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산 카나파니 지음, 윤희환 옮김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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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산 카나파니라는 이름을 몰랐던 것이 아쉽다.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대 작가는 아모스 오즈와 다비드 그로스만 등 제법 알려진 반면, 유대인에 의하여 2천년 동안 살던 터전에서 맨손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의 이름난 작가는 별로 알지 못한다. 갈릴리 태생의 1974년생 아다니아 쉬블리 정도만 눈에 익다. 유대인. 유럽에서는 숱한 고난과 학살과 멸절의 위협을 고스란히 당한 민족이지만, 중동과 북아시아와 팔레스타인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당한 피해의식이 마치 특권인 양 현지인 종족들을 탄압해도 되는 것처럼 비타협 착취를 서슴지 않는, 그들의 선한 신의 선한 뜻을 악하게 실천하는 종족이다.

  물론 많은 유대인은 이런 정책에 반대하겠지. 이들과 달리 평화를 주장하는 다수의 선한 유대인은 불행하게도 논의에서 제외된다. 2차세계대전 전후 선량한 다수의 독일인들이 논의에서 제외되었듯이. 이 문제적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악행으로 인해 고스란히 삶의 모든 것과 생명 자체와 신체 일부를 상실당한 팔레스타인 원 거주인들. 그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 이웃 바레인으로, 요르단,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쳐 쿠웨이트로 사막을 건너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

  1936년에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아크레에서 태어난 가산 카타파니와 가족들은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에 의한 위임통치의 종결과 동시에, 사실은 아직 종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영국 통치체제와 뒷방에서 뜻을 맞춘 유대인 군대에 의하여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하고, 이때 유대 군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구성한 시온주의 민병대에 의하여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 신분으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이주한다. 이때가 1948년. 열두 살의 카나파니는 가족 가운데 남자들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난민의 길을 떠나는 것을 보고 돌이킬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무슬림 소년의 가슴에 박힌 수치심.

  카나파니는 다마스쿠스에서 성장해 난민촌의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는 교사로 일하며 다마스쿠스 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전공하다가, 학내 정치문제, 아랍민족주의운동과 연계되어 퇴학을 당하고 만다. 이후 아랍민족주의 운동을 거쳐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에 가담해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기관지 등을 편집하는 일을 했다. 인민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가깝지 않을 수 없었던 카나파니는 점점 범 아랍민족주의에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으로 전환하는데, 이 와중에 아랍권을 벗어나 많은 외국 언론과 스칸디나비아 반시온주의 유대인과도 접촉한 것이 문제였을까? 그는 1972년 7월,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 정보특수작전연구소, 모사드가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열일곱 살 먹은 조카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세상을 떴다.


  소설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중편 표제작을 포함해 일곱 편의 중단편을 실었다. 이 책은 2002년에 열림원에서 초판 출간되었다가 2006년에 절판, 20년이 지나 올해 다시 중판을 찍었다. 아마도 이스라엘,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인 영향도 있었을 듯하다.

  카나파니의 대표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조금 독특하다. 주요 등장인물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에 의해 쫓겨난 난민들. 이제 난민촌이거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는 팔레스타인 변두리에 머무는 가족들의 굶주림을 보다 못해 중동 최대의 부국이라고 알려진 쿠웨이트로 밀입국하거나, 전문적으로 밀입국 브로커 짓을 하거나, 장군의 운젼병으로 물탱크 트럭을 몰고 쿠웨이트로 향하는 김에 용돈 좀 얻어볼까 싶어 약간의, 그러나 밀입국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돈을 받고 태워주는 역할을 한다.

  밀입국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아부 카이스는 십년 전에 고향에서 쫓겨났다. 레바논의 난민촌에서도 몸을 뉘어 가슴을 땅에 대면 여전히 고향 대지의 박동과 땅의 냄새가 혈관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그리움을 느끼는 사람. 어린 시절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는 못하고 공부는 하고 싶어서 교실 창문 아래에서 옅듣던 우스타즈 셀림 선생의 가르침,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거대한 강물이 합류하면서 샤트알아랍이라는 강물을 형성하고…”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맘이 아니라 기도를 인도할 수는 없지만 적이 쳐들어온다면 꼭 필요한 명사수일 것이라던 셀림 선생은 유대인이 마을을 장악하기 전날 밤에 신이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갔다.

  그의 늙은 아내는 7개월 후에 또 출산을 할 것이고, 딸 호스나는 아이를 낳고 두 달 만에 죽었으며, 아들 카이스도 아직 어리다. 쿠웨이트로 이민 가서 택시 운전을 해 부자가 된 친구 사아드가 말했다. 쿠웨이트에 가서 막일이라도 해. 거기서는 몇 푼 안 되지만 돌아오면 마음껏 쓸 수 있는 큰 돈이 될 거야. 당장 새로운 아기, 먹을 입이 생길 아부 카이스는 가지고 있는 돈과 여기저기서 꾸어 브로커 비용 15디나르를 마련해 난민촌을 떠났다.


  젊은 아사드는 아부 카이스와 접촉했던 브로커 뚱보 사내에게 15디나르를 지불하겠지만 쿠웨이트에 도착한 다음에 주겠다고 뻗댄다. 요르단에서 이라크로 밀입국할 때 벌써 같은 팔레스타인인이지만 더러운 브로커한테 한 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햇볕이 작열하는 사막에서 내려주고는 길고, 길고 긴 H4 송유관 주위를 걸어서 가면 도로가 나오는데, 자기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햇볕 아래에서 얼마나 걸어야 하나? 죽을 때까지. 물론 산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죽을 지경에 아주 가까이까지 가야 할 걸? 그러니 젊고, 머리회전이 그나마 빠른 아사드는 15디나르를 동포인 뚱보 브로커에게 주긴 주겠는데, 쿠웨이트에 도착해서 주겠다는 거다.

  여기에 소년 마완이 합류한다. 마완은 가진 돈이 15디나르가 되지 않는다. 10디나르도 빠듯하다. 그래서 브로커에게 말만 꺼냈을 뿐, 단 한 마디도 더 붙여보지 못했다.


  이렇게 세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앞에 등장한 사람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쿠웨이트 장군의 운전수 아불 카이주란. 곤경에 처한 장군을 우연히 만나 서둘러 차량을 고쳐주고 목적지에 시간에 맞게 데려다 주어 신임을 얻었다. 이후 장군의 전속 운전수가 되어, 군용 지프, 개인용 세단은 물론이고, 가족 행사라도 있으면 즐길 거리, 먹거리 같은 것을 잔뜩 싣고 파티나 야외행사나 사냥터까지 싣고 가는 일을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아불 카이주란 정도의 수입이면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터이지만, 가족은 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니 카이주란은 가욋돈이라도 얻고 싶다. 그리하여 생각한 것이 물탱크를 싣고 쿠웨이트 방향으로 갈 때, 팔레스타인 난민 밀입국자를 태워주고 대가를 받는 일. 그래서 아부 카이트, 아사드, 마완을 손님으로 받았다.

  쿠웨이트에 가기 위하여는 군용트럭이라서 부대 두 곳에 들러 서류에 사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기지에 도착하기 전 약간, 일 처리하는 데 약간, 출발하고 약간의 시간 동안 불법입국자들은 뜨겁게 가열된 철제 물통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물통 안의 온도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인 남자가 길어야 7분 정도의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안 될 것처럼 생각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될 것처럼 생각한 일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벌어져 물탱크 안의 동포들 모두 사망해버렸다.

  원래는 선한 마음으로, 뚱보 브로커가 받는 돈에서 삼분의 일 정도 저렴하게 이들을 편하게 밀입국시키려 했다가, 이제 시체가 된 세 명을, 운전수 아불 카이주런은 고민, 고뇌 끝에 쓰레기장에 가져다 던져 버리고 떠난다. 시동을 걸고 출발해 한 백미터 정도 갔다가 돌아온 카이주런은 다시 트럭에서 내려, 죽은 이들의 호주머니를 뒤져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손목시계와 기타 돈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이미 뻣뻣하게 경직된 시신에서 거두어 자기 주머니에 넣은 다음에 다시 트럭을 몰고 떠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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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10-2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개척자, 폴스타프님!
세상은 정말 크고 넓습니다^^

Falstaff 2026-10-22 04:49   좋아요 1 | URL
개척자는요 뭘... 그냥 읽는 거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