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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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야마 히데오는 1957년에 도쿄에서 출생한 미스터리 작가이자 만화 작가라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한다. 만화라고? 소설가 치고는 이색 직업을 가지고 있군, 싶어서 검색해보니, 만화를 그리는 화백이 아니라 만화의 원작 대본을 책임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란다. 도쿄에 있는 국제상업대학, 현 도쿄국제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군마현에 있는 지방신문의 기자로 12년 동안 있다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작은 <루팡의 행방>. 제목으로 보아 청소년을 위한 가벼운 미스터리 물이 아닐까 싶다(믿지 마시라, 추측한 거다).

  내가 읽은 책 <빛의 현관>에서는 행방불명 사건이 벌어지고, 그걸 형사나 탐정이 수사에 나서서 갖은 추리와 도주, 추격 끝에 체포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작품은 아니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 당할 때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건축사가 자신의 가족과 직장, 건축사로서 인생 최고의 작품인 집의 소유주, 일본에 망명했던 독일인 건축가 등등을 등장시킨, 일종의 추리극이기는 한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지지만, 잘 차려진 오첩반상 비슷한 대중소설이라고 할까 싶다.

  그러니까, 추리소설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 쪽의 장르문학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상당한 부분을 순문학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 장르의 경계 없이 ‘그냥 소설’로 생각하고 읽으면 딱 좋겠다. 어제 읽은 정영문 식으로 말하자면 “재래식 소설.” (재래식 소설, 진짜 웃겼다.)

  근데, 적어도 소설의 핵심 사건이 되는 “실종 사건”이라면, ①겁나게 부잣집, 적어도 재벌급 가족의 일원, ②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첨단 (무기, AI, 식량, 에너지) 기술을 가진 과학자, ③만 명 가운데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여자나 남자, 이 정도가 아니라면 적어도 ④조직폭력단의 두목이거나 두목의 애인 혹은 딸 정도는 돼야 어울릴 터.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다. 어쩌면 찌질할 수도 있는 수입가구전문 판매점의 주인도 아니고 지배인 급의 키 작고 통통한 남자. 거기서도 해고당하고, 이혼까지 당해서 이제 자기도 ‘인터넷 수입상품전문점’을 차리고 싶어하는 남자. 가구제작 장인의 아들이면서, 가구 제작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가업을 잇지도 못한 자. 어째 좀 후져 보이지? 납치는 당했지만, 이런 외모와 재력, 학벌, 지능을 감안해보면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다. 참 세상 야박하다. 소설도 그렇다.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아오세 미노루. 지상 100m 댐 최상부에 붙어 몸을 구부리고 콘크리트 패널을 짜맞추는 작업에 관한 한 업계에서 알아주는 일인자의 2녀1남 가운데 막내. 댐 최상부에서 하는 작업이라 일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댐 건설현장으로 가족 모두 이사해 새로운 댐의 꼭대기에 매달려야 해서, 가족들은 댐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사택에서 몇 년씩, 길어봐야 1~2년 살다가 다른 곳으로 또다시 이사를 했다. 이러니 두 누나들과 마찬가지로 아오세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거의 언제나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했는데, 비록 사는 곳과 환경이 열악해도 작업의 위험도를 감안해 아버지가 받는 보수가 반 아이들 부모가 벌 수 있는 현금보다 훨씬 많았던 것도 따돌림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겠지? 어린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오세는 그래서 친구 없이 사는 법에 어린 시절부터 통달할 수 있었고, 대신 산새를 비롯한 여러 새들의 우는 소리를 구별할 줄도 알 정도로 새와 친했다. 새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그런 거 다 소개하자면 내가 소설 한 편을 써야 할 판이다. 그냥 넘어간다.

  아오세는 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다녔다. 아버지는 건축은 말고 자기 일을 이어 돈 잘 버는 콘크리트 패널 전문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이라서 대학 진학을 위해 결혼해 도시로 나간 누나 집에 머물며 공부를 하는 동안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래도 건축과에 입학해 다니면서 유명한 건축사무소인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인턴 생활을 하다가, 떡잎을 알아본 아카사카 씨가 집중 교육을 시켜, 굳이 비싼 돈 주고 졸업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2학년까지 다니다가 관뒀다. 이때 함께 건축과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오카지마 아키히코와 노세 다쿠미. 훗날 오카지마는 아오세의 은인이라면 은인이 되고, 노세는 연애부터 건축 실력까지, 그러니까 공적, 사적 양 방향으로 몽땅 아오세한테 판판이 깨지지만 사회적으로는 무지하게 성공하는 건축가가 된다.


  아오세는 키 크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유카리와 결혼한다. 이 짝짓기 경쟁에서 아오세가 꺾은 라이벌이 부잣집 아들이자, 대학 건축과 동기동창이자,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아오세의 경쟁 부서인 공건물 시공팀에서 일하던 노세 다쿠미. 연애와 결혼을 둔 1차 승부에서는 아오세가 간신히 이겼다. 이때 산새의 울음소리만 가지고 어떤 새인지 아는 아오세의 재주가 크게 가산점을 받았다.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의 2차 승부에선 노세의 완전한 승리. 때는 일본의 버블 붕괴시기. 산업 전반에 걸친 파국으로 아오세가 일하던 사적 건축은 거의 완전히 거덜이 난 반면, 공적 건축은 사회 인프라 유지를 위한 최소의 유지가 필요했던 것이 노세가 생존할 수 있었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아오세는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자진해 먼저 사직서를 던졌고, 이를 알게 된 아내 유카리는 마음 속으로 대단한 불만이 싹텄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혼 후 버블 경제 시기에 아오세 부부는 조금 무리를 해서 도쿄 중심가에 괜찮은 맨션을 구입했는데, 아오세가 사직을 한 후에 가정을 위한 고정비만큼도 수입이 없음에도, 다른 해고자들처럼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하건만 아오세는 그래도 건축 엔지니어 가오 문제가 있어서 그저 백수로 남아 있었던 것이 부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절벽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결국 이혼에 이르렀고, 도쿄의 맨션에는 아내 유카리와 딸 히나코가 살고, 아오세는 허랑방탕한 알코올 의존자로 점점 빠져들 즈음, 혜성같이 나타나 자기 건축 사무소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 수렁에서 건져준 사람이 또다른 건축과 동기동창 오카지마 아키히코다.


  아오세 미노루. 오카지마와 노세가 보기에도 자기들보다 능력이 월등한 천생 건축사. 하지만 아오세는 한 번 크게 인생을 실패해보았으며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어디가서 말빨이 좀 달린다. 이게 성격상 결함으로 조금 나타나는 듯하다. 사회생활에서만 그랬으면 좀 나은데, 아내 유카리도 오카지마와 노세하고 업계에서 공적으로 친밀한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오세가 빌빌거린다고 한 마디 하면, 아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 싫기는 하겠지, 그래도 충동적으로 극도의 열을 받아 크게 소리지르며 다투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만일 이 가족이 살 집을 짓는다면, 아오세는 아버지의 콘크리트 작업을 보며 자라서 그랬는지 자기 건축 인생을 시시각각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외벽의 포장이 바뀌는 서양식 콘크리트 집을 짓는 걸 주요 테마로 생각한 반면, 유카리는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집, 오랜 농가 안채에 일본 전통가옥을 증축한 따듯한 목재 집에서 살고 싶어했다. 이젠 콘크리트 집이나 목재 집이나 다 끝난 일이지만.

  이들이 이혼하고 벌써 8년. 딸 히나코가 유치원 다닐 때 아오세가 도쿄의 맨션을 떠나 지금은 도쿄도에서 멀지 않은 사이타마현의 도코로자와의 원룸에 살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도쿄의 카페에서 딸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과 차도 마실 뿐이다. 아이가 이젠 자기 삶을 알기 시작하는 열세 살, 사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작품은 비가 오는 3월 아오세가 히나코를 만나러 도쿄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오세는 작년 11월에 시나노오이와케에다 집을 한 채 지었다.

  금슬이 좋으면 생긴 것도 닮는다고, 생김새도 비슷한 요시노 부부가 오카지마 건축사무소에 찾아와 아오세가 지은 집을 본 적이 있다고, 자기들이 살 집을 꼭 직접 지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시나오오이와케의 땅 80평. 건축비 최대 3천만엔. 그리고: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그래서 아오세가 지었다. 도심 한복판이라면 터부시되는 북향 창을 원하는 만큼 낼 수 있는 사방이 탁 트인 땅이라, 노스 라이트North Light를 채광의 구역으로 하고 다른 빛은 보조로 돌리는 은은한 빛의 전당을 만든 것. 침실의 북으로 난 창문 커튼을 젖히면 들어오는 짜낸 베일 같은 노스 라이트. 그 너머 보이는 아사마 산의 장엄한 모습. 노스 라이트.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은 노스 라이트, 북쪽에서 스미는 빛이었다. 창문은 이 집의 “빛의 현관”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아오세가 언젠가 만들고 싶었던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은, 놀랍게도 목재 건물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집 주인 요시노 부부는 행방불명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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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10-16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으셨군요! 저는 십여 년 전에 「64」를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 폴스타프님과 같았어요. 이건 단순 추리소설이 아니다! 라구요. ㅎㅎ 경찰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배신을 64만큼 자세하게 보여준 소설이 또 있을까 싶어요. 『빛의 현관』도 평이 좋아서 읽고 싶었는데 또 그냥 흘려보냈네요. 저도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yamoo 2026-10-16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작가도 있었네요...이 소설 재밌으면 찾아서 읽겠습니다!
도통 감을 못잡겠어요..ㅎㅎ 별4개인데...일본 만화 작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