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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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릭 모디아노의 2010년 출간 작품. 4년 후에 모디아노는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와, 째졌겠다.

  모디아노가 1945년, 해방둥이, 을유생이니까 지금 81세. 노벨상 받았을 때는 69세. 이 책은 65세 때 찍었네? 65세면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도 필명을 엔간히 날렸던 시기. 나는 이이의 대표작이라고도 하고, <지평>을 번역한 권수연의 표현에 의하면 노벨상 수상작이라고도 하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별로 재미있게 읽지 못해서 유명하기는 하지만 나하고 별로 안 맞는 작가 정도로 생각했다가, 이어서 읽은 <도라 브루더>와 <까틀린 이야기>도 하나 같이 재미를 못 봐 이후에 한동안 찾지 않았던 작가이다. 그러다가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른 작품을 읽어보니 또 괜찮아 지금껏 생각나면 한 권씩 읽는 소설가로 여기게 됐다. 하긴 뭐 내가 읽거나 말거나 모디아노가 신경이나 쓰겠어? 그냥 자뻑에 차서 하는 말이지.


  작품은 일흔 살은 넘은 것처럼 보이는 늙은 작가 보스망스가 지난 시절, 젊었을 적의 일화를 떠올리면서 시작한다. 그는 과거의 한 시기, 그 시절 이후의 여타 시기들과 연결되지 못한 채 영원히 현재 속에 유예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긴다.

  말 어렵게 하지?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모디아노가 쓴 말을 요약한 거다.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려는 건 저 기원전부터 주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전공과목인데, 20세기 들어와 이런 경향을 소설 쓰는 사람들까지 원용하기 시작해서 이런 문장이 등장하는 거다. 저걸 쉽게 얘기하면, 지난 시절에 있었던 일을 오랜 세월동안 생까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당신하고 나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비슷비슷하게 사는 거와 별로 다르지 않게.

  근데 왜 이제 와서, 다 늙어 이런 “현재 속 유예된 삶”이 어쩌고 저쩌고 할까? 왜긴 왜야, 소설 쓰려고 그러는 것이지. 소설 가운데 9할은 옛 생각하면서, 자기가 경험하거나 봤거나, 적어도 남이 사는 걸 듣고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늙은 작가 보스망스는 이제 스물한 살 시절의 50년 전 과거로 돌아가, 검정 몰스킨 수첩에 그 예전에 있었던 것들의 목록을 쓰기 시작했다. 날짜, 특정 장소, 철자가 가물가물한 사람들의 이름 등. 그러면서 그, 보스망스는 생각한다:

  나는 왜 다른 길이 아닌 바로 이 길을 걸어왔던가?

  그 얼굴에 심상찮은 모피모자를 쓰고 개를 줄에 묶고 끌고 가던 실루엣이 미지 속으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보스망스의 생각 두 번째에 관하여.

  첫 번째 생각을 조금 더 실물처럼 그린 것에 불과한데, 내가 시비를 걸고자 하는 건, 개하고 산책을 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바람직하고, 추천할 만하다. 산책을 하려면 개의 크기나 사납기 정도와 관계없이 목줄을 하고 걷는 것도 훌륭하다. 문제는 목줄을 한 개를 “끌고 가?”

  이게 산책이냐? 머리 속으로 그림을 한 번 그려보자. 개 주인이 있어서 개 목을 묶은 줄을 앞에서 영차영차 끌고 가는 형국을. 정상적인 ‘개와 함께 하는 산책’이라면 개가 앞장, 주인이 뒤에 서서 여유롭게 걸어야 하는 거 아냐? 주인 성질이 얼마나 급하면 개 앞에 서서 이리 와, 이리 왓! 목줄을 콱 땡기고 난리를 치는 모습이 확 들어오지 않나? 잘 하면 발로 옆구리 차기도 하겠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요즘 이렇게 개 끌고 가다 걸리면 실형 받는 수가 있다. 참. 김건희 여사가 제청해 만든 개고기 취식 금지법은 이제 김여사 세월이 끝났으니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개 먹자고 개 식용을 권고하는 주장이 아니라 뭐든 금지 법안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정치하는 인간들이야 금지법 만드는 게 제일 쉬워서 좋기는 하겠지만. 뇌물 수수, 공금 횡령, 변호사법 위반 같은 거야 금지해야겠지. 허연 씨, 안 그려?


  그리하여 50년 전 기억 속의 테이프.

  오페라 거리를 걷는 보스망스. 이름과 얼굴이 떠오른 메로베. 이름하고 얼굴이야 생각날 수 있겠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목소리도 기억난다. 떨림과 음색까지. 퇴근하는 증권거래소 건물 사람들 틈에서 쏟아져 나온 메로베와 갈색머리의 불독 닮은 서른다섯 정도의 최고 연장자이며 ‘리슐리에 대행사’의 한 지소 소장, 그리고 색안경을 낀 금발남자와 함께 등장하는 갓 스무 살의 여성 마르가레트 르 코즈.

  “저는 마르가레트 르 코즈예요. 르 띄고 코즈를 써요.”

  프랑스 엄마가 베를린에서 낳은 프랑스 여자. 그러나 기한이 만료된 여권만 신분증으로 가지고 다니는 여성이며, 리슐리외 대행사의 한 지점에서 앞으로 두 주일 후에는 그만 둘 예정 또는 운명인 여자. 시위대의 거친 물결 속에서 시위와 관계없이 처음 만난 마르가레트와 보스망스. 인파에 밀려 눈 위가 찢어진 마르가레트를 보스망스가 약국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졌으며, 며칠 후에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의 사무실을 방문해 그녀를 만난다. 마르가레트가 직접 세 명의 직원을 소개해서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메로베의 얼굴과 이름과 목소리가 기억나건만, 이들 세 남자는 보스망스에게 시내에 있는 체육관의 자기들 모임 ‘즐거운 도당’에 참여하기를 권한 기억, 이에 보스망스가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한 뒤로는 조직생활이 별로 내키지 않아서요.”라고 애매하게 헤어진 기억만 남기고 작품 <지평>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어쩌랴, 이게 기억의 한계인 걸. 게다가 보스망스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기억한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 하느님도 모른다. 만일 그 ‘하느님’이라는 양반이 정말로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

  몇 년 후, 보스망스는, 이땐 이미 마르가레트 역시 보스망스의 곁을 떠난 다음이었을 텐데, 1월중에서도 맹렬하게 추운 새벽 두 시, 택시를 타고 차 앞쪽 인도 가장 자리에 맨발이 드러난 샌들을 신고 서 있던 남자가 메로베, 그래서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기억도 50년이 지난 다음에 검정 몰스킨 수첩에 적어 넣는다.


  이런 기억들.

  하지만 기억은 보스망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마르가레트의 기억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마르가레트의 스위스 생활. 몇 달 전부터 자신을 스토킹하는 남자 부아야발. 정말 사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그저 폼을 잡기 위한 소도구로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 갈색머리의 삼십대 키 큰 남자. 하도 스토킹을 하는 바람에 부아야발의 요구, 극장에 함께 간 날, 밤이 되자 자기 방으로 초대했다가 부아야발한테 귀싸대기를 오지게 한 대 얻어터진 마르가레트. 세상에 이런 일이. 설마 부아야발이 진짜 마르가레트를 사랑한 거야?

  스위스에서 보모 일을 하던 당시였는데, 집 주인이자 바람둥이이며, 한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아내가 있는지 아니면 이혼당했는지 알 수 없는 바게리안은 자신의 비서, 아니면 노르웨이 여자를 집에 데려오지 않는 날 기꺼이 마르가레트와 사랑을 나눈 모양이고, 훗날 마르가레트가 파리로 자리를 옮기자 묵을 호텔 비용과 생활비 부담을 제안하지만 마르가레트는 거절한다.

  이렇게 그저 생각나는 기억 이야기. 결론은, 저 위에서 말한 적 있다.

  “과거의 한 시기, 후의 어린 시절과 연결되지 못한 채 영원히 현재 속에 유예된 삶.”

  다른 말로 간단하게 말하면, 버.킹.검.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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