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20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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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츠카야가 예순세 살 때 발표한 2006년 작품. 이 양반 책은 빠짐없이 다 읽었는데도 몇 권 되지 않는다. 아직 번역해 나오지 않은 작품/책도 많다. 그런 것들도 나오기만 해봐라, 당장 읽어버릴 태세. 이 정도면 나, 울리츠카야 팬 맞지?

  이번에 읽은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념비적인 “200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정말로 1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방금 전에 다 읽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도서관 여러 곳 가운데 나 다니는 도서관에 이 책 딱 한 권 있다. 근데 아직 예약한 이용객도 한 명 없다. 흠. 울리츠카야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는 모양이군. 어쩌면 본문만 730쪽에 달하는 분량 때문일 것도 같다.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커다란 초록 천막>은 두 권, 천 쪽을 넘어가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많이 팔리지 않았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유대인. 소련의 바시키르 자치 공화국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대학까지 마친 러시아 사람이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하도 열을 받아 독일로 이사해 버렸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쿠바, 북한, 동구권의 수다한 나라들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핑계로 1인 장기집권만 도모했던/하는 좌익 파시스트 경찰 집단일 뿐이지 공산주의는 무슨 공산주의.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리가 울리츠카야와 또래의 구 소련 여성 작가들이다. 이들은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작품을 쓰지 않았거나 쓰더라도 마음이 비슷한 소수의 자기들끼리 돌려 읽는 정도로만 국한했다. 울리츠카야 역시 지하출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게 발각나자마자 유전학연구소의 연구원 자리에서 해고당해 버렸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유대인 극단. 거기서 희곡 또는 연극 대본도 쓰고, 시나리오도 썼다가, 70년 만에 볼셰비키가 역사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소설을 쓰기(또는 출간하기) 시작하여 대박을 친다. 사실 내가 정말 기대했던 40년대생 소련 여성 작가는 이이보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어처구니없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민주적이어야 하는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소련 작가들은 오히려 더욱 숨도 쉬기 어려워했으니, 이건 생각 자체를 국가 또는 정권에서 원하는 프레임에 가두어 두었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를 주창했던 마르크스가 자기의 믿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았다면 런던의 하이게이트 무덤에서 벌떡 일어섰거나, 후세 누구보다 더 맹렬하게, 자기가 주장한 공산주의를 철회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섰을 터.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일년의 반은 모스크바에서,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에서” 지낸다고 했었다. 유대인이 형제자매, 또는 친척, 아니더라도 사돈의 팔촌은 틀림없이 살고 있을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하고, 간 김에 좀 오래 체류하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아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이는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을 쓰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옆집 드나들듯이 했던 것 같다. 집필 기간만 해도 근 10년에 육박했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눈치 채셨지? 주인공 ‘다니엘 슈타인’ 역시 이름에서 떡 알아차릴 수 있는 유대인. 그리고 활동 무대가 이스라엘?


  다니엘 슈타인은 1922년 정도에 남부 폴란드에서 난 유대인이다. 한 눈에 탁 봐도 당시에 폴란드에서 살던 유대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게 태어났다. 기본이 처형 또는 피살 또는 학살 대상자이고 최하로 쳐도 중상 수준. 폴란드에서 자랐으니까 폴란드어는 기본이고, 소련 말도 모국어 수준으로 잘 했을 터인데, 여기다가 천부적으로 어학에 재질을 보여 독일어, 그리스어, 유대인이니까 이디시어와 히브리어까지 줄줄 꿰고 살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디터’라는 독일식 이름도 가지고 있어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바람에 기구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전쟁이 터지자 다니엘은 피난을 떠나야 했다. 1차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력을 가진 아버지는 그냥 독일 치하에 남고 싶었지만 몸이 아픈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해 부모와 두 아들이 엄마를 마차에 태워 길을 떠났으니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3주 동안 기다렸다가 억지로 얻어 탄 기차가 폭격을 맞아 다시 걸어가야 했는데 당연히 그동안 독일군이 이들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집 떠나면 개고생이건만 하물며 전쟁중이었으니 말도 못했겠지. 부모는 상의 끝에 형제에게 은수저 네 벌과 가진 돈을 모두 주며 어떻게 해서라도 팔레스타인에 도착하라고 당부했다. 당신들은 그냥 그곳에 머물겠다면서. 그때가 1939년 11월. 다니엘은 열일곱, 동생 아비그도르는 열여섯. 당연히 부모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었다.

  형제는 갖은 고생을 하며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독후감 쓰다가는 날 샐 거 같아서 딱 잘라 말하면, 형제는 어찌어찌 헤어져 아비그도르는 무사히 팔레스타인에 도착해 멸절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럽출신 유대 여성한테 장가들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던 반면에, 형 다니엘은 방랑의 와중에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 엠스크에서 독일군한테 잡히는 신세로 떨어진다. 근데 다니엘, 아니, 디터는 검은 머리카락 등 생긴 건 어째 유대인인 것 같건만 이름도 독일제고, 독일 말을 진짜 독일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데다가 소련말, 폴란드말, 게다가 그리스, 프랑스말,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영어까지 능숙해 놀랍게도 독일 경찰에 스카우트되어버린다. 독일 경찰? 전시에 무슨. 쉽게 말해 게슈타포의 통역관이 되는 것. 하늘이 다니엘을 도와 또 이 게슈타포의 지역 사령관이 상당한 인류애를 가지고 있는 독일군이기까지 해, 결국 독일 장교가 눈치껏 다니엘의 목숨을 살려주는 천운을 만난다.

  통역사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느냐 하면, 엠스크의 게토에 모여 사는 유대인을 탈출시켰다. 늘 통역사를 비서 겸해서 옆에 두고 일을 하던 사령관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리하여 작전 수행 날짜를 통보 받았는데, 다니엘이 그걸 알아차렸다. 게토 안의 유대인을 전부 총살하라는 명령.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이 정보를 곱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다니엘도 게슈타포 정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저게 지금 거짓 정보를 주고 탈출을 시도하면 그걸 핑계로 우릴 죽이려 드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일인이 악질이라도 게토에 사는 5백명이 넘는 유대인 전부를 총살시키지는 않을 터이니까. 7백쪽이 넘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대단히 머리가 좋은 다니엘은 결국 정보를 넘겨주는 데 성공하고, 게토 안의 건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3백명이 처형 이틀 전에 밤을 도와 탈출해버렸다. 이들은 유럽의 ‘검은숲’에 들어가 파르티잔 활동을 시작하고.

  이게 죽어 마땅한 죄 1번.


  게토 안에 남아있던, 주로 늙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은 작전대로 몽땅 총살당했다. 그러니 숲에 든 유대인들이 열을 안 받아? 하지만 아무리 파르티잔을 한다 해도 먹을 것과 무기가 있어야 뭘 해도 할 터인데 빈손 신세. 다니엘은 먹을 건 대책이 없어도 무기는 공급해줄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주로 소련군이었던 적군의 총기를 어디에 보관하는 줄 알았다. 그곳을 기웃거려보니 작은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었고, 아직 살이 붙기 전인 다니엘을 그곳에서 무기를 꺼내 유대 파르티잔에게 건넨다.

  이게 죽어 마땅한 죄 2번.

  세상의 진리 가운데 하나. 비밀은 없다. 다니엘도 두 사실이 발각됐다. 배신자가 있었다. 유대 역사상, 하긴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이 다 그렇지만, 베드로 이후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유대인종 답게 한 명이 사령관에게 다니엘을 고발했다. 그리하여 다 죽게 된 그는 앞에서 말했듯 사령관의 아량으로 눈치껏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한다.

  게슈타포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탈출한 다니엘은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동유럽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남고, 와중에 아련한 플라토닉 첫사랑도 경험하는데, 특히 수녀원의 수녀들이 내가 봐도 목숨을 걸고 보호해주는 수준이었다. 하여간 전쟁이 끝나고, 놀랍게도 동유럽의 포그롬에서 생존한 다니엘은 전쟁이 끝난 후에 곧바로 폴란드로 돌아간다. 확률은 전혀 없지만 혹시라도 부모가 살아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니었고, 다니엘은 시나고그 대신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가, 신부의 신분으로 이스라엘에 몇 달 예정으로 파견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이후 몇 십년,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샘의 엘리야 교회’에서 일한다.


  아시다시피 나는 종교 이야기가 질색이다. 근데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의 7할이 종교에 관한 내용.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기독교도 로마 가톨릭, 그리스/러시아 정교, 개신교. 이렇게 한 신을 섬기는 다양한 종교가 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만 일삼아서 되겠느냐는 일갈인데, 아, 씨, 나는 관심이 없는 걸 우짜냐고?

  다니엘의 직업 부터가 쇼킹이다. 유대인 출신의 가톨릭 사제. 심지어 훗날 교황이 되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동기.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다. 다니엘 슈타인보다 두 살 더 많다.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 작품 속에서 (과장해서 말하자면)이단 행위로 고발당한 다니엘이 맨발의 카르멜 교단과 예루살렘 총대주교청을 거쳐 바티칸의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면담까지 한 다음에, 당시 교황인 보이티와, 요한 바오로 2세와 오리지널 폴란드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열라 재미있게 읽었다가, 난데없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이스라엘에 파견된 다음부터 길고 긴 종교 이야기에 팍 질려버렸다. 심지어 내가 이걸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것 자체가 오병이어만큼이나 기적같다. 그러니 종교 이야기는 그만하고 가톨릭 신자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한 수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미사. 이건 내가 알기로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제사라고 알고 있다. 신부는 이 미사를 집전執典하는 책임을 진 사람. 내 주위의 친척, 친구, 술친구 가운데도 유난히 가톨릭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하나같이 “미사를 본다.”라고 말한다. 근데 왜 미사를 “본다”라고 말할까? 예식하는 장면을 보는 건가? 이 책에서도 미사를 본다고 하는 표현이 제일 많았고, 딱 한 번 “미사를 드리다.”라고 쓴다. 비슷하게 “미사를 바치다.”라고도 쓸 수 있을 듯. “미사를 모시다.”나 “미사를 지내다.”라는 말도 괜찮을 거 같은데, 이 전례에 완전히 무식해서 뭐라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내 물음은 왜 “보다”라는 동사를 미사에 적용하는가, 하는 거다. 새삼스레 사전에서 “보다”를 검색해봤는데, 미사하고 연결되는 동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게 좀 많다. 타박하지 마시고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니 알려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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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28 0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니까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해 독일로 이사가 버린 작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해 지도자를 살해한 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쳐 했을까? 이스라엘 만세다, 했을 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이이가 어떤 견해를 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심하게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