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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해 장안의 종이 값을 올린 책. 전라남도 장흥이 물이 좋은지 그곳 출신으로 글 잘 쓰는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두 사람이 이청준과 한승원. 하나만 더 꼽으라면 이승우. 한승원의 딸이 한강인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나는 한승원을 좋아하여 그가 80년대 초반에 쓴 작품까지는 웬만한 건 다 읽어보았다. 이청준과 같은 동네 출신이지만 지향하는 것이 조금 달라서 작품 속에 갯내, 토속적 운동성 같은 것이 읽기에 좋았다. 그래 그이의 따님이 책을 냈다고 해 한강의 첫 번째 작품집 《여수의 사랑》을 읽어본 게 199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책꽂이 저 깊은 곳에 꽂혀있기는 하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여수의 사랑》에 실린 몇 편의 단편소설들이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기본적으로 내 정서하고 맞지 않았다는 점. 그리하여 데뷔 작품집 하나로 이후에 한강을 읽어볼 생각은 다시 해본 적이 없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은 이후 각종 문학상을 수집해가며 잘 나가는 작가로 자리매김을 해, 나의 문학적 소양이 정말로 하잘 것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해외 문학상 가운데 내가 신뢰하는 부커 상, 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 비교해서 말하자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으니, 나는 그간 버릇없게 스물 몇 해 동안 한강 알기를 우습게 안 죄를 사과하는 의미에서 기특하게도<채식주의자>를 사 읽어보게 된 거디었던 거디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극단적이다. 참혹하다. 비정상적이다. 얼마나 우울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희한도 하지. 책에 등장하는 남자새끼들은 하나같이 개새끼들이다. 아버지는 목수 출신으로 다른 건 몰라도 급한 성질하고 완력, 이렇게 둘은 어디 가서 하나도 꿀리지 않아 아내와 새끼들 잡도리하는 것을 취미생활 비슷하게 했다. 아들 영호는 아버지한테 얻어터지면 밖에 다가 다른 남자새끼들 두드려 패는 걸로 욕구불만을 해소했고, 엄마를 작신하게 두드려 패고 난 다음날 아침 엄마 대신 술국을 끓어주니까 큰딸은 좀 덜 팼는데, 막내딸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영혜는 한 번 반항하지도 않은 채 두드리면 두드리는 대로 얻어맞았단다. 심지어 오토바이에 자기 딸을 문 개를 끈으로 연결해 죽을 때까지 달리게 만들고, 죽으면 개를 잡아 한 가족이 먹은 추억담이 나오고, 이 때 극심한 개 누린내에도 불구하고 모두 맛있게 먹어야, 먹는 척해야 했단다. 한강이 딱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행과 기행이 영혜의 이상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혜의 남편새끼는 세상에 자기만 알고 마누라는 자신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 하녀 취급을 할 뿐이다. 조금 이상한 행위가 벌어지면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과 의학의 힘을 빌려야 하거늘 이 철딱서니 없는 남편새끼는 대신 처갓집에 전화를 해 문제해결을 도모한다. 이상하게 변해 전혀 고기류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진짜로 완벽한 채식만 하기 시작해 피골이 상접해진 아내한테, 장인이 폭력을 행사해가며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할 때에도 장인을 말리기는커녕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하다 사고를 친 아내와 이혼해버리고 만다.
영혜의 형부새끼는 비디오 예술을 빙자해 환자상태가 된 처제의 몸에 현란한 꽃그림을 그리고 역시 전신에 꽃그림을 그린 자신의 남자 후배와 교합하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실패하자 이미 헤어져 남의 아내가 된 화가 출신 옛 애인을 불러 자신의 몸에다 꽃을 그리게 하고 처제와 다양한 체위로 리얼 비디오 촬영을 하고야 만다. 예술의 이름으로. 그러나 이러한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모르는 아내에게 걸려 법정소송에 휘말린 끝에 거의 거덜이 난다.
참 골고루 나쁜 새끼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반면에 주인공 영혜에 관해 썼다가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생략을 하고, 영혜의 언니 이야기를 하자면, 조그만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가 타고난 성실성으로 차츰 가게를 확장해 남편이 아무런 경제적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도 예술행위에 전념할 수 있게 했으며, 빈손으로 상경한 어린 여자가 나이 들어 결혼을 했지만 아직 아이가 댓살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서른두 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면서, 나중엔 영혜의 모든 비용까지 부담할 정도로 능력 있는 여자다. 그러나 인생의 굴곡을 몇 번 겪으면서 뒤돌아보니, 자신의 결혼생활은 “기쁨과 자연스러움이 배제된 시간”이었으며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만으로 이어진 시간”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씁쓸하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가족’이란 테두리를 만들어 그 속에 살면, 두 사람 다 자신의 기쁨과 자연스러움을 ‘전적으로는’ 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최선을 다한 인내와 배려”야말로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건 전혀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다. 한 마디로 작가마저 문장의 뜻을 잘 모르고 마구 쓰는 거 아닌가 싶다.
한강이 결혼을 했는지, 해본 적이 있는지, 지금도 결혼 생활 중인지, 사생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지만(이건 참 잘했다.) 확실한 건, 이 칠공년 개띠 여사님이 결혼이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책을 발간한 2007년, 이이의 나이 서른일곱 살 때까지는 모르고 살았음이 확실하다. 결혼은 애초부터 여자나 남자나를 막론하고 자신의 기쁨과 자연스러움의 ‘일부’ 또는 '상당량'을 희생시키는 일이고, 배우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인내와 배려를 해주지 않으면 얼마 가지 않아 깨질 수밖에 없는 허약한 유리그릇이라는 것을.
과도한 우울함과 통곡할 수밖에 없는 운명, 고통, 그것을 너머 죽음. 전체적으로 지독하게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분위기의 작품. 나하고는 정말 맞지 않는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니 문학적 관점에서는 탁월한 소설이겠지만, 모든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중심에 선 자는 나 하나다. 아무리 좋은 소설도 나하고 맞지 않으면 말짱 쓸데없다.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난 이 책에 별점을, 큰 상을 탔다니까 하나를 더 추가해서, 세 개 주는 바이며, 앞으로 한강이 쓴 책을 읽지 않으려고 가일층 노력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