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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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작품 <그리머스>를 출간하는데 성공한 루슈디는 여전히 “젊은 소설가 지망생 겸 카피라이터로 절망에 빠진 한 마리 새”에 불과했다. 이때는 자기 또래 작가들, 예를 들어 마틴 에이미스와 이언 매큐언은 진즉 뾰족머리, 즉 두각頭角을 나타내고 있었던 반면, 루슈디는 런던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좋은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꽤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기는 했으나 원하는 바가 아니라서 쉴 새 없이 습작을 끼적여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머스>가 평단의 평은 좋지 못했더라도 영국은 물론이고 프랑스와 이스라엘에까지 판권이 팔려 짭짤한 저작료가 들어오자 광고회사인 오길비를 그만 두고 나중에 맏아들 자파르 하룬의 어머니이자 첫 번째 아내가 될 클래리사를 꼬드겨 인도에 다녀온 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클래리사가 먼저 생을 마친 후 루슈디는 성인이 된 하룬과 함께 다시 인도를 방문해, 과거에 네 엄마하고도 왔었다, 라고, 추억 그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주게 된다) 클래리사와의 합의 하에 가난하게 살 각오를 용감하게 하고 필생의 대표작이 될 <한밤의 아이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대박. 1981년에 출간을 하고, 그 해에 도리스 레싱, 뮤리엘 스파크, 이언 매큐언, D.M. 토머스 등을 가볍게 누르고 부커 상을 수상해버린다. 게다가 훗날 이 작품은 부커상 20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부커상 수상작품, ‘부커 오브 부커’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살만 루슈디는 세계적인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름과 동시에 작품만 썼다 하면 적지 않은 선인세를 받고, 입맛에 맞는 출판사를 고를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쥐었다는 말씀. 이후 <수치>를 발표해 작은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수치> 5년 후, 루슈디의 평생을 좌우하고 나중엔 기어이 그의 멱살을 잡아 땅바닥에 메다 꽂을 <악마의 시>를 출간해, 루슈디의 의견도 그렇고 나도 직접 읽어보니까 별 문제도 없어 보이는데,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당대의 이맘, 이란의 호메이니를 간질거려 <악마의 시>를 최악의 신성모독으로 규정, 그것을 쓴 살만 루슈디에게 만 년 동안 지속할 사형선고, 이른바 파트와를 선언해버리고 만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이슬람 광신도들은 이때부터 살만 루슈디를 죽여 불멸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아니면 루슈디의 목에 걸린 수백만, 적어도 백만 달러가 넘는 현상금을 얻기 위하여 소총을 기름칠하기 시작했으며, 1964년에 루슈디가 시민권을 딴 영국의 경찰은 자국민을 테러리즘에서 보호하기 위해 영국 여왕에 준하는 경호를 시작한다. 이 책 <조지프 앤턴>의 8할 이상은 ① <악마의 시>가 결코 신성모독이 아니라는 점, ② 과중한 경호에 자신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③ 문학적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신성한지, 그리고 ④ 기타 자기 잘난 척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러니까 회고록은 회고록이되 이슬람 테러 (위협)에 의하여 부당하게 자유를 침탈당한 한 작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전력을 다했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자서전 또는 회고록을 좋아하지 않는지를 다시 한번 절절하게 알았으며, 그러면서도 어찌하여, 아무리 내가 살만 루슈디를 좋아할지언정 그의, 회고록을 골라서, 그것도 8백 페이지를 가뿐하게 넘는 길고 긴 회상, 궁상, 잘난 척을 읽었는지 참, 감회, 라기보다 후회가 새로웠다. 역시 사람은 신념을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도서관 지하 휴게소에 내려가 천 원짜리 백제 컵쌀국수에 뜨건 물 부어 하나 먹고 곧바로 올라와 독후감 쓰는 거니까 이제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거의 모든 인간들이 그렇기는 하겠지만 살만 루슈디 역시, 그가 좋은, 아니다 이걸로 부족해서 좀 올려 이야기하면, 훌륭한 작가라는 점만 빼놓고 그를 평하자면 천하의 이기적인 잡놈이다. 이 책 읽으신 분 가운데 내 얘기가 틀리다는 사람 있으면 거수 바람. 물론 작가, 화가, 음악가, 가수, 배우 등의 연예인, 하여간 예술 주변에서 예술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나하고 비슷한 보통 인간들하고 같으면 안 되겠지만, 이들 무리 만을 생각하더라도 살만 루슈디의 사물을 보는 방식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이고, 거만하고, 잘난 척하고, 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매우, 매우 밥맛이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하여간 나는 이이의 작품을 좋아하니까. 하긴 루슈디도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자기 팬이란 걸 아니까 그렇게 밥맛이긴 하겠지만.

왜 이리 침을 튀는지 한 번 설명해보겠다.

루슈디는 가난을 각오하고 시절을 함께 헤쳐나간 첫째 아내 클래리사와 살림을 시작하면서 맏아들 자파르 하룬을 낳았고 이들 처자식을 자랑으로 여기면서도 작가 매리앤 위긴스와 불륜을 저질러 결국 이혼하고 매리앤과 결혼한다. 뭐 그럴 수 있다. 여기까지는. 그러나 루슈디는 회고록에서 매리앤이 좀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일만큼 악의적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그 틈을 노려(진짜로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젊고 아름답고 선한 아가씨 엘리자베스 웨스트와 또다시 불륜을 저질러 매리앤과 이혼한다. 엘리자베스와 몇 년에 걸쳐 사이 좋게 잘 지내다가 둘째 아들 루카를 낳고, 그동안 영국과는 달리 경호원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는 문제와 산후 우울증, 이어서 두번째 출산을 원하는 엘리자베스와의 갈등이, 내가 봐도 거의 엘리자베스의 귀책으로 몰고가는 등, 비록 혼인신고 하기 전이지만 파리에서 또다른 불륜을 저지른 것이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게 된 결정적 이유란 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루슈디는 뉴욕에서 엘리자베스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인도 출신 여성 모델 파드마 락쉬미를 만나 거의 동거하다시피 하다가 끝내 엘리자베스와 이혼하고 파드마와 네번째 결혼을 올린다. 그리고 또다시 파드마의 왔다 갔다 하는 성격으로 네 번째 이혼을 하게 되는데, 살만 루슈디는 도대체가 반성이, 있긴 있다. 결국 다 내 책임이고 내 잘못이라고 말은 하지만 독자인 내가 읽기로는, 주로 잘 나가는 프로 운동선수들이 구단과 연봉협상 할 때 즐겨 쓰는 용어로, 진정성이 없다, 진정성이.

둘째로, 이이는 어떻게 됐거나 하여튼 자신이 쓴 <악마의 시> 때문에 이란을 위시한 아랍 여러 나라의 이슬람 교도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 국적이 있는 영국정부한테 보호를 요청하는 것까지는 좋다. 당연한 권리니까. 세금 내잖여? 세금도 일종의 보험 아녀? 그런데, 그러면 만일 영국 정부가 루슈디의 가족을 몽땅, 이 책에 비유적으로, 비아냥도 아니지만 좀 우스꽝스럽게 말했듯이,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섬의 오두막에 쑤셔 박아놔도 그리 크게 불평할 수 없을 거 같다. 물론 설마 내가 그 정도를 바라겠는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루슈디는 자신이 도시형 인간이라 외딴 곳이나 시골에서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구태여, 죽어도 런던이나 런던 근방의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아파트는 경호문제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한 채로 살고 싶어 한다. 경호원이 그의 행동반경과 노출 수위를 정할 때마다 짜증이 듬뿍 묻어나는 문장과 단어를 구사하는데, 이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왜 살만 루슈디의 경호를 위해 (그들의 주장대로 ‘막대한 수준’은 아니지만) 세금을 써야 하는지 국민들이 불평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말이지. 루슈디는 자신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모든 것을 경호상 편리를 위한 과잉 경호 때문에 벌어지는 자유의 구속으로 보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해서 주로 아가씨의 원피스에 흔적을 묻히는데 취미가 붙은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을 만나고, 그로부터 자신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오히려 영국 경찰과의 관계에 거의 완벽한 권력을 잡는 행운까지 나꿔챈다. 이후부터는 당연하게 더, 더, 더 밥맛이 없게 되는 건 물론이고. 그러다가 2022년의 뉴욕에서 그 봉변을 당한 거 아닌가 말이지.

하긴. 그래, 그래. 너나 나나 별 거 있니. 재주 빼고, 가진 돈 빼고, 가방끈 빼고, 그냥 인간 대 인간, 발간 알몸 대 알몸으로 비교하면 뭐 하나 다를 거 있겠니.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도 살만 루슈디, 하나만 기억해라.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 팬이다. 부상에서 얼른 회복해 현란한 당신의 요설을 조금만 더 들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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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1-28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욕하면서 읽었어요!!! 나쁜 놈이네 이거! 근데 제밌게 쓰다니, 더 나빠!!!

그리고 루슈디가 신작 Victory City를 내놓았다는군요. 역자 (당연 김진준)를 재촉하고 싶어요.

Falstaff 2023-01-28 13:39   좋아요 0 | URL
오호, 신작이 나왔군요. 얼른 번역해 깔리기 바랍니다. 반가운 소식이네요. ^^

싱글오이 2023-01-28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곧 읽으려고 쟁여둔 책인데,
이 글 보니 더 기대 됩니다 ^-^;;

Falstaff 2023-01-28 13: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미나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moonnight 2023-01-28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_@; 살만 루슈디가 이런 인물이었군요. 어질어질@_@;;;

Falstaff 2023-01-28 13:41   좋아요 1 | URL
뭐 다들 본성은 비슷한데 누가 더 참고 사느냐, 도를 많이 닦았느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 책 읽으면서 저 천재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도 비슷했겠거니 싶었습니다. ^^

stella.K 2023-01-28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그렇지 않아도 이이의 책이 최근에 또 나온 걸 보고
문트님 생각했는데 말입죠. 재밌게 쓰셔서 킥킥대고 읽었습니다.
자서전은 뭐 꼭 인격이나 도덕성이 뛰어난 사람만 쓰는 건 아니죠.
그냥 그 사람은 어떤 생각과 체험과 경험이 있었나 관음증 때문에
읽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작가라면 좀 고상하고 발라야 한다는 뭔가의 이미지가 있긴하죠?
아무래도 문트님은 건강을 위해서 읽지 않는 게 좋으실 듯 합니다. ㅋ
전 솔직히 살만 루슈디 생긴 게 좀 괴팍한 느낌이어서 별로 선뜻 손이 안 가더군요.

Falstaff 2023-01-28 13:44   좋아요 1 | URL
자서전이나 회고록 쓰고 한 십 년 흐른 다음에 읽어보면 작자 자신도 무지 쪽팔리지 않을까요? ㅎㅎㅎ 저는 여간해 읽지 않지만 간혹 자서전 읽어보면 이런 의문이 무지하게 생긴답니다.
오, 저는 작가를 비롯해서 하여간 예술 비슷한 직업에 종사하는 인간들은 오히려 더 방종할 거 같아요. 반듯하고 고상하기는요, 주위에 예술하는 인간들 가운데는 한 명도 없더라고요. 저도 예술 안 하기 얼마나 다행인지 말입니다. ㅎㅎㅎㅎ

바람돌이 2023-01-28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본적인 인간성과 그 재능이 일치하게 좋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렇게 인성을 욕할 수 밖에 없음에도 그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팬이 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있지요. 암요..... ㅎㅎ

Falstaff 2023-01-28 14: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알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파이버 2023-01-28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슈디 작품만 알았는데 사적인 모습은 별로군요...;; 이정도 불륜이면 실수가 아니라 습관인 것 같아요...

Falstaff 2023-01-29 06:05   좋아요 1 | URL
뭐든 다 좋기는 힘들잖습니까. 바람둥이 작가들이 무척 많잖아요. 이들 가운데 한 명이지요 뭐.

그레이스 2023-01-30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서전 제목이 왜 조지프 애턴인가 했더니 그의 가명이군요.
<한밤의 아이들>만 읽었지만 루슈디의 글 방향을 좋아해요.
골드문트님의 말 듣고 얼른 일어나시길!

Falstaff 2023-01-31 05:55   좋아요 1 | URL
옙. 가명 하나는 정말 잘 지었습니다. ㅎㅎㅎ 계속 읽어보셔요. 재미난 작품 많습니다.

yamoo 2023-02-0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루시디 자서전이 나왔군요! 구매해야 겠으묘~~~~
루시디 전집, 가즈아~~!!ㅎㅎ

Falstaff 2023-02-03 16:1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루슈디 팬이면 읽어볼 만합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