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3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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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가 아닌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은 2021년에 문학동네가 <루시>의 정소영 번역으로 출간해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이어서 1년 후에 찍은 소설이 <애니 존>. 이 외에도 전에 읽은 킨케이드가 <내 어머니의 자서전>하고 <미스터 포터>. 그러니까 <애니 존>이 네 번째 읽는 킨케이드라는 말인데, 이이가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분량은 사실 ‘장편’이라 말하기 민망하지만 구성으로 보면 장편인 건 맞는 듯.

  그러나, 실제로 자기 주변, 부모와 자신을 포함한 경험담 비슷한 걸 쓰는 데 특화된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짧지는 않은 장편을 미리 세 권 읽었으면, 앤티카 바부다 섬의 세인트존스 사람들과 부모 이야기는 다 읽은 셈이다. 2005년 현재 3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던 작은 도시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저러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고 있으며, 유별난 혼인과 혼외자 같은 것까지 몽땅 알고 있는 처지에서 <애니 존>을 읽게 된 꼴이다.


  <애니 존>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애니가 열 살 때 시작한다. 세인트존스 디킨스베이 스트리트 주택가에서 아버지가 손수 지은 집의 지붕을 수리하는 동안, 때마침 여름방학이라서 한참 외곽 지역인 포트 로드에서 살았던 짧은 이야기부터.

  왜 여기서 작품을 시작했을까? 어린 나. 이제 죽음에 관하여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마당에서 보면 저기 공동묘지가 보인다. 열 살 먹은 애니는 무덤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무서워한다. 언제 다시 애니 앞에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 때로는 꿈에도 나타난다. 엄마는 자신이 낳은 애니의 오빠를 포함해 아는 죽은 사람이 많다.

  얼마 후 시내에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어느 날 애니보다 어린 ‘날다’가 엄마 품안에서 죽는 일이 생긴다. 엄마 친구의 빼빼 마르고 고열에 시달리던 딸. 날다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엄마와 엄마 친구가 아이를 의사 베일리 선생한테 데려가던 중에 엄마 품에서 축 늘어져 그걸로 끝이었다. 날다의 엄마는 울기만 해서 엄마가 염을 비롯해 장례 일습을 맡았다. 애니는 보았다. 엄마가 손으로 죽은 날다의 얼굴을 쓰다듬고, 물로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고 그렇게 죽은 아이를 만진 것을. 그 손으로 애니 자신의 머리를 빗질하고, 음식을 만들어 애니의 몸 속에 집어넣게 하는 것이 끔찍했던 기억.

  이어서 죽은 여러 사람을 떠올린다.

  애니보다 두 살 더 많지만 작은 체격의 지진아 소니아. 애니가 무척 좋아한 아이라서 소니아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괴롭혔던 아이. 임신중이던 소니아의 엄마도 갑자기 죽었다. 2년 동안 더 같은 반이었지만 이후로는 도무지 말을 걸 수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죽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다니, 너무 망신스러운 일 같았다.

  날다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길 건너 이웃인 미스 샬럿이 엄마와 서서 이야기하다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애니는 장례식을 쫓아다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숱하게 보았는데 그저 호기심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이웃 학교에 다니던 곱추 여학생이 죽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묻히기 전에 곱사등을 한 번 만져보고 싶었단다.


  2장으로 넘어가면 이제 아빠가 등장한다. 엄마보다 서른 다섯 살이 더 많은 늙은 아빠. 집도 짓는 큰 목수. 집안의 자잘한 모든 불운은, 아빠가 사랑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수많은 여자들 가운데 아빠의 아이를 낳은 누군가가 엄마와 애니한테 저주를 걸어 해를 입히고자 하기 때문에 생긴 일로 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사실 저메이카 킨케이드 본인이 아빠가 사랑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여자가 낳은 딸이라는 것을. 이미 아빠의 사랑이 식어 엄마 손을 잡고 찾아간 아빠는 엄마도, 친딸 킨케이드도 마치 소가 닭 보듯 했다는 것도. 이런 것들에 관해 킨케이드와 엄마도 별로 앙심을 품지 않고 살았다는 것도.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며, 그저 앤티카 바부다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까지.

  그러니 <애니 존> 2장부터 등장하는 아빠가, 부모 가운데 특히 아빠가, 엄마보다 서른다섯 살이나 더 많아 무척 늙었을 아빠가 애니와 더 돈독한 정을 나누는 걸 보고 의외라고 생각할 수밖에. 아무래도 처음 쓰는 장편소설이라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기가 좀 뭐했던 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미혼모가 키우는 혼외자 가정이라는 게 그리 자랑은 아니잖아, 1949년생이라면.

  이후 애니 존이 사는 이야기는 이미 다른 작품을 통해 다 한 번씩은 읽은 내용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했고, 열일곱 살이 되어 더 높은 공부를 하기 위하여 영국 유학길에 오르고 기타 등등. 성숙해가면서 가랑이에 터럭이 돋고, 초경을 하고, 가슴은 그다지 커지지 않는 이야기까지. 딱 하나 이 책에 나오지 않는 건, 열일곱 살 때 영국이 아니라 미국 뉴욕주 한 가정에 ‘루시’라는 이름의 입주보모로 들어가 사는 이야기만 빼고.

  그래서 이 책을 2022년에 읽지 않고, 다른 킨케이드의 작품을 제법 거친 다음에 읽으면, 별로 재미있지 않다. 139쪽에 본문이 끝나는 짧은 소설임에도 심지어 지루해지기까지 했다. 그저 자기 스토리에 자잘한 변주를 한 작품으로 읽힐 뿐. 한 작가의 소설은 역시 발표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니까. 그렇게 읽었으면 확실히 더 재미있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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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9-02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가장 대표작을 읽고나면 나머지가 좀 썰렁해지는 거 있죠. 그래서 순서도 잘 잡아야 하긴 하는데 그래도 어떤 작가를 처음 만나면 왜인지 그가 제일 잘 쓴걸 읽고싶긴 하더라구요. ㅎㅎ

Falstaff 2026-09-02 21:1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도 그렇더군요. 작가들도 비슷한 모양이더라고요. 노벨 상 받으면 이후 작품들이 시무룩한 경향이 잦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뭐 사람들이 거의 비슷.... ㅎㅎㅎ

dhk7112 2026-09-0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9쪽에 본문이 끝나는 짧은 소설임에도 심지어 지루해지기까지 했고 자기 스토리에 자잘한 변주를 한 작품으로 읽힐뿐이다

Falstaff 2026-09-02 21:16   좋아요 0 | URL
책 읽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그저 볼불복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