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동화집 1 펭귄클래식 126
그림 형제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어째 이런 책을 다 읽었느냐고? 별 걸 다 읽는다고? 할 말 없다. 그림 형제가 지은 잔혹 엽기 동화책을 언젠가 한 번은 읽어봐야겠다고 작심한 것이 벌써 몇 년이다. 펭귄 클래식에서 이 동화집을 두 권에 걸쳐 만들어 딱 맞춤했다. 한 권만 읽어봐도 괜찮을 거 같아서. 그래 1권을 사서 읽었다. 지난번에 <이솝 우화집>을 읽은 이유와 비슷하다. 거기다가 미국 드라마 <그림>을 본 게 조금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
  이거, 옛날이야기 책. 59쪽에 달하는 서문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동화집에 실린 것들이 그림 형제가 창작한 것이라기보다 당시, 그러니까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엽까지 독일 지역을 탐사하며 채취한 민담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형제 중에 둘째 빌헬름이 이 책을 만드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단다.
  우리나라 옛날이야기도 많다. 와우, 근데 독일 사람들도 참 별나다. 대개 옛 이야기라면 노변담화, 긴긴 겨울밤 할머니가 손자녀에게 화로에 감자며 밤이며 땅콩이며를 구워주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라 좀 엽기, 괴기, 귀기가 섞인 건 어쩌면 당연하지만, 우리나라 민담의 경우엔, 적어도 내가 들은 것들은 이 그림 형제가 채집한 것들에 비하면 참 온순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신발을 곱게 벗어놓은 다음 치마를 뒤집어쓰고 물에 빠져 죽(이)거나,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달거나, 사형의 경우에도 그냥 목을 벤다, 이 수준이잖은가. 근데 와우, 독일 사람들, 만만치 않다.
  중국의 주나라 문왕 희창이 유리에 갇혀 있을 때 은나라 마지막 왕인 걸왕이 아들 백읍고를 잡아 푹 끓여 몸에 좋은 곰탕이라면서 희창에게 하사한다. 문왕 희창은 뽀얀 곰국 국물이 큰아들의 뼈와 살을 고와 만든 것임을 즉각 알면서도 걸왕이 있는 도읍을 향해 세 번 절한 다음 밥 한 그릇을 말아 국물 한 방울을 남기지 않고 싹 먹어치운다. 이 내용은 성인들을 위한 야사에서나 나온다. 중국인들도 그랬다. 그런데 독일의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악독한 계모가 의붓딸을 죽여 그 뼈와 살로 수프를 끓여 놓으면 친아버지가 고기와 국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먹어치우고, 살을 깨끗하게 발라먹은 뼈는 식탁 바닥에 툭툭 던져버린다. 딸의 뼈와 살이 내 생명의 엑기스라서 버리느니 싹 먹어치운 건가? 나쁜 인간을 죽여도 참수가 아니라 그냥 찢어 죽인다.
  근데 우연하게도 같은 시기에 라틴 아메리카를 탐험한 키 작은 훔볼트 남작은 원숭이 고기를 한 점 먹고, 그게 사실은 인간의 고기라고 농담을 하니까 문명인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질색을 했을까? 자기네 나라 민담에서도 인육 섭취에 대한 것이 있었음에도.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다.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펭귄 클래식에서 낸 <그림 동화집>이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내용의 민담이 있을 경우 그것들을 바로 이웃해 배열을 해놓아 어떻게 변주가 되었는지 독자가 비교를 해가며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독일만큼 오랜 세월 한 민족이 여러 나라, 여러 지방으로 쪼개져 있던 곳도 별로 없을 것. 그리하여 비슷한 이야기가 서로 달리 분화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주가 되었던 건 당연한데, 이걸 그림 형제가 체계적으로 채집해 정리했다는 뜻이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우리나라 사람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굳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이 책은 <이솝 우화집>에 비해 많이 재미있다. 읽을 만도 하다. 근데 이미 머리통이 굵어진 성인이라면 굳이 새삼스레 외국의 옛이야기를 읽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쓸 필요까지는 없을 거 같다. 간혹 서양 소설에 룸펠슈틸츠헨 이나 라푼첼 같은 이름도 낯선 이야기를 거론하는 일이 있어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근데 어느 책이더라 ‘룸펠슈틸츠헨’을 몇 번씩이나 인용하던 책이? 꽤 유명한 책이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유소년이 있다 하더라도 59쪽에 달하는 서문이 앞에 달린 서양의 ‘옛 이야기책’을 읽어보라고 권할 필요도 없을 거 같고. 근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왜 계모에 대해서는 그리도 야박하지?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계모들은 자신의 소생이 아니어서 홀대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오히려 의붓자식들에게 더 잘하던데. 의붓자식이 속을 썩이면 내 배로 낳은 친자식을 두드려 패서 화풀이를 할지언정. 혹시 계모에 대한 공포를 심어줌으로 해서 친엄마에게 더 애정을 갖게 하려는 꼼수 아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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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02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동화전집 1, 2권 동서문화사 것으로 다 읽었어요! ㅋㅋㅋㅋㅋ 읽고 나서 결론은 그림 형제가 동화 작가가 아니라 걍 신화전설민담 수집가라는 것, 그래서 걍 닥치는 대로 모은 것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동화! ‘동화‘가 아닌 동화 ㅋㅋㅋㅋㅋㅋㅋㅋ 노간주나무 이야기인가 그건 정말 끔찍해요.... ㅎㅎ

Falstaff 2020-04-02 15:30   좋아요 0 | URL
아, 다 읽으셨군요. 전 1권만 가지고 만족하렵니다. ^^
정말 엽기 자체예요. 제목을 민담집이라고 하지 왜 동화집이라 붙였는지 참. ㅋㅋㅋ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거면 펭귄보다 훨씬 더 많이 실렸을 거 같은 걸요!!

잠자냥 2020-04-02 15:40   좋아요 1 | URL
네 그래서 비슷한 이야기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냥 펭귄 것 한 권 읽으신 것으로 괜찮을 거 같아요. ㅎㅎㅎ

Falstaff 2020-04-02 15:4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민담 수집이라 그런지 어쨌든 옛날 이야기치고 재미는 있더라고요. ㅋㅋㅋ
 

 

  이 책들이 참 좋았습니다. 근래 읽은 책들 가운데 마음에 든 책 열권을 꼽았습니다. 골라놓고 보니 정말 하나도 빼지 않고 참 괜찮은 책들만 골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편집도 두 권, 시집이 한 권 들어 있는데, 외국사람이 쓴 단편집을 이번만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없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장편의 경우엔 약간의 책 읽은 세월을 가진 분이 읽기 좋은 작품이 한두 권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아니더라도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제가 읽기에 감동도 받고, 공감도 하고, 새롭게 느끼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책 읽는 일은 읽는 본인과 작품이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 소양이 깊지 않은 제 추천이 믿을 만하지는 않다는 말씀입니다. 어쨌든 책을 선택하시는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서는 제가 읽은 날짜순입니다.




1. 유도라 웰티, 《유도라 웰티》, <낙천주의자의 딸>

 

  대표 단편선과 장편소설 한 편. 둘 합쳐서 한 권으로 쳐주시라. 낯설지만 좋은 작품을 쓴 미국 남부 작가 웰티의 단편소설 서른두 편과 장편소설 한 권을 말 그대로 “우연히” 읽는 행운이라니. <낙천주의자의 딸>은 아쉽게 품절이지만 기회가 닿으면 선택하시기를. 《유도라 웰티》, 완고하다는 선입견을 주는 미국 남부에서 곱게 자란 부르주아의 딸 같지 않게 작품 속에서 마치 고딕소설에서 본 듯한 신체 결손자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다른 미국의 남부 출신 작가들답게 삐딱하지 않다. 미국식 지방주의 작품 가운데 이만한 단편소설을 읽을 기회도 그리 많지 않을 듯.


 

2. 박재삼, 《박재삼 시집》

 

  가난한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아련한 추억과 고독과 궁상스런 삶을 살았던 시인이 빚어내는 깔끔한 슬픔. 이런 것을 일컬어 우리는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넘치지 않는 미학, 피를 토함도 없고, 술기운에 기댄 울분도 없고, 스스로를 산산이 헤치는 자해도 없이 자신의 슬픔을 노래했던 시인.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 소리 죽은 가을 江을 처음 보겠네.” 젊음이 가질 수 있는 슬픔이라는 특권. 아, 저 먼 먼 곳에서, 잊고 살았던 당신의 슬픔이 문득 까마득한 바람소리로 당신의 허파를 지날지도 모른다. 한 시절에 시인들은 이런 시를 썼다.



3. 블라디미르 나부코프, <창백한 불꽃>

 

  더 이상 황당한 상상력도 없다. 말 그대로 인간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작품. 이 책을 읽다가, “이게 뭐지?” 의문을 한 번 이상 품어보지 않은 독자들 있으면 거수 바람. 겉으로는 영문학자 킨보트가 위대한 현대 미국 시인 존 셰이드가 쓴 <창백한 불꽃>을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 자신이 머리말과, 존 셰이드의 시, 그리고 무려 280여 쪽에 달하는 킨보트의 주석을 달아 만든 책이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말부터 시작해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지루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주석을 읽으면서 확 깬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 할까, 독자를 진퇴양난으로 몰아가는, 나부코프는 진짜 장난꾸러기.



4. 헤르만 브로흐, <현혹>

 

  한 집단이 전체주의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브로흐. 우상 한 명을 만들어 우상으로 하여금 한 커뮤니티를 훌륭하게 이끌고 갈 수 있다는 착각이 땅 위를 덮을 때, 어떤 지경이 벌어지는가 하는 경고. 단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린치를 가할 수 있는, 과거 순수했던 사람들. 이들의 세계는 오직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만 국한되어 있다. 한 무리의 생각할 수 있는 포유류에게 헛된 꿈을 주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브로흐는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처음엔 꿈이 헛된 것인 줄 알다가 점차 꿈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는 무리들. 불행하게도 그 무리를 우리는 ‘인간’이라고 부른다.



5. 막스 프리슈, <슈틸러>

 

  ‘화이트’라는 이름의 독일계 미국인 ‘나’. 미국과 멕시코에서 살다가 이제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스위스 취리히로 가는 열차 속에서 몇 년 전 스위스에서 있었던 소련 스파이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행방불명 상태에 빠진 ‘슈틸러’라는 인물로 지목받아 스위스 경찰당국에 체포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슈틸러라는 인물을 아는 모든 사람, 친척, 친구, 애인들이 ‘나’가 슈틸러임이 분명하다고 증언하고 나선 것. 심지어 내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임무를 띤 국정변호사까지도. 나는 정말 나일까? 나가 한 공간에서만 나이고 다른 공간에서는 다른 이름을 가진 타인일 수도?



6.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약속>

 

  뒤렌마트의 범죄소설은 <판사와 형리>도 읽었으나 <약속>이 더 재미있었다. 왜 ‘더’라고 하는가를 이야기하면 책의 결말을 말해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고, 뒤렌마트, 프리슈와 더불어 20세기 중반 ‘독일어’ 문학계를 흔들었던 인물이 추리물을 썼으니, 우리가 여태 읽어왔던 일반 추리소설과는 아예 기초부터 다르다. 소녀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사건이 당대의 천재로 불리고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늙은 형사 마태 박사에게 배당이 된다. 근데,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뒤렌마트는 마태의 현재 직업이 취리히 변방 목 좋은 주유소의 주유기 앞에 쪼그리고 앉은 모습을 스케치해버린다. 이 주유원이 왜 이 모양이 됐을까, 하는 내력을 밝히는 건데 뒤렌마트답게 제대로 뒤틀어버렸다.



7. 앤절라 카터, <써커스의 밤>

 

 고딕소설의 끝판 왕. 맨발로 서서 188cm의 키에 넉넉한 몸매. 이런 체격이면 도무지 서커스의 공중그네와는 어울리지 않을 걸? 그러나 천만에.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헬렌 페버스에게는 진짜 날개가 달려 있어 날갯짓을 훨훨 몇 번 하면 서커스 천막 꼭대기까지 한 번에 훅 솟구칠 수 있는 것. 헬렌을 캐스팅할 수만 있으면 서커스 단장은 커다란 수익을 잡을 수 있어서 헬렌이 주로 머무는 장소는 호화호텔의 스위트룸이고 가능한 한 최고의 사치를 하지만 원래는 버려진 기아 출신으로 한 창녀가 데려다 키웠다. 이 놀라운 서커스의 여왕이 영국과 대륙, 시베리아까지 누비면서 자신의 것을 하나하나 상실하게 되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는 읽어봐야 아실 것.



8.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탄탱고>

 

  크러스너호르커이의 필력을 유감없이 증명하는 명작. 가을비의 첫 방울이 쏟아지는 추운 새벽, 호흐마이스 벌판을 가르며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근동에는 폐허가 된 성당밖에 없고 그나마 종탑이 무너져 종소리가 벌판을 가를 수는 없는 일. 음울한 종소리와 함께 이 망해가는 집단농장에 들려온 소식 하나. 모두가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나가 농장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것. 이리하여 집단농장은 다시 한 번 활기가 생기기 시작하고 일종의 착란 현상이 벌어진다. 이것은 누가 읽어도 카프카를 한 단계 확장한 작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강력 추천.



9. 유디트 헤르만, 《단지 유령일 뿐》

 

  유디트 헤르만, 단번에 이 여자를 사랑하게 만든 소설집.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단편집. 무대는 독일의 뷔르츠부르크를 포함해 세계 각국. 이를테면 아이슬란드의 여름별장, 베네치아, 체코의 온천도시 카를로비바리와 몰다우가 내려다보이는 프라하, 미국 네바다의 사막, 노르웨이의 트롬쇠를 망라하는데, 각 지역의 자연풍광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현지인과 독일인, 또는 그곳에 간 독일 사람들 사이의 의식의 흐름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완전 내 스타일. 세상 어디에 있어도 사람들 사이에는 이해와 오해, 관심과 무관심, 신경전 같은 미묘한 의식의 떨림이 있게 마련. 이런 투명한 거미줄을 포착하는 작가의 예리한 눈매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10. 알레산드로 바리코, <이런 이야기>

 

  사람의 꿈에 관한 이야기. 자기만의 ‘길’ 즉, 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 한 사람의 일생을 그린 책. 일찍이 허약한 체질과 체격을 가지고 태어나 어려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못 생긴 남자 울티모. 그러나 ‘금빛 그늘’을 지녀 어디서든지 돋보이고 다중 속에서도 누구나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사내. 20세기 초에 울티모는 자신의 아버지가 열광했던 차를 타보고, 관찰해본 바, 차와 차 비슷한 유동물체를 근본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길, 도로에 관심을 두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기 위한 인생으로 접어든다. 삶의 모든 굴곡을 한 도로로 만드는 질료로 사용해버린 울티모. 책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아름다운 상상에 관한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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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3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약속>
.. 이거 끌리네요. 보관함 푱~

Falstaff 2020-03-31 12:30   좋아요 0 | URL
ㅎㅎ 예상치 못한 범죄 소설일 겁니다.
정의라고 언제나 이기지는 못한다더군요. ^^;;

잠자냥 2020-03-31 14:04   좋아요 0 | URL
저도 담았어요! 전자책 있으면 더 좋은데 이건 아직 없더라고요.

Falstaff 2020-03-31 14:32   좋아요 1 | URL
유령은 전자책 있던데요.
그것도 담으시지.... ^^

비로그인 2021-04-21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감사합니다. 고전만 한참 읽고 있었는데, 추천해주신 책 천천히 다 읽어볼게요. 또 좋은 책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

Falstaff 2021-04-21 21:33   좋아요 0 | URL
이렇게 얘기해주시니 제가 더 고맙고 ㅎㅎㅎ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그래도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즐겁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

비로그인 2021-04-2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 저 알라딘 책만 사고, 댓글 처음 다는데, 20년 전 센스네요. 보헤미안... 아 부끄럽다.. 폴스타프, 멋진 캐릭터죠. 정말 멋진.. 추천 감사드리구요. 좋은 밤 되시길! ^^

Falstaff 2021-04-21 21: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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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이야기. 책 껍데기에 “자전적 이야기”라고 씌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쓴 작가의 픽션인줄 알았다. 1935년 헝가리 태생의 작가가 소련에 의하여 공산화되자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등 가족해체를 겪고, 가난 속에서 20대 초반에 엄마가 됐을 때, 김춘수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으로 각인된 헝가리 민주화 운동과 이에 따른 (크리스토프의 주장에 의하면) 3만 명의 학살을 겪은 뒤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망명을 가게 된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아고타에게 스위스 망명이란 건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버리고 낯설고 발음하는 대로 표기하지도 않아 어렵기 짝이 없는 프랑스어라는 벽을 대면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새롭게 문맹의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 과히 새로운 건 아니다. 체코 출신의 문맹 한 명이 쓴 글을 우리는 열독하고 있지 않은가. 밀란 쿤데라
  이 속에서 공장노동자로 일을 하며 육아를 하고, 틈틈이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프랑스어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1부 <비밀노트>를 써서 국제적으로 대박을 칠 때까지, 자신은 결코 프랑스어에 익숙하지 못하리라는 고백. 이런 내용을 수식 없이 담백한 문장으로 기술해놓은 에세이.
  그런데 이 팸플릿을 양장본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겠지만, 반양장이라면 너무 얇아 책이 휘어져버릴 테니, 다 읽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그것보다 조금 더 필요한가? 하여간 이런 자료를 책으로 만들어 정가를 무려 11,000원으로 책정하는 한겨레출판에게 나는 욕할 자격이 없다. 그냥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명성에 눈이 멀어 책의 사양, 페이지 구성 등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 편하니까, 책방 가서 사는 거보다 조금 더 싸기도 하니까 앉아서 손가락 몇 번 놀려 사 읽은 주제꼴이니.
  그저 사람은 이름이 나야 한다. 1935년 헝가리 출신으로 아고타 크리스토프보다 굴곡 많은 당시의 인생을 산 사람은 쌔고 쌨다. 크리스토프는 어쨌거나 먹고 사는 데 별 걱정 없는 서방세계로 망명해 배는 곯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행적을 깔끔한 문장으로 이렇게 수채해놓으니 저 극동아시아의 변방에서도 책이 어떤지도 모르고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이름 하나 믿고 선뜻 사서 읽는 거 아닌가 말이지.
  이 정도의 분량은 다른 작품의 뒷면에 서비스로 달아주면 안 될까?
  안 되겠지? 이래봬도 신자유주의 시댄데 어찌 현금 지불 없이 한 줄의 글을 읽게 내버려 두겠어?
  기대가 컸는데 말씀이야. 그래 실망도 더 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우리말로 바꿨더라도 문장 하나는 정말 깔끔하지 뭐야. 원문은 얼마나 더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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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4-0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만으로 작가적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후에 나온 작품들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부분적인 변주나 일종의 잔향 정도로만 읽혀서요.
그나저나 한국 출판사들, 시집도 아닌데 저 정도 분량의 작품을 단행본으로 내놓는 관행은 좀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Falstaff 2020-04-07 13:40   좋아요 0 | URL
조금 지나면 크리스토프의 다른 소책자 <약속>도 읽을 예정입니다만, 이 책과 비슷한 팸플릿 수준이면서 간행하는 출판사가 다릅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샀습지요.
말씀하신대로 <약속>을 끝으로 크리스토프는 이제 졸업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1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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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8쪽에 이르는 장편소설. 그래도 워낙 재미있어 나흘이면 다 읽고 독후감 쓰고, 쐬주 한 병 마시고 입가심으로 맥주도 한 캔 딸 수 있다. 포어가 쓴 픽션 작품이 오늘까지 모두 네 편이라고 위키피디어에 나와 있는데, 민음사가 우리말로 세 편을 출간했고, 이 책으로 그의 우리말 번역본 소설을 몽땅 읽은 셈이다. 데뷔 이후 출간 순으로 하면 <모든 것이 밝혀졌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그리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읽은 순서로는 2-1-3.
  앞에 읽은 책들을 통해 이미 포어의 입심에 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었으나, <엄청나게...> 이후 11년 만의 작품으로 11년 동안 자신의 입담을 더욱 빛나게 절차탁마하여 이젠 거의 포르노 수준의 짧은 묘사를 마구 구사하면서도, 더할 수 없는 미국적 농담이 범지구적 가정, 가족, 결혼생활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보여주었다. 웃기지? 포르노 수준의 묘사와 미국적 농담이라면서 지극히 보수적인 극동 아시아의 가정과 결혼생활에서도 그대로 통할 수 있는 교훈이라니. 글쎄 그렇다니까.
  이 책 역시 유대인 가족 이야기다. 첫 번째 작품인 <모든 것이....>에서와 같이 유럽에서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폴란드 유대인 가정이 나치의 침략을 맞아 두 형제만 피신시킨 채 몰살을 당하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 그중 한 명은 이스라엘로, 다른 한 명인 아이작은 성姓을 미국식으로 ‘블록’이라 개명해 아메리카로 향한다. 작 중 아이작은 증손자 샘이 열세 살을 맞아 성인식, 이걸 ‘바르 미츠바’라고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유대 행사인 증손자의 바르 미츠바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이스라엘의 파괴가 시작 되었을 때 자살할지 유대인 요양원으로 옮길지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늙은 몸이라도 자기 집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밥을 지어 먹는 것도, 라면 한 봉 끓이는 것도 쉽지 않고, 용변을 보려 화장실 가는 건 산소통 없이 캉첸중가에 오르는 것만큼 숨이 차고, 심지어 건조한 등을 긁기 위해 효자손을 들어 올리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 더 연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들어가야 할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파괴라고? 그렇다. 이스라엘 서안지역에 강한 지진이 발생해 이스라엘의 일부가 조금 파괴되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팔레스타인은 훨씬 더 처참하게 파괴되어,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치료를 위해 병원이 있는 이스라엘로 몰려들어, 원주민들과 다툼이 있었고 이게 과열되어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전시상태에 접어든 것을 말하는데, 염병을, 이스라엘이 이슬람하고 대가리 박고 싸움질 한 것이 한 두 번이어야 알지, 내 아무리 검색해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작품의 줄거리로 짐작하자면 2006년가량 되어야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그럼 증손자 샘의 성인식, 바르 미츠바는? 샘이 유대학교에 다니는데, 그의 책상에서 인종차별적 내용이 담긴 메모를 발견한 교장이자 랍비 선생이 엄마 줄리아와 아빠 제이컵을 소환해 말씀을 하시기를, 우리 민족 스스로가 끔찍한 인종차별로 인해 수백만 명이 희생당했으면서도 피부색이나 다른 이유로 다른 인종을 차별한다는 건 말로 되지 않으며, 심지어 샘이 쓴 메모에는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깜”뭐라뭐라 하는 단어까지 있어서 도무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아, 자신이 한 행동을 교사와 학생 전체에 사과하지 않으면 일정 기간 정학에 처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바르 미츠바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부모가 샘에게 묻기를, 이거 네가 한 거야? 샘이 답하기를, 아냐, 내가 한 거 아니예요! 아빠 제이컵이 보기에 분명 샘의 필적이 맞다. 그럼에도 아들이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하니 그건 아들이 한 짓이 아닐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엄마 줄리아는 맏아들 샘의 필적이 틀림없는 만큼 이건 분명히 샘이 한 짓이다, 라고 하고.
  좋다. 인물 탐구를 심화시켜보자. 증조부, 증손자까지 했지. 그럼 샘의 부모.
  때가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대강 2005년이라고 치자. 이때도 스마트 폰이 있었나? 있었다고 치자. 아빠 제이컵이 스마트 폰을 하나 장만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한 명 빼고. 유난히 눈치가 재고 조숙한 샘. 얘가 ‘저기 저기 저, 구석 끝자리’에 숨겨놓은 스마트 폰을 발견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아빠가 지정해놓은 암호를 단 몇 번의 시도 끝에 풀어낸 다음 아빠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한국 여자와 사이에 오간 하드 코어 포르노 수준의 문자를 발견하고, 아 우리 아빠가 바람을 피우려 스마트 폰을 사서 혼자만 몰래 보시는구나, 이렇게 이해하려는 순간 갑자기 엄마가 들이닥쳐 문제의 스마트 폰을 변기 구석에 허겁지겁 숨겨놓고 만다. (얼마나 야한 문자인지 차마 여기다 옮기지 못할 수준이다.) 그런데 아니나 달라, 엄마의 눈에 함부로 숨겨져 있는 스마트 폰이 띄고, 이 방면에 도가 튼 샘을 호출해서 문자를 읽게 된 순간, 정말이라니까, 하도 음란해 당신더러 이 책을 읽어보란 얘기를 못할 수준이라고, 엄마 줄리아의 눈이 휘까닥 뒤집혀버린다.
  당신에게 묻겠다. 노골적이고 완전 변태인 성행위를 서로에게 문자로 해댄 남편이 혼외 연애를 했겠는가, 아닌가. 아내 줄리아는 아니라고 딱 결론을 낸다. 남편이 도덕적으로 완벽해서? 남편의, 아니라고, 그냥 문자로만 장난삼아 해본 거라는 변명에 설득당해? 천만의 말씀. 줄리아가 ‘혀’라는 긴 칼을 휘두르며 하시는 말씀은, “당신은 그럴 용기가 없어서 죽어도 못해.” 따옴표의 문장에서 숨겨진 목적어는 당연히 엽기, 포르노, 변태적인 성행위를 일컫는다. 근데 제이컵이 정말 했냐고? 그거야 안 알려주지.
  하여간 이렇게 아들 삼형제가 있는 집안에 급격하게 균열이 생긴다. 십여 년 전 줄리아와 제이컵이 결혼하던 날, 제이컵의 엄마가 하신 말씀 중에 명언이 있었다.
  “병들 때나 병들 때나, 그게 내가 너희에게 내가 바라는 거란다. 기적을 찾거나 기대하지 마. 기적 같은 건 없어. 더는 없단다. 그리고 가장 아픈 상처에 쓸 치료제도 없어. 서로의 고통을 믿고 그것을 위해 있어주는 것만이 약이란다.” (‘병들 때’가 두 번 연속으로 씌어있다.)
  여기다가 우여곡절 끝에 바르 미츠바를 끝냈으면서도 자신은 절대로 성년이 되지 않겠다고 주장한 샘은 자신의 바르 미츠바 연설에서 유대 캠프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누구에게나 원자폭탄이 주어질 수 있지만 그걸 꼭 터뜨리라는 건 아니라고 설파하기도 한다.
  이 원자폭탄은 여러 의미가 있다. 이혼이라는 가정의 폭파를 뜻하기도 하고,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핵전쟁을 뜻할 수도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하자.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하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앞에서 강조한, 어쩌면 그렇게 재미난 장면도 나오니 참고하라고 유혹할 의도도 있었는지 모른 하드코어 포르노 수준의 일부 묘사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있었던 이스라엘과 이슬람 사이의 다툼을, 지독스럽고도 당연하게, 책이 끝날 때까지, 유대인의 편에 서서 발언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동감하면서 읽을 줄 모르지만, 솔직하게 말해 난 역겨웠다.
  이 정도면 이야기 다 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재미있고 유쾌하기도 한) 미국식 유머, 디아스포라의 종막에 선 이스라엘과 미국에 자리를 잡은 유대인의 갈등, 한 가정에 깃든 이별의 그림자, 성인식 바르 미츠바, 그리고 과한 이스라엘과 이슬람 간의 전쟁 이야기. 매력적인 작가이지만 언제나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다. 그래도 이이가 다음 작품을 내면 꼭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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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해 장안의 종이 값을 올린 책. 전라남도 장흥이 물이 좋은지 그곳 출신으로 글 잘 쓰는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두 사람이 이청준과 한승원. 하나만 더 꼽으라면 이승우. 한승원의 딸이 한강인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나는 한승원을 좋아하여 그가 80년대 초반에 쓴 작품까지는 웬만한 건 다 읽어보았다. 이청준과 같은 동네 출신이지만 지향하는 것이 조금 달라서 작품 속에 갯내, 토속적 운동성 같은 것이 읽기에 좋았다. 그래 그이의 따님이 책을 냈다고 해 한강의 첫 번째 작품집 《여수의 사랑》을 읽어본 게 199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책꽂이 저 깊은 곳에 꽂혀있기는 하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여수의 사랑》에 실린 몇 편의 단편소설들이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기본적으로 내 정서하고 맞지 않았다는 점. 그리하여 데뷔 작품집 하나로 이후에 한강을 읽어볼 생각은 다시 해본 적이 없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은 이후 각종 문학상을 수집해가며 잘 나가는 작가로 자리매김을 해, 나의 문학적 소양이 정말로 하잘 것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해외 문학상 가운데 내가 신뢰하는 부커 상,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비교해서 말하자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으니, 나는 그간 버릇없게 스물 몇 해 동안 한강 알기를 우습게 안 죄를 사과하는 의미에서 기특하게도<채식주의자>를 사 읽어보게 된 거디었던 거디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극단적이다. 참혹하다. 비정상적이다. 얼마나 우울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희한도 하지. 책에 등장하는 남자새끼들은 하나같이 개새끼들이다. 아버지는 목수 출신으로 다른 건 몰라도 급한 성질하고 완력, 이렇게 둘은 어디 가서 하나도 꿀리지 않아 아내와 새끼들 잡도리하는 것을 취미생활 비슷하게 했다. 아들 영호는 아버지한테 얻어터지면 밖에 다가 다른 남자새끼들 두드려 패는 걸로 욕구불만을 해소했고, 엄마를 작신하게 두드려 패고 난 다음날 아침 엄마 대신 술국을 끓어주니까 큰딸은 좀 덜 팼는데, 막내딸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영혜는 한 번 반항하지도 않은 채 두드리면 두드리는 대로 얻어맞았단다. 심지어 오토바이에 자기 딸을 문 개를 끈으로 연결해 죽을 때까지 달리게 만들고, 죽으면 개를 잡아 한 가족이 먹은 추억담이 나오고, 이 때 극심한 개 누린내에도 불구하고 모두 맛있게 먹어야, 먹는 척해야 했단다. 한강이 딱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행과 기행이 영혜의 이상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혜의 남편새끼는 세상에 자기만 알고 마누라는 자신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 하녀 취급을 할 뿐이다. 조금 이상한 행위가 벌어지면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과 의학의 힘을 빌려야 하거늘 이 철딱서니 없는 남편새끼는 대신 처갓집에 전화를 해 문제해결을 도모한다. 이상하게 변해 전혀 고기류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진짜로 완벽한 채식만 하기 시작해 피골이 상접해진 아내한테, 장인이 폭력을 행사해가며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할 때에도 장인을 말리기는커녕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하다 사고를 친 아내와 이혼해버리고 만다.
  영혜의 형부새끼는 비디오 예술을 빙자해 환자상태가 된 처제의 몸에 현란한 꽃그림을 그리고 역시 전신에 꽃그림을 그린 자신의 남자 후배와 교합하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실패하자 이미 헤어져 남의 아내가 된 화가 출신 옛 애인을 불러 자신의 몸에다 꽃을 그리게 하고 처제와 다양한 체위로 리얼 비디오 촬영을 하고야 만다. 예술의 이름으로. 그러나 이러한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모르는 아내에게 걸려 법정소송에 휘말린 끝에 거의 거덜이 난다.
  참 골고루 나쁜 새끼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반면에 주인공 영혜에 관해 썼다가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을 하고, 영혜의 언니 이야기를 하자면, 조그만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가 타고난 성실성으로 차츰 가게를 확장해 남편이 아무런 경제적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도 예술행위에 전념할 수 있게 했으며, 빈손으로 상경한 어린 여자가 나이 들어 결혼을 했지만 아직 아이가 댓살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면서, 나중엔 영혜의 모든 비용까지 부담할 정도로 능력 있는 여자다. 그러나 인생의 굴곡을 몇 번 겪으면서 뒤돌아보니, 자신의 결혼생활은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배제된 시간”이었으며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씁쓸하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가족’이란 테두리를 만들어 그 속에 살면, 두 사람 다 자신의 기쁨과 자연스러움을 ‘전적으로는’ 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야말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건 전혀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다. 한 마디로 작가마저 문장의 뜻을 잘 모르고 마구 쓰는 거 아닌가 싶다.
  한강이 결혼을 했는지, 해본 적이 있는지, 지금도 결혼 생활 중인지, 사생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지만(이건 참 잘했다.) 확실한 건, 이 칠공년 개띠 여사님이 결혼이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책을 발간한 2007년, 이이의 나이 서른일곱 살 때까지는 모르고 살았음이 확실하다. 결혼은 애초부터 여자나 남자나를 막론하고 자신의 기쁨과 자연스러움의 ‘일부’ 또는 '상당량'을 희생시키는 일이고, 배우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인내와 배려를 해주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깨질 수밖에 없는 허약한 유리그릇이라는 것을.
  과도한 우울함과 통곡할 수밖에 없는 운명, 고통, 그것을 너머 죽음. 전체적으로 지독하게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분위기의 작품. 나하고는 정말 맞지 않는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니 문학적 관점에서는 탁월한 소설이겠지만, 모든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중심에 선 자는 나 하나다. 아무리 좋은 소설도 나하고 맞지 않으면 말짱 쓸데없다.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책에 별점을, 큰 상을 탔다니까 하나를 더 추가해서, 세 개 주는 바이며, 앞으로 한강이 쓴 책을 읽지 않으려고 가일층 노력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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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0-03-26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만 읽어도 피곤합니다. ㅜㅜ 역시 읽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저는 서양 ‘남자‘들이 여성들이 학대당하는 동양의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게 너무 화가 나요. 전 그들이 자기네 나라에서는 감히 표현하지 못하는 학대 장면을 보며 본인들의 욕구를 대리 충족하고 있다는 순전히 제 느낌에 기초한 아주 비합리적인 의심을 항상 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그래 역시 동양은 아직 우리보단 열등하다 우월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전 그래서 프랑스에서 열광했다는 우리나라 영화나 소설은 믿고 거른답니다. =_= 팔스타프님 리뷰 덕분에 스트레스 받을 일을 하나 덜었습니다. 리뷰 항상 감사드려요!

Falstaff 2020-03-26 10:40   좋아요 1 | URL
예. 이 작품은 독자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책 읽는 것 자체가 고문일 수 있겠더라고요. 적어도 제겐 고역이었습니다.
언제나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제가 훨씬 더 고맙지요. ^^

케이 2020-03-26 10:55   좋아요 1 | URL
팔스타프‘님‘ 이라는 말을 빼먹은 걸 이제 봐서 추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Falstaff 2020-03-26 11:14   좋아요 0 | URL
ㅋㅋㅋ 별걸 다 신경쓰십니다. 그래도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잠자냥 2020-03-26 12:06   좋아요 1 | URL
이 책 저도 취향에 맞지는 않았어요. 심정적으로 불쾌하고 좀 힘든 작품이었달까요. 그 후로 한강 작품은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작별>에서 한 작품 읽었는데, 그때도 혹시 이것도 불쾌한 내용 아닌가 하고 움츠렀던 기억이 납니다.

수다맨 2020-03-26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십여 년 전에 이 책을 읽었고 재작년에 우연한 기회로 한 번 더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데 작가가 세계와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이분법적이었다는 것은 기억에 남습니다. 강자와 약자, 육식과 채식, 야만과 순수, 악과 선을 작가가 일방적으로 나누려고 하기에 이야기 흐름이나 인물 형상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육식(주의)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드러내고자 비현실적인 꿈을 반복해서 보여준다던지, 현실성 떨어지는 장면(예컨대 영혜의 아버지가 딸의 뺨을 때리고 반강제로 탕수육을 먹이는 부분)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그만 아연해지더군요. 저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너무나도 ‘후진‘ 소설이었습니다.
팔스타프님 감상평 늘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Falstaff 2020-03-26 12:42   좋아요 1 | URL
하여튼 이제 저는 한강의 책을 읽지 않을 겁니다. 다만 우리나라 최초로 다른 상도 아니고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탔다하나, 기념할 만한, 후대의 교과서에 한 줄 정도 자국을 남길 책이 될 것 같아서.... 읽어보았지요.
별 거 없는 독후감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