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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벨로 1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2
솔 벨로 지음, 김현우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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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재미난 책을 올해 가장 더울 때 읽었다. 에어컨을 켜고 자면 우라질 적정온도와 바람의 세기, 풍향 같은 것에 여간해 적응하지 못해 밤새 쪽잠을 피할 수 없고, 그나마 새벽에 눈이 떠진다. 어쨌든 덥지 않게 잔 건 좋긴 하지만 하루 종일 졸리고, 후텁지근하고, 얼음을 탔거나 말거나 하여간 찬물만 들이켜 뱃속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아서, 서늘한 도서관 열람실, 시민 혹서기 피난처이기도 한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기는 읽지만 도무지 컨디션이 엉망이다. 이런 상태로 읽었다. 겨우 520쪽 분량의 책을 3일 반이나 걸려 읽기는 읽었어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읽는 것도 무리인 것이 예약 대기중인 이용자가 두 명이나 있어 대출기일 연기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혹서기에 가끔 겪는 일인데, 이번엔 솔 벨로의 절묘한 소설집 《솔 벨로 1》이 걸려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 줄은 알겠는데, 이게 문장과 문장, 구절과 구절 눈에 들어오면서 즉각 무릎을 쳐야 마땅하거늘 도무지 천근 같은 눈꺼풀이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대뇌 전두엽이 졸음에 겨워 접수를 거부한다. 한여름만 아니었어도 즉각 집으로 후퇴해 낮잠 한 번 때린 다음에 다시 책 읽기를 이어가면 쉽게 해결되겠건만, 그 생각으로 가방 챙겨 집에 돌아올 수도 없다. 집엔 전기료 무서워 거실 큰 에어컨도 철수해버렸다. 그러니 무시무시한 습기와 온도를 버티면서 책을 읽는 건 포기. 그래서 여름 들면 읽는 양도 팍 준다. 지금이 그 시즌이다. 열흘 동안 네 권.
《솔 벨로 1》 안에는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전부 솔 벨로처럼 유대인계 미국인이고, 예술 부분에 크게 한 자리하고 있거나 핏줄 속의 유전자 혜택을 받은 부르주아들이다. 딱 한 편만 빼고. 첫번째 작품 <그린 씨를 찾아서>는 유대인인 것처럼 보이는 백인 미국인. 시절은 공황기. 서른다섯 살의 시카고 토박이 조지 그리브. 당시에는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았던 대학 졸업자. 라틴어와 프랑스어도 자유롭게 사용하며, 대공황 직전까지 성 올라프 대학교에서 고전문학 강사도 했고, 1926년부터 공황이 덮치기 전까지 2년 동안 문학 연구원에 다녔지만 당연히 해고당했다. 이후 스톱앤숍에서 육류 통조림 판매 일도 하고, 골드불래츠에서 창문 차양도 팔았고, 심지어 신발 판매원이기도 했다. 주로 특정일, 특정 시간에만 일하는 시간제 노동이었는데, 이는 될수록 많은 실업자에게 조금이나마 소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했던 당시 정부의 정책이었던가 보다.
지금은 프레리 애비뉴에 있는 지역 구호소에서 일한다. 이 일자리도 쉽게 구한 건 아니었다. 시 법률 고문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학교 친구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친한 친구가 아니었지만 갑자기 조지 그리브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구해준 자리였는데 은근히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어할 수 있어서 그걸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배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것쯤이야. 맡은 일은 사무실의 가장 말단. 심지어 사환이라 불러도 별로 이상할 거 없는 일이었으나 그런 거에 신경 쓸 시기가 아니었다.
조지에게 작업 명령을 내리는 직속 상사는 조지보다 어린 나이의 레이너. 레이너가 일을 주었다.
이곳 지역 구호소에서 보호해야 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은 대개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창고 건물이었던 프레리 애비뉴의 구호소에 출두하여 서류에 서명하고 생활보조금을 수령해 가야 하지만,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당했거나, 질환이나 장애 등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들 한테는 임시직을 포함한 특정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보조금액에 해당하는 정부발행 수표를 건네주어야 하는데, 사무실의 젊은 수석 레이너가 조지 그리브가 바로 이 일을 시킨 거였다. 1940년대 말, 미시간호에서 불어오는 얼음바람이 건물 사이를 칼처럼 베며 횡행하던 한 겨울에.
그리하여 그리브는 프레리 애비뉴의 건물에서 외투와 모자 차림으로, 속주머니에는 수표책을 두툼하게 지닌 채로 길거리 포도에 발을 딛고 섰는데, 아뿔싸, 레어너의 사무실에 장갑을 벗어 그냥 두고 나온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솔직히 대학을 설렁설렁 나온 것도 아니고 유대인스럽게 열심히 열공, 닥공해서 대학의 고전문학 강사와 문학 연구원硏究院의 연구원硏究員 생활도 하던 인텔리겐치아 출신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이 약간 빗나갔거나, 아니면 신분상의 이유로 도피중일 지도 모르는 털리버 그린 씨를 찾아 시카고의 흑인 전용 주거구역의 음산한 지역에 있는 아파트 3D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 반가울 수 없었겠지? 아니다. 우리의 주인공 조지 그리브는 대공황의 손톱에 하도 할큄을 당해 이런 일쯤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하여 낡기는 했지만 실크 바지를 입은 복지사의 자격으로 흑인 구역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추운 날, 몸에 아무런 천도 걸치지 않은 완전 나신으로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내려와 문을 열어준 50대의 뚱뚱한 흑인 여성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말 다 하고, 할 일 다한 것처럼 스스로를 위안해가며 하루 일을 끝마치는 일.
이게 《솔 벨로 1》 제일 앞에 실은 1951년 작품 <그린 씨를 찾아서>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오기 마치의 모험>, <허조그>, <비의 왕 핸더슨>, <오늘을 잡아라>, <험볼트의 선물> 같이 장편소설로만 알려진 솔 벨로스러운 작품을 읽으려면 점점 더 책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오기 마치의 모험>은 하도 오래 전에 읽어 가물가물한데, 내 기억에 그 책을 읽다가 잠깐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적어도 해당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는 오리무중을 헤매는 당나라 군졸처럼 정처를 잃거나, 저 앞으로 책을 넘겨 안개가 덮치기 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한 번 더 읽기를 해야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솔 벨로의,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한 철학, 예술, 역사, 종교 등에 관한 사색이, 좋은 말로 하면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 같고, 좀 비껴서 말하자면 잘난 척 하나는 정말 세계챔피언 급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오기 마치의 모험>은 두 권 분량의 길고 긴 로드무비였으나, 이 책 뒤편에 실린 두 작품,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와 <오늘은 어땠나요?>는 길어봤자 1백쪽과 1백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라, 읽다가 맥을 놓치는 경우가 생겨도 가뿐하게 뒤로 돌아가 다시 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유대인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무지막지한 과시와 지적 허풍과, 뭐니뭐니해도 세상 어떤 민족과도 비교 불가능한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피력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으로 채점했는데, 초두에 말했듯 하도 더워 컨디션이 망가진 내 탓이지, 이 책 《솔 벨로 1》 안에 든 작품들에 별 하나를 깔 만한 흠을 발견했거나, 하다못해 있기는 있지만 오탈자가 눈에 거슬리는 수준이라든가, 현대문학이 나한테 만원 꿔 갔는데 아직 안 갚고 떼먹어서도 아니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아무리 독후감을 후지게 썼어도 이것 때문에 일독을 머뭇거릴 필요가 1도 없다는 걸 꼭 말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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