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벨로 1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2
솔 벨로 지음, 김현우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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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이면 재미난 책을 올해 가장 더울 때 읽었다. 에어컨을 켜고 자면 우라질 적정온도와 바람의 세기, 풍향 같은 것에 여간해 적응하지 못해 밤새 쪽잠을 피할 수 없고, 그나마 새벽에 눈이 떠진다. 어쨌든 덥지 않게 잔 건 좋긴 하지만 하루 종일 졸리고, 후텁지근하고, 얼음을 탔거나 말거나 하여간 찬물만 들이켜 뱃속에서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아서, 서늘한 도서관 열람실, 시민 혹서기 피난처이기도 한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기는 읽지만 도무지 컨디션이 엉망이다. 이런 상태로 읽었다. 겨우 520쪽 분량의 책을 3일 반이나 걸려 읽기는 읽었어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읽는 것도 무리인 것이 예약 대기중인 이용자가 두 명이나 있어 대출기일 연기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혹서기에 가끔 겪는 일인데, 이번엔 솔 벨로의 절묘한 소설집 《솔 벨로 1》이 걸려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 줄은 알겠는데, 이게 문장과 문장, 구절과 구절 눈에 들어오면서 즉각 무릎을 쳐야 마땅하거늘 도무지 천근 같은 눈꺼풀이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이와 관련한 대뇌 전두엽이 졸음에 겨워 접수를 거부한다. 한여름만 아니었어도 즉각 집으로 후퇴해 낮잠 한 번 때린 다음에 다시 책 읽기를 이어가면 쉽게 해결되겠건만, 그 생각으로 가방 챙겨 집에 돌아올 수도 없다. 집엔 전기료 무서워 거실 큰 에어컨도 철수해버렸다. 그러니 무시무시한 습기와 온도를 버티면서 책을 읽는 건 포기. 그래서 여름 들면 읽는 양도 팍 준다. 지금이 그 시즌이다. 열흘 동안 네 권.


  《솔 벨로 1》 안에는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전부 솔 벨로처럼 유대인계 미국인이고, 예술 부분에 크게 한 자리하고 있거나 핏줄 속의 유전자 혜택을 받은 부르주아들이다. 딱 한 편만 빼고. 첫번째 작품 <그린 씨를 찾아서>는 유대인인 것처럼 보이는 백인 미국인. 시절은 공황기. 서른다섯 살의 시카고 토박이 조지 그리브. 당시에는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았던 대학 졸업자. 라틴어와 프랑스어도 자유롭게 사용하며, 대공황 직전까지 성 올라프 대학교에서 고전문학 강사도 했고, 1926년부터 공황이 덮치기 전까지 2년 동안 문학 연구원에 다녔지만 당연히 해고당했다. 이후 스톱앤숍에서 육류 통조림 판매 일도 하고, 골드불래츠에서 창문 차양도 팔았고, 심지어 신발 판매원이기도 했다. 주로 특정일, 특정 시간에만 일하는 시간제 노동이었는데, 이는 될수록 많은 실업자에게 조금이나마 소득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했던 당시 정부의 정책이었던가 보다.

  지금은 프레리 애비뉴에 있는 지역 구호소에서 일한다. 이 일자리도 쉽게 구한 건 아니었다. 시 법률 고문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학교 친구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친한 친구가 아니었지만 갑자기 조지 그리브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구해준 자리였는데 은근히 자기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어할 수 있어서 그걸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배고파 죽겠는데 그까짓 것쯤이야. 맡은 일은 사무실의 가장 말단. 심지어 사환이라 불러도 별로 이상할 거 없는 일이었으나 그런 거에 신경 쓸 시기가 아니었다.

  조지에게 작업 명령을 내리는 직속 상사는 조지보다 어린 나이의 레이너. 레이너가 일을 주었다.

  이곳 지역 구호소에서 보호해야 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은 대개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창고 건물이었던 프레리 애비뉴의 구호소에 출두하여 서류에 서명하고 생활보조금을 수령해 가야 하지만,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당했거나, 질환이나 장애 등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들 한테는 임시직을 포함한 특정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보조금액에 해당하는 정부발행 수표를 건네주어야 하는데, 사무실의 젊은 수석 레이너가 조지 그리브가 바로 이 일을 시킨 거였다. 1940년대 말, 미시간호에서 불어오는 얼음바람이 건물 사이를 칼처럼 베며 횡행하던 한 겨울에.

  그리하여 그리브는 프레리 애비뉴의 건물에서 외투와 모자 차림으로, 속주머니에는 수표책을 두툼하게 지닌 채로 길거리 포도에 발을 딛고 섰는데, 아뿔싸, 레어너의 사무실에 장갑을 벗어 그냥 두고 나온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솔직히 대학을 설렁설렁 나온 것도 아니고 유대인스럽게 열심히 열공, 닥공해서 대학의 고전문학 강사와 문학 연구원硏究院의 연구원硏究員 생활도 하던 인텔리겐치아 출신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이 약간 빗나갔거나, 아니면 신분상의 이유로 도피중일 지도 모르는 털리버 그린 씨를 찾아 시카고의 흑인 전용 주거구역의 음산한 지역에 있는 아파트 3D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 반가울 수 없었겠지? 아니다. 우리의 주인공 조지 그리브는 대공황의 손톱에 하도 할큄을 당해 이런 일쯤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하여 낡기는 했지만 실크 바지를 입은 복지사의 자격으로 흑인 구역을 돌아다니며, 이렇게 추운 날, 몸에 아무런 천도 걸치지 않은 완전 나신으로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내려와 문을 열어준 50대의 뚱뚱한 흑인 여성 앞에서 잔뜩 주눅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말 다 하고, 할 일 다한 것처럼 스스로를 위안해가며 하루 일을 끝마치는 일.

  이게 《솔 벨로 1》 제일 앞에 실은 1951년 작품 <그린 씨를 찾아서>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오기 마치의 모험>, <허조그>, <비의 왕 핸더슨>, <오늘을 잡아라>, <험볼트의 선물> 같이 장편소설로만 알려진 솔 벨로스러운 작품을 읽으려면 점점 더 책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오기 마치의 모험>은 하도 오래 전에 읽어 가물가물한데, 내 기억에 그 책을 읽다가 잠깐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적어도 해당 에피소드가 끝날 때까지는 오리무중을 헤매는 당나라 군졸처럼 정처를 잃거나, 저 앞으로 책을 넘겨 안개가 덮치기 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한 번 더 읽기를 해야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솔 벨로의,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한 철학, 예술, 역사, 종교 등에 관한 사색이, 좋은 말로 하면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 같고, 좀 비껴서 말하자면 잘난 척 하나는 정말 세계챔피언 급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오기 마치의 모험>은 두 권 분량의 길고 긴 로드무비였으나, 이 책 뒤편에 실린 두 작품,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와 <오늘은 어땠나요?>는 길어봤자 1백쪽과 1백쪽을 조금 넘는 분량이라, 읽다가 맥을 놓치는 경우가 생겨도 가뿐하게 뒤로 돌아가 다시 읽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유대인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무지막지한 과시와 지적 허풍과, 뭐니뭐니해도 세상 어떤 민족과도 비교 불가능한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피력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으로 채점했는데, 초두에 말했듯 하도 더워 컨디션이 망가진 내 탓이지, 이 책 《솔 벨로 1》 안에 든 작품들에 별 하나를 깔 만한 흠을 발견했거나, 하다못해 있기는 있지만 오탈자가 눈에 거슬리는 수준이라든가, 현대문학이 나한테 만원 꿔 갔는데 아직 안 갚고 떼먹어서도 아니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아무리 독후감을 후지게 썼어도 이것 때문에 일독을 머뭇거릴 필요가 1도 없다는 걸 꼭 말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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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의 긴 여행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유디트 헤르만 지음, 우영주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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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디트 헤르만, 신간이 나온 걸 알아챈 순간 곧바로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 헤르만의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는 장편소설일 듯하다. 이이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이 감각적인 문장이 가득한데, 비록 한여름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딘가 섬뜩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서늘함이 도사리는 글들.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 그러니까 30년은 채 되지 않은 때,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화자 ‘나’가 현재 마흔일곱 살이니 스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중소도시의 신축건물 원룸 꼭대기 층에 살며 담배공장에서 일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나’는 담배공장 생산 라인에서 담배를 일정 길이로 절단하는 기계 앞에서 불순물을 거르는 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공정에 서서 일한다. 자동장치라 알아서 처리를 하지만 혹시 불순물이 끼어 있을 경우 ‘나’가 제거하는데, 독자는 칼날이 위에서 아래로 철커덕 내리치는 공정에서 맨 손으로 제거하는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공장에서 유일하게 귀마개를 하고 일을 하는 직원. 함께 일하는 동료한테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는 ‘나’. ‘나’의 즐거움은 5층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며 주유소가 바라보이는 전경을 내려다보는 일. 여름엔 주유소에 달려 있는 작은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도 일과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이 작은 가게에서 일이 벌어진다.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사서 계산을 하려는 순간, 문을 열고 깔끔한 검은 양복을 입은 백발의 중년 신사가 등장한다. 167cm, 절대로 작지 않은 키의 ‘나’를 보더니 “적당히 작은 키군요. 딱 좋은 키네요.” 꿍꿍이가 없는 어투로 말한다. 적당히 작다는 건 자신의 트릭을 기준으로 충분히 작고 알맞다는 말이란다. 그의 직업은 마술사. 자기 상자에 젊은 여자를 넣고 상자의 중간을 톱으로 썰어버리는 통 마술. 너무 자주 공연하여 이제는 조금 뻔한 마술이지만 현장에서 보면 여전히 섬뜩하고 작은 비명을 멈출 수 없는 모양이다. 마술사는 아내와 함께 크루즈 선 오로라호를 타고 3개월간 싱가포르를 왕복할 예정이다. 오로라호 전담 마술사이며 일주일에 세 번 공연을 한다. 통 마술에서 자신을 보조했던 여성이 그만 두어 ‘나’를 채용하고 싶어한다. 그는 ‘나’에게 주소를 가르쳐 주고, ‘나’는 그가 아내와 사는 외딴 방갈로에 방문한다.

  침대 외에는 거의 가구도 없고, 치장도 없어서 빈 집 같은 방갈로.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하는 떠돌이, 방랑자일 터이니 집을 꾸밀 필요가 없다. 집도 굳이 자기집일 이유가 없다. 마술사와 그의 아내는 보조 여성이 해야 하는 일을 설명하고 곧바로 통 마술을 연습해본다. ‘나’는 작은 통에 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전에 누군가가 누워 있던 자리에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 통 속이 답답하지만 생각보다 편하다. 그런데 이 순간, 마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정말로 톱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두 토막 내려는 건 아닐까?

  그건 아니었고, 연습이 끝나자 마술사는 일주일 후에 출발할 테니 월요일 낮 12시에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거기서 기차 타고 항구로 가서 같은 날 저녁에 떠나는 배 오로라호에 승선할 예정. ‘나’는 선실 하나, 즉 독방을 사용하게 되며, 선창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나’의 주변을 다 정리하고, 즉 육지에서 ‘나’의 흔적을 모두 없앤 후에 바다 위의 크루즈 선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몸이 잘려야 하는 여자가 된다.

  ‘나’는 담배공장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만 두었다. 생각보다 많은 짐을 정리하고 트렁크 하나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추려서, 비가 철철 오는 여름 대낮에 ‘나’의 집을 나섰다. 결론적으로 ‘나’는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고, 대신 오티스를 만나 결혼했고, 딸 앤이 생겼다. 앤이 성장해 열네 살에 첫 문신을 하고, 열여덟이 되자 집을 나서 긴 여행을 시작했고, ‘나’는 오티스와 이혼해 버렸으나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문자도 주고받으며, 가끔 전화도 한다. 마술사는, 이렇게 초반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영원히.

  그러나 적어도 두 장면은 남는다. 5층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던 주유소가 있는 도로 장면과 톱으로 썰기를 기다리는 통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 그러나 실제로는, 톱질 당하는 여자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30년쯤 지난 후에야 그 여자가 기억이 나서, 작품 또는 최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30년. 기억을 충분히 왜곡시킬 수 있는 시간.

  ‘나’는 거의 1년 동안 오빠가 살고 있는 동해안에서 살았다. 오빠 사샤는 젊은 시절에 활동적이었던 사람이지만 나이가 들어 이젠 허풍 심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걸로 호가 났다. 주로 동네 점잖은 사람들이 모이는 조용한 술집에서 출입금지 처분을 당했을 정도로만 여기면 된다. 비록 그 술집에서 일하는 스물한 살의 여성 종업원과 새로이 연애를 시작한 50대 후반의 남자이기는 하지만.

  스물한 살의 니케가 등장하면서 다시 통 이야기가 나온다. 니케는 어렸을 때부터 상자에 갇혀 지내는 날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니케를 상자에 가두어 놓고 한 시간씩, 때로는 며칠 동안 어머니의 상황에 따라, 어디에 가야 하거나, 손님이 오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자기 멋대로 가두어 두었다, 라고 주장한다. 그 안에서 니케는 울었을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위해 반항 비슷한 것을 했을 수도 있지만, 이 가둠을 당하는 일은 제법 많은 나이까지 지속되었다. 아이였을 때부터 당한 일이라 10대가 되어도 쉽게 반항하거나 뛰쳐나올 수 없었을 지 모른다.

  ‘나’의 옆집에 사는 유일한 이웃, 미미. 미미는 젊은 시절에 잠깐 동안 오빠의 연인이기도 했다. 미미의 집에서 미미의 어머니 암케가 침대까지 가져다 준 아침을 먹은 날부터 시작한 돼지 농장일을 사샤는 견디지 못해 도망쳤던 일이 있다. 이후 미미는 조각과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지냈다.

  미미. 동쪽 해변가 간척지에서 가릴 것이 없는 여자. 추운 초여름에 나신으로 수영을 하고, 커튼을 달지 않은 집 안에서는 전혀 거칠 것 없이 생활하는 이. 미미가 먼저 ‘나’에게 접근해 친해지고, 오빠와의 짧은 연애 이야기도 들려주기도 했으며, 함께 잔뜩 술을 마시기도 한다. 둘이 자전거를 타고 907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동생 아릴드의 집으로 쳐들어가 밤새 술을 마시는 통에 ‘나’를 아릴드의 침대에 오르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릴드 역시 ‘나’의 침대로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새벽 네 시만 되면 자기 휴대폰에서 울리는 모닝콜에 득달같이 일어나 돼지를 치러 가는 남자.

  ‘나’는 넓은 오빠네 집에서 살아도 되지만 해안 간척지에 있는 단독주택을 얻는다. 2층은 혹시 앤이라도 오면 지내라고 침대 하나를 놓았을 뿐 비어 있고, ‘나’의 생활은 전적으로 1층에만 국한한다. 이 동해안 간척지에서 집을 얻은 것이 1월 초. 매섭게 추운 날이 지속되었고, 2월이 되자 그때까지 몰랐던 동풍이 몰아쳐, 잠을 자는 새 분명히 닫은 현관이 열려 찬 기운이 방에까지 들이닥쳤으며, ‘누가 열었을까? 저절로 열렸을까?’ 무섭게 서늘한 생각이 들어 호신용 스프레이, 재크나이프, 전남편 오티스가 준 호신용 공포탄 권총 한 자루를 침대 밑에 두기 시작했다. 공포탄이라 해도 그걸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하면 맞은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할 수도 있다. 그런 줄도 모르니까 아릴드는 편하게 침대에 오를 수 있었겠지. 궁금하지? 권총이 소설에 등장하면 언젠가는 발사할 수밖에 없다고? 안 알려드린다.

  게다가 갑자기 천장 한 모퉁이부터 저쪽 모퉁이까지 작은 짐승이 화다닥 달려가는 소리. 뭔가가 천장에 있다. ‘뭔가’가 무슨 동물인 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데, ‘나’가 도움을 요청한 돼지농장 주인이자 이혼남, 이라기보다 아내가 도망친 남자의 의견에 의하면 담비란다. 아릴드는 담비 덫을 적당한 장소에 설치하고 성호르몬을 묻힌 돼지 비계를 달아 담비를 유혹하건만 색깔이 찬란한 고양이가 한 번, 검정색의 새 한 마리가 한 번 걸릴 뿐이다.

  이렇게 거의 완전히 고립된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황량한 벌판과 물, 간척지, 바다가 널려있는 풍경. 쓸쓸하고 고립되었으며 무언가 불행한 일이 곧 생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의 연속. 이게 헤르만을 읽는 즐거움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이의 벌판은 단편 쪽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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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9-29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간 나온 걸 기억하는데, 폴스타프 님 4별이라 궁금하네요.
근데 품절이라니 사두기만 하는 저를 위해서는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요 ㅎㅎㅎ

Falstaff 2026-09-29 16:26   좋아요 0 | URL
지금 보니까 품절이네요? 왜 그랬을까 궁금합니다. 계약에 문제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20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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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츠카야가 예순세 살 때 발표한 2006년 작품. 이 양반 책은 빠짐없이 다 읽었는데도 몇 권 되지 않는다. 아직 번역해 나오지 않은 작품/책도 많다. 그런 것들도 나오기만 해봐라, 당장 읽어버릴 태세. 이 정도면 나, 울리츠카야 팬 맞지?

  이번에 읽은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념비적인 “200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이이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정말로 1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방금 전에 다 읽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도서관 여러 곳 가운데 나 다니는 도서관에 이 책 딱 한 권 있다. 근데 아직 예약한 이용객도 한 명 없다. 흠. 울리츠카야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는 모양이군. 어쩌면 본문만 730쪽에 달하는 분량 때문일 것도 같다.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커다란 초록 천막>은 두 권, 천 쪽을 넘어가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많이 팔리지 않았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유대인. 소련의 바시키르 자치 공화국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대학까지 마친 러시아 사람이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하도 열을 받아 독일로 이사해 버렸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쿠바, 북한, 동구권의 수다한 나라들을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핑계로 1인 장기집권만 도모했던/하는 좌익 파시스트 경찰 집단일 뿐이지 공산주의는 무슨 공산주의.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리가 울리츠카야와 또래의 구 소련 여성 작가들이다. 이들은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작품을 쓰지 않았거나 쓰더라도 마음이 비슷한 소수의 자기들끼리 돌려 읽는 정도로만 국한했다. 울리츠카야 역시 지하출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게 발각나자마자 유전학연구소의 연구원 자리에서 해고당해 버렸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유대인 극단. 거기서 희곡 또는 연극 대본도 쓰고, 시나리오도 썼다가, 70년 만에 볼셰비키가 역사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소설을 쓰기(또는 출간하기) 시작하여 대박을 친다. 사실 내가 정말 기대했던 40년대생 소련 여성 작가는 이이보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간 어처구니없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민주적이어야 하는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소련 작가들은 오히려 더욱 숨도 쉬기 어려워했으니, 이건 생각 자체를 국가 또는 정권에서 원하는 프레임에 가두어 두었다는 뜻이다. 공산주의를 주창했던 마르크스가 자기의 믿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을 알았다면 런던의 하이게이트 무덤에서 벌떡 일어섰거나, 후세 누구보다 더 맹렬하게, 자기가 주장한 공산주의를 철회하겠다고 고집하고 나섰을 터.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소개하는 글에서는 “일년의 반은 모스크바에서,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에서” 지낸다고 했었다. 유대인이 형제자매, 또는 친척, 아니더라도 사돈의 팔촌은 틀림없이 살고 있을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하고, 간 김에 좀 오래 체류하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아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까, 이이는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을 쓰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옆집 드나들듯이 했던 것 같다. 집필 기간만 해도 근 10년에 육박했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눈치 채셨지? 주인공 ‘다니엘 슈타인’ 역시 이름에서 떡 알아차릴 수 있는 유대인. 그리고 활동 무대가 이스라엘?


  다니엘 슈타인은 1922년 정도에 남부 폴란드에서 난 유대인이다. 한 눈에 탁 봐도 당시에 폴란드에서 살던 유대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게 태어났다. 기본이 처형 또는 피살 또는 학살 대상자이고 최하로 쳐도 중상 수준. 폴란드에서 자랐으니까 폴란드어는 기본이고, 소련 말도 모국어 수준으로 잘 했을 터인데, 여기다가 천부적으로 어학에 재질을 보여 독일어, 그리스어, 유대인이니까 이디시어와 히브리어까지 줄줄 꿰고 살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디터’라는 독일식 이름도 가지고 있어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바람에 기구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전쟁이 터지자 다니엘은 피난을 떠나야 했다. 1차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 군인으로 참전했던 전력을 가진 아버지는 그냥 독일 치하에 남고 싶었지만 몸이 아픈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해 부모와 두 아들이 엄마를 마차에 태워 길을 떠났으니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었다. 3주 동안 기다렸다가 억지로 얻어 탄 기차가 폭격을 맞아 다시 걸어가야 했는데 당연히 그동안 독일군이 이들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가뜩이나 집 떠나면 개고생이건만 하물며 전쟁중이었으니 말도 못했겠지. 부모는 상의 끝에 형제에게 은수저 네 벌과 가진 돈을 모두 주며 어떻게 해서라도 팔레스타인에 도착하라고 당부했다. 당신들은 그냥 그곳에 머물겠다면서. 그때가 1939년 11월. 다니엘은 열일곱, 동생 아비그도르는 열여섯. 당연히 부모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이었다.

  형제는 갖은 고생을 하며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도착했는데, 이렇게 독후감 쓰다가는 날 샐 거 같아서 딱 잘라 말하면, 형제는 어찌어찌 헤어져 아비그도르는 무사히 팔레스타인에 도착해 멸절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럽출신 유대 여성한테 장가들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던 반면에, 형 다니엘은 방랑의 와중에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 엠스크에서 독일군한테 잡히는 신세로 떨어진다. 근데 다니엘, 아니, 디터는 검은 머리카락 등 생긴 건 어째 유대인인 것 같건만 이름도 독일제고, 독일 말을 진짜 독일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데다가 소련말, 폴란드말, 게다가 그리스, 프랑스말,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영어까지 능숙해 놀랍게도 독일 경찰에 스카우트되어버린다. 독일 경찰? 전시에 무슨. 쉽게 말해 게슈타포의 통역관이 되는 것. 하늘이 다니엘을 도와 또 이 게슈타포의 지역 사령관이 상당한 인류애를 가지고 있는 독일군이기까지 해, 결국 독일 장교가 눈치껏 다니엘의 목숨을 살려주는 천운을 만난다.

  통역사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느냐 하면, 엠스크의 게토에 모여 사는 유대인을 탈출시켰다. 늘 통역사를 비서 겸해서 옆에 두고 일을 하던 사령관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리하여 작전 수행 날짜를 통보 받았는데, 다니엘이 그걸 알아차렸다. 게토 안의 유대인을 전부 총살하라는 명령.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이 정보를 곱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다니엘도 게슈타포 정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저게 지금 거짓 정보를 주고 탈출을 시도하면 그걸 핑계로 우릴 죽이려 드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독일인이 악질이라도 게토에 사는 5백명이 넘는 유대인 전부를 총살시키지는 않을 터이니까. 7백쪽이 넘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대단히 머리가 좋은 다니엘은 결국 정보를 넘겨주는 데 성공하고, 게토 안의 건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3백명이 처형 이틀 전에 밤을 도와 탈출해버렸다. 이들은 유럽의 ‘검은숲’에 들어가 파르티잔 활동을 시작하고.

  이게 죽어 마땅한 죄 1번.


  게토 안에 남아있던, 주로 늙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은 작전대로 몽땅 총살당했다. 그러니 숲에 든 유대인들이 열을 안 받아? 하지만 아무리 파르티잔을 한다 해도 먹을 것과 무기가 있어야 뭘 해도 할 터인데 빈손 신세. 다니엘은 먹을 건 대책이 없어도 무기는 공급해줄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주로 소련군이었던 적군의 총기를 어디에 보관하는 줄 알았다. 그곳을 기웃거려보니 작은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었고, 아직 살이 붙기 전인 다니엘을 그곳에서 무기를 꺼내 유대 파르티잔에게 건넨다.

  이게 죽어 마땅한 죄 2번.

  세상의 진리 가운데 하나. 비밀은 없다. 다니엘도 두 사실이 발각됐다. 배신자가 있었다. 유대 역사상, 하긴 유대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이 다 그렇지만, 베드로 이후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유대인종 답게 한 명이 사령관에게 다니엘을 고발했다. 그리하여 다 죽게 된 그는 앞에서 말했듯 사령관의 아량으로 눈치껏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한다.

  게슈타포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탈출한 다니엘은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동유럽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남고, 와중에 아련한 플라토닉 첫사랑도 경험하는데, 특히 수녀원의 수녀들이 내가 봐도 목숨을 걸고 보호해주는 수준이었다. 하여간 전쟁이 끝나고, 놀랍게도 동유럽의 포그롬에서 생존한 다니엘은 전쟁이 끝난 후에 곧바로 폴란드로 돌아간다. 확률은 전혀 없지만 혹시라도 부모가 살아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아니었고, 다니엘은 시나고그 대신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가, 신부의 신분으로 이스라엘에 몇 달 예정으로 파견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이후 몇 십년,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샘의 엘리야 교회’에서 일한다.


  아시다시피 나는 종교 이야기가 질색이다. 근데 <통역사 다니엘 슈타인>의 7할이 종교에 관한 내용.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기독교도 로마 가톨릭, 그리스/러시아 정교, 개신교. 이렇게 한 신을 섬기는 다양한 종교가 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만 일삼아서 되겠느냐는 일갈인데, 아, 씨, 나는 관심이 없는 걸 우짜냐고?

  다니엘의 직업 부터가 쇼킹이다. 유대인 출신의 가톨릭 사제. 심지어 훗날 교황이 되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동기. 요한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다. 다니엘 슈타인보다 두 살 더 많다.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 작품 속에서 (과장해서 말하자면)이단 행위로 고발당한 다니엘이 맨발의 카르멜 교단과 예루살렘 총대주교청을 거쳐 바티칸의 신앙교리성 장관과의 면담까지 한 다음에, 당시 교황인 보이티와, 요한 바오로 2세와 오리지널 폴란드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열라 재미있게 읽었다가, 난데없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이스라엘에 파견된 다음부터 길고 긴 종교 이야기에 팍 질려버렸다. 심지어 내가 이걸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것 자체가 오병이어만큼이나 기적같다. 그러니 종교 이야기는 그만하고 가톨릭 신자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한 수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미사. 이건 내가 알기로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제사라고 알고 있다. 신부는 이 미사를 집전執典하는 책임을 진 사람. 내 주위의 친척, 친구, 술친구 가운데도 유난히 가톨릭 신자가 많은데, 이들은 하나같이 “미사를 본다.”라고 말한다. 근데 왜 미사를 “본다”라고 말할까? 예식하는 장면을 보는 건가? 이 책에서도 미사를 본다고 하는 표현이 제일 많았고, 딱 한 번 “미사를 드리다.”라고 쓴다. 비슷하게 “미사를 바치다.”라고도 쓸 수 있을 듯. “미사를 모시다.”나 “미사를 지내다.”라는 말도 괜찮을 거 같은데, 이 전례에 완전히 무식해서 뭐라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내 물음은 왜 “보다”라는 동사를 미사에 적용하는가, 하는 거다. 새삼스레 사전에서 “보다”를 검색해봤는데, 미사하고 연결되는 동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게 좀 많다. 타박하지 마시고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니 알려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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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9-28 0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니까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해 독일로 이사가 버린 작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해 지도자를 살해한 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쳐 했을까? 이스라엘 만세다, 했을 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이이가 어떤 견해를 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심하게 유감이다.

coolcat329 2026-09-2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전쟁 배경 소설 좋아해서 이 책 샀는데 중간에 종교 이야기라니... 괜히 샀나 싶네요. ㅠㅠ

Falstaff 2026-09-29 04:52   좋아요 1 | URL
전쟁 이야기까지는 재미있었는데요. 그래도 울리츠카야니까 걍 읽어보세요.

잠자냥 2026-09-29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 현재의 이스라엘이 하는 짓이랑 겹쳐져서.... 심적으로 삐딱하게 되더라고요. 흠... (다니엘도 미워 보임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9-29 16:27   좋아요 1 | URL
막 신경질까지 나던 걸요. ㅋㅋㅋ

천학비재 2026-10-15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냉담자인 저도 미사를 본다는 말은 잘 모르겠고,미사를 드린다는 보통 가족 중에 돌아 가신 분의 기일에 기념 미사를 성당에 신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Falstaff 2026-10-15 18:20   좋아요 0 | URL
제가 얻어 듣기에도 우리나라 천주교회에는 미사 본다는 말을 굉장히 언짢아 한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처음 중국을 통해 들어올 당시 중국말로 첨례瞻禮라고 했는데, 이때 첨瞻이 볼(watch) 첨 자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잠으로 바뀌며 미사를 본다, 라고 했던 거 아닌가, 하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더군요.
제 주변의 가톨릭 열성분자들은 거의 다 ˝미사를 본다˝라고 하더군요. 친절한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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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잘 쇠셨기 바란다.

시간이 남는다. 여유로워 좋다. 오늘은 새로 버린 책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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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많다. 망설였던 것이 이기영의 <민촌>과 이기서의 <강릉 선교장>. 이기영은 뭐 말 할 필요 없는 작가의 명품 리얼리즘 작품. 강릉의 선교장은 나 어렸을 적에 직접 그 집에서 자본 적이 있어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라 더욱 그랬다. 연못 정자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 속 이주사, 정여사의 젊은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굳이 옛 앨범을 들춰보기는 싫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앨리 스미스의 <호텔 월드>, 르 클레지오가 쓴 <허기의 간주곡>, 그리고 우리말 제목을 워낙 후지게 달아서 오히려 진가를 가려버린 푸엔테스 작 <미국은 섹스를 한다> 외에도 홀링허스트, 사라마구, 셀린느, 매컬러스, 새라 워터스, 심지어 루슈디와 브레드버리, 요사, 드릴로, 커포티 등등 싹 버렸다. 마음이 편했을 수는 없었겠지?



이번에는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버려? 남겨둬? 이거 하고 에코의 두 작품, 그리고 한 때 책 좀 읽는 사람들 입끝에 올랐던 장왕록 번역의 포크너 <압살롬, 압살롬>이 문제였다. 포크너는 당시에 나더러 책을 줄 수 없겠느냐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싹 안 된다고 거절했던 거다. 사람이 이러면 안 된다. 결국 버릴 책을 하잘것없는 욕심 때문에 여태 이고 지고 있다가 결국 이꼴이 뭐냐고.

독일까지 가 무질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딴 안병률 사장이 직접 번역한 <특성없는 남자>도 다시 읽을 거 같지 않아서 던졌다. 돈이 아깝지만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애트우드는 <도둑신부>말고 <고양이 눈>을 남기기로 했다. 우엘벡도 버리고 존 파울즈도 버리고, 파울즈는 결국 <마법사> 한 작품만 남길 생각이지만 하여간, 쿤데라도 목록에 나왔다. 게다가 이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 즉 현재 발간중인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도 눈에 들어왔다.



이 목록에서는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하인리히 만이 쓴 <앙리4세>를 제일 고민했다. 백낙청의 기념비적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도 이제는 꼴 보기 싫어서 던져버렸다. 드디어 화이트헤드, 백대가리 선생의 <관념의 모험>, 한길사가 야심차게 펴낸 그레이트북 시리즈 1번에 빛나는 책을 서슴없이 던졌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을 어떻게 하면 어렵게 설명하느냐를 공부하는 학문이라는 걸 배운 것으로 만족한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보다 볼라뇨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야만스러운 탐정들> 한 편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라고 여겨서 다른 작품은 싸그리 버렸거나 버릴 예정이다. 이거 딱 한 번 읽고 버리는 책들이라 당근에 내놔도 돈 좀 받을 수 있겠는데, 귀찮다. 걍 버렸다.

오정희는 나이를 먹으면서 확연히 총기가 떨어져갔다. 내가 이이의 책을 버리는 날이 올 줄은 나도 몰랐다.

르메트르의 삼부작도 남아나지 못했다. 재미 있는 건 확실하지만 오래 보관할 만하지 않잖아? 두 번 펴보지 않을 듯한 책들. 이런 면에서 아까운 작가가 모옌이다. 좋아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또 들춰볼 만하건만 사실 시간이 나면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찾을 듯해서 아쉬워도 그냥 보냈다.

그리고 초판본 한강의 <여수의 사랑>. 아무리 우리나라가 배출한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해도 안 맞는 걸 억지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장한몽>은 아깝고 아깝다. 근데 내가 읽지 않으면 가족 가운데 아무도 읽지 않을 듯. 예전에 나온 금속활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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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위에 쌓은 제3세대 한국문학전집. 198X년 처음 취직해서 봉급받아 처음으로 산 책. 학교 다닐 때 읽고 이런 전집은 꼭 한 질 갖고 싶어하다가 내 돈 벌어 산 책. 그래서 정이 남다르다. 웃긴 것이, 그렇게 갖고 싶었지만, 학창시절에 이미 다 읽은 책인데다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도 못 읽고 처분하게 됐다는 거. 40년이 지나서 말이지. 뭐 이게 다 사는 일이기는 하지만. 초봉이 25만원 할 시절이었으니 저 전집 사려고 죽을 똥을 쌌다는 건 짐작 하시겠지?

그리고 꼭 해야 할 말. 포드 메독스 포드의 네 권짜리 대표작 <퍼레이즈 엔드>와 조지 엘리엇의 네 권짜리 <다니엘 데론다>. 이 두 작품은 한국문화사라는 개떡같은 출판사에서 찍었다. 책값 할인도 전혀 안 해주는 배짱 좋은 회사인데 둘 다 교정 교열이 개판무인지경이다. 그래서 그걸 지적하면 댓글을 달아 생 지랄을 해 그게 드러워서 독후감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책들 말고 페터 바이스의 책도 마찬가지였다. 하여간 얼마 남지 않은 독서생활 동안 절대로 피해야 할 출판사다.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절대로 동의하지도 마시고, 참고도 하지 마시라. 괜히 다 늙어 고소당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나, 포드 매독스 포드와 조지 엘리엇 만한 영어 소설가가 몇이나 있다고 그걸 그 지랄로 책을 만드냐는 말이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피해가지 못했다. 앞으로 <전쟁과 평화>를 또 읽고 싶으면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다른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책 표지가 하도 구려서. 뭐 내 마음이니까.

홍성원의 <남과 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쟁문학이라는 데는 백퍼 동의한다. 근데 또 읽을 거 같지 않아서. 비슷한 논조의 작품이 <남과 북>이후에 이미 많이 나왔다.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의 <라일라>도 버리느냐고? 그렇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감명깊게 읽었지만 <라일라>는 내 수준에 과하게 철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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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9-26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 연휴에 책 정리하셨군요.
저도 요즘 책을 많이 정리하고 있어요.
집착이란 것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Falstaff 2026-09-27 05:51   좋아요 1 | URL
지금은 요즘 알라딘 분들이 읽기 붐이 인 것 같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창석 번역을 버릴까 말까 하는 겁니다. 이걸 버려야 수십년 끈 책 정리에 진짜 의미가 생길 것도 같고,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오만인 것도 같고, 하이고,,, 거 참 생각이 많습니다.

자목련 2026-09-2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모르는 책들이 정말 많네요. 버리는 것도 일인데,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셨겠네요. 이제 소장할 책 목록 올라오는 건가요?

Falstaff 2026-09-27 19:53   좋아요 0 | URL
버리는 것도 정말 일이더라고요. ㅎㅎㅎ
갖고 있을 책은 뭐... 그거 참.... ^^;;

망고 2026-09-2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왜 우리동네에 안 사시는 거죠? 싹 다 주워오고 싶어요ㅠㅠ

Falstaff 2026-09-27 19:54   좋아요 1 | URL
에휴, 별 거 없습니다. 방에 책이 별로 없으니까 깔끔하니 아주 좋은 걸요. ㅎㅎ

살리에르 2026-09-27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정리에 망설이는 저에게 상콤한 충격을 주는 글이네요^^ 진짜 방이 안 읽은 책으로 가득차서 늘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진짜 좀 정리해야 하는데 책도 안 읽으면서 늘어나기만 하니 스트레스에요 ㅎㅎ

Falstaff 2026-09-28 04:58   좋아요 0 | URL
책을 정말 버리려고 하면 어느 순간의 자극과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한 순간, 과연 이것들 가운데 다시 읽을 책이 몇 권이나 될까, 이런 생각이 들었고, 제일 중요한 건 넘치는 책장이 한 순간에 꼴 보기 싫어졌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6-09-2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위험한 책> 읽고 있다더니 이 냥반이... 책을 다 버리네! ㅋㅋㅋ

<퍼레이즈 엔드>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너무 비싸서 안 샀지만...) 안 사길 잘했군요....
저한테 저기서 딱 한 권만 가져가라면... <압살롬, 압살롬> 고를 거 같은데!
그걸 버리시네!

Falstaff 2026-09-28 18:57   좋아요 0 | URL
<위험한 책>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게다가 무척 짧기도 하고 말입죠.
장왕록 <압살롬, 압살롬>은 금속활자 본에 글씨 크기가 작습니다. 21세기 사람이 읽으려면 쉽지 않을 듯합니다.

잠자냥 2026-09-29 10:25   좋아요 0 | URL
<위험한 책>... ㅋㅋㅋ 책에 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하는 데 일조하는 책입죠....
근데 이걸 오래전에 읽어서 다 까먹고는 제가 여전히 책에 집착하고 있는가 봅니다.
 
맨 끝줄 소년
후안 마요르가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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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안 마요르가는 5년 전에 두 편이 실린 희곡집 《비평가 / 눈송이의 유언》으로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설마 우리말로 인사했을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미 정치적으로 웬만큼 민주화되고, 옛 시절의 악연마저 어느 정도 수습을 한 상태에서 등장한 스페인 86세대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구나. 거 참 부럽네. 프랑코 개자식들로부터 그들의 파시즘을 전수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 지금 권력을 잡았을 스페인 86세대들은 마드리드에 있는 대통령 궁에서 여전히 죽창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라 목에 핏대를 세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아니 부러운가.

  마요르카는 이제 달랑 두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좋다. 이제 도서관에서 POD 책은 사 주지 않겠다고 하니, 악마같이 비싸게 책값을 책정하는 지만지드라마의 희곡을 사 읽을 수도 없고, 도서관에다 사달라고 할 수도 없어 앞으로 마요르가의 다른 작품을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쉽지만, 세상에 아쉬운 일이 하도 쌔고 쌔서 뭐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야지 별 수 있간디?


  책을 열면 제일 먼저 작가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글이 들어 있다.

  자신은 한 번도 한국의 교실과 가정에 가보지 않았다는 것으로 시작해, 전제가 한국의 교실과 가정이 아마도 스페인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리라, 만남과 헤어짐, 화합과 갈등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추측한다. 근데 이거 조금 아니지 않은가?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생활해본지 하도 오래라서 라떼와도 다르겠지만 여전히 지금의 한국 교실과 서유럽의 교실은 거의 딴 판으로 다르지 않을까 싶다. 근데 한 편으로는 조금 안 좋은 쪽으로 교실 역시 세계화되어 거기가 거기일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래도 스페인의 고등학교 교실 분위기가 오직 대학입시에 초점이 모이는 우리나라 교실하고는 많이 다를 것 같은, 아니면 말고.

  후안 마요르가는 스페인 국립연구원, 파리와 베를린의 뮌스턴 대학, 국립원격교육대학 등을 거쳐 긴 가방끈을 가졌지만 중고등학교 교사 생활도 제법 하는 바람에 당시 한 학생과의 작문에 얽힌 기억으로 <맨 끝줄 아이>를 썼다고 한다. 수학 교사였는데, 시험 볼 때, 한 학생이 답안지에 이렇게 썼다나?

  “선생님, 저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문제를 전혀 풀 수가 없어요. 하지만 최근에 저는 테니스를 아주 잘 쳐서 일요일에는 마르카 스포츠 신문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갔어요. 등등.”

  이때 마요르카가 얻은 힌트. 학생이 시험시간의 시험지/답안지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교사한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맨 끝줄 소년>은 말 그대로 학급의 제일 끝줄에 앉은 클라우디오라는 이름의 가난한 학생을 말한다. 수학과 과학 실력이 돋보이는 반면 철학과목에서는 비실비실하다. 같은 반에 라파라는 애칭의 부잣집 아들이 있었는데 얘는 또 철학 점수는 좋지만 수학은 거의 까막눈 신세다. 그래서 클라우디오는 라파는 서로 모자란 과목을 보충해주면서 함께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합의한다. 공부할 장소는 물론 훨씬 잘 사는 라파의 집이 되겠지.

  이 두 아이를 가르치는 작문 또는 국어 교사가 헤르만. 헤르만은 요즘 학생들의 작문 실력에 거의 절망을 하고 있던 터. 주말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써보라는 콩트를 냈는데 거의 다 이런 식이다.

  “토요일에 나는 테레비를 봤다. 일요일에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

  딱 두 문장. 30분 동안에 메꾼 답안지. 이런 답지도 있다.

  “난 일욜이 실타. 토욜은 좋다. 하지만 이번 토욜에는 아버지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핸드폰을 빼섰다.”

  교사라는 직장인으로 헤르만은 절망할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훤하게 밝아지는 답안지가 있었으니 바로 클라우디오 가르시아가 쓴 작문이다.


  “토요일에 난 라파엘 아르톨로 집에 공부하러 갔다. 그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왔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난 그집에 들어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라파에게 돌아가려고 할 때 어떤 향기가 내 주의를 끌었다.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자의 향기다. 그 향기에 이끌려 난 거실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소파에 앉아 인테리어 잡지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이 집 여주인을 발견했다. (후략)”

  상당한 글솜씨의 고등학생. 헤르만은 속으로 ‘아주 만족!’을 외치고 있었을 터. 그는 진짜 오랜만에 기쁨이 터져 마침 옆에 앉아 있는 아내 후아나한테 답지를 건네고 읽어보라 권한다.

  후아나는 불편하다. 남편한테 말한다.

  “나라면 이 글을 교장한테 가져가겠어.”

  친구의 엄마를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라고 하는 등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을 비웃고 있다면서. “얘는 도대체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 교실에서 큰 소리로 읽히고 라파가 그 친구 뺨을 한 대 갈기는지 보지 그래?”

  이젠 더 열을 받았는지 작문 교사인 남편 헤르만까지 볶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남자 아이 열일곱 살. 내가 여자였던 적이 없어서 열일곱 살 먹은 여자 아이는 모르겠고, 남자애 열일곱이면 이게 말이 청소년이지 거의 완전한 성인이다. 백년 전만 해도 전쟁 터지면 제일 먼저 지원해 참전했다가 죽거나 평생 불구가 되어 돌아올 아이들. 열일곱 살이면 친구의 엄마일지언정, 그녀에게 욕정만 품지 않는다면, 사실 나이 든 엄마뻘 여성에게 욕정을 품는 소년은 내 평생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드물지만, 하여간 그렇기만 하면 친구 엄마 가까이에서 “혼동할 수 없는 중산층 여인의 향기” 운운한 게 뭐가 문제인지, 나는 모르겠다.

  게다가 클라우디오는 겁나게 가난한 집의 아이로, 집안에서는 식용유 찌든 냄새, 고기의 비계 냄새, 뭔가 희미한 부패 향기와, 빼놓을 수 없는 곰팡이 냄새에 익숙할 터, 새롭게 환한 비누와 세제와 분과 비싼 데오도란트 향기가 넘실거리면 얼마든지 그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여간 나는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의 발언을 통해 이이의 전작 가운데 한 편인 <비평가>가 저절로 떠오르더라니까.

  그런데 후안 마요르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런 비평 또는 검열 한 가지가 아니었다.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걸 알 수 있다. 헤르만은, 보통의 남편들이 그렇듯이, 아내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내한테 비슷한 의견이 나오지 않을 쪽으로 아이를 지도하게 되고, 아이 클라우디오는 이런 선생 헤르만에게 반발하기 시작한다.

  근데 여기까지는 후안 마요르카가 “한국의 독자에게”에서 밝힌 두 가지 공간 가운데 교사-학생의 관계만 이야기한 것이다. 하나가 더 남았다. 가정 속 이야기. 라파와 라파의 부모로 이루어진 공통체와 클라우디오의 갈등. 헤르만은 클라우디오가 라파와 계속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하여 절대 하면 안 될 부정한 짓을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뭔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넷플릭스 TV 드라마 교권수호국인가 뭔가에서 나온다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커넥션, 비슷하기는 하지만 절대 대가 없는 커넥션도 등장한다.

  내 경우에는 많은 문제 제기 가운데 헤르만이 아니라 교사 사모인 후아나가 벌이는 작문에 대한 검열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당신은 어떤 이슈를 재미있게 읽을 지 모르겠다. 후안 마요르카, 이 65년 뱀띠 아저씨, 거 참 재미있게 쓰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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