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4
차오위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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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렬한 드라마. 그리고 만일 무대가 아니라 TV를 통해 연속극으로 방영한다면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 작가가 쓴 서문을 읽어보면, 초연 이후에 입센을 닮았다느니, 에우리피데스의 <히포리토스: Hippolytus‘히폴리투스’겠지>나 라신의 <페드르>로부터 영감을 얻어 왔다느니 하는 평을 하도 많이 들어 지긋지긋했었나보다. 자기 자신의 아이디어로, 문학의 주인댁에서 금실을 한 가닥씩 떼어와 옷을 짓는 건 죄가 아니라고 했다. 맞는 말씀. <뇌우>를 읽어보면 그리스 신화 같은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걸 굳이 한 단어로 이야기하는 가장 적당한 우리나라 말 단어가 바로 “막장”이다. 생각해보시라. 그리스 신화치고 막장 아닌 거 몇 개나 있나. 또 솔직하게 얘기해서 막장 드라마가 감칠맛은 있잖아?
 드라마이니만큼 줄거리를 다 이야기해도 별로 까탈이 잡히지는 않는다. 원조 막장 드라마 <리어왕>이나 <오셀로> 내용 모르고 연극 관람하시는 분 있나?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까탈 잡히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내용을 홀랑 다 얘기해버리면 조금 김이 샐 수 있으니 간략하게 등장인물 소개 정도로 끝내겠다.


 먼저 조우(周)씨 집안.
 조우푸위안: 조우 집안의 가장. 광업회사 사장. 젊은 시절 하녀와 정을 통해 아들 둘을 낳았지만 둘째를 낳은 지 3일 만에 어머니로부터 강제 이별 당함. 맏이는 조우씨 집안에서 키우고, 쫓겨난 하녀는 실의에 빠져 낳은 지 겨우 3일 된 둘째아이와 함께 강물에 빠져 죽.....었는지 알고 양반 댁 규수와 혼인했으나 첫사랑이었던 하녀를 잊지 못해 바쁜 일상 중에서도 가끔 멍 때리는 취미를 지님. 그러나 마르크스가 지탄했던 탐욕스런 부르주아의 대표선수. 파업광부들에게 총을 쏘아 제압해달라고 지방 경찰청에 부탁해 서른 명 골로 가게 만드는 악덕기업 사장. 큰 아들 이름을 자살한 하녀의 이름을 따서 ‘핑’이라고 지음.
 조우판이: 조우 사장의 두 번째로 정식 결혼한 부인. 지금 나이 35세. 남편이 자기보다 스무 살 많음. 남편에게 별로 사랑받지 못한 중국 부르주아 집안의 후처들은 전통적으로 전실이 낳은 아들과 사통하는 경향이 있는 바, 중국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큰 아들 핑과 살 섞음.(페드라!) 문제는 ‘피 안 섞인 아들’을 진짜로, 남자로 사랑하고 있다는 거. 하긴 살의 맛을 제대로 알 서른다섯 살 아닌가. 남편이란 건 벌써 시들시들. 비아그라 나오려면 앞으로 70년이 더 흘러야 하니 밤마다 송곳으로 허벅지 찔러가며 참아야 하느니라, 타령을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맛을 보되 사랑하지는 말았어야지. 그래, 죄는 바로 그거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조우핑: 엄마보다 여덟 살 적은 조우 집안의 후계자. 엄마하고 관계는 젊은 시절 불장난에 불과해, 이젠 엄마의 집요한 시선이 아주 징글징글함. 엄마한테 정을 떼려 만날 술 마시고, 도박하고, 쉬운 얘기로 막 살다가 자신의 평생을 걸고 사랑할 여자를 발견했으니 집안의 하녀 루쓰펑. 근데 그게 쉽겠어? 조금 있으면 마각을 드러낼 운명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막장”의 씨앗.
 조우충: 17세 청년. 조우판이가 낳은 아들. 하지만 엄마는 형한테 빠져 있어 자신에게까지 흘러들 사랑은 별로 없음. 17세라니, 참 어지러운 나이. 하루에도 열 댓 번씩 하늘을 향해 불끈 솟아나는 그 힘을 감출 곳을 찾다가 드디어 발견했으니 하필이면 하녀 루쓰펑. 루쓰펑은 참 복도 많다고? 천만의 말씀. 평생 한 사람한테만 사랑을 받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고 언제 얘기한 적이 있잖아.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잘 교육받은 전형적인 착한 부잣집 도련님. 그러나 날을 받았다. 드라마가 시작해서 끝나는 오늘, 아니, 내일 새벽, 불끈 솟아나는 힘 한 번도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숫총각으로 세상 하직하는 제일 가엾은 아이.


 그리고 조우 집안의 수석하인인 루(魯)씨 집구석
 루구이: 천하의 배워먹지 못한 종자. 48세. 돈 앞에서는 처도, 딸도 필요 없음. 그렇게 생긴 돈으로 하는 짓은 ①술 마시고, ②도박하고, ③여자 사는 삼종세트에 다 처바름. (난 술에만 바름. 착한 아저씨임.) 누가 돈만 준다면 못할 짓이 없음. 조우 집안 <페드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마님과 첫째 도련님한테 은근한 권력을 행사함. 이딴 인간은 대개 끝이 안 좋게 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자는 그렇지도 않음. 물론 팔자가 핀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하여간 이런 작자들 때문에 사건이 비틀어지거나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보통이지만(마치 ‘토스카의 부채’나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처럼) 그런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끝나는 지질이.
 루스핑: 남편 루구이 하는 짓이 참으로 눈 뜨고 보기 힘들어 멀리 떨어진 객지에 홀로 나가 어느 학교의 노동자로 일하다가, 날 잡아 하루 집에 오는 날 하필이면 이런 막장 드라마가 펼쳐짐. 알고 보니까 루구이한테 시집 올 때,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여덟 살 먹은 사내아이 다하이를 데려왔음. 그래 그 아이가 ‘루다하이’가 됨. 원래라면 당연이 ‘조우다하이’여야 할 텐데. 무슨 말씀이냐 하면, 27년 전 다하이를 낳은 지 3일밖에 안 됐을 때 죽으려고 다하이를 품에 안고 비가 철철 오는 깜깜한 한밤에 강물에 퐁당 빠졌으나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살아나 어렵게 살다가 루구이를 만남. 즉 조우핑과 루다하이는 친형제 사이. 여태 자기 남편이 종살이 하는 집안의 가장이 옛날 자신의 첫 정이었던 것을, 그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생산했다는 걸 모르고 살았음(이렇게 상세하게 까발리는 것에 대하여 독자의 양해를 바람).
 루다하이: 광산노동자. 계부 루구이가 힘을 써 조우 광업회사의 광부로 취직시켜줌. 노동조합 위원장. 파업 주동자. 광업회사 사장을 만나 담판을 지으려 광산에서 도시로 왔음. 때는 1920년대. 달걀로 바위를 깨뜨리고자 바락바락 자신의 친아빠한테 덤벼들다가 친형한테 두드려 맞음. 파업할 때 경찰이 흘린 거 주운 권총으로 뭔 짓을 한 번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에이 이런 드런 집구석들이 있나, 한 마디하고는 홀연히 입산해 신선이 됨.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입산만 하지 않으면 혁명 이후에 한 자리 했을 거 같은 캐릭터.
 루쓰펑: 루구이와 루스핑 사이의 딸. 하녀 노릇해서 열라 돈 만들어놓으면 아빠가 와서 홀랑 삼켜버림. 조우 집안에 하녀로 들어가지 말라는 엄마의 명령을 어기고 아빠의 닦달에 못 이겨 기어이 하녀가 됨으로써 인생 완전 망가짐. 동복형제인 조우핑과 연애해서 오매, 임신 3개월. 우리 계산으로 넉 달째로 접어들어 기어이 엄마 가슴에 대못질함. 진정 바라는 건 조우핑과 지긋지긋한 두 집안을 멀리, 멀리, 또 멀리 떠나 둘만 오순도순 사는 거. 그렇게 사는 게 쉬울  걸로 착각하기 좋은 나이 방년 십팔 세.


 출연진 소개하니까 내용도 훤하게 보이시지? 근데 이거보다 더 재밌다. 원래 드라마란 것이 그렇잖은가. 스토리보다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포인트가 맞춰지는 거. 게다가 진정한 막장 드라마는 관객이나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법. 그리하여 세계적으로도 널리 공연하는 작품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숱하게 무대에 올렸단다. 이 희곡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가 장이머우 감독에다, 주윤발과 공리가 뜨는 <황후화>란다. 돈 엄청 쏟아 부어 화려하게 만든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뇌우>하고 비슷하지는 않았던 기억. 하긴 그래야 각색하는 사람도 먹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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