군요. 딱 좋은 키네요.” 꿍꿍이가 없는 어투로 말한다. 적당히 작다는 건 자신의 트릭을 기준으로 충분히 작고 알맞다는 말이란다. 그의 직업은 마술사. 자기 상자에 젊은 여자를 넣고 상자의 중간을 톱으로 썰어버리는 통 마술. 너무 자주 공연하여 이제는 조금 뻔한 마술이지만 현장에서 보면 여전히 섬뜩하고 작은 비명을 멈출 수 없는 모양이다. 마술사는 아내와 함께 크루즈 선 오로라호를 타고 3개월간 싱가포르를 왕복할 예정이다. 오로라호 전담 마술사이며 일주일에 세 번 공연을 한다. 통 마술에서 자신을 보조했던 여성이 그만 두어 ‘나’를 채용하고 싶어한다. 그는 ‘나’에게 주소를 가르쳐 주고, ‘나’는 그가 아내와 사는 외딴 방갈로에 방문한다.

  침대 외에는 거의 가구도 없고, 치장도 없어서 빈 집 같은 방갈로.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하는 떠돌이, 방랑자일 터이니 집을 꾸밀 필요가 없다. 집도 굳이 자기집일 이유가 없다. 마술사와 그의 아내는 보조 여성이 해야 하는 일을 설명하고 곧바로 통 마술을 연습해본다. ‘나’는 작은 통에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전에 누군가가 누워 있던 자리에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 통 속이 답답하지만 생각보다 편하다. 그런데 이 순간, 마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정말로 톱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두 토막 내려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니었고, 연습이 끝나자 마술사는 일주일 후에 출발할 테니 월요일 낮 12시에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거기서 기차 타고 항구로 가서 같은 날 저녁에 떠나는 배 오로라호에 승선할 예정. ‘나’는 선실 하나, 즉 독방을 사용하게 되며, 선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나’의 주변을 다 정리하고, 즉 육지에서 ‘나’의 흔적을 모두 없앤 후에 바다 위의 크루즈 선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몸이 잘려야 하는 여자가 된다.

  ‘나’는 담배공장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만 두었다. 생각보다 많은 짐을 정리하고 트렁크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추려서, 비가 철철 오는 여름 대낮에 ‘나’의 집을 나섰다. 결론적으로 ‘나’는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고, 대신 오티스를 만나 결혼했고, 딸 앤이 생겼다. 앤이 성장해 열네 살에 첫 문신을 하고, 열여덟이 되자 집을 나서 긴 여행을 시작했고, ‘나’는 오티스와 이혼해 버렸으나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문자도 주고받으며, 가끔 전화도 한다. 마술사는, 이렇게 초반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영원히.

  그러나 적어도 두 장면은 남는다. 5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던 주유소가 있는 도로 장면과 톱으로 썰기를 기다리는 통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 그러나 실제로는, 톱질 당하는 여자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30년쯤 지난 후에야 그 여자가 기억이 나서, 작품 또는 최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30년. 기억을 충분히 왜곡시킬 수 있는 시간.

  ‘나’는 거의 1년 동안 오빠가 살고 있는 동해안에서 살았다. 오빠 사샤는 젊은 시절에 활동적이었던 사람이지만 나이가 들어 이젠 허풍 심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걸로 호가 났다. 주로 동네 점잖은 사람들이 모이는 조용한 술집에서 출입금지 처분을 당했을 정도로만 여기면 된다. 비록 그 술집에서 일하는 스물한 살의 여성 종업원과 새로이 연애를 시작한 50대 후반의 남자이기는 하지만.

  스물한 살의 니케가 등장하면서 다시 통 이야기가 나온다. 니케는 어렸을 때부터 상자에 갇혀 지내는 날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니케를 상자에 가두어 놓고 한 시간씩, 때로는 며칠 동안 어머니의 상황에 따라, 어디에 가야 하거나, 손님이 오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자기 멋대로 가두어 두었다, 라고 주장한다. 그 안에서 니케는 울었을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위해 반항 비슷한 것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이 가둠을 당하는 일은 제법 많은 나이까지 지속되었다. 아이였을 때부터 당한 일이라 10대가 되어도 쉽게 반항하거나 뛰쳐나올 수 없었을 지 모른다.

  ‘나’의 옆집에 사는 유일한 이웃, 미미. 미미는 젊은 시절에 잠깐 동안 오빠의 연인이기도 했다. 미미의 집에서 미미의 어머니 암케가 침대까지 가져다 준 아침을 먹은 날부터 시작한 돼지 농장일을 사샤는 견디지 못해 도망쳤던 일이 있다. 이후 미미는 조각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지냈다.

  미미. 동쪽 해변가 간척지에서 가릴 것이 없는 여자. 추운 초여름에 나신으로 수영을 하고, 커튼을 달지 않은 집 안에서는 전혀 거칠 것 없이 생활하는 이. 미미가 먼저 ‘나’에게 접근해 친해지고, 오빠와의 짧은 연애 이야기도 들려주기도 했으며, 함께 잔뜩 술을 마시기도 한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907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동생 아릴드의 집으로 쳐들어가 밤새 술을 마시는 통에 ‘나’를 아릴드의 침대에 오르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릴드 역시 ‘나’의 침대로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새벽 네 시만 되면 자기 휴대폰에서 울리는 모닝콜에 득달같이 일어나 돼지를 치러 가는 남자.

  ‘나’는 넓은 오빠네 집에서 살아도 되지만 해안 간척지에 있는 단독주택을 얻는다. 2층은 혹시 앤이라도 오면 지내라고 침대 하나를 놓았을 뿐 비어 있고, ‘나’의 생활은 전적으로 1층에만 국한한다. 이 동해안 간척지에서 집을 얻은 것이 1월 초. 매섭게 추운 날이 지속되었고, 2월이 되자 그때까지 몰랐던 동풍이 몰아쳐, 잠을 자는 새 분명히 닫은 현관이 열려 찬 기운이 방에까지 들이닥쳤으며, ‘누가 열었을까? 저절로 열렸을까?’ 무섭게 서늘한 생각이 들어 호신용 스프레이, 재크나이프, 전남편 오티스가 준 호신용 공포탄 권총 한 자루를 침대 밑에 두기 시작했다. 공포탄이라 해도 그걸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하면 맞은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할 수도 있다. 그런 줄도 모르니까 아릴드는 편하게 침대에 오를 수 있었겠지. 궁금하지? 권총이 소설에 등장하면 언젠가는 발사할 수밖에 없다고? 안 알려드린다.

  게다가 갑자기 천장 한 모퉁이부터 저쪽 모퉁이까지 작은 짐승이 화다닥 달려가는 소리. 뭔가가 천장에 있다. ‘뭔가’가 무슨 동물인 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데, ‘나’가 도움을 요청한 돼지농장 주인이자 이혼남, 이라기보다 아내가 도망친 남자의 의견에 의하면 담비란다. 아릴드는 담비 덫을 적당한 장소에 설치하고 성호르몬을 묻힌 돼지 비계를 달아 담비를 유혹하건만 색깔이 찬란한 고양이가 한 번, 검정색의 새 한 마리가 한 번 걸릴 뿐이다.

  이렇게 거의 완전히 고립된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황량한 벌판과 물, 간척지, 바다가 널려있는 풍경. 쓸쓸하고 고립되었으며 무언가 불행한 일이 곧 생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의 연속. 이게 헤르만을 읽는 즐거움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이의 벌판은 단편 쪽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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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9-29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간 나온 걸 기억하는데, 폴스타프 님 4별이라 궁금하네요.
근데 품절이라니 사두기만 하는 저를 위해서는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요 ㅎㅎㅎ

Falstaff 2026-09-29 16:26   좋아요 0 | URL
지금 보니까 품절이네요? 왜 그랬을까 궁금합니다. 계약에 문제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20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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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츠카야가 예순세 살 때 발표한 2006년 작품. 이 양반 책은 빠짐없이 다 읽었는데도 몇 권 되지 않는다. 아직 번역해 나오지 않은 작품/책도 많다. 그런 것들도 나오기만 해봐라, 당장 읽어버릴 태세. 이 정도면 나, 울리츠카야 팬 맞지?

  이번에 읽은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념비적인 “200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정말로 1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방금 전에 다 읽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도서관 여러 곳 가운데 나 다니는 도서관에 이 책 딱 한 권 있다. 근데 아직 예약한 이용객도 한 명 없다. 흠. 울리츠카야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는 모양이군. 어쩌면 본문만 730쪽에 달하는 분량 때문일 것도 같다.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커다란 초록 천막>은 두 권, 천 쪽을 넘어가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많이 팔리지 않았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유대인. 소련의 바시키르 자치 공화국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대학까지 마친 러시아 사람이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하도 열을 받아 독일로 이사해 버렸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쿠바, 북한, 동구권의 수다한 나라들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핑계로 1인 장기집권만 도모했던/하는 좌익 파시스트 경찰 집단일 뿐이지 공산주의는 무슨 공산주의.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리가 울리츠카야와 또래의 구 소련 여성 작가들이다. 이들은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작품을 쓰지 않았거나 쓰더라도 마음이 비슷한 소수의 자기들끼리 돌려 읽는 정도로만 국한했다. 울리츠카야 역시 지하출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게 발각나자마자 유전학연구소의 연구원 자리에서 해고당해 버렸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유대인 극단. 거기서 희곡 또는 연극 대본도 쓰고, 시나리오도 썼다가, 70년 만에 볼셰비키가 역사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소설을 쓰기(또는 출간하기) 시작하여 대박을 친다. 사실 내가 정말 기대했던 40년대생 소련 여성 작가는 이이보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어처구니없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민주적이어야 하는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소련 작가들은 오히려 더욱 숨도 쉬기 어려워했으니, 이건 생각 자체를 국가 또는 정권에서 원하는 프레임에 가두어 두었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를 주창했던 마르크스가 자기의 믿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았다면 런던의 하이게이트 무덤에서 벌떡 일어섰거나, 후세 누구보다 더 맹렬하게, 자기가 주장한 공산주의를 철회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섰을 터.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일년의 반은 모스크바에서,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에서” 지낸다고 했었다. 유대인이 형제자매, 또는 친척, 아니더라도 사돈의 팔촌은 틀림없이 살고 있을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하고, 간 김에 좀 오래 체류하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아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이는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을 쓰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옆집 드나들듯이 했던 것 같다. 집필 기간만 해도 근 10년에 육박했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눈치 채셨지? 주인공 ‘다니엘 슈타인’ 역시 이름에서 떡 알아차릴 수 있는 유대인. 그리고 활동 무대가 이스라엘?


  다니엘 슈타인은 1922년 정도에 남부 폴란드에서 난 유대인이다. 한 눈에 탁 봐도 당시에 폴란드에서 살던 유대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게 태어났다. 기본이 처형 또는 피살 또는 학살 대상자이고 최하로 쳐도 중상 수준. 폴란드에서 자랐으니까 폴란드어는 기본이고, 소련 말도 모국어 수준으로 잘 했을 터인데, 여기다가 천부적으로 어학에 재질을 보여 독일어, 그리스어, 유대인이니까 이디시어와 히브리어까지 줄줄 꿰고 살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디터’라는 독일식 이름도 가지고 있어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바람에 기구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전쟁이 터지자 다니엘은 피난을 떠나야 했다. 1차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력을 가진 아버지는 그냥 독일 치하에 남고 싶었지만 몸이 아픈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해 부모와 두 아들이 엄마를 마차에 태워 길을 떠났으니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3주 동안 기다렸다가 억지로 얻어 탄 기차가 폭격을 맞아 다시 걸어가야 했는데 당연히 그동안 독일군이 이들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집 떠나면 개고생이건만 하물며 전쟁중이었으니 말도 못했겠지. 부모는 상의 끝에 형제에게 은수저 네 벌과 가진 돈을 모두 주며 어떻게 해서라도 팔레스타인에 도착하라고 당부했다. 당신들은 그냥 그곳에 머물겠다면서. 그때가 1939년 11월. 다니엘은 열일곱, 동생 아비그도르는 열여섯. 당연히 부모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었다.

  형제는 갖은 고생을 하며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독후감 쓰다가는 날 샐 거 같아서 딱 잘라 말하면, 형제는 어찌어찌 헤어져 아비그도르는 무사히 팔레스타인에 도착해 멸절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럽출신 유대 여성한테 장가들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던 반면에, 형 다니엘은 방랑의 와중에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 엠스크에서 독일군한테 잡히는 신세로 떨어진다. 근데 다니엘, 아니, 디터는 검은 머리카락 등 생긴 건 어째 유대인인 것 같건만 이름도 독일제고, 독일 말을 진짜 독일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데다가 소련말, 폴란드말, 게다가 그리스, 프랑스말,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영어까지 능숙해 놀랍게도 독일 경찰에 스카우트되어버린다. 독일 경찰? 전시에 무슨. 쉽게 말해 게슈타포의 통역관이 되는 것. 하늘이 다니엘을 도와 또 이 게슈타포의 지역 사령관이 상당한 인류애를 가지고 있는 독일군이기까지 해, 결국 독일 장교가 눈치껏 다니엘의 목숨을 살려주는 천운을 만난다.

  통역사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느냐 하면, 엠스크의 게토에 모여 사는 유대인을 탈출시켰다. 늘 통역사를 비서 겸해서 옆에 두고 일을 하던 사령관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리하여 작전 수행 날짜를 통보 받았는데, 다니엘이 그걸 알아차렸다. 게토 안의 유대인을 전부 총살하라는 명령.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이 정보를 곱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다니엘도 게슈타포 정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저게 지금 거짓 정보를 주고 탈출을 시도하면 그걸 핑계로 우릴 죽이려 드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일인이 악질이라도 게토에 사는 5백명이 넘는 유대인 전부를 총살시키지는 않을 터이니까. 7백쪽이 넘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대단히 머리가 좋은 다니엘은 결국 정보를 넘겨주는 데 성공하고, 게토 안의 건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3백명이 처형 이틀 전에 밤을 도와 탈출해버렸다. 이들은 유럽의 ‘검은숲’에 들어가 파르티잔 활동을 시작하고.

  이게 죽어 마땅한 죄 1번.


  게토 안에 남아있던, 주로 늙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은 작전대로 몽땅 총살당했다. 그러니 숲에 든 유대인들이 열을 안 받아? 하지만 아무리 파르티잔을 한다 해도 먹을 것과 무기가 있어야 뭘 해도 할 터인데 빈손 신세. 다니엘은 먹을 건 대책이 없어도 무기는 공급해줄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주로 소련군이었던 적군의 총기를 어디에 보관하는 줄 알았다. 그곳을 기웃거려보니 작은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었고, 아직 살이 붙기 전인 다니엘을 그곳에서 무기를 꺼내 유대 파르티잔에게 건넨다.

  이게 죽어 마땅한 죄 2번.

  세상의 진리 가운데 하나. 비밀은 없다. 다니엘도 두 사실이 발각됐다. 배신자가 있었다. 유대 역사상, 하긴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이 다 그렇지만, 베드로 이후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유대인종 답게 한 명이 사령관에게 다니엘을 고발했다. 그리하여 다 죽게 된 그는 앞에서 말했듯 사령관의 아량으로 눈치껏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한다.

  게슈타포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탈출한 다니엘은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동유럽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남고, 와중에 아련한 플라토닉 첫사랑도 경험하는데, 특히 수녀원의 수녀들이 내가 봐도 목숨을 걸고 보호해주는 수준이었다. 하여간 전쟁이 끝나고, 놀랍게도 동유럽의 포그롬에서 생존한 다니엘은 전쟁이 끝난 후에 곧바로 폴란드로 돌아간다. 확률은 전혀 없지만 혹시라도 부모가 살아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니었고, 다니엘은 시나고그 대신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가, 신부의 신분으로 이스라엘에 몇 달 예정으로 파견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이후 몇 십년,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샘의 엘리야 교회’에서 일한다.


  아시다시피 나는 종교 이야기가 질색이다. 근데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의 7할이 종교에 관한 내용.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기독교도 로마 가톨릭, 그리스/러시아 정교, 개신교. 이렇게 한 신을 섬기는 다양한 종교가 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만 일삼아서 되겠느냐는 일갈인데, 아, 씨, 나는 관심이 없는 걸 우짜냐고?

  다니엘의 직업 부터가 쇼킹이다. 유대인 출신의 가톨릭 사제. 심지어 훗날 교황이 되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동기.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다. 다니엘 슈타인보다 두 살 더 많다.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 작품 속에서 (과장해서 말하자면)이단 행위로 고발당한 다니엘이 맨발의 카르멜 교단과 예루살렘 총대주교청을 거쳐 바티칸의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면담까지 한 다음에, 당시 교황인 보이티와, 요한 바오로 2세와 오리지널 폴란드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열라 재미있게 읽었다가, 난데없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이스라엘에 파견된 다음부터 길고 긴 종교 이야기에 팍 질려버렸다. 심지어 내가 이걸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것 자체가 오병이어만큼이나 기적같다. 그러니 종교 이야기는 그만하고 가톨릭 신자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한 수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미사. 이건 내가 알기로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제사라고 알고 있다. 신부는 이 미사를 집전執典하는 책임을 진 사람. 내 주위의 친척, 친구, 술친구 가운데도 유난히 가톨릭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하나같이 “미사를 본다.”라고 말한다. 근데 왜 미사를 “본다”라고 말할까? 예식하는 장면을 보는 건가? 이 책에서도 미사를 본다고 하는 표현이 제일 많았고, 딱 한 번 “미사를 드리다.”라고 쓴다. 비슷하게 “미사를 바치다.”라고도 쓸 수 있을 듯. “미사를 모시다.”나 “미사를 지내다.”라는 말도 괜찮을 거 같은데, 이 전례에 완전히 무식해서 뭐라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내 물음은 왜 “보다”라는 동사를 미사에 적용하는가, 하는 거다. 새삼스레 사전에서 “보다”를 검색해봤는데, 미사하고 연결되는 동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게 좀 많다. 타박하지 마시고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니 알려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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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28 0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니까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해 독일로 이사가 버린 작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해 지도자를 살해한 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쳐 했을까? 이스라엘 만세다, 했을 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이이가 어떤 견해를 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심하게 유감이다.

coolcat329 2026-09-2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전쟁 배경 소설 좋아해서 이 책 샀는데 중간에 종교 이야기라니... 괜히 샀나 싶네요. ㅠㅠ

Falstaff 2026-09-29 04:52   좋아요 1 | URL
전쟁 이야기까지는 재미있었는데요. 그래도 울리츠카야니까 걍 읽어보세요.

잠자냥 2026-09-29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 현재의 이스라엘이 하는 짓이랑 겹쳐져서.... 심적으로 삐딱하게 되더라고요. 흠... (다니엘도 미워 보임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9-29 16:27   좋아요 1 | URL
막 신경질까지 나던 걸요. ㅋㅋㅋ

천학비재 2026-10-15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냉담자인 저도 미사를 본다는 말은 잘 모르겠고,미사를 드린다는 보통 가족 중에 돌아 가신 분의 기일에 기념 미사를 성당에 신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Falstaff 2026-10-15 18:20   좋아요 0 | URL
제가 얻어 듣기에도 우리나라 천주교회에는 미사 본다는 말을 굉장히 언짢아 한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처음 중국을 통해 들어올 당시 중국말로 첨례瞻禮라고 했는데, 이때 첨瞻이 볼(watch) 첨 자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잠으로 바뀌며 미사를 본다, 라고 했던 거 아닌가, 하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더군요.
제 주변의 가톨릭 열성분자들은 거의 다 ˝미사를 본다˝라고 하더군요. 친절한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