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구석들 창비세계문학 88
에밀 졸라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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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1년 11월,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인근의 가상도시 쁠라상에서 열차를 타고 리옹 역에서 내려 여행가방 세 개를 마차에 싣고 쉬아죌 거리 두 번째 집에, 주인공 옥따브가 내리는 것으로 <집구석들>은 시작한다. 창비 식 표기법으로 ‘옥따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서 들은 이름인데, 다른 곳도 아니고 졸라가 쓴 루공-마카르 총서의 한 작품을 통해 익숙한 이름 같았다. 누굴까. 아하, 시공사 표기로 ‘옥타브.’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나오는 백화점 총지배인이자 주인공 이름이 옥타브였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옥타브가 백화점을 짓기 전에 남프랑스에서 파리로 올라와 어떻게 터전을 잡았는지를 알 수 있는 열 번째 총서다.
  쁠라상에서 알고 지내던 노부부를 통해, 결혼해 파리에 살고 있는 그들의 딸 로즈더러 마땅한 거처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해서, 사위 아쉴 깡빠르동이 부부와 외동딸 앙젤, 하녀 리자와 함께 세 들어 사는 쉬아죌 거리 중산 아파트 5층 건물의 5층에 셋방을 얻게 된 것. 이후 열 번째 루공-마카르 총서는 이 건물의 주인 가족과 세 들어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의 하인, 하녀, 요리사들이 지지고 볶으며 사는 야단법석, 난장판을 그리게 된다.

 

  때는 19세기 말, 벨 에포크 시절이 막 도래했거나, 이제 꽃망울이 활짝 피기 바로 전. 음악을 좋아하지 않지만 듣기 좋은 테너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야망을 숨긴 청년 옥따브가,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을 건물에 들어오고, 거의 쫓겨나고, 정착할 때까지 약 2년 동안이 작품의 시간적 공간이다. 시절은 당연히 부르주아의 계절. 결코 지지 않을 것 같은 부르주아의 전성시대. 그러나 졸라가 주목한 곳은 최고의 부르주아 말고 바로 아래층, 소위 “중산층”이라고 명명하는 집단의 사는 모습이다. 엑상프로방스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서 그런지 졸라는 한 번 척, 보고 중산계급의 지극한 속물성을 알아본 적이 있다. 루공-마카르 총서를 집필하면서, 특히 빈민아파트 근방의 풍경을 그린 <목로주점>의 대 성공 이후, 파리 근교 메당의 별장을 구입해 소위 메당 그룹을 결성할 정도로 성공을 했으나, 근엄한 평론가들로부터 외설, 선정성 등의 공격을 받기에 이른다. 졸라가 불편한 날것을 그때까지 활약했던 어느 작가보다 리얼하게 표현했으니 스스로 중산층의 일원이었을 평론가들의 심기가 편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평론가들이 뭐라 하거나 하여튼 졸라는 <집구석들>에서도 이 중산층의 속물성, 알고 보면 이들이 얼마나 잡것들인지 똑 부러지게 그려내 오히려 그들의 울화통을 한 번 터뜨려버리고 말았다. 일단 작품 속에서 자신의 돈으로 이 집을 샀거나 집세를 내며 사는 임차인들의 면모를 보자.
  건물은 한 쪽은 도로를 향하고, 다른 쪽은 뜰을 향한다. 층 별로 보자.

 

  1층과 중2층. 편두통 심하게 앓는 오귀스트 바브르. 건물주의 장남. 미혼. 주단 가게 인수해 운영중이다. 작 중 5층 길쪽 조스랑 댁의 둘째 딸 베르뜨와 결혼해 기어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글쎄 결혼 같은 건 다시 생각해보라니까 말이지. 유부녀 베르뜨는 옥따브와 지저분한 관계를 갖고 불륜 현장을 오귀스트에게 걸려 곤욕을 치루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다.
  2층 뜰쪽. 천식으로 보이는 테오필 바브르. 건물주의 차남. 잡화점 집 딸 출신인 아내 발레리와 아들 까미유가 산다. 테오필은 남자 구실을 (거의)못하는데, 사람들은 발레리가 생단 거리의 푸줏간집 총각을 자빠뜨려 아이가 생겼다고 수군거리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과거는 확실히 모르겠고, 하여튼 발레리도 남자 떨어질 날이 별로 없다. 이 두 형제 집안의 여자들이 하도 극성맞아 오래 버티는 하녀를 도무지 구할 수 없다.
  2층 길쪽. 왕년에 베르사이유의 공증인으로 활약하다 파리로 와 땅을 사고, 이 건물을 지은 홀아비 영감. 집이 커서 고등법원 판사로 있는 사위 뒤베리에 부부와 함께 산다. 뒤베리에 판사는 당연히 애인이 있으나 소설이 진행될수록 관계가 수상하게 진행되어, 장인 장례식에 눈물을 철철 흘리며 통곡한다. 애인 끌라리스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것이 슬퍼서. 정절을 지키는 아내 끌로띨드는 하루 종일 연주자 수준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외로움을 달래지만 뒤베리에는 세상에서 피아노 소리를 제일 싫어한다. 끌라리스가 치는 서툰 피아노 소리만 빼고.
  3층을 통으로 쓰는 가족. 예의 없이 마차를 함부로 몰고 다니는 문학하는 인간. 이게 에밀 졸라 자신을 희화화한 거 같다. 생전가도 코빼기도 볼 수 없고, 알고 지내는 입주인도 하나 없는 사람들. 확실한 건, 일가족이 살며 꼬맹이 아들 둘이 있다는 거.
  4층 뜰쪽은 둘로 나뉘어 한쪽엔 삼십대 쥐죄르 부인과 하녀 루이즈가 산다. 쥐죄르 부인은 결혼 일 년도 못되어 남편이 사라져버렸다. 그래 혼자 사는데 불임 판정까지 받았다. 그래서 자유연애를 즐길 완벽한 몸이 되지만 남자들 만나 실컷 약을 올리다가, 딱 하나, 그것만은 안 된다고 우겨서, 여태 정절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방은 1주에 한 번 업무차 파리를 찾는 지체 높은 신사가 세를 들었다. 신기하게도 이 신사분이 일을 보러 올 때마다 여자가 방을 찾고, 몇 시간이 지나 방 관리도 해주는 수위 구르 씨에 의하면 침대가 난장판이 된다나.
  4층 길쪽. 옥따브에게 집을 소개해준 깡빠르동 씨가 아내 로즈와 딸 앙젤이 사는데, 앙젤이 조숙하다는 건 오직 하녀 리자만 안다. 깡빠르동은 로즈의 사촌언니 가스빠린과 연애를 하다가 결국 로즈를 택했다. 당시에 가스빠린이 열 받아 파리로 향했고, 유명한 가게 에두앵 합작회사의 수석 여점원으로 일하다가, 깡빠르동 씨에게 스카웃되어 로즈의 체질상 원활하게 제공하지 못하는 육체를 매일 밤 공급해주고 있다. 즐겁게.
  5층 길쪽. 생조제프 크리스털 제품점의 회계원으로 평생을 바친 조스랑 씨네 일가족이 산다. 사치와 돈이 제일의 가치인 조스랑 부인이 둘째 딸 베르뜨를 결혼시키기 위한 전략이 대단하고, 부인에게 형질을 물려받은 베르뜨 역시 끔찍하다. 큰 아들은 과부와 연애하다가 과부의 조카딸을 노리고 있다. 큰 딸은 15년을 한 여자와 동거하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빨리 헤어지라고 닦달을 하지만 책이 끝날 때까지 성공하지 못한다. 둘째 아들 샤뛰르냉은 악마적 상상력을 가진 정신이상자다. 졸라를 읽으면 당연히 기대하게 되는 정신이상자에 의한 범죄를 하여튼 저지르지 않는 작품은 이게 처음이었다. 아내의 바가지를 견디다 못해 거의 질식할 단계에 달했을 때 베르뜨의 외도가 발각되어 혈압 터져 가장 조스랑 씨가 세상 하직한다. 조스랑 부인, 읽기만 해도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 캐릭터. 아델이라는 어리고 순진한 하녀가 서서히 세상에 오염되는 장면.
  5층 뜰쪽. 사무원 삐숑 씨네. 부자는 아니지만 교양있는 사람들로 딸 하나를 키운다. 각박한 세상에 아이가 더 생기면 살기 힘들 거란 냉혹한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해 부부생활을 삼가지만, 두 번째 딸을 낳고, 세 번째 딸도 낳는다. 셋째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둘째 딸이 클로드 드뷔시, 이디스 워튼과 같은 해 1862년에 태어났고, 옥따브가 바로 옆방으로 이사해 아홉 달이 조금 넘어서라는 것. 삐숑 부인이 헤퍼서 또는 쾌락을 즐기다가 둘째, 셋째를 낳은 건 아니다. 읽어보면, 세상에 정말로 그런 여자들이 있는 건 알지만, 거절을 못 해서, 싫은 소리를 못 해서 그냥 그렇게 된 거 아닐까 싶다.

 

  이들이 건물에서 돈을 내고 사는 인간 잡것들이고, 건물 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먼저 수위 구르 씨. 전에 보즐라드 공작 댁의 하인으로 일하다가 집행관 과부와 결혼해 모르라빌에 집 한 채를 소유해 적으나마 집세를 받기도 한다, 라고 주장한다. 파리에서 돈을 조금 더 벌어 연 수입 3천 프랑을 받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르라빌에서 살겠다고 때를 기다린다는데, 전에 하인을 하던 인간이라서 그런가, 유난히 집의 하인, 하녀들, 요리사들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대한다. 원래 그런 거다. 외국 기업의 한국인 사장이 외국인보다 훨씬 더 한국인 직원에게 막 대하는 것처럼.
  무엇보다, 여태 이런 캐릭터의 하녀들을 본적이 없다 할 정도로 내놓고 주인들과 그들의 가정사에 냉혹하고 신랄하고, 굴욕적인 비난을 단체로 서슴지 않고 토로한다. 정말로 그런 건축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꺼번에 하녀들과 요리사들, 하인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매일. 그리하여 입주자 누가 하필이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왼쪽 턱을 관통해 턱만 좀 비뚤어지고 목숨을 구했는지,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의 드레스와 신발을 벗겼는지, “이 집이건 저 집이건 집구석들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요즘은 이 집 것들이나 저 집 것들이나 매일반이라니까. 돼지 같은 족속들이지 뭐.”라고 대놓고 말 할 수 있다.
  이 작품 <집구석들>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전편이기는 하지만 작품 성격이 많이 다르다. 에피소드도 위에 적어놓은 건 극히 일부일 뿐이라서 더 재미난 것들도 많다. 실제로 아주 특이한 인물로 전편에 걸쳐 출연하는, 베르뜨의 외삼촌인 바슐라르 씨는 소개하지도 못했을 정도다. 부르주아 두 명이 생을 마감하지만 그렇다고 비극은 아니다. 유쾌하게 진행하면서 중산층의 속살을 제대로 발가벗긴 폭로물이라고나 할까. 졸라의 작품들이 항용 그러하듯, 머뭇거림 없는 필체에 속이 다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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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2-06 09: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집구석들 읽고 싶네요. 졸라는 이름부터 마음에 들어요. 돼지같은 족속들 얘기를 졸라는 또 얼마나 잘 썼을까요? 저도 꼭 읽어볼래요! >.<

Falstaff 2021-12-06 09:14   좋아요 4 | URL
ㅎㅎㅎ 위엔 자세하게 쓰지 않았는데, 정작 하녀들, 하인, 요리사들이 자기 주인집 품평회 하는 것이 일품이랍니다. 다락방님 좋아하시는 백화점 바로 앞 이야기니까 읽어보셔요!!!

공쟝쟝 2021-12-07 12:47   좋아요 1 | URL
저도 건졌어요. 제목부터 집구석들이야...ㅋㅋㅋㅋㅋㅋㅋ 이 썩을넘의 집구석 ㅋㅋㅋㅋ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듣던 욕인데 ㅋㅋㅋㅋㅋㅋ (뭐라닠ㅋㅋㅋ) 도끼 살짝 뽀개고 내년엔 에밀 졸라 고고싱해야겠다. 천천히 따라가겠사옵니다!

프레이야 2021-12-06 09: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팔스타프 님 재미난 리뷰 덕분에 속이 다 뚫리네요.ㅎㅎ
졸라보다 더 그래요. 집구석들, 필독해야겠어요.

Falstaff 2021-12-06 09:15   좋아요 4 | URL
옙. 재미난 책입니다.
별 하나 뺀 건, 졸라 치고 그렇다는 겁지요. 다른 작가가 썼다면 다섯 올라갈 수 있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12-06 0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화의 장소는 만들어지게 되어있죠. 공간이 없어도.
어떤 평가가 오고 갔는지 무척 궁금하네요.

Falstaff 2021-12-06 09:24   좋아요 3 | URL
이 책에서 품평회 장면이 가장 독특하더군요. 다른 책에선 이렇게 노골적으로 까발려지지 않은 걸로.... 하여튼 졸라라니까요.

미미 2021-12-06 09: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르미날 쓰기 전에도 졸라가 현장조사를 했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쩜 글에서 그렇게(여러 계층,직종,성격을) 실감나게 버무려놓는지 매번 놀랍더라구요. 집구석들도 기대만빵입니다.😄

Falstaff 2021-12-06 09:26   좋아요 3 | URL
졸라 자신이 가난한 시골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그게 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해요. <대지> 같은 거엔 특히 더 그랬겠지요. 내년 1월에 읽을 건데 벌써 무척 기다려집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1-12-06 09: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졸라가 글을 시원스럽게 잘 쓰는거 같아요. 읽다보면 막힘이 없다는 😆
폴스타프님 리뷰도 거침이 없습니다~!! 창비에다가 졸라라니 이건 필독서네요 ^^

Falstaff 2021-12-06 10:19   좋아요 4 | URL
루공-마카르 총서는 다 읽기로 결정해서 이의는 없는데요,
제가 읽기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썩어도 준칩니다. 새파랑님은 읽으실 걸로 믿습니다. 후회 안 하실 거예요. ^^

blanca 2021-12-06 10: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흑, 듣기만 해도 재미있겠네요. 아우, 졸라 책 또 사야 하는 건가요? 올해 더 이상 주문하지 않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는데...졸라 책이 저는 드라마보다 재미있더라고요. 넷플릭스에 1순위 영입 작가였을 듯.ㅋㅋ

Falstaff 2021-12-06 10:20   좋아요 3 | URL
ㅎㅎㅎ 저는 졸라의 <대지>를 내년 1월 3일에 사기로 했습니다.
블랑카 님처럼 올해엔 더이상 책 주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거든요. ㅋㅋㅋㅋㅋ
졸라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막장 대마왕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12-06 1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호. 폴스타프님이랑 아주 잘 어울리는 졸라에요. 졸라 막힘 없는 리뷰^^;;;

Falstaff 2021-12-06 12:20   좋아요 2 | URL
ㅋㅋㅋ 매번 이리 좋게 말씀을 해주셔서 댓글 읽는 재미도 좋고, 어깨도 으쓱으쓱합니다! ^^;;;

coolcat329 2021-12-06 12: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야호~~^^ 저 이 책 샀거든요~
제발 별점이 좋기를~~~간절히 바라며 화면 터치를 했습니다.😅
잘샀네요~~^^

Falstaff 2021-12-06 12:21   좋아요 3 | URL
ㅎㅎㅎ 즐기셔요! 잽싸게 읽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