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나무 숲
권여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2년 전에 권여선을 읽고 또 찾게 될 줄은 몰랐다. <레가토>가 그만큼 싫었다. 나를 뒤돌아보게 하지 마. 특히 그 방면으로는. 이렇게 <레가토>를 싫어하며 살다가, 그래서 도서관 서고를 서성거리며 권여선의 책 앞에서는 그냥 핑, 지나쳤다. 안 읽을 거야. 하지만 세월이 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읽어볼 수도 있는 일이겠지 싶어 고른 책이 소설집 《비자나무 숲》. 재미있게 읽었다. 그동안 거대 서사의 뒷 이야기는 사라지고 이제 사는 이야기, 도무지 실제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 일어난다고도 할 수 없는 진짜 같은 이야기들. 이런 것을 우리는 픽션이라 부르고,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이리도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레가토>는 뭐하러 썼을까? 하긴 시절이 권의 가슴 속에 맺혀 자기 좀 이야기해달라고 할퀴고 뜯으면 안 쓰고 배기지 못했겠지.

  이 책 초판이 2013년. 참 나. <레가토>가 불과 1년 전인 2012년에 나왔다. 내가 이 1년 터울을 넘기 위해 무려 12년을 쏟았으니.


  1965년생 안동 권씨. 하다못해 초등학교 소사 자리라도 하고 싶으면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인동 장씨 아니면 안 되는 동네가 안동이다. 60년대 안동 출신 안동 권씨 댁 공부 잘하는 따님. 근데 하필이면 그토록 어지럽고 깡패 같던 80년대 이 시절에 서울로 홀로 유학 왔으니 그것도 팔자소관이다.

  안동이 고향이면 괜한 선입견이 드는 데, 집안이 엄했겠네, 하는 거. 근데 우리말 위키피디아 보면, 이이의 희망사항이 술을 1주일에 두 번, 나이 들어 좀 골골해지면 1주일에 한 번 마시는 거라고. 그러니까 《비자나무 숲》을 발표할 당시인 2010년부터 11년 까지는 마흔 다섯에서 여섯이었으니 술에 관한 한 인생의 황금시절이라, 1주일에 대여섯 번, 한 번에 최하 소주 두 병은 자셨겠구나. 술은 희망사항대로 1주 한 번이나 두 번으로 줄이더라도, 그것보다 먼저 담배 좀 끊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뭐 진짜 그렇겠는가만, 모든 작품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씬이 나오는 거 같다. 이렇게 맛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좀 더 오래 살아 좋은 글 많이, 많이 써달라는 독자의 바람 때문이다. 이건 괜한 오지랖 아니지?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 제일 앞에 배치한 <팔도기획>이다. 팔도? 팔도, 하면 역시 팔도 비빔면 아냐? 근데 책에서는 ‘팔도기획’이라는 기획 출판사. 기획출판이라 하니 뭔가 특집 기획, TV 같은 데서 자주 쓴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이 팔도기획은 주로 자비 출판하려는 아마추어 작가 지망생의 글을 그래도 책 비슷하게 꼴을 잡아주고 문장도 나름대로 매끄럽게 교정해 책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회사. 또는 큰 회사의 경우엔 어림도 없고, 그저 작은 회사의 10년사, 20년사 같은 거, 그룹사보다 훨씬 작은 중소업체 사장/회장/고문들의 회고록 대필 같은 것을 이름난 기획사에 비해 염가로 서비스해주는 업체를 말한다.

  회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대표가 있겠고, 사실상 홍팀장이 사무실 전권을 가지고 있다. 아래로 영업담당 박부장과 선배인 정작가, 화자 ‘나’인 김작가가 근무한다. 뭐 당연히 ‘나’ 김작가는 최저시급 수준의 급여를 받는 거 같다. 그러면서 영업담당 박부장이 물어오는 기획물의 꼭지도 쓰고, 손님 오면 커피나 홍차 또는 계절에 따라 컵빙도 쪼르르 달려가 사 와야 하는 따까리 노릇도 한다. 사무실의 홍일점이라도 네 명 가운데 하나니까 굳이 홍일점 운운도 민망하다.

  어느날 오후 4시 15분, 팔도기획에 방문객이 온다. 안경을 쓴 키가 작은 여자가 큼직한 가방을 메고, 옷차림은 교복처럼 단정하게 입은 20대 후반으로 보인다. 원고를 가지고 왔단다.

  원고를 가지고 와?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서는 홍팀장.

  “저희 출판사에서는 성심성의껏 고객님의 자비출판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문객은 홍팀장 대신 ‘나’ 김작가와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김작가한테 본심, 이 회사에 일할 자리가 있으면 취직하고 싶단다. 국문과를 나왔고, 대학원도 1년 다녔는데 소설을 쓴다고. 실생활에서는 이런 무작정 지원자가 있으면 1695번에 한 번 정도 취직이 가능하다. <팔도기획>도 평범한 회사여서 당연히 집에 보냈지만, 능력있는 영업부장 박부장이 한 번에 무려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물어와 당장 작가님을 한 명 보충해야 할 처지가 되어, 방금 본 윤모 선생한테 득달같이 전화해 책상 하나를 맡긴다. 정말 데뷔를 한 소설가인지, 아니면 그저 소설을 쓰는 사람인지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지만, 데뷔 여부가 뭐가 중요한가, 그저 소설을 쓰면 소설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지, 그러면 됐지.


  박부장이 물어온 것 가운데 하나가 잘 나가는 프랜차이즈 업체 “팔도닭발”의 나이든 회장이 이제 삶을 정리하기에 앞서 자기가 살아온 회고록을 내고 싶다는 거였다.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업체의 이름이 같은 ‘팔도’기획이라서 유난히 관심을 끌어 적지 않은 개런티로 계약을 했단다. 이렇게 해서 팔도닭발에 전력투구 시작. 무엇보다 회장이라던가 하는 노인과 인터뷰를 하고, 녹음한 것을 풀어야 하며 필요하면 사진도 몇 장 박아야 할 터, 선배 정작가가 신입 윤작가한테, 출발하자고 했지만, 소설가 윤작가가 하시는 말씀이: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자신은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할 일은 글에 향기를 불어넣는 거란다. 글의 향기. 몇 번 이야기했는데, 여기서 “글의 향기” 말고 “글의 냄새”라고 썼으면 어땠을까? 하여간 윤작가는 글의 향기를 불어넣는 사람이고, 글을 쓰자면 먼저 큰 그림, 구성을 잡아야 하니 자기는 함께 출장을 가지 않고, 그 시간에 구성을 짜겠단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녹취한 것을 가지고 왔다. 이제 녹취를 풀자고 권하는 선배 정작가. 아니나 다를까.

  “저는 여기에 글을 쓰러 왔습니다.”

  이러니 이게 일이 되겠나?

  근데 여기서 파박,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다. 거의 모든 업무 지시에 I would prefer not to, 하지 않으려 합니다,로 일관하는 필경사 바틀비. 사실은 저 앞에서 벌써 바틀비가 전두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팔랑팔랑 나부끼기 시작했었다. 나도 35년간 회사생활 했는데,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이익창출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게젤샤프트 집단에 이런 특출나고 독립적인 조직원이 하나라도 끼어 있으면 여지없이 삑사리 난다. 속으로는 윤작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백퍼 동의하고 응원까지 마다하지 않지만, 아후, 저러다 윤작가가 오래 못 가지, 하는 걱정도 한 소쿠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고비를 몇 번 더 넘기고 드디어 한 번만 더 참으면 무릎 도가니에 사리가 생길 위기감에 사로잡힌 까마득한 선배님 정작가 입에서는 모진 말씀이 튀어나오고야 만다.

  “그럼 나가! 나가, 이 쌍년아!”

  어찌저찌 회고록은 나왔다. 젊은 시절 오만가지 고생을 한 붉은 손 빈 주먹의 사나이에서 팔도닭발의 총수가 되기까지의 성공담. 이렇게 일이 다 끝나고 그 잘난 윤작가의 원고도 누군가 한 번 들춰봤겠지? 그게 어땠을까? 입에 달고 다니던 말처럼 “글에 향기를 불어넣어”주었을까? 안 알려줌.


  다른 작품도 좋다. 과하게 폭력적인 딱 하나 <소녀의 기도>는 빼고.

  괜히 권여선에게 미안하다. 하필이면, 글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고뇌 속 시절이 하도 지긋지긋해서 정나미가 떨어진 <레가토>를 먼저 읽은 내 잘못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쓴 작가인 걸 몰라봐서. 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좋은 작품 많이 쓰기 바란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곰돌이 2026-08-28 0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여선 작가의 글 너무 좋아합니다. 정말 생각지 못한 장면과 그 속에서 귀신같이 딱 들어맞는 감정을 송곳같이 도려내,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 없는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그 매력, 못 잃어요. ㅋㅋㅋ 저도 오래오래 써주시길, 빨리 또 새로운 작품 만나볼 수 있길 기다리고요.

아, 근데 잘 읽다가 꼭 다른 쪽으로 빠져서 공기를 바꿔주시는, 또 그게 재밌기까지 해서 킥킥거리며 웃게 만드는 폴스타프님... 이것도 큰 매력이신 듯!

Falstaff 2026-08-28 06:41   좋아요 1 | URL
나야말로 여태 권여선을 찾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답니다. ㅎㅎㅎ
크... 재미있게 읽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암호 해독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9
마이자 지음, 김택규 옮김 / 민음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마이 자, 한자어 이름 ‘麥家’, 1964년 용띠 아저씨. 저장성 복양현에서 나서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17년간 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 한다. 중국은 사회 기반 곳곳에 군부가 개입하고 있어서 말이 장교로 군복무이지 사실 사회부문에서 일했을 수도 있다. 책 읽는 독자한테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군대에 있으면서 인민해방군 공병기술 아카데미 무선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부터 집필,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데 이때도 나이로 보면 군 장교였을 터이다. 이후 1991년 인민해방군 예술 아카데미 문학과를 또 졸업하고, 1997년에 청두 TV 방송국 드라마 부서에서 각본을 썼단다. 그리하여 이이의 데뷔작품인 <암호해독자>는 기본적으로 군사조직에 속해 있고, 모든 정보기관을 망라하는 핵심 기관에서 적국의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맡은 천재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다분히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도 수긍이 간다.

  이어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중국의 다양하고 유명한 문학상을 차곡차곡 받는 등, 성가를 높였다. 하여간 중국이란. 위키피디아에 웃긴 이야기가 있어서 그대로 복사해왔다. 중국어 해독이 어려워 AI가 번역한 우리말이다.


  2014년 10월 15일, 마이 자이는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앙위원회 총서기가 주최한 "문학예술 작품 심포지엄"에 참석해 시진핑의 연설을 들었다. "우리의 예술은 사회주의 예술이며, 애국심과 당에 진리, 선, 미의 정신을 증진해야 한다." 회의 후 시진핑은 마이 자와 악수하며 그를 칭찬했다: "당신의 '음모'와 '메시지'를 봤습니다. 당신은 첩보극 1위입니다.”


  심포지엄에 가서 시진핑의 훈화를 들은 것이 위키피디아에 적시할 정도의 영광이었다. 게다가 시수석이 칭찬까지 했으니 아마도 어구를 글로 써서 금박 입혀 표구까지 해 놓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간 <암호해독자>는 1991년에 작품을 쓰기 시작해 2002년에 완성, 출간했으니 무려 11년간을 절차탁마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11년 동안 죽자사자 소설을 쓴 건 아니고, 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방송사에 들어가서 일 하는 동안 틈틈이 작업을 했을 터이니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작품은 1873년에 한 청년이 퉁전을 떠나 서양 유학길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룽容씨 가문의 7대손이자 막내인 룽쯔라이容自來. 서양에 가서 새로 지은 이름은 존 릴리. 릴리의 할머니인 노 마님은 큰 소금상을 했던 거대가문의 당당한 주인으로 슬하에 9남7녀를 두었는데, 릴리가 노마님의 9남 가운데 막내인지, 아니면 손자들 가운데 막내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노마님이 나이를 많이 자셔서 잠도 없으면서 잠만 잤다 하면 꼭 길고 긴 꿈을 꾸었는데, 좋은 꿈도 있지만 가위눌리는 꿈도 숱했던 지라 이의 해몽에 큰 관심을 가졌다. 당시 많은 해몽가 가운데 서양, 아마도 잉글랜드에서 온 백인 청년을 가장 신뢰해서, 백인 청년이 언젠가는 중국을 떠날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노마님은 떠나기 전에 자기 후손 가운데 가장 총명한 룽쯔라이를 청년의 할아버지한테 보내 해몽법을 배워 오라고 시켰다. 그리하여 몇 달 동안 배를 타고 멀미를 해가며 노 대가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전보로 노마님이 운명해버렸다는 연락이 먼저 와 있었다. 쯔라이는 당장 귀국하는 대신 대학에 가서 몇 과목을 청강해본 후에 그곳에 남아 더 공부를 하기로 결심해, 슬라브인과 터키인 선생한테 기하학, 수론 그리고 방정식 즉 대수를 배웠으며 밤에는 바흐의 3대 제자가 가르치는 과목을 청강해 음악도 배우기에 이르렀다.

  7년 후인 1880년, 막 따낸 포도 수십 광주리와 함께 귀국선에 오른 릴리가 도착했을 때는 엄동설한이었는데, 사람들은 이이를 보고, 변발을 깎고, 서양식 옷을 입었으며, 포도가 푹 익어 술로 변한 와인을 입에 달고 살면서, 새 지저귀는 소리를 섞어서 말을 할 뿐만 아니라 이상한 이름으로 자기를 부르라더니 급기야 소금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소금상 가문의 천재, 머리가 좋으니 당연히 숱한 아들 가운데 앞으로 소금상의 대를 이어야할 인간이 소금 냄새를 맡지 못한다? 아, 이를 어째?

  노마님은 죽기 전에 천재 수준으로 머리가 좋은 릴리에게 벽장에 든 은덩어리를 주라고 유언을 해, 릴리는 그걸 다 팔아 만든 거금으로 인근 C시에 학교를 세워 ‘릴리 학당’이라고 했다. 이 학당은 후에 남중국의 명문 N대학의 전신이 된다.


  릴리 학당은 당시 파격적으로 중국 사회를 놀라게 했으니, 여성의 학당 입학을 허락한 거였다. 하지만 어느 집에서도 자기네 딸을 학당으로 보내, ‘내돌리’지 않았다. 따라서 처음엔 여학생 전부가 룽씨 집안의 딸들이었 수밖에. 이 가운데 릴리의 큰형이 예순 살 먹어서 애첩한테 얻은 아이, 즉 릴리의 조카딸이 무지하게 총명해 아이를 본 릴리는 열일곱 살이 되자 고모네 사촌오빠와 함께 케임브리지에 유학을 보냈다. 갓 나았을 때부터 머리가 하도 커서 대두大頭라고 부르다가, 워낙 숫자에 밝아 수동 계산기 주판을 붙여 대두주판籌板이라 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에 들어가보니 원래 재능이 있던 수학과 더불어 언어에도 재능이 있는 게 밝혀져, 일곱나라 언어에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어까지 합해 여덟 나라 말을 자유자재로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유학 5년만에 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부터 2년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로 날아가 라이트 형제 팀과 합류, 최초의 비행기 날개를 설계했다. 원래 이름이 룽유잉容幼英, 서양식 이름으로 애버커스 릴리로 불렸다.

  신해혁명 후 귀국해서 C시의 N대학 수학과 주임교수로 일하다가, 이 때가 이미 마흔을 바라보던 나이의 룽박사는 늦게 린林씨 남자와 혼인을 했으나, 노 릴리를 능가하는 천재는 곧 끊어지고 말았다. 가뜩이나 노산인데다 아이가 기형적으로 큰 머리통을 달고 있어, 룽박사는 몇날 며칠을 과다한 출혈과 지독한 산고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룽교수의 고통을 지켜보던 노 릴리는 이렇게 말했다.

  “태어난 녀석은 황제 아니면 악마일 거요.”

  유잉은 마지막으로 출산을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간이 터져 죽었단다. 내 의학 상식으로는 아무리 독한 난산이라도 간과는 별로 상관이 없을 듯한데, 모르지, 의학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출산을 위해 간에 치명적인 약물을 투여했을 지도. 하여간 희대의 천재 한 명이 그렇게 갔다.


  유잉이 죽으면서 살려낸 아들은 이름도 없었다. 친가인 린씨 집안은 C시에서 재산규모가 어마어마한 명문가이지만 어미를 죽이고 나온 대가리만 큰 자손을 호적에 올리는 걸 거부했다. 그저 별명으로 큰 대가리 달린 귀신이란 뜻의 대두귀大頭鬼라고 불러, 외가인 룽씨 집에서도 그렇게 쓰는 줄 알았다. 이 대두귀는 열두 살 때부터 스무살에 죽을 때까지 근 십 년간 최소 열 건의 살인을 저질렀고, 몰래 담을 타 데리고 와서 논 여자가 백 명을 헤아렸다. 이 가운데 앙심을 품은 기생 하나가 사람을 사서 지나가는 대두귀의 등짝에 비수를 꽂는 바람에 죽었다. 천재의 아들 역시 천재를 지녔으나 다른 방향으로 천재를 보여 죽음에 이르렀고, 큰대가리귀신의 게임값을 물어주기 위하여 엄마의 삼촌 노 릴리의 곳간마저 휑하게 비어벼렸다는 걸 끝내 대두귀는 알지 못했으리.

  어쨌건 장례를 마쳐 이제 집안에 없었던 인간으로 취급할 즈음, 이게 웬일, 배가 볼록한 정체불명의 여인이 N대학의 노 릴리를 찾아가 대두귀의 아이라고 주장했다. 릴리는 자기 아들 룽샤오라이, 작은 릴리가 잠시 머물고 있던 고향 퉁전으로 비밀리에 보내 몸을 풀게 조치해주었다. 

  지금 처음 소개하는 작은 릴리. 노 릴리의 아들이고, 노 릴리의 좋은 머리를 타고 난 인물로 나중에 N대학의 총장까지 오른다. 대학에서 자리를 잡자 아버지와는 달리 친척 등을 대학에 두지 않고 멀리 하여 훗날 청렴한 천재의 면모를 보이는 중요한 조연을 한다. 그럼 주연은? 아직도 안 나왔다.

  이 임신한 여성의 배 속에 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1932년경 대두귀의 씨를 받아 임신한 여성은 대두귀처럼 머리가 큰 아들을 낳는 동안, 대두귀의 어머니처럼 죽고 말았다.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 확신하지 못했던 룽씨 사람들은 아이를 보자마자 완전히 죽은 대두귀가 다시 나온 듯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자기네 집안 씨도 아닌 버려진 아이. 그리하여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그냥 도깨비, 사귀死鬼라고 하고, 늙은 하인 부부에게 거두어 키우라고 했다.

  과거에 노부인의 꿈 해몽을 해주던 서양 청년이 이젠 늙어 양洋선생이라 불렸다. 아이한테 어찌 도깨비라 할 수 있겠느냐, 싶어서 대두귀의 아들이니 대두충大頭蟲이라 하며 자기가 데려다 키웠다. 룽씨 집안 사람들이 흉한 일 이후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던 배나무 정원, 이원梨園의 작은 건물에서. 이 대두충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근데 이제야 나왔다. 늙은 꿈 해몽가 양선생은 오직 하나, 이 대두충에게 영어로 말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고, 서양 철학의 큰 가지 가운데 하나인 그리스도교 철학을 몸에 배게 만드는 역할을 하다가 1944년에 숨을 거두며 중요한 조연, 작은 릴리에게 편지 한 장을 보내고 늙어 죽는다. 그걸 정리하면 이렇다.

  아이의 천부적 자질이 대단하다. 남에게 괴팍하고 냉담한 것 빼고는 아이의 할머니와 두 물방울의 물처럼 서로 흡사하다. 머리가 남다르고 이해력이 높으며 강하고 침착한 성격이다. 이제 열두 살. 누군가의 보호와 사랑과 교육이 필요하며, 진짜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작은 릴리가 대두충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산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지만 특히 작은 릴리의 아내에게 대단히 큰 정을 느껴, 평생 사모님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걸 굳이 이로 손가락을 물어 뜯어 혈서로 쓴 것을, 얼마 후 사모님이 보고 감격 먹는다.


  작은 릴리는 대두충에게 대두충 대신 진전金眞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가, 남자가 여자 이름을 가지면 더욱 재주가 뛰어나게 된다는 얘기가 생각나 곧 진전金珍으로 수정한다.

  그리고 공부를 시켜보니, 이게 천재도 천재 나름이지, 여태 살면서 이런 천재는 본 적이 없을 정도. 나이는 겨우 중학교에 가야 하지만 실력은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에서 수학을 수강해도 최상위 등급은 우습게 받을 정도이다.

  릴리는 중국의 유학파. 작은 릴리 역시 유학파라서 때마침 N대학 수학과에 적을 둔 대단한 학자 시스 교수의 지원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 하는데 그만 어린 시절에 양선생을 따라 어린아이한테 맞지 않는 약초를 오래 복용해서 그랬는지 심각한 신장병에 걸려 미국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지상 최고의 선진국 미국에서 인공지능, 그러니까 컴퓨터 공학 비슷한 걸 하라는 시스 교수의 희망, 권유가 꺾이고 말았다.

  이 책은 순문학이라기보다 추리물에 가깝다. 그러면 유대인 시스 교수도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세상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의 최고 천재를 그냥 놔둘 턱이 없다. 누구라도 발견하기만 하면 자기 욕심대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이런 동네 종사자들 아닌가? 그러나 대두충, 진전, 후에 진전이 작은 릴리이게 부탁해 룽씨 성을 얻어 룽진전이 되는 주인공은 세계 과학의 발전이 아니라 중국의 정보기관에서 적 X국에서 만든 암호, 퍼플코드와 블랙코드를 해독하게 되는데….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얄리얄리 2026-08-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구판으로 봤는데,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줄거리도 다 까먹었는데, 리뷰 보니까 조금씩이지만 기억도 나네요!

Falstaff 2026-08-28 03:58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요즘 구간을 세계문학으로 종종 다시 나오는데,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ㅎㅎㅎ 좀 그렇더라고요.
 
6월의 폭풍 ㅣ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2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인 이렌 네미롭스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을 듯. 다만 아우슈비츠에서 이이의 영혼이 굴뚝의 흰 연기로 빠져나가지 않고, 한 달 만에 디푸스에 감염되어 죽은 것만 조금 다르다. 이 때가 1942년. 여전히 나치의 전성기, 거꾸로 말하면 이제 전장마다 연속적인 패전만 남았을 시절. 결국 독일이 완전히 패배해서 거의 유일신 비슷한 자리를 누렸던 히틀러조차 지하 요새에서 권총 자살로 시신마저 찾지 못할 줄은 전혀 몰랐다.

  전쟁이 터지자 네미롭스키는 자신이 본 전쟁의 모습을 원고지에 옮기기로 마음먹고 약 1천페이지 분량의 5부작으로 구상했단다. 이 5부작의 제목을 <프랑스 모음곡>이라 정했다고. 첫 작품이 지금 독후감을 쓰려 하는 <6월의 폭풍>이고 두번째가 <돌체>. 두 작품은 완성이라기보다 초고를 써서 출간은 하지 못하고 가방에 넣어둔 채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3, 4, 5부 <포로>, <전투>, <평화>는 메모만 있거나 제목으로만 남았다.

  네미롭스키의 두 딸은 가방을 물려받고 차마 열어보지 못한 채 20세기 끝 무렵까지 그저 보관만 했단다. 원고를 발견한 후에도 엄마가 직접 퇴고하지 않은 작품을 출간하기가 망설였다가, 집필 65년 만인 2004년에 <프랑스 모음곡 Suite Fransaise>라는 제목으로 빛을 보았다고. 짧게 말해서 작가 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의 작품이다.


  작가도 기구한 운명을 맞았고, 작품도 기구한 세월을 보내다가 늦게 출간했으니 이런 비극적 내력을 가진 작품이라 당연히 굉장하겠지, 이런 기대는 일단 접고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나도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다. 기대가 크면 의례 실망하게되더란 것을 익히 경험해봤기 때문에. 근데 말이 그렇지,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작품마다 독자의 심금을 콕콕 찌르는 네미롭스키의 미완성 5부작 가운데 첫 작품이라는데 그걸 기대하지 않기도 쉽지 않잖아?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

  작품은 1940년 6월 4일 밤부터 8월까지.

  1940년 5월 10일에 프랑스 국경을 침범한 독일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눈에 보이는 프랑스군을 거덜을 내며 파죽지세로 전진, 6월 13일에 파리를 함락한다. 함락을 눈 앞에 둔 파리 시민은 전쟁이 터졌으니 당연히 지대지, 공대지 폭격을 시작할 것이고, 그 결과 파리는 잿더미가 될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어제, 6월 3일 밤에 개전 이래 처음으로 파리에 폭탄이 떨어져 건물이 폭싹 무너지고 사람도 여럿 상했다. 여기에 전선에서 프랑스군의 퇴각 소식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하자, 파리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여 일제히 파리를 벗어나 서부 또는 남부 지역으로 피난을 떠났다. 부르주아와 고급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차에 고가의 가구며 은식기 등을 싣고, 중산층 이하 사람들은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국도를 거의 메우다시피해 피곤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근데 문제는 이 장면이 새롭지 않다는 것. 피에르 르메트르가 쓴 <우리 슬픔의 거울>에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오르부아르 3부작” 마지막 작품인 만큼 범죄 스토리를 곁들인 전쟁 개시와 피난 행렬,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조건들의 모습을 르메트르 만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작가도 드물 터, <6월의 폭풍>에서 가장 중요한 피난 장면을 읽으면서, 어째 좀 싱겁다, 간이 덜 됐네, 하는 생각을 하지 않기도 어려울 듯. 이해하시겠지, 지금 뭔 말을 하는지.


  6월 5일 아침에 몇 대의 차를 몰고 파리를 떠날 첫번째 페리캉 가족.

  노 페리캉 씨가 이 집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여러가지 사업을 벌여 대단한 자본을 마련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돈이 노 페리캉 씨를 좇아오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단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재산이건만 리옹의 말테르 가문에서 또다시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파리 굴지의 부르주아로 우뚝 섰지만 그것도 옛 이야기, 지금은 너무 고령으로 걷지 못해 휠체어에 앉아 신의 안식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 게다가 정신도 온전하지 못해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천국을 왔다 갔다 하는 신공을 갖는 수준에 올랐다. 말테르 가문의 유산을 상속받으면서 여동생과 재산 다툼을 벌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얼마 안 있어서 죽을 예정인데, 죽음의 침상에서는 그 여동생에게 마른 지역이든가 하여간 지방의 넓고 넓은 토지와 성에 육박하는 저택을 유증하고 숨이 넘어간다.

  노 페리캉 씨의 아들 아드리양 페리캉은 국립 박물관의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 보수주의자이며 가톨릭적 사고에 젖은 인물로, 마흔일곱 살 먹은 고집 센 아내 샤를로트와 금슬도 좋지, 이제 겨우 두살배기 다섯째 아이이자 넷째 아들 에마뉘엘을 두었다. 아내가 마흔다섯 살에 낳았으니 그 시절에 힘들었겠지? 에마뉘엘 말고, 첫째가 생각이 바른 필리프로 부르주아 신분에 맞지 않는 교구 신부를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필리프는 할아버지가 세운 소년보호시설 ‘프티 르팡티’의 아이들 서른 명을 데리고 피난길에 나섰다가 책에서 제일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둘째는 열여덟이었다가 며칠만에 열아홉 살이 되는 철없는 위베르. 피난길에 애국심에 불타 가족으로부터 도망해 프랑스군에 접촉했다가 괜히 민폐만 끼치고, 도망 중에 애먼 총각딱지만 떼는 인물. 3, 4, 5번 아이들은 소개할 만하지 않다.

  이 집안의 유모가 아들 셋을 두었다. 유모는 세 아들 모두 전쟁터에 보내, 한 명도 징집당하지 않은 페리캉 부부가 결코 곱게 보이지 않지만, 자기 손으로 키운 아이들이라 차마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못한다.


  유명하고 잘 팔리는 쉰 살배기 소설가 가브리엘 코르트. 그리고 그의 연인 플로랑스. 젊은 플로랑스는 솔직하다. 자기가 늙고 아랫도리 힘 빠진 꼰대와 어울리는 건 가브리엘이 적어도 플로랑스의 복지와 사치를 부담한다는 조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확고한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

  이 유명하고, 자기가 자신을 판단할 때 대단히 고귀한 신분인 속물 덩어리 소설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최고급 대접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피난길에 나서도 마찬가지. 첫 숙박지인 여관에 가서도 지붕 밑 더운 다락방을 얻자 주둥이가 댓발이 나와 그냥 뛰쳐나오는 바람에 개고생을 한다. 이렇게 손에 물 안 묻히고 살던 인간들은, 전쟁이나 피난, 이런 곤혹스러운 시절을 만나면 살기가 팍팍해진다. 평소에 뭘 해봤어야지. 엄청나게 돈이 많고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작가가 멀리 걷기를 해봤나, 풀밭 위에서 야영 한 번을 해봤나, 이래저래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어떻게 연줄이 닿는 장소에만 가면 꼭 캐비아에 상파뉴로 목젖을 적셔야 마땅하다.

  코르뱅 은행의 최고 주주 코르뱅 씨. 물론 아내도 있지만 정부 아를레트도 있다. 코르뱅의 입맛에는 무조건 무용수가 딱이다. 아무리 예쁜 외모를 가졌어도 무용수가 아니면 접수하지 않는다. 이 하층계급 출신의 부르주아는 자신이 신세를 고칠 때 부잣집 딸인 아내와 결혼한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계기였던 만큼 절대 헤어질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아를레트는 일단 코르뱅의 피난 차를 타고 안 내리며 버틴다. 그래서 결국 피난길에 나서는데, 이 아를레트 때문에 차에 타지 못해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하는 직원이 있었으니 잔과 모리스 미쇼 부부.

  아를레트는 파리를 벗어나 저 멀리 가서 코르벵 가족과 만나기 전에 알아서 차에서 내려, 잘 아는 동네의 잘 아는 호텔에 여장을 푼다. 거기서 다시 파리로 귀환하기 전에 귀엽게 생긴 프랑스군 지원병이었던 위베르 페리캉 군을 만나 아이를 유혹하여 기꺼이 딱지를 떼준다.

  미쇼 부부한테는 전쟁터에 나간 아들 장마리가 있다. 미쇼 부부는 걸어서 피난을 가야하는 처지지만 부부, 특히 엄마 잔의 마음 속에는 늘 장마리가 걸려 속이 쓰리다. 장마리는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트럭에 실려 퇴각하던 중, 곳곳에 포탄이 터져 망가진 도로 위를 달리는 트럭이 이곳 저곳에 쾅쾅 부딪힐 때마다 머리에 충격을 입고, 다리의 상처도 터져버려 곧 죽어도 별스럽지 않을 위급상황에 떨어진다. 이 상태로 시골의 한적한 동네에서 보살핌을 받게 되는데, 죽을까 살까? 미쇼 부부한테는 은행장 코르뱅의 미션이 있었다. 언제까지 피난지의 지점에 도착해 업무를 계속하라. 그러나 파리 시민 거의 대부분이 쏟아진 피난길에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폭격도 수시로 있었는데 어떻게 가나? 게다가 사실 거기도 폭격을 맞아 다 불타버리고 말았거늘. 그리하여 8월에 다시 파리로 도착하여, 코르뱅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사유로 부부 두 명 다 장렬하게 해고당하고 만다.


  이런 이야기들. 등장인물이 몇 명 더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돈과 골동품, 미술품에만 관심있는 샤를 랑줄레. 평생 부르주아로 살며 없는 사람들 내려보며 그들을 천박하다고 여겼던 인간이 피난 길에서 기꺼이 야비한 도둑질을 서슴지 않는 광경. 죄를 받았는지 결국 대가리가 터져 폭포수 같은 선지피와 골수를 흩뿌리며 죽는 라스트 씬까지 다양하게 연출하는 한 세상 등등.

  고집세고, 배타적이고, 가끔 잔인하게 변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사람들을 도와야 할 때가 되면 그렇게 하기를 서슴지 않는 시골 사람들도 등장하고, 부르주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중산층 사람들은 시골의 드난살이 하는 아가씨와의 사이에 애정도 생기고 그렇다. 이런 자잘한 이야기는 섬세한 이렌 네미롭스키가 아무래도 르메트르보다 윗길이겠지? 그렇다.

  지금 깊게는 아니지만 조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 <6월의 폭풍> 다음 작인 <돌체>를 읽어? 말아? 하는 것. 하, 이걸 우짜까?


  이 책에서 제일 웃긴 장면. 고명한 소설가 가브리엘 코르트가 애인 플로랑스한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한 마디 꽝.


  “소설에서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이런 겸허의 교훈보다 더 유익한 건 없어. 생각 안 나? <전쟁과 평화>에서 시골 아가씨들이 웃으면서 길을 건너다가 앙드레 왕자의 자동차 앞을 지나가. 그러다가 그 아가씨들이 자기들에게 말을 거는 왕자를 발견하지. 운운” (p.43)


  앙드레 왕자? 웃겼다.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을 말한다. 러시아의 공작 또는 공을 불어는 모르겠고 영어로 하면 Prince라고 쓴다. 그걸 그냥 왕자로 번역한 것. 그러면 도스토옙스키의 <백치>에서 유로지비급 주인공 미시킨 공작도 미시킨 왕자냐? 알렉산드로 보로딘의 <이고르 공>도 왕자여?

  하나 더 있지?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 앙드레 왕자는 1812년 나폴레옹 전투 때 기치를 높이 들고 “올라!”를 외치며 전장을 누빌 예정이다. 거기서 심한 상처를 입고 연인이며 간호병으로 참전한 나타샤의 보살핌 속에 죽을 운명의 남자인데, 그 시절에 웬 자동차? 모르긴 해도 ‘쿠페’라는 마차의 종류일 터. 역자 이상해 씨는 <전쟁과 평화>를 읽어 보셨을 터인데 우짜 이런 실수를 하셨을꼬? 그것보다 편집부는 교정도 안 보고 뭐 했니?

  아니, 어쩌면 몰라. 네미롭스키, 또는 가브리엘 코르트가 플로랑스의 무식함을 비꼬느라 일부러 왕자니, 자동차니 했을 지도. 그렇다면 이런 것 좀 각주 달아 가르쳐주면 안 됐을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현대일본희곡집 11 ㅣ 현대일본희곡집 11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엮음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2002년에 한일연극교류협의회가 발족을 하고 2024년에 열한 번째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을 했다. 그래서 2024년에 《현대 일본 희곡집 11》을 출간했어야 하는데, 이 책의 두번째 작품인 <오토라고 불리는 일본인>의 저작권자를 수소문하지 못해 차일피일하다가 올해 2026년에 뒤늦게 열한 번째 희곡집을 선보이게 됐다고 한다. 나는 《현대 일본 희곡집 10》을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고, 현대 일본 희곡의 모든 작품 가운데 다섯 편을 골랐으니 당연히 수준이 높겠지, 싶었던 기대가 딱 맞아떨어졌을 정도로 즐겁게 읽은 기억이 나서, 이번에도 출간 사실을 알자마자 득달같이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현대 일본 희곡집 10》은 출판사 연극과인간에서 찍은 반면에 《현대 일본 희곡집 11》은 지만지드라마에서 POD 책으로 판매한다. POD Printed on Demand. 원래 뜻은 독자가 주문을 하면 그때부터 프린트 작업에 들어가 공급해준다는 건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 애초에 아주 적은 양의 책만 초판을 찍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이 초판을 구입하지 못할 경우가 생길 수 있어서 도서관은 POD 책을 희망도서로 사주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내가 《현대 일본 희곡집 10》을 신청해 다니는 도서관에 구비해 놓아, 시리즈 10번에 이어 11번, 연속성을 무시하지 않고 고맙게 사주어 읽었다.

  《현대 일본 희곡집》 시리즈는 한 권에 다섯 편의 희곡을 담는다. 이번에도 다섯 편. 이제 “현대 일본희곡 낭독 공연>의 희곡집을 싸그리 읽는다면 모두 11권에 55편의 희곡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극예술학회에서 《한국현대대표희곡선집》 시리즈를 낸 적 있지만 아쉽게도 시리즈 2번에서 그치고 말아 아쉬운 바가 크다. 이 시리즈야말로 매년 출간하는 게 곤란하다면 격년이나 올림픽 또는 월드컵 열리는 해마다 열 편 정도의 대표 희곡을 선정해 독자에게 꾸준히 소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고, 딱 그만큼 아쉽다. 나도 이 시리즈를 통해 이젠 우리나라 거장 또는 중견 희곡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처음 희곡 읽기 시작할 때 딱 맞는 입문 코스일 터인데.


  그러나, 이번 《현대 일본 희곡집 11》는 지난 번에 읽은 열 번째 희곡집과 비교해서 나하고 맞지 않는다. 조금 덜 맞는다고 말해야 하나? 하여간 그렇다. 모두 다섯 편의 희곡 가운데 제일 앞에 실린 <아버지 돌아오다>를 빼고 나머지 네 편이 전부 일본이 저질렀거나 관계한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근현대사에서 일본이 참여한 전쟁이라면 1894년 중일전쟁, 1905년 러일전쟁,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한 태평양전쟁. 1차 세계대전에서도? 그렇다. 이때 일본은 독일편이 아니라 영국편, 즉 협상국의 일원으로 1914년 8월, 독일에 최후통첩에 이은 선전포고까지 하고, 독일과 전선을 이루어 총과 대포를 쏘면서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지만 주로 해군을 이용해 협상국의 함정을 보호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병력을 호송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물론 그런 척하면서 중국의 칭다오와 남태평양 군도 일부를 꿀꺽 삼켜버렸지만. 아마 이때 일본의 진짜 속셈은 영토, 즉 식민지 확장이었을 거다. 스스로 작은 섬나라라고 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와 싸워 승리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면서 대만에 이어 조선까지 식민지로 삼아 눈에 뵈는 게 없었을 당시니까 무슨 짓을 못 했을꼬.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두번째 작품 <오토라고 불리는 일본인>은 주무대가 상하이와 도쿄. 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상하이에서 시작해 1940년대 초엽의 도쿄까지가 본문이고 이후 1944년이 배경인 에필로그가 붙는다. “오토라고 불리는 일본인”은 작품에서 그냥 “남자”라고 나오고, 존슨이라고 불리는 독일인과 송宋부인이라 불리는 미국인이 이 남자를 “오토”라고 호칭한다. 이 세 명을 포함한 여러 등장인물의 정체는 공산주의자. 이 가운데 미국 이름 존슨이라 불리는 독일 남자는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하여 조국 독일을 버리고 지금은 소비에트 혁명가로의 삶을 산다. 히틀러의 파시즘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머니와 누이가 사는 독일로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는 신념에 불타는 사나이. 이이는 그러나 상하이와 도쿄에서 좋은 술 때려 마시고, 예쁜 여자들과 연애하며 척 보기에 혁명가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호화스러운 삶을 산다.

  존슨이 상하이에 일본 아사히 신문 특파원으로 온 오토라는 남자를 스파이로 스카우트해 만주와 몽골 지역을 포함한 중국 내 일본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다. 진짜 목적은 중국이라기보다 러시아 진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었겠지. 오토라는 일본인도 공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일본인 특유의 민족주의적 개념을 간직한 인물. 이 자가 정말 실재했던 인물이라고 해설에 나온다. 본명이 오자키 호쓰미. 1901년에 태어나 1944년에 스파이 혐의로 사형에 처해졌다고. 오토든 오자키든 간에 이 사람은 일본 사람 대부분을 위하여 일본을 배신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일본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고, 전쟁의 결과 일본과 일본인의 크고 또 큰 피해를 막을 수 없을 터이니, 일본 군부와 파시스트 권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

  희곡을 쓴 사람이 기노시타 준지(1914~2006)라는 인물인데, 1962년에 쓴 희곡으로는, 그 당시 일본인의 세계관이 어땠을 지 몰라도, 딱 그 당시(1930년대 초엽 ~ 1944년)에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를 받은 조국의 역사를 가진 독자가 읽기엔 어딘지 좀 가렵다. 이 오토라고 불리는 일본인이 생각하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과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포함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여 더 그런가 보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하면 단시간 안에 크게 패배할 게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결코 조선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조금 더 확장하면 기껏 쳐들어가 수백만 명을 학살한 중국 내 일본 점령지역에 관해서도 침묵한다.


  마지막에 실린 <조지 오웰 – 침묵의 소리>도 불만이다.

  무대는 영국.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악평에 시달리고 인기도 없어서 늘 배가 고픈 에릭 아서 블레어, 필명 조지 오웰.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BBC의 아시아 방송 담당 어시스턴트 프로듀서로 취직한다. 아다시피 오웰이 인도 태생이다. 한 살 때 영국으로 돌아와 학교를 마치고 버마에서 1년 여 군사경찰 일을 해 이때의 경험으로 <버마 시절>과 <코끼리를 쏘다>를 썼다. BBC는 출생 내력과 책을 보고 인도 담당으로 발탁한 것. 이때 인도 송출 방송 담당자로 인도 출신 여성 베뉴와 남성 찬드라가 있었다. 베뉴와 찬드라는 인도에서 교육을 받고 영국과 영어에 관심이 높아 런던에 와서 일을 하고 있으나 특히 찬드라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이 한 몸 다 바치기를 소원하는 인물이다.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일본군은 차근차근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하더니 지들이 알렉산더라도 되는 줄 알고 인도를 향해 전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인도의 식민 모국인 영국에서는, 조지 오웰조차, 영국 정부는 그저 인도인들한테 미끼만 던지고 있었을 뿐인데 대 파시스트 전쟁에서 독일과 일본의 파시스트들만 물리치면 인도를 독립시켜줄 것이라고 굳세게 믿었다고, 극작가 스즈키 아쓰도는 주장한다. 그러니 당연히 인도인 등장인물 베뉴와 찬드라도 그렇게 믿겠지? 아니다. 스즈키가 이 작품을 초연한 때가 2002년. 이미 영국이 인도를 어떻게 했는지 뻔히 알고 있는데 설마 그렇게야 믿었겠어?

  글의 목적상, 찬드라는 인도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영국을 등지고 일본이 인도를 점령해야 한다, 라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런 건 영국 입장에서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양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꾀하기 위하여 독일과 은밀히 손을 잡으려 애쓴 아일랜드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는 안다. 인도인 찬드라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뿐.

  여기에 다른 이슈가 하나 더 붙는다. 자기가 당시의 화제작품 <하켄크로이츠의 밤>을 쓴 머레이 콘스탄틴의 아내 캐서린 콘스탄틴이라고 주장하는 여성 캐서린 버데킨. 사실 캐서린은 19세기의 조지 엘리엇처럼 남자 필명 머레이 콘스탄틴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여성이 글을 쓰면 하잘것없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라 생각해 그랬다는데, 조지 엘리엇 시절은 모르겠지만 20세기 들어 <자기만의 방>을 주장한 버지니아 울프 이후 시절에도 남성의 이름을 사용해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럴 만하니 이렇게 상정했겠으나, 아마도 이 작품에 식민지 인도, 유색인, 그리고 여성, 이렇게 지배-피지배, 코즈모폴리탄-플래닛 비슷한 구도를 만들기 위한 구성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서도 일본인 극작가 스즈키 아쓰도는 영국 식민지 인도만 열라 떠들면서, 일본의 식민지에 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이 인도를 점령해 인도에서 영국인을 몰아내면 인도를 독립시킬 것이라는 환상을 인도 출신 지식인인 찬드라가 믿고 있다고 설정했으니 좀 웃기지 않나? 이런 의미에서 이번 《현대 일본 희곡집 11》은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말씀.


  이 책에 실린 작품 가운데 세 번째 희곡 <호기우타>가 흥미로웠다. 핵전쟁 이후 폭망한 일본 간사이 지방의 생존자를 무대에 올려 부조리극처럼 만든 작품. 프랑스 희곡에서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들지만 정확하게 어떤 작품인지 지금 떠오르지 않아 탁 꼽지 못해 안타깝다. 기억이 도무지 전 같지 않아서 이거 영 스타일 구긴다. 앗, 생각났다. 프랑스가 아니고 루마니아의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가 쓴 <왕은 죽어가다>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작품.

  제일 앞에 자리를 준 기쿠치 간의 <아버지 돌아오다>는 스타일이 조금 오래 되어 이젠 덜 재미있고, 네번째 실린 <가타부이>는 엿새 전에 읽은 다카야마 하네코의 아쿠타가와 상 수상 소설 <슈리의 말>처럼 하마터면 전쟁 바람에 종족의 씨가 마를 뻔했던 류큐인, 오키나와 사람들 이야기다. 30년에 걸친 미국 지배에서 다시 일본령으로 귀속한 1972년의 한 가족.

  초장에 말했듯이 일본의 대표 희곡 가운데 다섯 편을 골랐으니 작품의 수준이야, 내 취향에 맞건 맞지 않건 간에, 꽤 높은 편이겠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내 입맛이라서, 이번 현대 일본 희곡집 시리즈에는 실망했다고 말해야겠다. 그래서 조금 미안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바라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6
세사르 아이라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949년생 아르헨티나 소설가, 에세이스트, 번역자, 평론가. 대표적인 다작 작가라고 한다. 출간한 책이 백 권이 넘고, 1년에 두 권에서 다섯 권까지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세사르 아이라는 이 책 <바라모>가 유일하다.


  작품의 주인공 바라모 씨를 소개하자면, 1923년에 쉰 살 정도니까 1873년 정도에 파나마 콜론 시에서 그래도 연줄이 좀 있는 파나마 남자 튜뇬 데 바라모 씨와 광동어를 사용하는 중국인 엄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파나마에서는 운하 개통으로 유럽의 아시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게 반어법인지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운하 건설과 개통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의 다양한 곳과 심지어 동유럽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서유럽에서는 주로 엔지니어들이 몰려와 극한 남초 현상이 빚어져 남자들이 결혼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힘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바라모가 나이 들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빌빌 거리자, 아직 살아 있던 아버지 튜논 데 바라모 씨 연줄로 정부 청사의 말단 자리에 넣어주었다. 말단 공무원이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나, 그건 파나마도 마찬가지여서 장가도 들지 못하고 이 나이, 쉰이 될 때까지 가장 한심하고 전형적으로 교과서 적인 남자 루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죽, “연줄로 간신히 일자리를 얻어 근근이 살아가며 어머니 집에 들어 앉아 혼자 가족도 없이 살아가는” 형국이다.


  독후감의 시작을 이렇게 했다고, 이 작품을 서사 위주의 중편 정도 분량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오 산이다. 아무쪼록 독자는 처음부터 긴장을 좀 하고 책을 여는 편이 좋다. 미리 이렇게 말해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바라모가 정부청사에서 퇴근하는 길. 날은 한 달의 마지막 날. 봉급 받는 날이라서 퇴근 전에 경리과에 들러 월급을 받았다. 누런 얇은 봉투에 넣은 현금, 지폐와 동전까지 일일이 세서 담은 봉급을 받는 건 과거의 K 스타일이고, 파나마 P 스타일은 봉투도 없이 그냥 지폐와 동전을 건네주면 그걸 손에서 손으로 받아 그냥 주머니에 쑥 집어넣고 갈 길 가면 되는 모양이다.

  근데 바라모 씨는 이 시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대략 열 시간에서 열두 시간에 걸쳐 긴 시를 한 편 쓴다. 놀랍게도 이전에는 시를 써본 적도 없고, 쓰기는커녕 반 세기 동안 읽어본 적도 없다. 이런 사람이 길고 긴 시를 썼는데, 써 놓고 덧붙이거나 수정한 부분 하나 없이 완성한 것도 모자라, 시가 이날 이때까지 “현대 라틴 아메리카 시의 걸작으로 찬사 받는” 위대한 <아기 예수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중판, 3판, 4판… n판까지 영원무궁토록 찍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숱한 평론가와 시인들은 이 작품을 “언어적 측면에서 가장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고 단정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놀랠 노자다. 바라모는 심지어 이 한 작품에 자기 문학적 인생을 다 소비해 다시는 시를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곳에서 영혼이나마 편히 안식하기를.

  작품의 시작이 위와 같다. 그러면 독자들은 <바라모>는 바라모 씨가 문제의 시를 쓰게 되는 전말이 작품의 주요 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게 맞다. 하지만 어떻게 시를 쓰게 되는지 그 이야기를 납득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걸? 그러면 머리에 쥐 한 번 나 보자.


  시작은 바라모가 근무를 마치고 경리과에 가서 월급을 받을 때였다. 그는 월급을 받는 순간 알았다. 월급으로 받은 지폐 가운데 100페소짜리 두 장이 위조지폐라는 것을. 바라모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위조지폐를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게 위조지폐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 외국에 놀러갔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주운 적 있다. 딱 집어 든 순간, 이게 위조지폐구나, 말로만 듣던 100달러짜리 위조 노트구나, 금방, 거의 본능적으로 알겠더라고.) 그러니 바라모의 월급 속에 100페소짜리 위조지폐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된 건 의심하지 말자(나는 호텔 바에 가서 위스키 한 잔 마시고 위조지폐로 의심되는 돈을 냈다가 무슨 검사를 한 지배인이 위조라고 알려주어 앉은 자리에서 (웃어야 할 거 같아서 웃으며) 박박 찢어버렸다).

  바라모는 말단 공무원. 그냥 시민이라도 그럴 텐데 심지어 공무원이 위조지폐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가지고 있다는 것만 들켜도 당장 감옥행일 것 같다. 바라모는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지도 못하는 한심하고 난처한 상태로 접어든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단 한 번도 시를 써 본 적이 없다. 시 말고도 다른 어떤 장르의 문학 작품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본 적도 없다. 이래서 결국 어떻게 위조지폐와 시라는 관계가 상호 개체성과 보편성을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작품의 핵심(p.108). 아이고, 나도 지금 “개체성과 보편성”이라고 쓰긴 썼지만 써 놓고 다시 읽어보니까 갑갑하기 그지없다.

  이 두 장의 위조지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나’ 바라모 씨한테 왔느냐, 하는 문제. 이것들은 “새로운 이질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바라모에게 도래했단다. 이질성? 여태까지는 가져본 적도, 손으로 만져보거나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위조지폐라는 금단의 것이 무려 두 장이나, 지금 바라모의 오른쪽 호주머니에 들어 있다는 이질성.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퇴근하느라 청사의 정문을 나서니 광장. 자기 앞에 8미터짜리 검정색 세단 관용차가 길을 막고 탁, 정지한다. 자동 창문이 아니어서 운전수가 손잡이를 뱅뱅 돌리니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며, 검은 피부의 운전수가 바라모에게, 노련한 도박꾼인 바라모의 어머니가 딴 돈을 건네준다. 1페소짜리 지폐와, 지폐를 감싸 반으로 접힌 종이조각. 검정색의 8미터짜리 관용 세단 때문에 바짝 긴장했던지 갑자기 당이 떨어진 바라모는 빨간 젤리를 1페소짜리로 사 먹으려 하다 우여곡절 끝에 먹지 못하고 길가 나뭇가지 끝에 걸어 놓았고(책의 마지막쯤 다시 등장한다), 종이에는 알아보지 못할 암호 같은 것들이 마구 쓰여 있다. 이게 무엇일까? 혹시 복권 당첨 번호? 그러나 숫자는 보이지 않는 걸?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 챘어야 했다. 바라모가 쓴 시가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 그런데 1페소짜리 지폐를 감싼 종이에 쓰여 있는 것이 마치 암호 같은 이해하지 못할 문자들. 아방가르드 시를 읽어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현대시를 읽기 위해서는 암호해독기가 필요하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러니 적어도 시가 이 종이에 쓰여진 암호 같은 문자와 조금은 연결이 되겠구나, 이걸 눈치채지 못한 형광등이 누구? 맞다. 나였다. 아이고, 이런.

  바라모의 직업은 종합청사에 근무하는 말단 공무원. 박봉에 시달리느라 장가들 생각도 못하고 여전히 엄마 집에서 빌붙어 사는 쉰 살 중늙은이. 1920년대 쉰 살이면 꼬부랑 할배인 건 파나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바라모가 선택한 부업이 작은 동물 박제 만들기. 이 부업이 바라모가 책을 내게 만들어주는 신공을 부릴 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1920년대 파나마에서는 저작권 개념도 없었고, 그래서 숱한 인쇄소가 중소 출판사를 겸하던 때인데, 이날, 즉 바라모가 월급으로 위조지폐 두 장을 포함해 받은 그날 밤에, 이 출판사 사장 세 명과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자기 부업을 이야기하자, 박제에 관한 책을 내라고, 원고료 2백페소를 주겠다고 해서 그는 나중에 불세출의 시 <아기 예수의 노래>가 될 원고를 쓰게 되는 것.

  그러면 시는 어떤 내용이기에 “언어적 측면에서 가장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를 들을까? 아, 이건 결코 알려드릴 수 없다. 이게 핵심이라서. 다만 노련한 도박꾼 어머니의 침대 매트리스 영수증하고 관련이 있다는 말만 찔끔 일러드릴까? 그래도 될까 싶지만 뭐 이 정도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