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가장자리에서 - 2024년 퓰리처상 수상 장편소설
제인 앤 필립스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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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웨스트버지니아의 작은 도시 버케넌에서 출생한 작가. 52년생이니까 벌써 일흔네 살이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몇몇 유명작가가 그러했듯이 아이오와 대학 내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석사 학위에 준하는 M.F.A. Master of Fine Arts를 받았다. 이 코스를 밟은 미국 작가들 가운데 유명 작가 몇 명만 꼽아보면, 존 치버, 필립 로스, 매릴린 로빈슨, 앤드루 포터, 마이클 커닝햄 등이다. 이 정도면 미국 문단의 한 주류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수준.

  M.F.A.를 취득한 후 젊은 시절동안 다른 작가들이 겪는 몸살도 좀 앓다가, 작품, 주로 단편소설집을 출간해 두각을 나타냈고, 덕분에 여러 대학에 출강할 수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2005년부터 20년까지 15년 동안 러트거스대학 뉴어크 캠퍼스에서 영어 교수로 재직했다고. 재직중에 러트거스 대학에도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비슷한 M.F.A. 과정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했단다.

  경력 가운데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지금 독후감을 쓰는 <밤의 가장자리에서 Night Watch>가 2024년에 퓰리처 상을 받은 것이 돋보인다. 책의 출간은 2023년이니 이때가 일흔한 살. 가장 최근의 작품이고 이제는 고령이라, 어쩌면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겠다.


  소소한 불만은 왜 우리말 제목을 “밤의 가장자리에서”라고 했을까, 하는 것. 원문 그대로 “야경꾼”이라고 하면 같은 제목의 소설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출판사의 고심도 이해가 가지만 책을 다 읽어보면 역시 “야경꾼”이 제목으로 더 그럴 듯하다. 그럼 책 이야기를 해보자.

  작품의 무대는 웨스트버지니아. 주 전체가 애팔래치아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했고, 서쪽으로 조금 평원이 펼쳐 있다. 컨트리 가수 존 덴버의 노랫말에도 들어 있는 동네라 올드팝 팬들한테는 익숙할 수도 있을 걸? 이곳 산악지형, 아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높은 능선 바로 아래 언덕배기에 집을 짓고 사는 열두 살 소녀 코나리가 사실상 주인공이다.

  시간적 배경은 1874년과 10년 전인 1864년. 1864년이라면 61년에 발발한 미국 내전이 가장 뜨겁게 불이 붙던 시기. 이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것 보다 코나리가 이곳 산골에서 출생하게 된 내력부터 알아보자.


  오래전, 더블라 할머니가 어린 아이였던 시절, 더블라 할머니 가족들은 아일랜드의 기근을 피해 진짜로 거지꼴을 하고 뉴욕항에서 내려 지친 발을 끌고 남부 농장지대에 도착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당연히 폭력적이었지만 어린 딸 더블라는 예외였다. 조금 세월이 흐르자 두 오빠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아버지 역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백인 지주들은 이 아일랜드 이민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모양을 관찰하던 흑인들 역시 아일랜드 사람들이 백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더블라는 어머니로부터 아일랜드의 민간약재나 민간의료 같은 것을 아주 잘 배웠는데, 이게 백인 지주가 보기에는 턱없이 사악한 주술 같았고, 검둥이 노예들 눈에는 자기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민간요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나름대로 더 친해졌던 모양이다. 더블라가 성장해 큰 노예농장의 유모로 들어갔는데, 집의 여자 주인이 몸이 약해서인지 낳은 아이들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이런 집이었다.

  나이 지긋한 노예 여자가 하루는 갓난 아이를 데려왔다. 흰 피부와 검은 곱슬머리를 한 잘 생긴 유아. 얼마 전에 죽은 늙은 농장주가 마지막 열과 힘을 다 해 마지막으로 여성 노예의 몸에 만들어 놓은 사내 아이. 이 아이가 세상에 나온 건 아무도 모르고, 피부색이 하야니까 더블라의 사촌이 낳은 아들, 그러니까 더블라의 조카로 삼아 키우면 노예 신분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름도 없는 ‘그저 아이’는 농장주의 아이들이 더블라의 젖을 다 먹고 난 후에 남은 젖을 빨 수 있었고, 그게 모자라면 묽게 쑨 오트밀 같은 걸 먹였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키가 크고, 힘도 세고, 기골이 장대한 소년으로 자랐다.

  줄줄이 사산을 하거나 낳은 아이들이 크지도 못하고 픽픽 죽어가던 농장주, (더블라한테 갑자기 생긴 조카와 사실상 배 다른 형뻘인 농장주)한테도 그래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조금 큰 아들이 하나 있었고, 이제 새롭게 딸을 엘리자를 얻었지만 만날 아프기만 했던 아내는 대신 세상을 떴다. 이 엘리자를 받은 사람도 더블라. 남자와 노예만 있는 집에서 엘리자를 키운 사람 역시 더블라. 엘리자는 더블라를 엄마처럼 따랐고, 무엇이든지 상의했다.


  세월이 흘러 완전한 청년이 된 더블라의 조카는 말 관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마구간지기의 도제로 들어갔고, 엘리자 역시 나날이 커서 어느덧 열여섯, 열일곱 살이 되었다. 근데 이 두 십대 청춘들이 서로 좋아하는 거라. 그게 어른들의 눈에 안 보이고 배겨? 그걸 눈치챈 엘리자의 아버지는 천하디 천한 아일랜드 잡것들의 후손이 감히 자기 딸을 넘보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날을 잡아 청년을 붙잡아 매고, 농장 소유의 말 엉덩이에 하듯이 농장 소유임을 드러내는 낙인을 엉덩이가 아니라 가슴팍에 찍어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피가 철철 흐르는 낙인 위에다 채찍질까지 해버렸다.

  더블라 아주머니가 아일랜드의 민간요법으로 여러 약초와 동물성재료를 섞어 만든 고약을 바르기도 하고 약초를 태워 피운 연기로 훈증을 해 주어 일주일 만에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나았다. 청년 입장에서, 더 정확하게 말해 “청년들”입장에서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달도 없는 그믐밤, 더블라 아주머니와, 이이의 조카라고 알려진 청년과, 농장의 아가씨 엘리자는 마구간에서 말 세 필을 끌어내 조용히 암흑 속으로 사라져 북쪽으로,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북쪽 산골짜기로 떠나갔다.

  이때 다 나았다고는 하지만 조카는 정상 상태가 아니었고, 평생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본 엘리자도 홀몸이 아니어서, 주로 키 크고 강단 넘치고, 힘도 세고, 신기도 좀 있는 더블라 아주머니가 이들을 데리고 애팔래치아 산맥, 보수적인 부자들이 빼곡하게 몰린 버지니아를 가르는 산맥의 서쪽, 앞으로는 웨스트버지니아로 불릴 지역에 정착한다. 엘리자는 첫 아이를 사산한 뒤, 비탈에서 밭을 개간하고, 사냥도 하고, 과일도 수확하며 고생스럽지만 행복한 나날을 지내다가 딸을 낳았으니 이름을 ‘코나리’라고 했다.


  코나리가 세상 구경을 하기도 전에 미국 내전이 터졌다. 정의감에 불타는 코나리의 아빠이자 더블라의 이름없는 조카는 단박에 북군에 가담하기로 결심해 집을 떠나, 앞으로 십여년 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예정. 엘리자는 남편도 없이, 자기를 받았고, 젖을 먹였으며, 엄마나 다름없이 키운 더블라 아주머니에 기대 딸을 낳았으니 코나리는 앞으로도 아버지 볼 날이 없을 팔자였겠구나.

  전쟁이라는 참혹하고 황량하고 공포스러운 시절에도 세월은 갔다. 그리하여 1874년이 왔고, 1861년 12월생이라 아직 열두살에 불과한 코나리는, 꼬맹이라고 부르는 남동생, 그리고 태어난지 불과 몇 주 안 되는 여자, 남자 쌍둥이가 생겼다. 자기를 키워준 더블라 할머니의 집은 능선 거의 꼭대기에 있어서 어릴 적에는 자주 올라가 할머니와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는데, 이제는 파파와 마마, 그리고 터울이 많이 나는 세 동생과 산다. 근데 문제가 있다. 엄마는 모든 의욕을 놓은 상태. 이젠 말도 안 한다. 이른바 실어증.

  파파라는 남자가 코나리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란 건 팍 이해가 가지? 게다가 남군 출신이다. 전쟁 중에 껄렁한 북군과 함께 코나리의 집에 쳐들어와, 먼저 엘리자를 겁탈하려다가 오히려 엘리자에게 죽임을 당한 북군을 묻어 버리고, 집안에 있는 모든 것, 정말로 모든 것, 재산, 사람, 땅, 정신까지 몽땅 소유해버린 악당. 자신을 이름 대신 파파라고 부르라는 가스 라이팅 전문가이자, 나중에 밝혀지듯 정신이상자이면서 사이코패스. 그렇다고 연쇄 살인을 할 정도의 깊은 사이코패스는 아니고 전문가가 봐도 그런 성향이 농후한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집은 엉망이 됐고, 코나리의 세 동생 모두 파파가 마마 한테 만든 것인데도 전혀 관심조차 없다.

  마마는 쌍둥이를 낳아 가슴에서 젖이 철철 흐르지만 젖을 먹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루 종일 모든 집안 일도 하고 꼬맹이, 큰 동생을 숄에 묶어 가슴에 안고 다니는 코나리가 쌍둥이들을 엄마 가슴에 가져가 직접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켜준다. 쉽게 말해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파파라는 작자는 집안 꼴이 이럼에도 철저하게 더블라 할머니와의 접촉을 금한다. 눈에 띄기만 해도 권총을 쏘며 접근하지 못하게 위협할 정도이지만, 더블라 할머니는 아일랜드 민속, 민간신앙에서 배운 통찰력의 눈으로 이 가족을 훤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사실 파파도 죽을 지경이었겠지. 천성이 양아치인데 이 산골짜기에서 좁은 동네에 박혀 세월을 보내자니, 그것도 실성한 여자와 실성한 여자가 낳은 네 아이하고 함께 지내려니까. 그리하여, 나중에는 더블라 할머니의 현명한 설계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하루는 시내의 큰 부잣집 남자가 상처를 하여, 죽은 아내가 입던 고급 드레스, 셔츠, 내복, 신발 일습을 얻게 되었고, 그걸 마마한테 입혀보니, 불쑥, 좋은 생각이 드는 거였다.

  이 지긋지긋한 것들을 다 묻어버릴 수도 없으니, 꼬맹이와 쌍둥이 가운데 남자 아이는 아이 없이 혼자 사는 과부한테 맡기고, 여자 아이는 불임가족한테 키워달라고 한 후에, 마마와 코나리를 마차에 태워 동네를 떠났다. 이제는 혼자 살고 싶은 것. 코나리한테도 아이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 달거리를 시작하지 않아서, 아무리 악당이라도 초경도 하지 않은 아이하고는 관계하고 싶지 않아, 코나리를 마마와 함께 버리기로 결심한 거다.

  원래 큰 농장의 고명딸 출신인 엘리자한테 비싼 비단 드레스를 입혀 놓으니 세상에 이런 규수가 없다. 그래서 파파는 코나리에게 앞으로 마마한테 꼭 “재닛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코나리는 재닛 아가씨를 돌보는 몸종 정도의 하녀로 지내고.

  이렇게 도착한 으리으리한 곳이 마치 왕자와 공주가 사는 아름다운 궁전 같았는데, 시계탑과 첨탑까지 있는 그곳 대문의 황동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트랜스 엘러게니 정신병원”


  정신병원에 입원한 엄마와 코나리. 엄마는 당연히 귀한 집안에서 자란 재닛 아가씨, 코나리는 이름을 ‘엘리자 코널리’라고 즉석에서 고쳤다. 파파가 이들을 태우고 병원 앞 도로를 서성거릴 때, 창문 안쪽에서는 키 크고 건장한 북군 부상병 출신의 나이트 워치, 야경꾼이 이들을 관찰하고 있다가, 마차가 떠나고 여자 두 명이 노크로 현관을 두드릴 때 문을 열어 안으로 맞아주니, ‘오셰이’였다.

  폭탄 파편을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 맞아 눈알이 빠지고 두개골 제거술을 받은, 완전한 기억 상실자. 펜실베이니아 병원에서 오래 입원해 보기 힘든 부위의 환자라서 원장이 오셰이 씨에게 집중 치료를 해 생존하게 된 거한. 눈이 있던 자리에 원뿔 모양의 안대를 고정시켜 달고 다니는 오셰이 야경꾼을 따라다니는 조그만 꼬마 아이 위드.

  이들 모두 치유받아야 하는 환자들. 이들에 대한 작은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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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산 카나파니 지음, 윤희환 옮김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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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산 카나파니라는 이름을 몰랐던 것이 아쉽다.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대 작가는 아모스 오즈와 다비드 그로스만 등 제법 알려진 반면, 유대인에 의하여 2천년 동안 살던 터전에서 맨손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의 이름난 작가는 별로 알지 못한다. 갈릴리 태생의 1974년생 아다니아 쉬블리 정도만 눈에 익다. 유대인. 유럽에서는 숱한 고난과 학살과 멸절의 위협을 고스란히 당한 민족이지만, 중동과 북아시아와 팔레스타인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당한 피해의식이 마치 특권인 양 현지인 종족들을 탄압해도 되는 것처럼 비타협 착취를 서슴지 않는, 그들의 선한 신의 선한 뜻을 악하게 실천하는 종족이다.

  물론 많은 유대인은 이런 정책에 반대하겠지. 이들과 달리 평화를 주장하는 다수의 선한 유대인은 불행하게도 논의에서 제외된다. 2차세계대전 전후 선량한 다수의 독일인들이 논의에서 제외되었듯이. 이 문제적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악행으로 인해 고스란히 삶의 모든 것과 생명 자체와 신체 일부를 상실당한 팔레스타인 원 거주인들. 그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 이웃 바레인으로, 요르단,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쳐 쿠웨이트로 사막을 건너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

  1936년에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아크레에서 태어난 가산 카타파니와 가족들은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에 의한 위임통치의 종결과 동시에, 사실은 아직 종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영국 통치체제와 뒷방에서 뜻을 맞춘 유대인 군대에 의하여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하고, 이때 유대 군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구성한 시온주의 민병대에 의하여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 신분으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이주한다. 이때가 1948년. 열두 살의 카나파니는 가족 가운데 남자들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난민의 길을 떠나는 것을 보고 돌이킬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무슬림 소년의 가슴에 박힌 수치심.

  카나파니는 다마스쿠스에서 성장해 난민촌의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는 교사로 일하며 다마스쿠스 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전공하다가, 학내 정치문제, 아랍민족주의운동과 연계되어 퇴학을 당하고 만다. 이후 아랍민족주의 운동을 거쳐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에 가담해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기관지 등을 편집하는 일을 했다. 인민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가깝지 않을 수 없었던 카나파니는 점점 범 아랍민족주의에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으로 전환하는데, 이 와중에 아랍권을 벗어나 많은 외국 언론과 스칸디나비아 반시온주의 유대인과도 접촉한 것이 문제였을까? 그는 1972년 7월,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 정보특수작전연구소, 모사드가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열일곱 살 먹은 조카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세상을 떴다.


  소설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중편 표제작을 포함해 일곱 편의 중단편을 실었다. 이 책은 2002년에 열림원에서 초판 출간되었다가 2006년에 절판, 20년이 지나 올해 다시 중판을 찍었다. 아마도 이스라엘,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인 영향도 있었을 듯하다.

  카나파니의 대표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조금 독특하다. 주요 등장인물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에 의해 쫓겨난 난민들. 이제 난민촌이거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는 팔레스타인 변두리에 머무는 가족들의 굶주림을 보다 못해 중동 최대의 부국이라고 알려진 쿠웨이트로 밀입국하거나, 전문적으로 밀입국 브로커 짓을 하거나, 장군의 운젼병으로 물탱크 트럭을 몰고 쿠웨이트로 향하는 김에 용돈 좀 얻어볼까 싶어 약간의, 그러나 밀입국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돈을 받고 태워주는 역할을 한다.

  밀입국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아부 카이스는 십년 전에 고향에서 쫓겨났다. 레바논의 난민촌에서도 몸을 뉘어 가슴을 땅에 대면 여전히 고향 대지의 박동과 땅의 냄새가 혈관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그리움을 느끼는 사람. 어린 시절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는 못하고 공부는 하고 싶어서 교실 창문 아래에서 옅듣던 우스타즈 셀림 선생의 가르침,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거대한 강물이 합류하면서 샤트알아랍이라는 강물을 형성하고…”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맘이 아니라 기도를 인도할 수는 없지만 적이 쳐들어온다면 꼭 필요한 명사수일 것이라던 셀림 선생은 유대인이 마을을 장악하기 전날 밤에 신이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갔다.

  그의 늙은 아내는 7개월 후에 또 출산을 할 것이고, 딸 호스나는 아이를 낳고 두 달 만에 죽었으며, 아들 카이스도 아직 어리다. 쿠웨이트로 이민 가서 택시 운전을 해 부자가 된 친구 사아드가 말했다. 쿠웨이트에 가서 막일이라도 해. 거기서는 몇 푼 안 되지만 돌아오면 마음껏 쓸 수 있는 큰 돈이 될 거야. 당장 새로운 아기, 먹을 입이 생길 아부 카이스는 가지고 있는 돈과 여기저기서 꾸어 브로커 비용 15디나르를 마련해 난민촌을 떠났다.


  젊은 아사드는 아부 카이스와 접촉했던 브로커 뚱보 사내에게 15디나르를 지불하겠지만 쿠웨이트에 도착한 다음에 주겠다고 뻗댄다. 요르단에서 이라크로 밀입국할 때 벌써 같은 팔레스타인인이지만 더러운 브로커한테 한 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햇볕이 작열하는 사막에서 내려주고는 길고, 길고 긴 H4 송유관 주위를 걸어서 가면 도로가 나오는데, 자기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햇볕 아래에서 얼마나 걸어야 하나? 죽을 때까지. 물론 산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죽을 지경에 아주 가까이까지 가야 할 걸? 그러니 젊고, 머리회전이 그나마 빠른 아사드는 15디나르를 동포인 뚱보 브로커에게 주긴 주겠는데, 쿠웨이트에 도착해서 주겠다는 거다.

  여기에 소년 마완이 합류한다. 마완은 가진 돈이 15디나르가 되지 않는다. 10디나르도 빠듯하다. 그래서 브로커에게 말만 꺼냈을 뿐, 단 한 마디도 더 붙여보지 못했다.


  이렇게 세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앞에 등장한 사람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쿠웨이트 장군의 운전수 아불 카이주란. 곤경에 처한 장군을 우연히 만나 서둘러 차량을 고쳐주고 목적지에 시간에 맞게 데려다 주어 신임을 얻었다. 이후 장군의 전속 운전수가 되어, 군용 지프, 개인용 세단은 물론이고, 가족 행사라도 있으면 즐길 거리, 먹거리 같은 것을 잔뜩 싣고 파티나 야외행사나 사냥터까지 싣고 가는 일을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아불 카이주란 정도의 수입이면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터이지만, 가족은 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니 카이주란은 가욋돈이라도 얻고 싶다. 그리하여 생각한 것이 물탱크를 싣고 쿠웨이트 방향으로 갈 때, 팔레스타인 난민 밀입국자를 태워주고 대가를 받는 일. 그래서 아부 카이트, 아사드, 마완을 손님으로 받았다.

  쿠웨이트에 가기 위하여는 군용트럭이라서 부대 두 곳에 들러 서류에 사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기지에 도착하기 전 약간, 일 처리하는 데 약간, 출발하고 약간의 시간 동안 불법입국자들은 뜨겁게 가열된 철제 물통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물통 안의 온도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인 남자가 길어야 7분 정도의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안 될 것처럼 생각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될 것처럼 생각한 일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벌어져 물탱크 안의 동포들 모두 사망해버렸다.

  원래는 선한 마음으로, 뚱보 브로커가 받는 돈에서 삼분의 일 정도 저렴하게 이들을 편하게 밀입국시키려 했다가, 이제 시체가 된 세 명을, 운전수 아불 카이주런은 고민, 고뇌 끝에 쓰레기장에 가져다 던져 버리고 떠난다. 시동을 걸고 출발해 한 백미터 정도 갔다가 돌아온 카이주런은 다시 트럭에서 내려, 죽은 이들의 호주머니를 뒤져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손목시계와 기타 돈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이미 뻣뻣하게 경직된 시신에서 거두어 자기 주머니에 넣은 다음에 다시 트럭을 몰고 떠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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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10-2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개척자, 폴스타프님!
세상은 정말 크고 넓습니다^^

Falstaff 2026-10-22 04:49   좋아요 1 | URL
개척자는요 뭘... 그냥 읽는 거죠. ㅎㅎㅎ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 ㅣ 이매진 드라마톨로지 1
하일지.정영문.서준환.김경주 지음, 장정일.김경주 기획 / 이매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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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일이 이름난 작가 네 명의 희곡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알고 보면 장정일 본인이 우리나라 연극 발전에 제일 공로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동아일보사의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실내극>으로 당선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희곡집도 네 권이나 냈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안 팔리는 문학책이 희곡집이라 책이 나왔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장정일의 극작품을 발견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장정일은 책을 편집해서 서문과 발문을 썼을 뿐, 각 작품의 창작에 개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희곡을 쓴 네 명의 작가/시인은 하일지, 정영문, 서준환, 그리고 김경주이다. 이름만 대도 눈앞이 환해지는 작가들. 하여간 나는 그랬다. 이이들의 작품을 책 한 권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이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으니까.


  하일지. 1990년대 경마장 주변을 서성이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동덕여대 문창과 명예교수. 나도 당연히 당시 <경마장 가는 길>에 열광해서 이이의 경마장 시리즈를 연달아 사 읽었고, 다른 애독자와 마찬가지로 연달아 실망하다가 몇 번의 경마장을 끝으로 이별을 고했던 작가. 한 팔 년 전에는 오랜만에 하일지 생각이 나서 그의 장편소설 <손님>을 사 읽었다가 돈이 아까울 지경이었는데 더 곤혹스러운 건, 독후감을 썼는데 독후감의 아주 일상적인 단어의 조합이 하필이면 야설 탐색꾼들의 레이더에 걸려 꽤 오랜 동안 반갑지 않은 방문을 받아야 했던 우스운 기억도 있다. 그래서 하일지에 대한 관심이 거의 꺼진 줄 알았다가, 이번에 또 하일지라는 이름을 발견한 순간 피식, 웃음과 더불어 작지 않은 흥미가 돋던 것이다.

  작품 제목이 <파도를 타고>.

  <경마장 가는 길>에서 이미 본 듯한 분위기. 남자는 15년 동안 중학교 교사를 했다. 그래도 자기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암담한 남한 땅. 학교에서도 좋은 꼴 못 봐,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늙은 부모도 봉양해야 해, 아들 딸 하나씩 있는 것들도 벌써 사춘기를 맞아 박박 기어오르기 시작하거나 귀엽기는 하지만 남들 하는 대로 학원 보내며 제대로 키우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 좌절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남자가 선택하고, 결심해서 실행해버린 것이, 전재산을 다 팔아 작은 배 한 척을 사서 무작정 남쪽 따뜻한 섬을 향해 한국 땅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미 <경마장 가는 길>에서 파리에 유학했다가 돌아온 30대 주인공 R이 한국에서 다시 경험하는 답답함, 자유롭지 못함에 서서히 질식하는 과정을 읽은 적이 있어서, <파도를 타고>의 주인공인 40대 남자의 좌절이 새롭지 않다. 남자가 품은 가장 지독한 좌절은, 15년간 중등학교 교사를 했어도 한 칸짜리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거.

  미친 거 아냐? 전제가 “서울에서 집 한 칸”이다. 그렇게 될 줄 몰랐어? 이 남자, 마음먹고 서울을 떠서, 뜨기는 뜨지만 멀리도 아니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살기로 작정만 했다 하면 하일지 연배에 중등학교 15년 경력이면 근사한 아파트 한 채는 물론이고 남는 돈으로 적어도 소나타 한 대는 굴렸겠다.

  장정일도, 이 책을 낼 때가 하일지도 근무하는 동덕여대 문창과 초빙교수를 할 때여서 그랬는지, 하일지를 두둔하며 하는 말이, 중학교 교사 15년에 내 집도 못 샀는데, 그까짓 독도가 누구 땅이면 어떻다는 말이냐는 거. 아주 시니컬하지만 꼭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은 누구에게나 곤고한 것이고, 내 손톱 밑에 잔가시 박인 것이 제일 아픈 법이니까. 근데 <경마장…>도 그렇고 <파도를 타고>도 그런데, 하여튼 파리 유학을 했건, 중학교 교사를 했건 간에 주인공인 R과 남자는 우리나라의 중산층 이상의 지위를 누려야 마땅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별볼일 없는 집의 맏아들이자 유부남인 R은 파리에서 사귀고 같이 잤던 부잣집 딸 J와 여전히 파리에서 맺었던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희곡의 남자는 죽어도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 자기 집 하나 장만 못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하일지를 포함한 이들도 어떤 의미에서 연못 안 개구락지들일 수도 있다는 건 아마 본인들도 모를 걸? 재미없어, 재미없어.


  제일 기대했던 작가가 정영문.

  책에 실린 네 편의 희곡 가운데 유일하게 정말로 공연 실적이 있는 작품이 정영문의 <당나귀들>이란다. 내가 읽어도 네 편 중에서 제일 좋다. 그러나 조심하실 것은, 다른 작가도 아니고 정영문이라는 거. 아니나 다를까, <당나귀들>은 부조리극이다. 희곡을 별로 읽지 않은 분들이 읽으면, 스토리하고 전혀 무관하게 돌아가는 장면들이 많이 낯설 수밖에 없다.

  전쟁이 터져 전선에서 전령들이 막 도착해 전황을 보고하는데, 황당하기 그지없다. 왕은 벌써 나라 밖으로 도망가버렸고, 왕의 동생이 자리를 얻은 장군은 지난 전쟁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장군, 나라 최고 군 통수권자로 있는데, 이번 침공을 어떻게 막을지 무지막지 고민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말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애국자 장군? 뭐 그럴 수도 있고. 하지만 전선을 어떻게 구축하고, 어느 지형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하다못해 진지가 다 뚫리면 퇴로를 어떤 식으로 확보하느냐 하는 건 장군의 머릿속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숙고에 숙고를 멈추지 않는다. 단 한 가지도 결정하지 않으면서.

  만조백관을 대표하여 등장하는 신하1과 신하2 역시 전령1이 전선에서 수도까지 뛰어오며 지나친 포도원에 포도가 잘 익었는지, 익었으면 몇 송이 따오지 그랬느냐는 등의 헛소리만 지껄이는데, 만일 부조리극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쯤에서 거품 물고 책을 집어 던질 지도 모른다.

  이런 건 비단 <당나귀들>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정영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서, 미리 주의를 하고 읽으면 좋겠다.


  표제작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를 실은 서준환.

  서준환은 장편소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읽어 보았다. 그 책 읽으면서 내내 혁명기의 공포정치가 이루어지는 혁명재판소와 로베스피에로의 집에 국한한 장소의 폐쇄성 때문에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서준환이 애초에 한예총 연극원에서 극작을 공부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하여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읽을 때 느낀 폐쇄성,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 희곡으로 쓰는 게 마땅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한 방에 싹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는 성매매 업소에서 벌어지는 판타지.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을 깊게 공부했던 서준환답게 각각 대립하는 층위의 뫼비우스 적 혼돈을 그리고 있다. 장소가 성매매업소라고 해서 괜히 야한 생각을 하거나 그런 장면을 기대할 필요 없다. 희망사항, 안 나온다.


  마지막으로 실은 <블랙박스>는 시인 김경주가 시처럼 쓴 희곡.

  비행기 안에 탄 두 남자의 대화가 거의 전부. 이건 희곡일까, 시일까? 시면 어떻고 희곡이면 어떠랴.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이지. 근데 실제로 공연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좋다. 희곡이라고 다 공연을 전제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근데, 읽는 것도 쉽지 않던데? 처음부터 끝까지 둘의 대화에 아주 가끔 스튜어디스가 나타나 뭐라 하기는 한다. 근데 등장인물 소개에 뭐라고 쓰여 있는가 하면, “카파와 미하일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마네킹과 목소리만으로 대신할 수 있다.”

  2인극도 2인극 나름이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들은 평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이리 뛰어갔다가 저리 뛰어가고, 뭐 그런데, <블랙박스>의 주인공 카파와 미하일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입으로만 조잘조잘. 그러니까 할 말이 뭐가 있겠어? 난기류와 비행기 창 밖의 광경과 내려다보이는 거, 그리도 구름 속 정도겠지. 아오, 또다시 밀폐성.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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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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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릭 모디아노의 2010년 출간 작품. 4년 후에 모디아노는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와, 째졌겠다.

  모디아노가 1945년, 해방둥이, 을유생이니까 지금 81세. 노벨상 받았을 때는 69세. 이 책은 65세 때 찍었네? 65세면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도 필명을 엔간히 날렸던 시기. 나는 이이의 대표작이라고도 하고, <지평>을 번역한 권수연의 표현에 의하면 노벨상 수상작이라고도 하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별로 재미있게 읽지 못해서 유명하기는 하지만 나하고 별로 안 맞는 작가 정도로 생각했다가, 이어서 읽은 <도라 브루더>와 <까틀린 이야기>도 하나 같이 재미를 못 봐 이후에 한동안 찾지 않았던 작가이다. 그러다가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른 작품을 읽어보니 또 괜찮아 지금껏 생각나면 한 권씩 읽는 소설가로 여기게 됐다. 하긴 뭐 내가 읽거나 말거나 모디아노가 신경이나 쓰겠어? 그냥 자뻑에 차서 하는 말이지.


  작품은 일흔 살은 넘은 것처럼 보이는 늙은 작가 보스망스가 지난 시절, 젊었을 적의 일화를 떠올리면서 시작한다. 그는 과거의 한 시기, 그 시절 이후의 여타 시기들과 연결되지 못한 채 영원히 현재 속에 유예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긴다.

  말 어렵게 하지?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모디아노가 쓴 말을 요약한 거다.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려는 건 저 기원전부터 주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전공과목인데, 20세기 들어와 이런 경향을 소설 쓰는 사람들까지 원용하기 시작해서 이런 문장이 등장하는 거다. 저걸 쉽게 얘기하면, 지난 시절에 있었던 일을 오랜 세월동안 생까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당신하고 나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비슷비슷하게 사는 거와 별로 다르지 않게.

  근데 왜 이제 와서, 다 늙어 이런 “현재 속 유예된 삶”이 어쩌고 저쩌고 할까? 왜긴 왜야, 소설 쓰려고 그러는 것이지. 소설 가운데 9할은 옛 생각하면서, 자기가 경험하거나 봤거나, 적어도 남이 사는 걸 듣고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늙은 작가 보스망스는 이제 스물한 살 시절의 50년 전 과거로 돌아가, 검정 몰스킨 수첩에 그 예전에 있었던 것들의 목록을 쓰기 시작했다. 날짜, 특정 장소, 철자가 가물가물한 사람들의 이름 등. 그러면서 그, 보스망스는 생각한다:

  나는 왜 다른 길이 아닌 바로 이 길을 걸어왔던가?

  그 얼굴에 심상찮은 모피모자를 쓰고 개를 줄에 묶고 끌고 가던 실루엣이 미지 속으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보스망스의 생각 두 번째에 관하여.

  첫 번째 생각을 조금 더 실물처럼 그린 것에 불과한데, 내가 시비를 걸고자 하는 건, 개하고 산책을 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바람직하고, 추천할 만하다. 산책을 하려면 개의 크기나 사납기 정도와 관계없이 목줄을 하고 걷는 것도 훌륭하다. 문제는 목줄을 한 개를 “끌고 가?”

  이게 산책이냐? 머리 속으로 그림을 한 번 그려보자. 개 주인이 있어서 개 목을 묶은 줄을 앞에서 영차영차 끌고 가는 형국을. 정상적인 ‘개와 함께 하는 산책’이라면 개가 앞장, 주인이 뒤에 서서 여유롭게 걸어야 하는 거 아냐? 주인 성질이 얼마나 급하면 개 앞에 서서 이리 와, 이리 왓! 목줄을 콱 땡기고 난리를 치는 모습이 확 들어오지 않나? 잘 하면 발로 옆구리 차기도 하겠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요즘 이렇게 개 끌고 가다 걸리면 실형 받는 수가 있다. 참. 김건희 여사가 제청해 만든 개고기 취식 금지법은 이제 김여사 세월이 끝났으니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개 먹자고 개 식용을 권고하는 주장이 아니라 뭐든 금지 법안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정치하는 인간들이야 금지법 만드는 게 제일 쉬워서 좋기는 하겠지만. 뇌물 수수, 공금 횡령, 변호사법 위반 같은 거야 금지해야겠지. 허연 씨, 안 그려?


  그리하여 50년 전 기억 속의 테이프.

  오페라 거리를 걷는 보스망스. 이름과 얼굴이 떠오른 메로베. 이름하고 얼굴이야 생각날 수 있겠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목소리도 기억난다. 떨림과 음색까지. 퇴근하는 증권거래소 건물 사람들 틈에서 쏟아져 나온 메로베와 갈색머리의 불독 닮은 서른다섯 정도의 최고 연장자이며 ‘리슐리에 대행사’의 한 지소 소장, 그리고 색안경을 낀 금발남자와 함께 등장하는 갓 스무 살의 여성 마르가레트 르 코즈.

  “저는 마르가레트 르 코즈예요. 르 띄고 코즈를 써요.”

  프랑스 엄마가 베를린에서 낳은 프랑스 여자. 그러나 기한이 만료된 여권만 신분증으로 가지고 다니는 여성이며, 리슐리외 대행사의 한 지점에서 앞으로 두 주일 후에는 그만 둘 예정 또는 운명인 여자. 시위대의 거친 물결 속에서 시위와 관계없이 처음 만난 마르가레트와 보스망스. 인파에 밀려 눈 위가 찢어진 마르가레트를 보스망스가 약국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졌으며, 며칠 후에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의 사무실을 방문해 그녀를 만난다. 마르가레트가 직접 세 명의 직원을 소개해서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메로베의 얼굴과 이름과 목소리가 기억나건만, 이들 세 남자는 보스망스에게 시내에 있는 체육관의 자기들 모임 ‘즐거운 도당’에 참여하기를 권한 기억, 이에 보스망스가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한 뒤로는 조직생활이 별로 내키지 않아서요.”라고 애매하게 헤어진 기억만 남기고 작품 <지평>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어쩌랴, 이게 기억의 한계인 걸. 게다가 보스망스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기억한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 하느님도 모른다. 만일 그 ‘하느님’이라는 양반이 정말로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

  몇 년 후, 보스망스는, 이땐 이미 마르가레트 역시 보스망스의 곁을 떠난 다음이었을 텐데, 1월중에서도 맹렬하게 추운 새벽 두 시, 택시를 타고 차 앞쪽 인도 가장 자리에 맨발이 드러난 샌들을 신고 서 있던 남자가 메로베, 그래서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기억도 50년이 지난 다음에 검정 몰스킨 수첩에 적어 넣는다.


  이런 기억들.

  하지만 기억은 보스망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마르가레트의 기억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마르가레트의 스위스 생활. 몇 달 전부터 자신을 스토킹하는 남자 부아야발. 정말 사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그저 폼을 잡기 위한 소도구로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 갈색머리의 삼십대 키 큰 남자. 하도 스토킹을 하는 바람에 부아야발의 요구, 극장에 함께 간 날, 밤이 되자 자기 방으로 초대했다가 부아야발한테 귀싸대기를 오지게 한 대 얻어터진 마르가레트. 세상에 이런 일이. 설마 부아야발이 진짜 마르가레트를 사랑한 거야?

  스위스에서 보모 일을 하던 당시였는데, 집 주인이자 바람둥이이며, 한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아내가 있는지 아니면 이혼당했는지 알 수 없는 바게리안은 자신의 비서, 아니면 노르웨이 여자를 집에 데려오지 않는 날 기꺼이 마르가레트와 사랑을 나눈 모양이고, 훗날 마르가레트가 파리로 자리를 옮기자 묵을 호텔 비용과 생활비 부담을 제안하지만 마르가레트는 거절한다.

  이렇게 그저 생각나는 기억 이야기. 결론은, 저 위에서 말한 적 있다.

  “과거의 한 시기, 후의 어린 시절과 연결되지 못한 채 영원히 현재 속에 유예된 삶.”

  다른 말로 간단하게 말하면, 버.킹.검.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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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10-2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전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정말요.

Falstaff 2026-10-20 20:1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얘기하신 마지막 장면을 위해 달리고 있는 듯하더라고요.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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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야마 히데오는 1957년에 도쿄에서 출생한 미스터리 작가이자 만화 작가라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한다. 만화라고? 소설가 치고는 이색 직업을 가지고 있군, 싶어서 검색해보니, 만화를 그리는 화백이 아니라 만화의 원작 대본을 책임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란다. 도쿄에 있는 국제상업대학, 현 도쿄국제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군마현에 있는 지방신문의 기자로 12년 동안 있다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작은 <루팡의 행방>. 제목으로 보아 청소년을 위한 가벼운 미스터리 물이 아닐까 싶다(믿지 마시라, 추측한 거다).

  내가 읽은 책 <빛의 현관>에서는 행방불명 사건이 벌어지고, 그걸 형사나 탐정이 수사에 나서서 갖은 추리와 도주, 추격 끝에 체포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작품은 아니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 당할 때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건축사가 자신의 가족과 직장, 건축사로서 인생 최고의 작품인 집의 소유주, 일본에 망명했던 독일인 건축가 등등을 등장시킨, 일종의 추리극이기는 한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지지만, 잘 차려진 오첩반상 비슷한 대중소설이라고 할까 싶다.

  그러니까, 추리소설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 쪽의 장르문학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상당한 부분을 순문학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 장르의 경계 없이 ‘그냥 소설’로 생각하고 읽으면 딱 좋겠다. 어제 읽은 정영문 식으로 말하자면 “재래식 소설.” (재래식 소설, 진짜 웃겼다.)

  근데, 적어도 소설의 핵심 사건이 되는 “실종 사건”이라면, ①겁나게 부잣집, 적어도 재벌급 가족의 일원, ②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첨단 (무기, AI, 식량, 에너지) 기술을 가진 과학자, ③만 명 가운데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여자나 남자, 이 정도가 아니라면 적어도 ④조직폭력단의 두목이거나 두목의 애인 혹은 딸 정도는 돼야 어울릴 터.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다. 어쩌면 찌질할 수도 있는 수입가구전문 판매점의 주인도 아니고 지배인 급의 키 작고 통통한 남자. 거기서도 해고당하고, 이혼까지 당해서 이제 자기도 ‘인터넷 수입상품전문점’을 차리고 싶어하는 남자. 가구제작 장인의 아들이면서, 가구 제작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가업을 잇지도 못한 자. 어째 좀 후져 보이지? 납치는 당했지만, 이런 외모와 재력, 학벌, 지능을 감안해보면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다. 참 세상 야박하다. 소설도 그렇다.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아오세 미노루. 지상 100m 댐 최상부에 붙어 몸을 구부리고 콘크리트 패널을 짜맞추는 작업에 관한 한 업계에서 알아주는 일인자의 2녀1남 가운데 막내. 댐 최상부에서 하는 작업이라 일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댐 건설현장으로 가족 모두 이사해 새로운 댐의 꼭대기에 매달려야 해서, 가족들은 댐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사택에서 몇 년씩, 길어봐야 1~2년 살다가 다른 곳으로 또다시 이사를 했다. 이러니 두 누나들과 마찬가지로 아오세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거의 언제나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했는데, 비록 사는 곳과 환경이 열악해도 작업의 위험도를 감안해 아버지가 받는 보수가 반 아이들 부모가 벌 수 있는 현금보다 훨씬 많았던 것도 따돌림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겠지? 어린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오세는 그래서 친구 없이 사는 법에 어린 시절부터 통달할 수 있었고, 대신 산새를 비롯한 여러 새들의 우는 소리를 구별할 줄도 알 정도로 새와 친했다. 새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그런 거 다 소개하자면 내가 소설 한 편을 써야 할 판이다. 그냥 넘어간다.

  아오세는 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다녔다. 아버지는 건축은 말고 자기 일을 이어 돈 잘 버는 콘크리트 패널 전문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이라서 대학 진학을 위해 결혼해 도시로 나간 누나 집에 머물며 공부를 하는 동안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래도 건축과에 입학해 다니면서 유명한 건축사무소인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인턴 생활을 하다가, 떡잎을 알아본 아카사카 씨가 집중 교육을 시켜, 굳이 비싼 돈 주고 졸업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2학년까지 다니다가 관뒀다. 이때 함께 건축과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오카지마 아키히코와 노세 다쿠미. 훗날 오카지마는 아오세의 은인이라면 은인이 되고, 노세는 연애부터 건축 실력까지, 그러니까 공적, 사적 양 방향으로 몽땅 아오세한테 판판이 깨지지만 사회적으로는 무지하게 성공하는 건축가가 된다.


  아오세는 키 크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유카리와 결혼한다. 이 짝짓기 경쟁에서 아오세가 꺾은 라이벌이 부잣집 아들이자, 대학 건축과 동기동창이자,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아오세의 경쟁 부서인 공건물 시공팀에서 일하던 노세 다쿠미. 연애와 결혼을 둔 1차 승부에서는 아오세가 간신히 이겼다. 이때 산새의 울음소리만 가지고 어떤 새인지 아는 아오세의 재주가 크게 가산점을 받았다.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의 2차 승부에선 노세의 완전한 승리. 때는 일본의 버블 붕괴시기. 산업 전반에 걸친 파국으로 아오세가 일하던 사적 건축은 거의 완전히 거덜이 난 반면, 공적 건축은 사회 인프라 유지를 위한 최소의 유지가 필요했던 것이 노세가 생존할 수 있었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아오세는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자진해 먼저 사직서를 던졌고, 이를 알게 된 아내 유카리는 마음 속으로 대단한 불만이 싹텄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혼 후 버블 경제 시기에 아오세 부부는 조금 무리를 해서 도쿄 중심가에 괜찮은 맨션을 구입했는데, 아오세가 사직을 한 후에 가정을 위한 고정비만큼도 수입이 없음에도, 다른 해고자들처럼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하건만 아오세는 그래도 건축 엔지니어 가오 문제가 있어서 그저 백수로 남아 있었던 것이 부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절벽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결국 이혼에 이르렀고, 도쿄의 맨션에는 아내 유카리와 딸 히나코가 살고, 아오세는 허랑방탕한 알코올 의존자로 점점 빠져들 즈음, 혜성같이 나타나 자기 건축 사무소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 수렁에서 건져준 사람이 또다른 건축과 동기동창 오카지마 아키히코다.


  아오세 미노루. 오카지마와 노세가 보기에도 자기들보다 능력이 월등한 천생 건축사. 하지만 아오세는 한 번 크게 인생을 실패해보았으며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어디가서 말빨이 좀 달린다. 이게 성격상 결함으로 조금 나타나는 듯하다. 사회생활에서만 그랬으면 좀 나은데, 아내 유카리도 오카지마와 노세하고 업계에서 공적으로 친밀한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오세가 빌빌거린다고 한 마디 하면, 아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 싫기는 하겠지, 그래도 충동적으로 극도의 열을 받아 크게 소리지르며 다투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만일 이 가족이 살 집을 짓는다면, 아오세는 아버지의 콘크리트 작업을 보며 자라서 그랬는지 자기 건축 인생을 시시각각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외벽의 포장이 바뀌는 서양식 콘크리트 집을 짓는 걸 주요 테마로 생각한 반면, 유카리는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집, 오랜 농가 안채에 일본 전통가옥을 증축한 따듯한 목재 집에서 살고 싶어했다. 이젠 콘크리트 집이나 목재 집이나 다 끝난 일이지만.

  이들이 이혼하고 벌써 8년. 딸 히나코가 유치원 다닐 때 아오세가 도쿄의 맨션을 떠나 지금은 도쿄도에서 멀지 않은 사이타마현의 도코로자와의 원룸에 살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도쿄의 카페에서 딸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과 차도 마실 뿐이다. 아이가 이젠 자기 삶을 알기 시작하는 열세 살, 사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작품은 비가 오는 3월 아오세가 히나코를 만나러 도쿄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오세는 작년 11월에 시나노오이와케에다 집을 한 채 지었다.

  금슬이 좋으면 생긴 것도 닮는다고, 생김새도 비슷한 요시노 부부가 오카지마 건축사무소에 찾아와 아오세가 지은 집을 본 적이 있다고, 자기들이 살 집을 꼭 직접 지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시나오오이와케의 땅 80평. 건축비 최대 3천만엔. 그리고: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그래서 아오세가 지었다. 도심 한복판이라면 터부시되는 북향 창을 원하는 만큼 낼 수 있는 사방이 탁 트인 땅이라, 노스 라이트North Light를 채광의 구역으로 하고 다른 빛은 보조로 돌리는 은은한 빛의 전당을 만든 것. 침실의 북으로 난 창문 커튼을 젖히면 들어오는 짜낸 베일 같은 노스 라이트. 그 너머 보이는 아사마 산의 장엄한 모습. 노스 라이트.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은 노스 라이트, 북쪽에서 스미는 빛이었다. 창문은 이 집의 “빛의 현관”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아오세가 언젠가 만들고 싶었던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은, 놀랍게도 목재 건물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집 주인 요시노 부부는 행방불명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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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10-16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으셨군요! 저는 십여 년 전에 「64」를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 폴스타프님과 같았어요. 이건 단순 추리소설이 아니다! 라구요. ㅎㅎ 경찰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배신을 64만큼 자세하게 보여준 소설이 또 있을까 싶어요. 『빛의 현관』도 평이 좋아서 읽고 싶었는데 또 그냥 흘려보냈네요. 저도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6-10-16 18:58   좋아요 1 | URL
냅! 이 책 재미있었습니다. ㅎㅎㅎ 64도 언젠가는 읽어봐야 하겠군요.
이 양반, 은근히 매력있는 듯. ㅋㅋㅋㅋ

yamoo 2026-10-16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작가도 있었네요...이 소설 재밌으면 찾아서 읽겠습니다!
도통 감을 못잡겠어요..ㅎㅎ 별4개인데...일본 만화 작가라...

Falstaff 2026-10-16 18:59   좋아요 1 | URL
그냥 큰 기대 하지 마시고 읽으시면 만족하실 듯합니다.
요즘 별점은 믿지 마세요. 어디서나, 누구한테나 인플레가 넘실댑니다. 저도 용기가 없어서 그냥 파도에 편승하고 있고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