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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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니퍼 이건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우리나라에 장편 네 권, 소설집 한 권, 합해서 다섯 권의 단행본을 출간했고, 미국에선 2018년부터 펜아메리카, 그러니까 미국 펜클럽 회장을 맡을 정도로 이름을 알렸다는군. 1962년,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에 시카고에서 출생한 이건은 킴프턴 가문에서 태어난 거 같다. 뭐 내가 전화해본 거 아니니까 분명하지는 않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학사 후에 케임브리지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석사. 이렇게만 쓰여 있다. 진짜로 영국에 날아가 학위를 땄는지, 미국에서 대학간 교류로 학위를 인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위키피디아도 웃기다. 제니퍼 이건이 대학 다닐 때 스티브 잡스와 연애를 했고, 잡스가 이건의 침실에 매킨토시를 설치해 주었단다. 설마 잡스가 이건의 침실에다 데스크탑을 설치만 해주고 끝나지는 않았겠지? 이런 건 뭐하러 올려 놓지? 이렇게 내밀한 사생활을? 웃겼어. 잡스가 그만큼 훌륭한 인간이었고, 잡스하고 연애를 했으니 제니퍼 역시 같은 레벨이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여간 잘 나가는 작가라고. 이 책에 대한 책방의 독자 서평도 괜찮은 편이다. 2010년에 출간하고 2011년에 소설부문 퓰리처 상을 받은 작품이다.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100대 도서에 39번째로 올라간 소설이 <깡패단의 방문>이라서 그냥 심심풀이로 한 번 검색해봤더니 도서관에 있다. 제목 속 “깡패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코믹 폭력물 아닌가 싶어서 읽을까 말까 좀 망설였다가 결국 상호대차서비스 신청해서 읽었다. “뉴욕타임스 21세기 1백대 도서” 목록 안에 든 소설은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아 망설였다. 거의 영어소설이고 특히 미국작가들의 작품에 편중해 선정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아프리칸 미국인 또는 중남미 출신 미국인들의 노예시절이나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내 입장에서는 과하게 많다. <깡패단…>은 미국의 백인여성이 썼으니 좀 다르겠지, 해서 읽었는데, 다르다. 재미있고, 입심 좋고, 아이디어도 돋보이고, 그랬는데 유감스럽게 벌점 주면 만점은 못 주겠다.

  열세 개의 에피소드, 또는 개별적인 단편소설로 읽을 수도 있고, 모두 합해 한 편의 장편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단, 장편소설로 읽을 경우에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서사는 포기해야 한다. 1장의 주인공은 사샤라는 이름의 서른다섯 살 뉴욕 거주 여성. 현재 직업이 레코드회사 대표의 비서. 다음 장은 사샤의 보스이자 레코드회사 사장이었다가 자기 회사 지분을 팔아 돈을 챙긴 다음 같은 회사의 고용 사장으로 있는 베니 살러자르.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아마도 북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 이민 온 조상을 두고 있는 것 같다. 3장은 베니 살러자르가 젊은 시절 별 자질도 없이 밴드 “플레이밍 딜도스” 활동을 하던 시기에 함께 밴드를 하던 멤버들. 이런 식으로 시간의 수열적 배치 없이 인물끼리 얽히고 설킨 단편을 배열시킨다. 각 장마다 개별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어서 읽기 편하고 서로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의 비수열적 배치는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과거와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이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마도 제니퍼 이건이 보여주고 싶었을 시간의 폭력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구성이다.


  이런 구성인 줄 모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도 괜찮은 독서법이었다.

  1장의 주인공은 사샤. 35세의 뉴요커. 오하이오 출신으로 지극히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부모답게 어린시절 사샤의 아빠가 (아마도 남자)애인과 함께 야반도주를 해버려 집안이 쫑났다. 엄마는 현명하게도 마음이 넉넉하고 재산은 훨씬 더 넉넉한 괜찮은 남자를 골라 두번째 결혼을 했다. 사샤는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여자애들과 완전히 재미로 잡화점에서 무엇인가를 슬쩍 훔쳐내는 장난을 한 적이 있다. 소녀들은 경쟁적으로 자잘한 상품을 훔쳤는데 친구 누구도 몰랐다. 사샤는 이 일탈을 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지극한 간질거림, 공포와 긴장 속에서 몸 전체가 꼼질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이후 사샤는 자기만의 방법을 개발해 끊임없이 도벽을 향상시켜나갔으니, 글쎄 새아빠로 들어온 남자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황당한 꼴을 겪느냐는 말이지. 그럼에도 새아빠는 몇 번이나 경찰서에서 사샤를 찾아오고, 변상도 하고, 전문 상담사와의 비싼 상담도 진행하면서 온 정성을 다했다.

  사샤가 점점 자라 17세가 되자, 무슨 생각이 들었든지 갑자기 집을 나가 세상 방방곡곡을 헤매기 시작한다. 일본, 홍콩, 중국, 중동, 유럽 각지에서 시도 때도 없이 돈 좀 보내달라는 전화를 할 때마다 새아빠는 엄마와 함께 사샤를 찾으러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안 가본 곳이 없다. 이 정도면 정말 보살도 이런 보살이 없다. 이런 새아빠들이, 많은 작품 중에서, 사실 알고 보면 별 희한한 파렴치한 작자일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거 1도 없다. 그저 착한 새아빠.

  사샤가 집을 나가 세계를 떠돈 지 3년이 흘러 이제 스무 살. 이탈리아 나폴리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번에는 새아빠가 엄마와 함께 직접 날아갈 짬이 없어서 어릴 때 사샤를 돌보곤 했던 외삼촌을 대신 보냈다. 외삼촌은 3류 대학의 미술사 종신교수. 그는 나폴리에 도착해 사샤를 찾는 대신 미술관과 성당 등 훌륭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명소들만 순례하고 있다. 그러다 물론 사샤를 만나기는 하지. 사샤가 돈도 없이 어떻게 나폴리에서 오래 살 수 있었을까? 나폴리에서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나폴리 주민만큼의 인구를 구성하는 미국과 유럽의 관광객. 사샤는 어린시절부터 단련해온 화려한 절도 및 소매치기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해 현지 안목 없는 소매치기가 눈여겨보지 않을 섬세한 품목을 훔쳐 스웨덴인 플루티스트에게 넘겨 돈을 만들었다. 때로는 장물 없이 자기 몸을 허락하는 대가로 조금의 돈을 얻기도 하고.


  위에서 한 사샤의 이야기는 1장에 나오지 않는다. 저 뒤에, 작품 후반부에 가면 사샤의 시절들이 등장한다. 위 장면은 20세까지, 훗날 1장보다 한 10여년 흘러, 도벽이 드러나 회사에서 아무리 사장이라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을 무릅쓴 채 사샤를 자를 수밖에 없었고, 이제 의사가 된 옛 대학시절 애인과 연락이 되어 다시 만나 결혼을 하고, 나이로 보아 인생에서 거의 마지막 가능성이 있을 때 아들과 딸을 낳아, 중서부 사막지대에 큰 집을 짓고 사는 이야기 중에 나온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해서 좋을 것 없지만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한 명에 불과하니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벌써 이런 작은 이야기들은 싹 잊었을 확률이 높아 말해버리는 거다.

  1장에서의 사샤는 여전히 못 말리는 도벽을 갖고 있는 35세의 커리어 우먼. “소우 이어Sow Ear” 레코드 회사의 제너럴 매니저 베니 살러자르의 비서로 12년째 일하고 있다. 즉, 나폴리에서 돌아와 개과천선해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 와 자리를 잡은 거다. 집에 돈이 좀 있다고 해서 아무나 사샤처럼 열일곱 살에 가출을 감행해 3년씩이나 전 세계를 유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과단성도 있고, 매사 결단력은 물론이고 기본적으로 뇌가 다른 이들과 비교해 쌩쌩 돌아가는 총명함도 구비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관리직 높은 자리를 꿰찰 수도 있건만 사샤 본인이 그냥 비서자리를 유지하기 원해서 그렇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사장 베니도 이를 알고 있지만 당장 자신이 일하기에 사샤만한 인물이 없다.

  소설의 막이 오르면 장소는 라시모 호텔 화장실. 소개팅에 나온 사샤가 거울을 보면서 아이섀도우를 다시 칠하고 있다가, 바닥에 놓인 가방을 발견한다. 화장실 안에서 여자 오줌누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여자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가방을 놓고 들어간 거 같다. 한눈에 척 보니까, 전문가이니만큼 딱 한 번의 눈길로 가방 가장자리 안쪽에 옅은 초록색 가죽 지갑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심리상담사한테 비싼 돈을 주며 도벽에 관한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사샤는 절대 훔치려 하지 않았지만, 오줌 누고 있는 여자의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짜증이 났다. 그랬다고 믿기 시작했다. 사샤는 무엇인가로 이 여자한테 징벌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오줌줄기가 약해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지갑을 자신의 백 속으로 집어넣고 유유히 화장실을 떠났다.

  이 장면을 스토리만 잡아서 이야기하니까 별 감흥이 없지만, 제니퍼 이건의 화려한 입심으로 각 장면마다 심리상담사와의 대화를 연상하기도 하고, 절도 순간의 마음 같은 것의 묘사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크. 사실 별볼일 없던 소개팅 상대 알렉스가, 지갑을 훔쳐나온 이후엔 꽤 괜찮은 남자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호텔 라운지에서 나온 이들은 사샤의 절도 콜렉션이 있는 사샤의 집에 함께 가고, 알렉스는 이야기 속에서만 읽어본 부엌 안에 욕조가 있는 집에는 처음으로,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으로 와본 경험이 되었는데, 둘이 별 애정도 없이 만나자마자 그 밤으로 한 번 한 다음에 정말로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사샤의 집에서 나왔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침이 될 뉴욕 거리를 걷는 알렉스의 뒷주머니에 더 이상 알렉스의 오래되어 헤진 지갑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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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1-29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읽지는 않았어요ㅋ 여기서 ‘깡패‘가 시간을 의미하나 보네요. 적절한 비유 같아요. ㅠㅠ

Falstaff 2026-01-29 15:4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재미있는 책이더라고요.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요. ^^

부생백년 2026-02-05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표지가 허접해서 그렇지 작품은 좋은 것 같습니다,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도 제목으로 손해 많이 본 작품인 듯,,매해마다 좋았던 책을 선정해 주시던데 그동안을 통틀어 최고의 책을 한번 선정해 주시지요 ,,

Falstaff 2026-02-05 15:20   좋아요 0 | URL
옙. <호랑이들...>은 정말 아깝습니다. 작품에 비해 읽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아서요.
최고의 책 선택하면 고전 소설만 잔뜩 들어갈 텐데 사실 그러면 뻔하잖아요. ^^
 
친구 사이
아모스 오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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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만에 다시 찾은 아모스 오즈. 나한테는 오즈 선생이 참 난처한 작가이(었)다. 이전에 일곱 작품(집)을 읽었는데, 처음엔 도무지 정이 가지 않다가, 하도 유명 작가라고 이름을 떨친 바 있어 딱 한 개만 더 읽어보겠다고 고른 책이 문학동네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두 권짜리 장편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이 작품에 제일 먼저 뻑 갔고, 그 다음 한 번 쉬었다가 현대문학에서 찍은 <유다>로 두 번째 뻑 갔다. 이어 열린책들과 계약이 끝나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블랙박스>도 즐거이 읽었다. <블랙박스>는 뚜껑열린책들 판 헌책으로. 그러니까 비교적 오즈도 눈에 띄면 읽는 작가 목록에 든다고 볼 수 있다. 도서관 개가실을 서성이다 ‘기타국가 소설’ 칸에 유대인 작가들이 꼽혀 있다. 요즘 이스라엘이 아랍-팔레스타인 한테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어 콧바람만 핑핑 불고 있었다가 그저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 다비드 그로스만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근데 이게 대박이었던 거라. 이날 이후로 다시 유대 서가에 조금은 신경 쓰기 시작했고, 당연히 오즈의 목록도 눈에 들어왔건만, 대개 읽은 책, 아니면 손때가 하도 묻어 내 손때를 보탤 마음에 생기지 않는 책들만 있었다. 이 가운데 그나마 좀 덜 헤진 책 한 권을 골랐으니 바로 《친구 사이》.

  책 한 권 고른 사연을 참 지루하게 이야기했지? 단편소설 모음집을 읽고 나면 대개 할 말이 그렇게 없어서 그냥 후딱 지나가야 할 이야기거리도 일부러 좀 길게 쓰고 뭐 그런 거지. 이해 좀 해주셔.

  말 나온 김에 쓸데없는 이야기 좀 더 보태볼까. 책을 골라놓고 보니 이게 활자로 큼지막하고, 편집도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범들과 친하게 페이지만 열라 늘린 편집. 본문이 209페이지에서 끝나는데 마음먹으면 반나절 좀 넘는 시간에 홀랑 읽어 치울 수 있겠다. 이런 책을 언제 읽느냐 하면, 오늘 내일로 희망도서 또는 상호대차서비스 신청한 책들이 들어올 거 같을 때, 그러나 언제 들어올지는 모를 때 읽는 거다. 괜히 두꺼운 벽돌 쌓다가 신청한 책 들어오면 허겁스러우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책 빌리자마자 상호대차 신청한 책 세 권 들어왔다고 카톡 왔다. 그게 어제 오후. 오늘은 도서관 안 가고 집에서 《친구 사이》 읽고, 오후 되면 고 정여사 제사 지내러 갔다가, 내일 신청한 책 받아 읽기 시작해야지. 골치 아프게 살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 아니면 머리 굴릴 일이 도통 없는 천국에서 살아서 그렇다.


  아모스 오즈는 나기는 예루살렘에서 나고 열다섯 살 먹었을 때, 뭐 사춘기 소년답게 삐딱선을 좀 탔는지, 부모형제 내팽개치고 혼자 이스라엘 집단농장 키부츠 홀다에 들어간 인간이다. ‘키부츠 홀다’를 그냥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홀다 집단농장’, 이 비슷하게 이해하면 된다. 오즈의 부모 이름은 ‘오즈’가 아니다. 키부츠에 들어간 김에, 설마 진짜로 가족들과 연을 끊으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이름마저 ‘힘’을 뜻하는 히브리어 ‘오즈’로 바꾸어버렸다. 이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아랍-팔레스타인 지역을 떠나지 않았던 터줏대감의 자손 같지는 않다. 검색해봤더니 아버지는 리투아니아, 어머니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지역 출신이다. 그러면 짧은 독립국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중요한 세대. 신생국도 아니고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키부츠에서 성장했으니. 이 바로 뒤가 신생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세대. 내가 뭐 아나, 책에 이런 얘기가 나와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지.

  키부츠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친구 사이》에 수록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의 무대가 모두 키부츠 예캇이기 때문이다. 시간적 공간은 1950년대. 아모스 오즈가 키부츠에 들어간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 책을 출간한 것이 2012년. 오즈가 73세 때로 무려 60년 전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려, 이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았겠지만, 하여튼 60년 전의 경험을 깔고 쓴 셈이다. 혹시 모르지,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바람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아빠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정부가 키부츠에 보낸 고등학생 모시가 자신의 분신일지도. 아니겠지만.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 한 많은 미아리고개 넘어 몇몇 인간들의 마음의 고향 미아리텍사스와 센 강을 격한 북향의 우울한 건물 속에서 주로 국사 선생이 온몸에 침을 튀며 이상향으로 부르짖던 키부츠가, 아마 그 국사 선생도 몰랐을 걸, 거의 완벽한 공산주의 생산체계에 입각해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들은 아모스 오즈가 보기에 키부츠의 높은 관리자들은 순정한 사랑의 종교인 초기 유대교를 버리고 죄와 탈선, 금지와 엄격한 규칙으로 가득한 새 종교를 만들어 버렸던 거였다. 남편을 버리고 독립하기로 결심한 <데이르 아즐룬>의 주인공 니나가 168쪽에서 한 말에 의하면 그렇다. 이들은 유대교를 다른 종교로 바꾼 사람들이란다. 마르크스가 탈무드이고, (공산주의식)총회가 교회당이며 (교조적 유대교 교사인) 다비드 다간이 랍비인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단다. 일체의 사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 아이들마저 한 부부에 속한 아이인지, 키부츠에 속한 아이인지를 키부츠 총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는(했던) 사람들. 아이들은 부모의 노동시간이 끝난 저녁 때 집으로 돌아가 부모자식 간의 정을 조금 나눈 후, 취침시간 전인 오후 9시까지 탁아소로 돌아와 집단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아름답고 선해? 누가 그래? 당연히 집단으로 따돌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언제나 그렇듯이 따돌림 또는 괴롭힘의 대상은 좀 늦게 크는 아이이거나 체력이 약한 아이일 것이다. 만날 자기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게 된 아버지가 참다, 참다못해 결국 꼭지가 돌아버려 탁아소로 냅다 달려가 자기 아이를 괴롭힌 꼬마 말고 엄하게 얻어걸린 아무런 아이의 귀싸대기를 연달아 올려붙이는 <조그만 아이>의 주인공 로니.

  이게 말이 되냐고? 아이를 부모가 기르지 못하고 탁아소에 보내 평등한 교육과 평등한 육아, 그리고 평등한 먹거리, 잠자리를 제공한다니. 이탈리아로 가서 무기 부품 사업에 성공한 옛 키부츠 동지는 키부츠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아예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않고 그냥 이탈리아에 주저 앉아 크게 돈을 벌었다. 유대인들 가족 사랑이 대단하지? 그래서 누나 아들, 조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도 마치기가 무섭게 편지를 해 자기한테 보내면 모든 학비와 자기 집에서 살면 되니까 주거비와 식비는 당연한 거고, 생활비까지 모두 보태 주겠으니 서두르라고 했다. 키부츠 출신이 대학에 가려면 군복무 말고도 키부츠에서 무조건 노동을 3년 한 다음에 심의를 거쳐 갈지 말지 다수결로 결정을 한단다. 근데 내 아이는 대학에 못 가는데, 다른 집 아이가 대학에 간다면 마음이 편하겠어? 즐겁게 찬성 표를 던지겠느냐고? 어림도 없지.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건 평등이 아니다. 공부 머리가 좋은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손재주가 좋은 아이는 기능사를 만들고, 몸이 잽싸고 덩치가 큰 아이들을 운동선수로 키우는 것이 재능에 따른 평등 아닐까 싶다. 내가 지금 치사하게 시냇물의 가재, 붕어, 개구리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건 대를 이어 청룡, 황룡, 흑룡과 가재, 붕어, 개구리 신분을 세습하겠다는 치졸하고 파렴치한 봉건주의자의 생각이고, 진정한 공산주의라면 당연히 재능에 따라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각자의 노력에 대한 소득 격차가 있기는 있되 그리 크지 않으면 서로 열 받을 필요도 별로 없지 않겠나.

  《친구 사이》에는 그냥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키부츠라는 곳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집단. 어디서나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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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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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2년이 지나서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욘 포세 열광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긴, 바로 다음해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나라 작가 한강이 상을 받았으니 그 파도에 주저앉아 버린 게 당연하기는 하다. <아침 그리고 저녁>이 두 번째 읽은 포세의 책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포세 씨, 우리 다시 만나지 맙시다.” 속삭임, 속삭임.

  “ㅆㄴㄹ 소설.”

  잊으셨을 거다. ‘ㅆㄴㄹ’이 뭔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설이라는 뜻. 나, 이거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근데 완전히 ㅆㄴㄹ이니 어찌 또 만날 수 있으리.

  재미없느냐고? 아니, 재미없지는 않다.

  별 감흥이 없느냐고? 감흥이 있을 수도 있고, 감동 먹을 사람들은 감동 먹을 만하다.

  다 좋은데, 딱 하나, “ㅆㄴㄹ 소설”이어서 싫을 뿐.


  분위기도 익숙하다. 노르웨이 피오르 해역에 떠 있는 외딴 작은 섬에서의 출생이 아침. 피오르 만을 끼고 형성된 도시에서의 죽음이 저녁. 출생과 죽음, 아침과 저녁의 주인공은 요한네스.

  오래 전. 약 80년쯤 전에 노르웨이 피오르 해역 멀리 작고 외딴 홀멘섬에서 마르타가 진통을 하고 있다. 마르타와 어부 남편 올라이 사이에는 이제 곧 사춘기를 맞을 딸 마그다가 있고 이후 임신을 하지 못했다. 부부는 마그다가 어여쁘고 총명해 굳이 국영수 학원에 보내지 않더라도 담임선생의 칭찬이 대단해 딸 하나로 충분하고, 하느님의 축북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때는 20세기 초. 피오르 해역의 어부들은 어선에 절대 여자를 태우지 않았다. 액운이 닥칠 수도 있어서. 그렇게 믿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택시 운전수들이 재수 없다고 새벽 첫 손님으로 여자를 태우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고 자기 배를 물려받을 아들 하나가 없는 게 많이는 아니고 조금 섭섭했던 올라이한테 늦게라도 마르타가 임신을 한 게 얼마나 좋았는지. 이번에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아들이 나오면 내 아버지의 이름 ‘요한네스’를 물려줘야지.

  올라이는 오래 전에 이 올멘섬을 샀다. 장가도 들지 않았고, 고기 잡아 파는 젊은 어부가 벌면 얼마나 벌었을까? 자신의 모든 돈을 다 긁어 섬을 샀다고 해도 얼마 안 되는 돈이었을 터이니 작고 험하고 외진 섬이겠지. 올라이는 바람이 제일 약하게 부는 따듯한 만의 중턱을 골라 자기 손으로 집을 짓고, 보트하우스와 부속 건물도 지었다. 물론 형들과 이웃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자기가 섬을 개척하고 집을 지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그래서 섬과 집과 배와 아내와 딸에 대해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보태 이제 마르타가 진통을 하고, 올라이는 늙은 산파 안나가 지시하는 대로 물을 끓여 방 앞에 대령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이어서 본격적인 마르타의 진통과 분만이 이어진다. 포세의 특유한 문장. 같은 단어나 구절을 반복해 리듬감과 호소력까지 담아 독자가 훅 빠지게 만든다. 이 장면이 끝날 때까지 포세는 줄을 바꾸지 않고 계속 진술한다. 마침표도 없다. 아마 실수로 한두 번 찍은 것처럼 보이는 마침표 말고는 그 작고 새까만 점을 독자는 구경할 수 없다. 누구 생각나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문장은 저 뒤, 아주 먼 먼 뒤로 가면 그래도 마침표 하나는 찍혀 있다. 근데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에는 끝까지 작고 까만 점이 없다. 하지만 줄, 행은 띄어 있다. 다만 마침표만 없을 뿐. 이렇게.


  그래그래. 마르타가 말한다

  이 아이는 요한네스라고 부를 거야,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올라이가 말한다

  그래, 요한네스라고 부르자, 마르타가 말한다 (p.26)


  이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고? 작지 않은 글씨체의 널럴한 편집을 보태 본문을 무려 135쪽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분량을 만들 수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처럼 마침표 없고 행 구분도 하지 않으면 편집을 아무리 풍성풍성하게 해도 1백쪽 미만에서 끝낼 수 있을 걸?

  하여간 이렇게 요한네스가 피오르 해역의 작고 외딴 홀멘섬에서 출생했다. 아침. 1부.


  이어지는 2부, 저녁. 요한네스의 아빠 올라이, 엄마 마르타, 누나 마그다. 다 죽었다. 마그다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갔다. 가족 모두 어떻게 갔는지는 설명도 없다. 그냥 갔다. 요한네스, 그동안 에르나와 결혼해 일곱 아이를 두고, 몇 명인지도 모르는 손주들의 재롱도 넘치게 받았다. 아이가 다섯 생기자 도무지 작은 홀맨섬에서 살 수 없어 피오르 해역에 접한 마을로 이사했다. 전에 읽은 포세의 <보트하우스>에서 본 그 동네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프로데 그뤼텐의 책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는 더 어울린다. 심지어 내용도 비슷하다. <닐스 비크…>를 그대로 <아침…>에 옮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정말이다.

  <닐스 비크…>는 주인공이자 선한 연락선 선장 닐스 비크가 죽는 날 하루 이야기이고, <아침…>은 새벽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자다가 곱게 죽은 노인 요한네스의 귀신이 제일 친한 친구 페터스의 귀신을 만나 저승으로 안내를 받기까지 이야기라는 게 다른 뿐이지 어차피 똑 같은 ㅆㄴㄹ 소설. 분위기, 장소 같은 게 모두 판박이. 피오르 출신 작가들은 그 동네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도 있는 걸까?

  뭐 이런 말 하지 말자. 내가 싫으면 안 읽으면 되는 것이지, 좋게, 공감하며, 심지어 감동 먹어가며 읽은 독자도 있을 터이니 괜히 떠들어 좋을 게 없다. 다만, 포세 씨, 우리 더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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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27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절교를!
ㅋㅋㅋㅋ

Falstaff 2026-01-27 14:40   좋아요 1 | URL
좀 매정했습니까? ㅋㅋㅋ

잠자냥 2026-01-27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만, 포세 씨, 나도 더불어 더 보지 말자!
ㅋㅋㅋㅋㅋㅋ
욘 표세 지겨워서 노벨상 이후 아무리 책이 더 나와도 저는 안 읽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폴님의 손절이 반가워요.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1-27 14:41   좋아요 1 | URL
두 권 읽었으면 성의 표시는 충분히 한 걸로 쳐도 괜찮겠습지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6-01-27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닐스 비크에서도 부인 이름이 마르타 아닌가요?
그곳의 피요르드는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왠지 죽음에 대한 책은 다 좋고 숭고합니다 ㅎㅎ

Falstaff 2026-01-27 14:43   좋아요 1 | URL
옙. 마르타 맞습니다. 오스트리아 이북 지역에 특히 마르타가 많더라고요.
이 동네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톱 랭킹에 오르기 바로 직전까지 세계 자살률 1등 먹었던 지라 유독 죽음과 관련한 작품이 많을 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농담입니다. ㅎㅎ
 
물은 끓고, 영원에 가까워진다
윤해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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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해서는 2017년에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의 독후감을 업로드하고 3년 터울로 2020년, 2023년에 이어 2026년, 네 번째 독후감을 쓴다. 네 권이면 과작寡作 스타일의 작가치고 그나마 많이 읽은 편이다. 그만큼 《코러스크로노스》가 좋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물은 끓고, 영원에 가까워진다》에서 끓는 물과 가까워진 영혼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윤해서는 10년 동안 더욱 오리무중이 되었으며, 이미지를 가능한 한 꼬불치려 안달하는 것 같고, 여전히 문장의 음악성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전 만큼은 아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러는 사이 윤해서, 벌써 마흔여섯 살이 되어 버렸네, 아, 세월이란.

  더욱 놀라운 건 일곱 편의 단편소설에서 적어도 두 편에서는 우리나라 작가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또는 쓸 만한 흔한 마음 서림/아림의 작품이었다.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문제의 두 작품, 즉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면>과 <변성>은 2류 발라드 뽕짝이라는 말씀. 즉 전혀 윤해서 같지 않아서, 윤해서한테 결코 바라지 않던 글이라는 거였고, 그래서 폭싹 실망했다는 뜻이다. 다른 작가가 썼다면 이리 혹독하게 말하지 않겠지만,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주목해온 윤해서라서 그렇다. 물론 내가 소설과 문학에 대해 쥐똥도 모르면서 책 좀 읽는다고 딜레탕트 흉내만 내는 허접한 독자라는 건 알지만, 딜레탕트 아마추어도 책 읽는 감정이 있고 소감도 있으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뭐 그러고 보니 윤해서가 퐁당퐁당이기는 했다. 좋았다가, 실망했다가 다시 좋아졌으니 이제 또 실망할 차례인가보지 뭐. 이렇게 스스로 위안하고 다시 3년 후를 기약해보겠다. 어쩌면 3년 후 정도가 마지막 윤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작품 때문이 아니라 시력이 별로 받쳐주지 못할 거 같아서 그렇다. 물론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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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웃음소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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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나보코프 책으로 여덟 권째 읽는 건데, 이렇게 말하는 게 유감스럽지만, 제일 별로였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말에 따르면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일부 독자 사이에서 12세 소녀 돌로리스, 애칭 롤리타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험버트에 반대하여 어떤 나보코프도 더 이상 읽기를 거부한 일도 있었다는데, 그건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거니까 나더러 자신들의 운동에 뜻을 보태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상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No more Nabukov, 이해할 수 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롤리타> 때문에, 더하기 이 책 <어둠 속의 웃음소리>의 번다한 상업주의와 상투성 때문에 No more Nabukov를 주장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부코프는 뭐하러 이런 책을 썼을까? 뭐긴 뭐야, 돈 때문이지.

  1899년에 러시아 귀족 집안의 자재로 태어나 10대 시절까지 손가락에 물 한 번 묻힐 필요 없이 살다가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유럽으로 날아가서 지나간 과거 시절에 비하면 죽을 똥을 지릴 정도로 아이고 내 팔자야, 고생하며 살았겠지. 근데 유럽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본격적인 고난의 행군을 하던 때였다. 아마도, 정확한 게 아니라 내 짐작으로 말하자면, 극소수의 부르주아가 아니고 대부분의 유럽인에 비하면 그나마 먹고 살기가 그리 빡빡한 편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러다가 러시아 어로 소설을 쓰고 그게 또 잘 팔려 그나마 돈을 좀 벌었다 한들, 그게 만족스러웠겠느냐고. 1932년에 베를린에서 살던 나보코프는 러시아 이민자들이 러시아 이민자들을 위하여 만드는 잡지에 러시아어로 쓴 소설 한 편을 연재하고, 1936년에 원고를 팔아 영국에서도 원래 제목 <카메라 옵스큐라>로 출판한다. 이어서 1938년에는 미국에서도 출간하게 되는데, 이때 나보코프는 자기 작품을 스스로 번역한 <어둠 속의 웃음소리>를 자기 이름으로 낸다. 이때 나보코프가 딱 돈이 궁했던 시기였다고 역자 정영목은 말한다. 돈이 궁하니, 당시에도 소설보다는 영화의 판돈이 어마어마하게 큰 시절이어서, 나보코프가 작품의 제목이야 어떻게 됐든 간에 번역을 할 당시부터 애초에 이 작품을 영화화하고 싶었다는데 그냥 김치국물만 벌컥벌컥 자신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책도 안 팔리고. 뭐 인생이 그렇지.

  1938년의 유럽은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1940년에 미국에 도착한 나보코프는 본격적으로 영어로 소설을 쓰고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데, <어둠 속의 웃음소리>가 영화화되어 크게 히트를 했다면, 아마도 나보코프는 이후의 명작 소설을 생산하는 대신 평생 그렇고 그런 영화 시나리오를 긁적이다, 돈이야 많이 벌었겠지만 문학사에 크게 이름을 올리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인생 살면서 다 좋은 건 없잖아.


  근데, 여태까지 했던 이야기를 좀 뒤집는 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이 재미없는 건 아니다. 웃기지? 난데없이 이상한 말을 해서. 다시 보시면 나는 이 책이 여태 읽은 총 여덟 권의 나보코프 가운데 제일 ‘별로’라고 했지 재미가 있다, 없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할리우드 인간들이 영화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스토리 라인이 미국적이지 않고 다분히 유럽적이라서 그랬단다. 정영목의 해설을 믿는다면. 어차피 그 양반도 미국사람이 영어로 한 말을 인용한 거겠지만.

  곧바로 작품의 주인공 알베르트 알비누스를 소개하자. 미술평론가이자 그림 전문가. 일찌감치 숟가락 놓은 아버지가 제대로 된 자금관리와 다방면의 대박 치는 투자를 해 놓아 덕분에 무지무지한 예금계좌, 토지와 건물과 별장 같은 부동산, 그리고 르네상스 이전부터 뻑적지근하게 이름을 날린 화가들이 그린 다수의 진품과 다수의 가짜 명화들까지 뭐 하나 모자란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돈보다는 ‘뭔가 재미난 일’을 골라 하기 마련이어서, 명화를 이용한 영화 제작안을 짜 여러 영화사에 보내기도 했건만 그때마다 정중한 거절의 회신을 받을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21세기가 아닌 1930년대의 이런 남자들의 특징. 차분하고 행실 좋은 쪽으로 잘 생겼다는 느낌을 주는 외모. 군살도 없지만 그렇다고 근육이 울퉁불퉁하지도 않은 몸. 따라서 크게 완력이 있지도 않은 그저 도련님. 점점 자라 대가리가 굵어지고 다른 것도 굵어지면서 세 번 연애를 했는데, 첫째가 나이든 칙칙한 부인과의 지루한 간통이었으며, 두번째가 라인강변에서 만난 교수부인이었고, 세번째가 결혼 직전 베를린의 못생긴 얼굴에 여위고 따분한 여자였다. 이후에 부유한 집안의 어여쁜 엘리자베트를 사랑해 결혼했지만 전형적인 규방규수인 아내는 그가 갈망하다 지쳐버린 전율을 결코 남편한테 주지 못했다. 웃겼어. “갈망하다 지쳐버린 전율”이 뭐야? 그걸 가지고 있는 여자가 세상에 있어? 아니, 있겠지. 내가 하는 말은 1년 이상 갖고 있을 수 있는 여자 말이지. 하여간 나보코프는 그 염병할 전율을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상실감, 황금빛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외따로 서 있는 나무, 교량 안쪽의 굽은 곳으로 퍼지는 빛의 파문, 절대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이라 설명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지,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보코프는 이후 “갈망하다 지쳐버린 전율”을 15년 동안 찾아나섰다가 예상치도 못한 “님펫” 롤리타를 만나 평소 원대로 돈과 명성을 손아귀에 거머쥐게 된다.


  하루는 시내에 약속이 있어 외출을 했는데, 카페에 도착하니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온 거다. 시간을 죽이기 위하여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 들른 알비누스. 당시엔 영화 상영 중에도 표만 사면 영화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화면을 제외하고 딱 하나 켜져 있는 전등이라고는 비상구 안내등 밖에 없어서 대개 여성 직원이 손전등을 가지고 어둠 속에서 새로 입장한 손님을 좌석까지 안내해주었다. 영화 보다가도 담배를 뻑뻑 피우던 시절이니 이딴 건 아무것도 아니지.

  근데 알비누스를 안내해준 안내원 소녀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창백하고 음침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나이는 열여덟쯤? 보는 것만 가지고도 아팠단다. 어디가 아팠을까? 그건 모르겠다. 책에 안 나온다. 한 눈에 홀딱 반한 알비누스는 사흘이 지나 다시 영화관에 갔고, 세번째 들렀을 때 소녀에게 웃어주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실제로는 가슴이 너무 쿵쾅거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전형적인 찌질이 도련님. 너무 얌전하게 자란 티가 벅벅 난다. 한편으로는 “다 소용없어. 지금 행복한데 나한테 뭐가 더 필요해? 어둠 속에서 미끄러져 다니는 그것…. 그 아름다운 목을 눌러버리고 싶어. 뭐 어차피 죽어버린 거나 다름없지. 다시는 가지 않을 거니까.”라고 마음먹지만 안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녀의 이름은 마르고트 페터스. 중하층 또는 그 아래 계급 가족의 1남1녀 가운데 둘째. 부모는 마르고트가 얼른 자라 자기 먹을 걸 스스로 벌어 집에서 나가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열여섯 살 때 겨울날, 레반돕스키 부인 댁의 아파트에 딸린 작은 하녀방으로 옮겼는데, 하녀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곳에서 지내며 훗날 레반돕스키 부인을 포주로 섬기라는 뜻이었다. 결국 머지않아 밀러라는 이름의 남자한테 (결과적으로)순정을 바치고(어떤 순정인지는 안 알려드림), 밀러와 헤어진 다음엔 노인과 몇몇 남자를 거친 후에 영화관 안내원으로 잠깐 일했던 거였다.

  그러니 지금 나이가 열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상살이를 알만큼 알고, 겪을만큼 겪은, 닳고 닳은 팜 파탈이었던 것이지. 원래의 꿈은 화가들의 누드 모델을 거쳐 은막에 데뷔하여 스타가 되는 거였는데, 모델을 하면서 영화계 입문을 위해 조금이라도 영화를 알고 싶어서 들어간 거라고. 이 아가씨한테 우리의 알비누스가 걸려버렸던 거였다. 걸려도 아주 되게 걸렸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에 독일 베를린에 알비누스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부유하고, 품위 있고,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린 애인 때문에 아내를 버렸다. 그는 사랑했으나, 사랑받지는 못했다. 결국 그의 삶은 참담하게 끝이 났다.”


  이 한 문단만 읽으면 책은 사실 끝났다고 봐도 별 무리 없음, 쾅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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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2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3개 좋습니다. 좋아요~~ㅎㅎ
이 책을 구입하려다가 말았는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나보코프는 <롤리타>와 <절망> 정도면 충분할 듯합니다..^^

Falstaff 2026-01-23 16:06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근데 나보코프가 이렇게 3별 짜리도 있고 뭐 그래서 더 좋은 거 아닌가 싶어요!
두 작품 외에 하나만 더 추가, <<창백한 불꽃>도 아이쿠 여지없이 뒤통수 한 방 갈기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