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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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만 155쪽. 첫 문장이 9쪽에서 시작하니까 사실은 147쪽에 불과한 짧은 소설. 그러나 전체가 딱 두 문단으로 되어 있는데, 두 번째 문단은 이렇다.
 “그 후 지랄 같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생각 외로 볼라뇨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은 거 같아 새삼스레 이런 얘기 하는 게 쓸데없을 거 같지만, 말씀드리오니, 이 책은 하루 날 잡아 책상에 딱 앉아서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읽어버리는 편이 좋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걸? 독자가 읽고자 하는 대상이 다른 작가도 아니고 볼라뇨란 말이거든.
 소설은 죽음의 침상에 누워 죽음의 신이 침대의 맞은편에 기대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걸 감각하면서 자신이 평생을 지나온 행적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냥 조용히 죽고 싶었으나 갑자기 “그놈의 늙다리 청년”이 생각나는 바람에 그리된 것. 이 “늙다리 청년”의 정체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밝혀지는 바, 굳이 여기서 누구라고 얘기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다만 작가가 끝까지 시치미 뚝 떼고 작품을 끝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쓸데없는 의견 하나를 첨부할 뿐이다.
 누가 죽어 가느냐 하면,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라는 이름의 사제. 이이가 신품성사라고 하나, 하여간 막 정식 신부가 된 인물인데, 시도 쓰고, 평론도 쓰는 문학인이기도 하다. 시는 자신의 본명으로, 평론은 ‘이바카체’란 필명으로 발표하며, 젊은 시절에 칠레의 대표적 평론가이자 위대한 시인 네루다와 돈독한 친분을 맺어온 ‘페어웰’과 친하게 지내면서 적어도 평론 쪽으로는 탄탄한 길을 가게 된다. 페어웰. 원어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으나, 영어 farewell이라면 ‘안녕’ 또는 ‘잘 가’지만 순서를 바꿔 쓰면 welfare, 행복과 복지를 의미한다. 물론 억지인 거, 나도 안다. 근데 왜 억지를 부리느냐 하면, 암만 생각해도 평론가 이바카체는 선배 평론가 페어웰과의 돈독한 유대를 맺으면서 칠레의 대표적 지성이라 일컬을 정도로 칠레 문학계의 큰 나무로 성장해가는 거 같기 때문이다(페어웰의 입장에서 보면 괭이 새낀 줄 알았더니 범 새끼였던 거겠지).
 대개 등장인물, 그것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시대에 대한 정의감이나, 아니면 적어도 시대를 보는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책의 주인공 우루티아 신부이자 화자인 ‘나’는 평화적이고 민주적 투표를 통해 칠레 역사상 최초로 집권에 성공한 아옌데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궁에서 비행기에 의한 폭격을 당하고 기어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이후 피노체트가 권력을 탈취해 군부독재를 펼치는 순간까지 다른 생각 조금도 안 하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등등 그리스 고전문학에 심취해 있다가, 사태가 어쨌든 진정이 되자 이렇게 말한다.
 “참 평화롭군. 나는 일어나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정말 조용하군. 하늘은 파랬다. 여기저기 구름이 표식을 해놓은 그윽하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멀리 헬리콥터 한 대가 보였다. 창문을 열어 둔 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칠레를 위해, 모든 칠레인을 위해, 죽은 자들을 위해, 산 자들을 위해.” (99쪽)
 심지어 독일 점령하의 파리에서 칠레 문학인이 자랑스러운 만남으로 묘사하는 인물이 누군가 하면, 나도 <강철 폭풍 속에서>를 읽고 독후감 한 번 쓴 바 있는 에른스트 윙거다. 1차 세계대전의 독일 군대의 영웅이자 예비역 대위. 윙거와 몇 번 만난 것을 몇 십 년이 흘러도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페어웰은 주인공 ‘나’ 우루티아 사제에게 우쭐거리며, 우루티아 역시 아무런 비판 없이 그럴 듯하다 인정하고 넘어간다. 윙거가 파시스트는 아니었다지만 평화주의자도 아니었잖은가. 더구나 점령지에서 1차 대전의 영웅을 만났음에야.
 뭔가 좀 이상하다. (나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칠레의 현대사를 전혀 모르는 독자들이 이 장면을 읽었다면, 아옌데라는 못된 대통령을 학식이 뛰어나고 머리 좋고, 결단성 있는 피노체트 장군이 몰아내고 칠레에 평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는 에피소드. 이건 실화란다. 아, 그런데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앞으로 읽을 분들께 이 실화를 얘기해도 좋은지 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아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 독후감을 쓰는 한, 이 에피소드를 밝힐 수는 없다. 그냥 책을 읽어가며 저절로 속아 넘어가게 놔둬야 한다.
 그러나, 다시, 아니다. 이 책은 애초 칠레 사람들 읽으라고 쓴 거 아닌가. 칠레 사람들은 처음부터 내가 지금 숨기고자하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책을 읽는 순간, 아 그 사건을 말하는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럼 나하고 반대로, 처음부터 에피소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다. 좋다.
 피노체트 치하에, 별로 잘 쓰지 못하는 여류 소설가가 있었다(‘여류’라고 칭하는 건 이유가 있어서다. 이 단어가 마땅하지 않은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별로 재능이 없는데도 잘 나가는 인물. 어디가도 이런 사람들이 적어도 하나는 꼭 끼어 있으니 큰 불만은 없다. 나도 없고, 이 여류와 친하게 지내던 우르티아 신부도 그랬다. 이 소설가의 남편은 미국의 대기업에 다니는데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새로 지점을 설치하기 위해 파견 나와 있는 상태로 산티아고에서 저택을 하나 구입해 늘 밤새도록 파티를 벌이고는 했다. 문학계의 온갖 권력들을 다 불러 모아 (통행금지 시간이 있는 관계로)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시를 읊고, 웅변을 하고, 기껏 먹고 마신 걸 토해놓았으니 어찌 이 여류를 위하여 주례사 비평을 남발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이제 굳이 ‘여류’에 힘을 준 이유가 나온다. 남편이 문제라는 의미다). 사실 남편은 미국 CIA와 칠레 국가정보국을 위해 일하던 ‘마이클 타운리’라는 실제 인물이고, 이 저택의 지하 골방에선 군부독재 시절의 칠레와 미국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위험인물에 상당한 수준의 고문을 자행하고 있었던 거다. 지하실에서는 선한 칠레인이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손상된 채 더러운 몸으로 사지가 묶여 있는 동안, 휘황찬란한 볼룸에선 주요 문학인들이 모여 온갖 고귀함을 뽐내고 있었던 거다. 문제는 이 칠레인 여류 소설가 역시 파티의 시간에 자신의 발아래에 한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
 볼라뇨는 이렇듯 칠레 문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을 숨 막히게 쏟아내고 있다(전체가 한 문단이며, 오직 사용하는 부호는 쉼표와 마침표 딱 두 개 밖에 없다). 기꺼이 군부와 독재자에게 협조하며, 좋아할 만한 이야기들로 입술을 적시며, 최고의 미덕인 문학인으로서의 성취를 위해 영혼을 팔아버린다. 이런 더러운 문학인의 모습을 치명적인 은유로 서슴없이 확 비꼬아버리는 볼라뇨.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 아니, 이런 작품이 몇 개는 나와 줘야 정상 아닌가? 나도 참 답답했다. 볼라뇨의 주인공은 내가 아는 칠레 현대사, 특히 아옌데와 피노체트 치하에서의 상황과는 달리 엉뚱한 사고思考와, 실망할 수밖에 없는 행위/협력과 대중을 향한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천천히 칠레 문학에 대한 자기비판임을 깨닫게 되면서 풀리긴 했다. 바로 앞에서 말했던 “늙다리 청년”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를 눈치 채는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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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0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칠레의 밤은 제가 두번 째로 만난 볼라뇨의 책
이었습니다.

볼라뇨의 모든 책들을 출간해 준 열린책들에
절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조국 칠레를 떠나 메히코와 에스파냐에서 주
로 작품활동을 한 볼라뇨는 라틴 문학계의
이단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루이스 세풀베다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칠레 문학계를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문학을 지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나저나 실존 인물인 마이클 타운리는 정말
문제적 인간이었나 봅니다.

Falstaff 2018-06-06 16:09   좋아요 0 | URL
예.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아주 색다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열린책들의 볼라뇨 전집도 얘기하신대로 칭찬해줄 만한데요, 이왕이면 이런 ˝얇은˝ 책은 다른 작품(예를 들면 <안트베르펜>)하고 묶어서 냈더라면 더욱 좋았을 뻔했을 텐데요.
이 양반은 참, 읽는 각 권마다 진짜 전부 대단한 개성과 유난스런 특별함이 함께 있어서 읽는 맛이 나더군요.

coolcat329 2024-03-20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늙다리 청년 알려주지 말고 그냥 넘어갔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생각을 하셨다니 넘 기뻐요 ㅋㅋㅋ 이번에 볼라뇨 책을 처음 읽었는데, 작품 자체에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는 거 같아요. 반골 기질이 강한 작가의 아우라가 독특한 작품과 어우러져 아주 멋진 거 같아요. <야만스러운 탐정들>도 가지고 있는데, 당분간은 바빠서 못 읽을 거 같지만 사두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Falstaff 2024-03-20 21:11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ㅎㅎㅎ
저는 볼라뇨 가운데 <야만스런 탐정>이 제일 좋았습니다. 좀 골때리는 작가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