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가장자리에서 - 2024년 퓰리처상 수상 장편소설
제인 앤 필립스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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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웨스트버지니아의 작은 도시 버케넌에서 출생한 작가. 52년생이니까 벌써 일흔네 살이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몇몇 유명작가가 그러했듯이 아이오와 대학 내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석사 학위에 준하는 M.F.A. Master of Fine Arts를 받았다. 이 코스를 밟은 미국 작가들 가운데 유명 작가 몇 명만 꼽아보면, 존 치버, 필립 로스, 매릴린 로빈슨, 앤드루 포터, 마이클 커닝햄 등이다. 이 정도면 미국 문단의 한 주류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수준.

  M.F.A.를 취득한 후 젊은 시절동안 다른 작가들이 겪는 몸살도 좀 앓다가, 작품, 주로 단편소설집을 출간해 두각을 나타냈고, 덕분에 여러 대학에 출강할 수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2005년부터 20년까지 15년 동안 러트거스대학 뉴어크 캠퍼스에서 영어 교수로 재직했다고. 재직중에 러트거스 대학에도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비슷한 M.F.A. 과정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했단다.

  경력 가운데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지금 독후감을 쓰는 <밤의 가장자리에서 Night Watch>가 2024년에 퓰리처 상을 받은 것이 돋보인다. 책의 출간은 2023년이니 이때가 일흔한 살. 가장 최근의 작품이고 이제는 고령이라, 어쩌면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겠다.


  소소한 불만은 왜 우리말 제목을 “밤의 가장자리에서”라고 했을까, 하는 것. 원문 그대로 “야경꾼”이라고 하면 같은 제목의 소설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출판사의 고심도 이해가 가지만 책을 다 읽어보면 역시 “야경꾼”이 제목으로 더 그럴 듯하다. 그럼 책 이야기를 해보자.

  작품의 무대는 웨스트버지니아. 주 전체가 애팔래치아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했고, 서쪽으로 조금 평원이 펼쳐 있다. 컨트리 가수 존 덴버의 노랫말에도 들어 있는 동네라 올드팝 팬들한테는 익숙할 수도 있을 걸? 이곳 산악지형, 아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높은 능선 바로 아래 언덕배기에 집을 짓고 사는 열두 살 소녀 코나리가 사실상 주인공이다.

  시간적 배경은 1874년과 10년 전인 1864년. 1864년이라면 61년에 발발한 미국 내전이 가장 뜨겁게 불이 붙던 시기. 이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것 보다 코나리가 이곳 산골에서 출생하게 된 내력부터 알아보자.


  오래전, 더블라 할머니가 어린 아이였던 시절, 더블라 할머니 가족들은 아일랜드의 기근을 피해 진짜로 거지꼴을 하고 뉴욕항에서 내려 지친 발을 끌고 남부 농장지대에 도착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당연히 폭력적이었지만 어린 딸 더블라는 예외였다. 조금 세월이 흐르자 두 오빠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아버지 역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백인 지주들은 이 아일랜드 이민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모양을 관찰하던 흑인들 역시 아일랜드 사람들이 백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더블라는 어머니로부터 아일랜드의 민간약재나 민간의료 같은 것을 아주 잘 배웠는데, 이게 백인 지주가 보기에는 턱없이 사악한 주술 같았고, 검둥이 노예들 눈에는 자기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민간요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나름대로 더 친해졌던 모양이다. 더블라가 성장해 큰 노예농장의 유모로 들어갔는데, 집의 여자 주인이 몸이 약해서인지 낳은 아이들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이런 집이었다.

  나이 지긋한 노예 여자가 하루는 갓난 아이를 데려왔다. 흰 피부와 검은 곱슬머리를 한 잘 생긴 유아. 얼마 전에 죽은 늙은 농장주가 마지막 열과 힘을 다 해 마지막으로 여성 노예의 몸에 만들어 놓은 사내 아이. 이 아이가 세상에 나온 건 아무도 모르고, 피부색이 하야니까 더블라의 사촌이 낳은 아들, 그러니까 더블라의 조카로 삼아 키우면 노예 신분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름도 없는 ‘그저 아이’는 농장주의 아이들이 더블라의 젖을 다 먹고 난 후에 남은 젖을 빨 수 있었고, 그게 모자라면 묽게 쑨 오트밀 같은 걸 먹였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키가 크고, 힘도 세고, 기골이 장대한 소년으로 자랐다.

  줄줄이 사산을 하거나 낳은 아이들이 크지도 못하고 픽픽 죽어가던 농장주, (더블라한테 갑자기 생긴 조카와 사실상 배 다른 형뻘인 농장주)한테도 그래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조금 큰 아들이 하나 있었고, 이제 새롭게 딸을 엘리자를 얻었지만 만날 아프기만 했던 아내는 대신 세상을 떴다. 이 엘리자를 받은 사람도 더블라. 남자와 노예만 있는 집에서 엘리자를 키운 사람 역시 더블라. 엘리자는 더블라를 엄마처럼 따랐고, 무엇이든지 상의했다.


  세월이 흘러 완전한 청년이 된 더블라의 조카는 말 관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마구간지기의 도제로 들어갔고, 엘리자 역시 나날이 커서 어느덧 열여섯, 열일곱 살이 되었다. 근데 이 두 십대 청춘들이 서로 좋아하는 거라. 그게 어른들의 눈에 안 보이고 배겨? 그걸 눈치챈 엘리자의 아버지는 천하디 천한 아일랜드 잡것들의 후손이 감히 자기 딸을 넘보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날을 잡아 청년을 붙잡아 매고, 농장 소유의 말 엉덩이에 하듯이 농장 소유임을 드러내는 낙인을 엉덩이가 아니라 가슴팍에 찍어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피가 철철 흐르는 낙인 위에다 채찍질까지 해버렸다.

  더블라 아주머니가 아일랜드의 민간요법으로 여러 약초와 동물성재료를 섞어 만든 고약을 바르기도 하고 약초를 태워 피운 연기로 훈증을 해 주어 일주일 만에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나았다. 청년 입장에서, 더 정확하게 말해 “청년들”입장에서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달도 없는 그믐밤, 더블라 아주머니와, 이이의 조카라고 알려진 청년과, 농장의 아가씨 엘리자는 마구간에서 말 세 필을 끌어내 조용히 암흑 속으로 사라져 북쪽으로,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북쪽 산골짜기로 떠나갔다.

  이때 다 나았다고는 하지만 조카는 정상 상태가 아니었고, 평생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본 엘리자도 홀몸이 아니어서, 주로 키 크고 강단 넘치고, 힘도 세고, 신기도 좀 있는 더블라 아주머니가 이들을 데리고 애팔래치아 산맥, 보수적인 부자들이 빼곡하게 몰린 버지니아를 가르는 산맥의 서쪽, 앞으로는 웨스트버지니아로 불릴 지역에 정착한다. 엘리자는 첫 아이를 사산한 뒤, 비탈에서 밭을 개간하고, 사냥도 하고, 과일도 수확하며 고생스럽지만 행복한 나날을 지내다가 딸을 낳았으니 이름을 ‘코나리’라고 했다.


  코나리가 세상 구경을 하기도 전에 미국 내전이 터졌다. 정의감에 불타는 코나리의 아빠이자 더블라의 이름없는 조카는 단박에 북군에 가담하기로 결심해 집을 떠나, 앞으로 십여년 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예정. 엘리자는 남편도 없이, 자기를 받았고, 젖을 먹였으며, 엄마나 다름없이 키운 더블라 아주머니에 기대 딸을 낳았으니 코나리는 앞으로도 아버지 볼 날이 없을 팔자였겠구나.

  전쟁이라는 참혹하고 황량하고 공포스러운 시절에도 세월은 갔다. 그리하여 1874년이 왔고, 1861년 12월생이라 아직 열두살에 불과한 코나리는, 꼬맹이라고 부르는 남동생, 그리고 태어난지 불과 몇 주 안 되는 여자, 남자 쌍둥이가 생겼다. 자기를 키워준 더블라 할머니의 집은 능선 거의 꼭대기에 있어서 어릴 적에는 자주 올라가 할머니와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는데, 이제는 파파와 마마, 그리고 터울이 많이 나는 세 동생과 산다. 근데 문제가 있다. 엄마는 모든 의욕을 놓은 상태. 이젠 말도 안 한다. 이른바 실어증.

  파파라는 남자가 코나리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란 건 팍 이해가 가지? 게다가 남군 출신이다. 전쟁 중에 껄렁한 북군과 함께 코나리의 집에 쳐들어와, 먼저 엘리자를 겁탈하려다가 오히려 엘리자에게 죽임을 당한 북군을 묻어 버리고, 집안에 있는 모든 것, 정말로 모든 것, 재산, 사람, 땅, 정신까지 몽땅 소유해버린 악당. 자신을 이름 대신 파파라고 부르라는 가스 라이팅 전문가이자, 나중에 밝혀지듯 정신이상자이면서 사이코패스. 그렇다고 연쇄 살인을 할 정도의 깊은 사이코패스는 아니고 전문가가 봐도 그런 성향이 농후한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집은 엉망이 됐고, 코나리의 세 동생 모두 파파가 마마 한테 만든 것인데도 전혀 관심조차 없다.

  마마는 쌍둥이를 낳아 가슴에서 젖이 철철 흐르지만 젖을 먹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루 종일 모든 집안 일도 하고 꼬맹이, 큰 동생을 숄에 묶어 가슴에 안고 다니는 코나리가 쌍둥이들을 엄마 가슴에 가져가 직접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켜준다. 쉽게 말해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파파라는 작자는 집안 꼴이 이럼에도 철저하게 더블라 할머니와의 접촉을 금한다. 눈에 띄기만 해도 권총을 쏘며 접근하지 못하게 위협할 정도이지만, 더블라 할머니는 아일랜드 민속, 민간신앙에서 배운 통찰력의 눈으로 이 가족을 훤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사실 파파도 죽을 지경이었겠지. 천성이 양아치인데 이 산골짜기에서 좁은 동네에 박혀 세월을 보내자니, 그것도 실성한 여자와 실성한 여자가 낳은 네 아이하고 함께 지내려니까. 그리하여, 나중에는 더블라 할머니의 현명한 설계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하루는 시내의 큰 부잣집 남자가 상처를 하여, 죽은 아내가 입던 고급 드레스, 셔츠, 내복, 신발 일습을 얻게 되었고, 그걸 마마한테 입혀보니, 불쑥, 좋은 생각이 드는 거였다.

  이 지긋지긋한 것들을 다 묻어버릴 수도 없으니, 꼬맹이와 쌍둥이 가운데 남자 아이는 아이 없이 혼자 사는 과부한테 맡기고, 여자 아이는 불임가족한테 키워달라고 한 후에, 마마와 코나리를 마차에 태워 동네를 떠났다. 이제는 혼자 살고 싶은 것. 코나리한테도 아이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 달거리를 시작하지 않아서, 아무리 악당이라도 초경도 하지 않은 아이하고는 관계하고 싶지 않아, 코나리를 마마와 함께 버리기로 결심한 거다.

  원래 큰 농장의 고명딸 출신인 엘리자한테 비싼 비단 드레스를 입혀 놓으니 세상에 이런 규수가 없다. 그래서 파파는 코나리에게 앞으로 마마한테 꼭 “재닛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코나리는 재닛 아가씨를 돌보는 몸종 정도의 하녀로 지내고.

  이렇게 도착한 으리으리한 곳이 마치 왕자와 공주가 사는 아름다운 궁전 같았는데, 시계탑과 첨탑까지 있는 그곳 대문의 황동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트랜스 엘러게니 정신병원”


  정신병원에 입원한 엄마와 코나리. 엄마는 당연히 귀한 집안에서 자란 재닛 아가씨, 코나리는 이름을 ‘엘리자 코널리’라고 즉석에서 고쳤다. 파파가 이들을 태우고 병원 앞 도로를 서성거릴 때, 창문 안쪽에서는 키 크고 건장한 북군 부상병 출신의 나이트 워치, 야경꾼이 이들을 관찰하고 있다가, 마차가 떠나고 여자 두 명이 노크로 현관을 두드릴 때 문을 열어 안으로 맞아주니, ‘오셰이’였다.

  폭탄 파편을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 맞아 눈알이 빠지고 두개골 제거술을 받은, 완전한 기억 상실자. 펜실베이니아 병원에서 오래 입원해 보기 힘든 부위의 환자라서 원장이 오셰이 씨에게 집중 치료를 해 생존하게 된 거한. 눈이 있던 자리에 원뿔 모양의 안대를 고정시켜 달고 다니는 오셰이 야경꾼을 따라다니는 조그만 꼬마 아이 위드.

  이들 모두 치유받아야 하는 환자들. 이들에 대한 작은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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