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동화집 1 펭귄클래식 126
그림 형제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어째 이런 책을 다 읽었느냐고? 별 걸 다 읽는다고? 할 말 없다. 그림 형제가 지은 잔혹 엽기 동화책을 언젠가 한 번은 읽어봐야겠다고 작심한 것이 벌써 몇 년이다. 펭귄 클래식에서 이 동화집을 두 권에 걸쳐 만들어 딱 맞춤했다. 한 권만 읽어봐도 괜찮을 거 같아서. 그래 1권을 사서 읽었다. 지난번에 <이솝 우화집>을 읽은 이유와 비슷하다. 거기다가 미국 드라마 <그림>을 본 게 조금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
  이거, 옛날이야기 책. 59쪽에 달하는 서문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동화집에 실린 것들이 그림 형제가 창작한 것이라기보다 당시, 그러니까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엽까지 독일 지역을 탐사하며 채취한 민담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형제 중에 둘째 빌헬름이 이 책을 만드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단다.
  우리나라 옛날이야기도 많다. 와우, 근데 독일 사람들도 참 별나다. 대개 옛 이야기라면 노변담화, 긴긴 겨울밤 할머니가 손자녀에게 화로에 감자며 밤이며 땅콩이며를 구워주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라 좀 엽기, 괴기, 귀기가 섞인 건 어쩌면 당연하지만, 우리나라 민담의 경우엔, 적어도 내가 들은 것들은 이 그림 형제가 채집한 것들에 비하면 참 온순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신발을 곱게 벗어놓은 다음 치마를 뒤집어쓰고 물에 빠져 죽(이)거나,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달거나, 사형의 경우에도 그냥 목을 벤다, 이 수준이잖은가. 근데 와우, 독일 사람들, 만만치 않다.
  중국의 주나라 문왕 희창이 유리에 갇혀 있을 때 은나라 마지막 왕인 걸왕이 아들 백읍고를 잡아 푹 끓여 몸에 좋은 곰탕이라면서 희창에게 하사한다. 문왕 희창은 뽀얀 곰국 국물이 큰아들의 뼈와 살을 고와 만든 것임을 즉각 알면서도 걸왕이 있는 도읍을 향해 세 번 절한 다음 밥 한 그릇을 말아 국물 한 방울을 남기지 않고 싹 먹어치운다. 이 내용은 성인들을 위한 야사에서나 나온다. 중국인들도 그랬다. 그런데 독일의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악독한 계모가 의붓딸을 죽여 그 뼈와 살로 수프를 끓여 놓으면 친아버지가 고기와 국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먹어치우고, 살을 깨끗하게 발라먹은 뼈는 식탁 바닥에 툭툭 던져버린다. 딸의 뼈와 살이 내 생명의 엑기스라서 버리느니 싹 먹어치운 건가? 나쁜 인간을 죽여도 참수가 아니라 그냥 찢어 죽인다.
  근데 우연하게도 같은 시기에 라틴 아메리카를 탐험한 키 작은 훔볼트 남작은 원숭이 고기를 한 점 먹고, 그게 사실은 인간의 고기라고 농담을 하니까 문명인의 이름으로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질색을 했을까? 자기네 나라 민담에서도 인육 섭취에 대한 것이 있었음에도.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다.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펭귄 클래식에서 낸 <그림 동화집>이 재미있는 것은 비슷한 내용의 민담이 있을 경우 그것들을 바로 이웃해 배열을 해놓아 어떻게 변주가 되었는지 독자가 비교를 해가며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독일만큼 오랜 세월 한 민족이 여러 나라, 여러 지방으로 쪼개져 있던 곳도 별로 없을 것. 그리하여 비슷한 이야기가 서로 달리 분화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주가 되었던 건 당연한데, 이걸 그림 형제가 체계적으로 채집해 정리했다는 뜻이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우리나라 사람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굳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이 책은 <이솝 우화집>에 비해 많이 재미있다. 읽을 만도 하다. 근데 이미 머리통이 굵어진 성인이라면 굳이 새삼스레 외국의 옛이야기를 읽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쓸 필요까지는 없을 거 같다. 간혹 서양 소설에 룸펠슈틸츠헨 이나 라푼첼 같은 이름도 낯선 이야기를 거론하는 일이 있어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근데 어느 책이더라 ‘룸펠슈틸츠헨’을 몇 번씩이나 인용하던 책이? 꽤 유명한 책이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유소년이 있다 하더라도 59쪽에 달하는 서문이 앞에 달린 서양의 ‘옛 이야기책’을 읽어보라고 권할 필요도 없을 거 같고. 근데 동양이나 서양이나 왜 계모에 대해서는 그리도 야박하지?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계모들은 자신의 소생이 아니어서 홀대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오히려 의붓자식들에게 더 잘하던데. 의붓자식이 속을 썩이면 내 배로 낳은 친자식을 두드려 패서 화풀이를 할지언정. 혹시 계모에 대한 공포를 심어줌으로 해서 친엄마에게 더 애정을 갖게 하려는 꼼수 아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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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02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동화전집 1, 2권 동서문화사 것으로 다 읽었어요! ㅋㅋㅋㅋㅋ 읽고 나서 결론은 그림 형제가 동화 작가가 아니라 걍 신화전설민담 수집가라는 것, 그래서 걍 닥치는 대로 모은 것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동화! ‘동화‘가 아닌 동화 ㅋㅋㅋㅋㅋㅋㅋㅋ 노간주나무 이야기인가 그건 정말 끔찍해요.... ㅎㅎ

Falstaff 2020-04-02 15:30   좋아요 0 | URL
아, 다 읽으셨군요. 전 1권만 가지고 만족하렵니다. ^^
정말 엽기 자체예요. 제목을 민담집이라고 하지 왜 동화집이라 붙였는지 참. ㅋㅋㅋ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거면 펭귄보다 훨씬 더 많이 실렸을 거 같은 걸요!!

잠자냥 2020-04-02 15:40   좋아요 1 | URL
네 그래서 비슷한 이야기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냥 펭귄 것 한 권 읽으신 것으로 괜찮을 거 같아요. ㅎㅎㅎ

Falstaff 2020-04-02 15:4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민담 수집이라 그런지 어쨌든 옛날 이야기치고 재미는 있더라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