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제6회 무명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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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정말 아름답게 읽고 나서 이이의 작품을 검색해서 고른 책. 2002년에 쓴 <나의.....>가 데뷔작인데 그걸로 덜컥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만 서른 살에 잔치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수유를 하고, 아이가 거의 친정엄마 손에 자라는 동안 (내가 읽기로는)고통스럽게 쓴 작품이 2004년에 발표한 <달의 제단> 아닌가 싶다.
 전작에선 난독증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글씨를 읽지 못하는 한동구가 똑똑하고 매사 똑 부러지는 어린 동생 영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사람을 울리는, 한겨울의 난로 같은 이야기였는데, <달의 제단>은 영남지방의 한 종갓집에서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뜨겁게 써놓았다.
 주인공 조상필은 서안 조 씨의 중시조 양정공 조춘억의 17대손으로, 대문간채 열 칸, 행랑채 열두 칸, 헛간채 열 칸, 안채 여덟 칸, 사랑채와 서고 열네 칸, 별채 여섯 칸에다가 부속으로 사당과 별묘, 연못과 정자까지 딸린 저택 ‘효계당’에서 산다. 이 큰 저택 효계당엔 딱 네 명, 조상필과 상필의 깐깐한 조부와, 부엌데기 달시룻댁과 80kg이 넘는 거구의 지체장애자 달시룻댁의 딸 정실이만 함께 산다. 그러니까 숱하게 많은 방들이 그냥 비어있으며, 일 년에 수십 번 되풀이되는 여러 형태의 문중제사나 되어야 한 번 열릴 뿐이다. 좀 이상하지? 이토록 큰 저택에 안주인이 없다. 상필의 칠칠한 조모는 일찍 돌아가고, 양정공의 16대손이자 부모로부터 못생긴 외모만 골고루 빼다 박은 상필의 아버지는 부친이 정해준 여인과 혼례를 올렸으나 옷고름 한 번 끌러주지 않고 서울로 내빼버렸다. 거기서 중등학교 미술교사와 혼인신고를 해서 상필을 낳고는 잘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새 돈 많은 아버지와 자신의 법적 아내(상필 엄마)의 화끈한 거래로 인해 다시 효계당으로 잡혀오는데, 그녀가 날 버렸다는 자괴감이 들었는지 아니면 평소에 심한 우울증 증세가 있어서 그랬는지 콱 자살해버리고 말았다. 서안 조 씨 집안에선 상필의 부모가 혼인신고를 했건 말았건 어쨌든 가문에서 정해줘 혼례를 올린 바 있는 배필 ‘해월당’ 여인을 정실부인으로 인정하고 있었으니 우리의 주인공 조상필은 이른바 서얼. 즉, 집 밖에서 낳아 데리고 들어온 서자인 셈이지만, 16대 종손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할아버지로부터 17대 종손으로 인정받게 된 인물이다. 남자가 저고리 끈도 풀어준 적이 없는 숫처녀를 어머니라고 칭하며 자랐으니 이 여인의 길지 않은 평생도 참 냉랭했을 것이란 건 척 봐도 알 만하다.
 주로 우리나라 소설에서 보면, 실제 인간사에선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들이 종종 자신의 출생과 비슷한 장면을 만들어버린다. 이 책의 주인공 조상필 역시 마찬가지. 아주 못생긴 얼굴에 80킬로그램이 넘는 살덩어리, 선천적으로 발목이 유난히 약한 장애자이며 늘 열 손톱 아래가 새까맣게 더럽혀진 상태로 냄새를 풀풀 풍기는 정실. 어려서 어머니라고 불렀던 매정한 해월당 부인 대신 엄마처럼 잔정을 듬뿍 주며 상필을 키워준 ‘달실 웃댁’이란 뜻의 ‘달시룻댁’의 친딸, 동갑나기 정실을 덮쳐버린다. 이것 가지고는 소설의 소재로 한참 부족하다. 좀 모자란 여자라서 어려서부터 동네 아저씨나 심지어 친척 아저씨, 노인네들의 성적 노리개로 쓰이곤 했던지라 그냥 덮치기만 해가지고는 약하다. 스물세 살이 되도록 생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정실, 잠깐 왜 이 아가씨 이름을 ‘정실’이라고 지었을까? 정실부인 할 때의 ‘정실’의 의미는 없었을까? 하여간 그런 정실이 조상필과 맺은 숱한 관계를 통해 임신을 해버리고 마는 것.
 내용 소개는 여기까지.
 심윤경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참 여러분야로 공부를 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이는 애초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나온 이과 출신이다. 1972년생이면 국어시간에 고문古文을 배웠을까? 적어도 이과에선 배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안 조 씨 문중의 산소를 옮기는 도중에 발굴한 몇 대 위 소산 할매가 언문으로 쓴 서찰을 당시 고어체 비슷하게 인용/사용하고 있다. 이 편지가 바로 서안 조 씨, 뼈대 있는 가문으로 근동에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의 숨겨진 추악한 면, 주로 여성을 희생시키는 증거로 사용된다. 조상들에 의하여 벌어진 이런 추악한 행위가 현대에 이른 종갓집의 마지막 수행자인 조상필의 조부 조일우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아니, 조일우는 조상들의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고 싶었을까.
 심윤경은 고어체를 사용뿐만 아니라 각종 제사에 쓰이는 축문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려 노력하다보니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법을 포기하고 지난 세기에 쓴 것 같은 글을 만들어냈다. 내가 읽기엔 책의 성격상 오히려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읽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이 의견과 다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읽는 도중에 혹시 이 소설이 이러저러한 종결부로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겼으며, 아니나 달라, 예상한대로 아주 정확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작가 심윤경이 너무 쉽고 편한 결말을 선택한 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는 말씀. 해소 또는 파국의 결말보다는 이 책의 경우 결론을 독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확장해주는 편이 훨씬 좋았지 않나 싶은 건데, 사실 이런 의견은 내놓고 할 말은 아니다. 결말의 결정이야말로 작가의 고유 권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독자가 읽기에 그랬다는 거만 참고하면 좋겠다. 심윤경의 다른 장편소설도 또 읽어봐야겠다. 재미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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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다른 곳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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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1936년생. 이 책을 쓴 시점이 2003년. 67세. 이후에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여 심지어 83세인 올해, 2018년에도 <이웃>이란 작품을 썼다, 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이렇게 생겼다.

 

 외국 작가들 보면 도무지 은퇴란 걸 모른다. 어느 시점이 되면 글을 쓰는 힘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때가 은퇴할 시점이라고 조정래의 어느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다. 그건 우리나라 작가들한테만 해당하는 건가?
 아무튼, 이 장편소설 <천국은 다른 곳에>. 요사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1973년에 이미 발표한 <판탈레온 특별 봉사대>에 나오는 종군 위안부 부대는, 이 양반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종군위안부를 모티프로 삼아 썼나 싶었는데, 아니다, 1834년 페루 내전 당시 세계 최초로 군인들의 처나 애인, 창녀 등을 모아 정규군으로 편성한 위안부대가 정말로 있었으며, 남편이나 애인이 총에 맞아 전사하면 그들의 무기를 대신 잡고 아주 용맹하게 전투에도 임했다고 나온다. 요사의 작품을 크게 두 개로 분류하자면 이른바 정치소설과 에로티시즘 소설로 나누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책은 다분히 정치 소설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인데, 무대는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프랑스의 공산주의 운동이다.
 여기에 흥미롭게 등장하는 여인이 플로라 트리스탕. 실제 인물이다. 이 꽃(플로라) 트리스탕은 이렇게 생겼다고 구글 이미지에 나온다.

 

 

 스페인 아빠와 프랑스인 엄마 사이에 태어났으나,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려 엄마 아빠가 혼인신고를 하지 못해 사생아 신분으로 떨어진 여자. 만 18세가 되어 열 살 많은 인쇄업자 앙드레 샤잘과 혼인해서 아들 둘, 딸 하나를 낳는다. 맏이는 죽고, 둘째는 샤잘이 키우고, 셋째 딸을 엄마에게 맡긴 다음 진짜로 대서양을 건너 페루로 가 삼촌 돈 피오 트리스탕을 찾아 친족관계를 증명해달라고 하는데, 페루의 대표적 부자이지만 원래부터 쪼잔하기 이를 데 없는 삼촌은, 만일 친조카임을 증명해주면 플로라에게 거액을 상속해줘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냥 넌 사생아일 뿐이야, 라고 단칼에 물리친다. 네이버 인물백과에 나오는 얘기다. 소설 속에선 딸을 어머니가 아니라 여동생에게 맡겼다고 하지만 이 정도의 차이는 그냥 넘어가자.
 더 놀라운 것이 19세기 초중반에 여성해방과 노동조합 운동에 몰두하던 그녀가 41세 되던 1844년, 프랑스 전국을 혼자(19세기 중반에 여성 혼자 여행하는 자체가 이미 큰 센세이션이었던 건데) 순회하며 자신의 운동과 신념을 널리 퍼뜨리기로 작정을 하고 전국공연에 나섰다는 거. 그리하여 디종, 리옹, 생테티엔, 아비뇽, 마르세유, 툴롱, 님므, 몽펠리에, 베지에르, 카르카손느, 보르도 등지를 다니면서 궁극적으로 노동자와 여성의 연대를 통한 해방을 주장하고 다닌다. 숱한 동조자와 비난자, 그리고 당국의 감시와 탄압을 받아가며, 태생부터 인간 말종이었던 남편이 쏜 총알을(빼지 못해) 심장 옆에 달고 다니면서 대장암이 자궁과 척추까지 번져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이는 왈가닥 아줌마의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프랑스를 누비게 된다. 이 플로라 트리스탕의 활약과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책의 절반. 홀수 장章은 온전히 이이에게 헌정하는 바르가스 요사. 근데 더욱 놀라운 것은, 플로라(꽃) 트리스탕이 또 화가 폴 고갱의 외할머니라는 거. 나는 플로라 트리스탕이라는 여인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고(혹시 언젠가 한 번 정도는 들었을지도. 그러나 곧바로 잊었겠지), 이이가 폴 고갱의 외할머니로 사회주의와 여성해방운동에 헌신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거의 고갱 이야기인 것처럼 읽히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도 이 비슷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머지 짝수 장章은 바로 고갱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고갱의 자화상. 1888


 아시다시피 ‘미친 네덜란드 환쟁이 놈’과 몇 주에 걸친 동거 또는 작은 공동체 생활 끝에 유럽문명 대신 원시의 발랄함이 아직 거세되지 않은 신천지를 찾아 남태평양 타히티로 거처를 옮긴 고갱. (타히티와 서인도 제도의 아이티를 혼동하지 마시라. 둘 다 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거리는 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있다) 거기서 열세 살 먹은 작고 발랄하고 똑똑한 현지인 아가씨 ‘테하마나’와 중혼을 하고 얻은 이름 또는 별명이 ‘코케.’ 책은 ‘폴’과 ‘코케’가 번갈아가며 마구 쓰이는데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라. 결코 헛갈릴 일 없으니까. <달과 6펜스>에서 미리 감을 잡았다시피 잘 나가는 파리의 증권 딜러로 부르주아의 삶을 즐기다가, 결코 화가가 될 소명의식도 없이 우연한 기회에 별 볼 일 없는 화가와 친하게 되고 그이와 어울려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좀 하다가 처남한테 준 습작 가운데 하나를 출품했더니 덜렁 최우수상을 먹어, 그것도 팔자지, 그때부터 미쳐 돌아가기 시작하다가, 마누라와 아이들은 친정집 코펜하겐으로 도망가 버리고, 거기까지 따라가 처갓집에 빌붙어 살다 쫓겨나 그야말로 19세기 식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 화가의 삶으로 진입한 고갱. 그가 1892년 4월, 화폭으로 쓸 천 100야드, 그림, 유화물감, 붓, 뿔나팔 하나, 만돌린 두 대, 기타 한 대, 브르타뉴 지방 담배물부리 여럿, 권총 한 정, 입던 옷가지 몇 벌만 챙겨, 아참, 이것도 있다, 책에선 “입에 담기 거북한 병”이라고 묘사하며, 기어이 그 병의 후유증으로 다리에 온갖 염증이 생기고 눈도 멀어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갈 매독까지 함께 짊어지고 배에 오른다. 그곳에서의 생활과 과거 ‘미친 네덜란드 놈’ 고흐에 대한 애증과 “관념 속에서의 화해”와 스스로 화가의 길로 접어들기까지의 생활과, 예술을 하는 고난에 대한 회상을 빼곡하게 채워 놓았다.
 바르가스 요사는 플로라 트리스탕과 폴 고갱 사이의 관계 또는 이어짐에 관해 억지로 말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독자는 외할머니의 혁명과 해방에 관한 지독한 집념과 외손자의 예술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유사하다는 느낌을 숨기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일찍이 1997년에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 노트>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그림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설명한 바 있는 요사는 이 책에선 고갱의 그림들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는 (과하지 않은)설명을 해주었으나, 전작과 달리 책 속에 그림을 삽입하지 않아 안타까웠던 건 어쩔 수 없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혼란스러운 정치판이 아니라(물론 페루 내전에 관해 약간의 페이지를 할애했으나 그건 조족지혈) 유럽, 특히 프랑스의 사회주의운동과 여성해방에 관한 정치적 관점에다 고갱의 그림을 중심으로 요사의 예술관까지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글쎄 몇 명이나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요사의 책들 가운데 최상급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출판사 ‘새물결’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책이 품절이라니. 혹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좋아하시는 분들 계시면 얼른 <세상 종말 전쟁> 개정판을 구입하시라. 난 구판, 거의 마지막 고객으로 비싼 값 주고 샀는데, (혈압 오른다!) 이젠 “정가인하” 타이틀 달고 반값으로 나왔다. 어쨌든 이 책의 조속한 중쇄를 기대하고, 가능하면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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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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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만 155쪽. 첫 문장이 9쪽에서 시작하니까 사실은 147쪽에 불과한 짧은 소설. 그러나 전체가 딱 두 문단으로 되어 있는데, 두 번째 문단은 이렇다.
 “그 후 지랄 같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생각 외로 볼라뇨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은 거 같아 새삼스레 이런 얘기 하는 게 쓸데없을 거 같지만, 말씀드리오니, 이 책은 하루 날 잡아 책상에 딱 앉아서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읽어버리는 편이 좋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걸? 독자가 읽고자 하는 대상이 다른 작가도 아니고 볼라뇨란 말이거든.
 소설은 죽음의 침상에 누워 죽음의 신이 침대의 맞은편에 기대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걸 감각하면서 자신이 평생을 지나온 행적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냥 조용히 죽고 싶었으나 갑자기 “그놈의 늙다리 청년”이 생각나는 바람에 그리된 것. 이 “늙다리 청년”의 정체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밝혀지는 바, 굳이 여기서 누구라고 얘기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다만 작가가 끝까지 시치미 뚝 떼고 작품을 끝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쓸데없는 의견 하나를 첨부할 뿐이다.
 누가 죽어 가느냐 하면,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라는 이름의 사제. 이이가 신품성사라고 하나, 하여간 막 정식 신부가 된 인물인데, 시도 쓰고, 평론도 쓰는 문학인이기도 하다. 시는 자신의 본명으로, 평론은 ‘이바카체’란 필명으로 발표하며, 젊은 시절에 칠레의 대표적 평론가이자 위대한 시인 네루다와 돈독한 친분을 맺어온 ‘페어웰’과 친하게 지내면서 적어도 평론 쪽으로는 탄탄한 길을 가게 된다. 페어웰. 원어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으나, 영어 farewell이라면 ‘안녕’ 또는 ‘잘 가’지만 순서를 바꿔 쓰면 welfare, 행복과 복지를 의미한다. 물론 억지인 거, 나도 안다. 근데 왜 억지를 부리느냐 하면, 암만 생각해도 평론가 이바카체는 선배 평론가 페어웰과의 돈독한 유대를 맺으면서 칠레의 대표적 지성이라 일컬을 정도로 칠레 문학계의 큰 나무로 성장해가는 거 같기 때문이다(페어웰의 입장에서 보면 괭이 새낀 줄 알았더니 범 새끼였던 거겠지).
 대개 등장인물, 그것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시대에 대한 정의감이나, 아니면 적어도 시대를 보는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책의 주인공 우루티아 신부이자 화자인 ‘나’는 평화적이고 민주적 투표를 통해 칠레 역사상 최초로 집권에 성공한 아옌데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궁에서 비행기에 의한 폭격을 당하고 기어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이후 피노체트가 권력을 탈취해 군부독재를 펼치는 순간까지 다른 생각 조금도 안 하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등등 그리스 고전문학에 심취해 있다가, 사태가 어쨌든 진정이 되자 이렇게 말한다.
 “참 평화롭군. 나는 일어나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정말 조용하군. 하늘은 파랬다. 여기저기 구름이 표식을 해놓은 그윽하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멀리 헬리콥터 한 대가 보였다. 창문을 열어 둔 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칠레를 위해, 모든 칠레인을 위해, 죽은 자들을 위해, 산 자들을 위해.” (99쪽)
 심지어 독일 점령하의 파리에서 칠레 문학인이 자랑스러운 만남으로 묘사하는 인물이 누군가 하면, 나도 <강철 폭풍 속에서>를 읽고 독후감 한 번 쓴 바 있는 에른스트 윙거다. 1차 세계대전의 독일 군대의 영웅이자 예비역 대위. 윙거와 몇 번 만난 것을 몇 십 년이 흘러도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페어웰은 주인공 ‘나’ 우루티아 사제에게 우쭐거리며, 우루티아 역시 아무런 비판 없이 그럴 듯하다 인정하고 넘어간다. 윙거가 파시스트는 아니었다지만 평화주의자도 아니었잖은가. 더구나 점령지에서 1차 대전의 영웅을 만났음에야.
 뭔가 좀 이상하다. (나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칠레의 현대사를 전혀 모르는 독자들이 이 장면을 읽었다면, 아옌데라는 못된 대통령을 학식이 뛰어나고 머리 좋고, 결단성 있는 피노체트 장군이 몰아내고 칠레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는 에피소드. 이건 실화란다. 아, 그런데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앞으로 읽을 분들께 이 실화를 얘기해도 좋은지 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아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 독후감을 쓰는 한, 이 에피소드를 밝힐 수는 없다. 그냥 책을 읽어가며 저절로 속아 넘어가게 놔둬야 한다.
 그러나, 다시, 아니다. 이 책은 애초 칠레 사람들 읽으라고 쓴 거 아닌가. 칠레 사람들은 처음부터 내가 지금 숨기고자하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책을 읽는 순간, 아 그 사건을 말하는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럼 나하고 반대로, 처음부터 에피소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좋다.
 피노체트 치하에, 별로 잘 쓰지 못하는 여류 소설가가 있었다(‘여류’라고 칭하는 건 이유가 있어서다. 이 단어가 마땅하지 않은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별로 재능이 없는데도 잘 나가는 인물. 어디가도 이런 사람들이 적어도 하나는 꼭 끼어 있으니 큰 불만은 없다. 나도 없고, 이 여류와 친하게 지내던 우르티아 신부도 그랬다. 이 소설가의 남편은 미국의 대기업에 다니는데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새로 지점을 설치하기 위해 파견 나와 있는 상태로 산티아고에서 저택을 하나 구입해 늘 밤새도록 파티를 벌이고는 했다. 문학계의 온갖 권력들을 다 불러 모아 (통행금지 시간이 있는 관계로)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시를 읊고, 웅변을 하고, 기껏 먹고 마신 걸 토해놓았으니 어찌 이 여류를 위하여 주례사 비평을 남발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이제 굳이 ‘여류’에 힘을 준 이유가 나온다. 남편이 문제라는 의미다). 사실 남편은 미국 CIA와 칠레 국가정보국을 위해 일하던 ‘마이클 타운리’라는 실제 인물이고, 이 저택의 지하 골방에선 군부독재 시절의 칠레와 미국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위험인물에 상당한 수준의 고문을 자행하고 있었던 거다. 지하실에서는 선한 칠레인이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손상된 채 더러운 몸으로 사지가 묶여 있는 동안, 휘황찬란한 볼룸에선 주요 문학인들이 모여 온갖 고귀함을 뽐내고 있었던 거다. 문제는 이 칠레인 여류 소설가 역시 파티의 시간에 자신의 발아래에 한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
 볼라뇨는 이렇듯 칠레 문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을 숨 막히게 쏟아내고 있다(전체가 한 문단이며, 오직 사용하는 부호는 쉼표와 마침표 딱 두 개 밖에 없다). 기꺼이 군부와 독재자에게 협조하며, 좋아할 만한 이야기들로 입술을 적시며, 최고의 미덕인 문학인으로서의 성취를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다. 이런 더러운 문학인의 모습을 치명적인 은유로 서슴없이 확 비꼬아버리는 볼라뇨.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 아니, 이런 작품이 몇 개는 나와 줘야 정상 아닌가? 나도 참 답답했다. 볼라뇨의 주인공은 내가 아는 칠레 현대사, 특히 아옌데와 피노체트 치하에서의 상황과는 달리 엉뚱한 사고思考와, 실망할 수밖에 없는 행위/협력과 대중을 향한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천천히 칠레 문학에 대한 자기비판임을 깨닫게 되면서 풀리긴 했다. 바로 앞에서 말했던 “늙다리 청년”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를 눈치 채는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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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0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칠레의 밤은 제가 두번 째로 만난 볼라뇨의 책
이었습니다.

볼라뇨의 모든 책들을 출간해 준 열린책들에
절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조국 칠레를 떠나 메히코와 에스파냐에서 주
로 작품활동을 한 볼라뇨는 라틴 문학계의
이단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루이스 세풀베다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칠레 문학계를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문학을 지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나저나 실존 인물인 마이클 타운리는 정말
문제적 인간이었나 봅니다.

Falstaff 2018-06-06 16:09   좋아요 0 | URL
예.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아주 색다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열린책들의 볼라뇨 전집도 얘기하신대로 칭찬해줄 만한데요, 이왕이면 이런 ˝얇은˝ 책은 다른 작품(예를 들면 <안트베르펜>)하고 묶어서 냈더라면 더욱 좋았을 뻔했을 텐데요.
이 양반은 참, 읽는 각 권마다 진짜 전부 대단한 개성과 유난스런 특별함이 함께 있어서 읽는 맛이 나더군요.

coolcat329 2024-03-20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늙다리 청년 알려주지 말고 그냥 넘어갔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생각을 하셨다니 넘 기뻐요 ㅋㅋㅋ 이번에 볼라뇨 책을 처음 읽었는데, 작품 자체에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는 거 같아요. 반골 기질이 강한 작가의 아우라가 독특한 작품과 어우러져 아주 멋진 거 같아요. <야만스러운 탐정들>도 가지고 있는데, 당분간은 바빠서 못 읽을 거 같지만 사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Falstaff 2024-03-20 21:11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ㅎㅎㅎ
저는 볼라뇨 가운데 <야만스런 탐정>이 제일 좋았습니다. 좀 골때리는 작가예요. ^^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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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필립 로스. 이런 책을 읽으면 저절로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오른다. “명불허전.”
 번역서를 읽다가 순서가 로스로 오면 뭔가가 확 달라진다. 역자의 노고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글 읽기가 매우 쉬워지는 것. 쉬운 글로 매우 복잡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데 조금도 불편이 없는 거장의 솜씨다.
 이이의 책을 읽은 순서대로 보면,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 <포트노이의 불평>, <죽어가는 짐승>에 이어 다섯 번째. 이 가운데 <나는 공산주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작품이 <미국의 목가>다. 유대 미국인과 공산주의를 언급하는 작품. 그래, 곧바로 스토리 이야기로 넘어가자.
 1인칭 소설. 화자의 이름은 ‘네이선 주커먼’이며 60대 중반의 남자로 버크셔 산악지대의 호숫가 자그마한 집에서 평화롭고 외롭게, 오직 소설을 쓰며 지내는 작가. 어디서 본 듯하다. 호숫가 외딴 집에서 전립선을 제거해 비닐로 만든 오줌주머니를 허벅지에 찬 채 집필생활에만 몰두하고 있는 60대 중반. 그렇다. <미국의 목가>와 <휴먼 스테인>의 화자와 같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테나 대학’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휴먼 스테인>에선 심지어 주인공이 그 대학 교수이기도 하다. <나는 공산주의자....>에서 화자에게 한 문제적 인간 ‘아이라 린골드’의 생애를 이야기해주는 고등학교 시절의 첫 번째 영어교사 머리 선생님이, 아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애리조나에서부터 먼 길을 와서 일주일간 개설하는 여름 특강을 들으러 온 곳이 바로 아테나 대학이다. 뭔가 내 머리 속에서 번쩍, 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책의 제목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바로 옆에 작은 글씨로 ‘주커먼 시리즈’라고 있다. 네이선 주커먼이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 시리즈가 있는 모양이다. 클릭해보니 내가 읽은 세 작품 말고 <유령 퇴장>이란 또 다른 소설이 나온다. 조만간에 그것도 읽어봐야겠다.
 <미국의 목가>에서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 공산주의자이자 반전주의자 딸을 둔 전형적인 성공한 유대 미국인 스위드 레보브 씨의 좌절을 썼으며, 이 책을 쓴 바로 다음 해에 발표한 <나는 공산주의자....>는 1940년대 말에서 한국전쟁 시기 미국의 한 유대인 공산주의자 아이라 린골드의 몰락에 대해 서술한다. 두 작품 속에서 1990년대, 60대 중반 나이의 작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공통적으로 얘기/비판하고자 하는 건 미국의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우스꽝스러운 사상검열이다. 급기야 아무 죄도 없는 부부를 “소련에 미국의 원자폭탄에 관한 정보를 건네기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기로 불법으로 공모한 혐의”로 전기의자에 앉혔던 야만스런 “로젠버그 사건”도 있어서 E.L.닥터로는 이를 토대로 <다니엘 서>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로스는 여기다가 자신의 정체성인 유대인, 그러니까 인종문제까지 섞어 다소 복잡하지만 명품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생산해냈다.
 화자 네이선 주커먼이 2차 세계대전 중 벌지 전투에도 참전했던 영어교사이자 평생 은사로 여기고 살 머리 린골드 선생님을 만나고, 우연히 기회가 닿아 머리 선생님의 6피트 6인치의 키에 마른 몸집을 가진 친동생 아이라 린골드와 알게 되어 그를 숭배하는 것으로, 네이선의 청소년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된다. 6피트 6인치가 얼마만큼 큰 키일까? 계산해보자. 6 * 30.43 + 6 * 2.54 = (30.43 + 2.54) * 6 = 197.82, 즉 2미터의 키. 시절이 1940년대 말. 이 정도면 중국소설에서나 나오는 구척장신 대열에 설 만하다. 링컨을 닮은 외모를 하고 있는데다가 정말로 프록코트를 입고 실크해트를 쓴 채 직업이 라디오 성우인 그가 링컨 역할을 하고 당시에 차별주의자, 노예제도 지지자였던 스티븐 A. 더글러스와의 토론을 하거나 두 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이나 게티스버그 연설을 하는 장면은 당시 뉴욕 지역에서 대단한 인기가 있었는데, 아이라는 그걸 각급 학교, 노동조합에서 무료로 공연해주고는 했다.
 머리와 아이라 형제는 어려서부터 지극히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서 살다가 나름대로 삶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형 머리는 자신의 길을 책과 학교와 대학에서 발견해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평생을 살았고, 문제는 아이라, 어려서부터 큰 키와 힘을 갖춘 것에다 인내심 없고 폭발적인 성격, 화를 잘 내고 무엇이든 생각나는 대로 저질러놓고 보는 천성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이란에서 (배에서 군수물자를 하역하는)하역병으로 복무하는 동안 만난 군대 동료 오데이로부터 교육받은 공산주의를 삶의 목표로 삼았다. 오데이는 천생 공산주의자로 파업과 자본주의 미국의 종말을 이끌 혁명을 꿈꾸는 골수 볼셰비키로 1940~50년대 공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코민테른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른 강철 혁명가였다. 그런 오데이로부터 전수받은 공산주의를, 아이라 린골드는 15세에 불과한 화자 네이선에게, 꾸밀 줄 모르는 직접화법으로 혁명을 이야기하고, 미국 내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진보인사들의 모임에 초대하고, 덤으로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브 프레임의 네 번째 남편의 자격으로 이브 프레임의 집에서 벌어지는 뉴욕 상류층들의 파티에도 초대하는 반면, 당시에도 완전히 우범지역이었던 흑인 밀집지역에서 편하게 앉아 흑인들과 인종차별 철폐와 자본가들의 착취 같은 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자리에 동행함으로서, 네이선으로 하여금 자신을 제2의 아버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돋움을 하며 닮고자 하는 모델 또는 멘토로 숭배하게 만들어버린다. 물론 의도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바람직한 청년이라면 앞으로 30년 후 자신이 되고 싶은 모델이 한 명 이상 있는 법. 네이선에게 그 모델은 가난한 자를 위하여 세상을 엎어버리고, 세상의 모든 차별을 철폐하는데 자신을 전력투구하는(것처럼 보이는) 아이라 린골드인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개인의 정치적 선택으로 인하여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헌법에도 불구하고,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공산주의자들은 미국 땅에서 할 수 있는 어떠한 일도 없었다. 모든 사업장에서 소외되었으며, 거의 모든 선량한 국민들은 색이 잔뜩 들어있는 유리창을 통해서만 그들을 바라봤으며, 감방에 갇히거나 심지어 전기의자에 앉기도 했던 거다. 그러나 아이라는 공산주의자이기엔 너무나 낭만적이랄까. 하여간 어울리지 않는 성격. 링컨과 똑 같이 큰 키와 말단비대증을 앓고 있는 아이라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갖고 있어 라디오 방송의 인기 성우로 발탁이 되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브 프레임의 네 번째 남편이 되고, 그래서 최상류 계급에 휩쓸리면서 차별의 반대와 미국혁명을 부르짖었으니 그게 될 법한 일인가. 거기다가 이 유대미국인의 유대미국인 아내 이브 프레임(프레임은 동성애자였던 두 번째 남편의 성姓)은 잔뜩 흥분하기라도 하면 자기도 모르게 눈앞에 유대인만 나타났다하면, “이 더러운 유대인. 더럽고 가증스러운 유대인!”이라 침을 튀는 버릇이 있다. 반면에 우유부단해서 끊임없이 아이라를 곤경에 빠뜨리고, 아이라의 아이를 중절해버리는 박식한 멍청이이기도 하다. 아이라의 몰락은 처음부터 운명지워져 있던 것.
 필립 로스가 천착했던 주제들 가운데 두 가지. ① 자칫하면 전체주의나 독재로 빠질 것 같았던 미국현대사와 ②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를 아주 효과적으로 쓴 매력적인 소설이다. 로스 표 베드 씬을 기대했다가는 아무 것도 건질 것이 없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묵직한 주제를 참으로 읽기 편하고 능숙하게 써내려가는 거장의 솜씨를 구경하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이 책을 위해 지갑을 열 이유는 충분히 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 이래서 필립 로스, 필립 로스 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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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강기 2018-05-2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나무 2018-05-2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먼 스테인>으로 이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어느새 작가의 책들이 책장에 많이 늘었더라구요.
오늘 작가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Falstaff 2018-05-23 14:37   좋아요 0 | URL
아, 우리 시간으로 이 독후감을 올린 날짜에 운명을 했군요.
참.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저도 편한 영면을 빌겠습니다.

공쟝쟝 2022-07-0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로스표 베드 씬이 없는 책으로 로스를 입문했군요! 어쩐지 아쉬우니까 베드 씬 있는 다른 거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골드문트님 리뷰 읽으려고 피시로긴했어요 ㅜㅜ (여전히 골드문트님 리뷰만 북플에서 폭파되서 보이네요) 저 이 책 너무 재밌었어요. 저도 이래서 필립 로스 필립 로스 하는 구나 했네요.
 
뇌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4
차오위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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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렬한 드라마. 그리고 만일 무대가 아니라 TV를 통해 연속극으로 방영한다면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 작가가 쓴 서문을 읽어보면, 초연 이후에 입센을 닮았다느니, 에우리피데스의 <히포리토스: Hippolytus‘히폴리투스’겠지>나 라신의 <페드르>로부터 영감을 얻어 왔다느니 하는 평을 하도 많이 들어 지긋지긋했었나보다. 자기 자신의 아이디어로, 문학의 주인댁에서 금실을 한 가닥씩 떼어와 옷을 짓는 건 죄가 아니라고 했다. 맞는 말씀. <뇌우>를 읽어보면 그리스 신화 같은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걸 굳이 한 단어로 이야기하는 가장 적당한 우리나라 말 단어가 바로 “막장”이다. 생각해보시라. 그리스 신화치고 막장 아닌 거 몇 개나 있나. 또 솔직하게 얘기해서 막장 드라마가 감칠맛은 있잖아?
 드라마이니만큼 줄거리를 다 이야기해도 별로 까탈이 잡히지는 않는다. 원조 막장 드라마 <리어왕>이나 <오셀로> 내용 모르고 연극 관람하시는 분 있나?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까탈 잡히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내용을 홀랑 다 얘기해버리면 조금 김이 샐 수 있으니 간략하게 등장인물 소개 정도로 끝내겠다.


 먼저 조우(周)씨 집안.
 조우푸위안: 조우 집안의 가장. 광업회사 사장. 젊은 시절 하녀와 정을 통해 아들 둘을 낳았지만 둘째를 낳은 지 3일 만에 어머니로부터 강제 이별 당함. 맏이는 조우씨 집안에서 키우고, 쫓겨난 하녀는 실의에 빠져 낳은 지 겨우 3일 된 둘째아이와 함께 강물에 빠져 죽.....었는지 알고 양반 댁 규수와 혼인했으나 첫사랑이었던 하녀를 잊지 못해 바쁜 일상 중에서도 가끔 멍 때리는 취미를 지님. 그러나 마르크스가 지탄했던 탐욕스런 부르주아의 대표선수. 파업광부들에게 총을 쏘아 제압해달라고 지방 경찰청에 부탁해 서른 명 골로 가게 만드는 악덕기업 사장. 큰 아들 이름을 자살한 하녀의 이름을 따서 ‘핑’이라고 지음.
 조우판이: 조우 사장의 두 번째로 정식 결혼한 부인. 지금 나이 35세. 남편이 자기보다 스무 살 많음. 남편에게 별로 사랑받지 못한 중국 부르주아 집안의 후처들은 전통적으로 전실이 낳은 아들과 사통하는 경향이 있는 바, 중국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큰 아들 핑과 살 섞음.(페드라!) 문제는 ‘피 안 섞인 아들’을 진짜로, 남자로 사랑하고 있다는 거. 하긴 살의 맛을 제대로 알 서른다섯 살 아닌가. 남편이란 건 벌써 시들시들. 비아그라 나오려면 앞으로 70년이 더 흘러야 하니 밤마다 송곳으로 허벅지 찔러가며 참아야 하느니라, 타령을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맛을 보되 사랑하지는 말았어야지. 그래, 죄는 바로 그거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조우핑: 엄마보다 여덟 살 적은 조우 집안의 후계자. 엄마하고 관계는 젊은 시절 불장난에 불과해, 이젠 엄마의 집요한 시선이 아주 징글징글함. 엄마한테 정을 떼려 만날 술 마시고, 도박하고, 쉬운 얘기로 막 살다가 자신의 평생을 걸고 사랑할 여자를 발견했으니 집안의 하녀 루쓰펑. 근데 그게 쉽겠어? 조금 있으면 마각을 드러낼 운명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막장”의 씨앗.
 조우충: 17세 청년. 조우판이가 낳은 아들. 하지만 엄마는 형한테 빠져 있어 자신에게까지 흘러들 사랑은 별로 없음. 17세라니, 참 어지러운 나이. 하루에도 열 댓 번씩 하늘을 향해 불끈 솟아나는 그 힘을 감출 곳을 찾다가 드디어 발견했으니 하필이면 하녀 루쓰펑. 루쓰펑은 참 복도 많다고? 천만의 말씀. 평생 한 사람한테만 사랑을 받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고 언제 얘기한 적이 있잖아.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잘 교육받은 전형적인 착한 부잣집 도련님. 그러나 날을 받았다. 드라마가 시작해서 끝나는 오늘, 아니, 내일 새벽, 불끈 솟아나는 힘 한 번도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숫총각으로 세상 하직하는 제일 가엾은 아이.


 그리고 조우 집안의 수석하인인 루(魯)씨 집구석
 루구이: 천하의 배워먹지 못한 종자. 48세. 돈 앞에서는 처도, 딸도 필요 없음. 그렇게 생긴 돈으로 하는 짓은 ①술 마시고, ②도박하고, ③여자 사는 삼종세트에 다 처바름. (난 술에만 바름. 착한 아저씨임.) 누가 돈만 준다면 못할 짓이 없음. 조우 집안 <페드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마님과 첫째 도련님한테 은근한 권력을 행사함. 이딴 인간은 대개 끝이 안 좋게 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자는 그렇지도 않음. 물론 팔자가 핀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하여간 이런 작자들 때문에 사건이 비틀어지거나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보통이지만(마치 ‘토스카의 부채’나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처럼) 그런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끝나는 지질이.
 루스핑: 남편 루구이 하는 짓이 참으로 눈 뜨고 보기 힘들어 멀리 떨어진 객지에 홀로 나가 어느 학교의 노동자로 일하다가, 날 잡아 하루 집에 오는 날 하필이면 이런 막장 드라마가 펼쳐짐. 알고 보니까 루구이한테 시집 올 때,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여덟 살 먹은 사내아이 다하이를 데려왔음. 그래 그 아이가 ‘루다하이’가 됨. 원래라면 당연이 ‘조우다하이’여야 할 텐데. 무슨 말씀이냐 하면, 27년 전 다하이를 낳은 지 3일밖에 안 됐을 때 죽으려고 다하이를 품에 안고 비가 철철 오는 깜깜한 한밤에 강물에 퐁당 빠졌으나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살아나 어렵게 살다가 루구이를 만남. 즉 조우핑과 루다하이는 친형제 사이. 여태 자기 남편이 종살이 하는 집안의 가장이 옛날 자신의 첫 정이었던 것을, 그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생산했다는 걸 모르고 살았음(이렇게 상세하게 까발리는 것에 대하여 독자의 양해를 바람).
 루다하이: 광산노동자. 계부 루구이가 힘을 써 조우 광업회사의 광부로 취직시켜줌. 노동조합 위원장. 파업 주동자. 광업회사 사장을 만나 담판을 지으려 광산에서 도시로 왔음. 때는 1920년대. 달걀로 바위를 깨뜨리고자 바락바락 자신의 친아빠한테 덤벼들다가 친형한테 두드려 맞음. 파업할 때 경찰이 흘린 거 주운 권총으로 뭔 짓을 한 번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에이 이런 드런 집구석들이 있나, 한 마디하고는 홀연히 입산해 신선이 됨.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입산만 하지 않으면 혁명 이후에 한 자리 했을 거 같은 캐릭터.
 루쓰펑: 루구이와 루스핑 사이의 딸. 하녀 노릇해서 열라 돈 만들어놓으면 아빠가 와서 홀랑 삼켜버림. 조우 집안에 하녀로 들어가지 말라는 엄마의 명령을 어기고 아빠의 닦달에 못 이겨 기어이 하녀가 됨으로써 인생 완전 망가짐. 동복형제인 조우핑과 연애해서 오매, 임신 3개월. 우리 계산으로 넉 달째로 접어들어 기어이 엄마 가슴에 대못질함. 진정 바라는 건 조우핑과 지긋지긋한 두 집안을 멀리, 멀리, 또 멀리 떠나 둘만 오순도순 사는 거. 그렇게 사는 게 쉬울  걸로 착각하기 좋은 나이 방년 십팔 세.


 출연진 소개하니까 내용도 훤하게 보이시지? 근데 이거보다 더 재밌다. 원래 드라마란 것이 그렇잖은가. 스토리보다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포인트가 맞춰지는 거. 게다가 진정한 막장 드라마는 관객이나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법. 그리하여 세계적으로도 널리 공연하는 작품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숱하게 무대에 올렸단다. 이 희곡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가 장이머우 감독에다, 주윤발과 공리가 뜨는 <황후화>란다. 돈 엄청 쏟아 부어 화려하게 만든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뇌우>하고 비슷하지는 않았던 기억. 하긴 그래야 각색하는 사람도 먹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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