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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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에 태어나 일흔여덟 살에 죽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일흔여덟 살 드신 어머니를 잃은 건 1963년.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이 34년차에 들어섰을 때. 계약결혼이 1929년. 이 때 드 보부아르 가에선 시몬의 일을 두고 가문의 수치로 한 차례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1960년대 초반에 일흔여덟 번째 생일을 한 달 정도 지나고 초상을 맞았다면 호상 아냐? 환갑만 되도 기생 불러다 장구치고 소리하고 잔치할 땐대. 근데, 십여 년 전에 개봉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송재호와 김수미가 손 꼭 잡고 동반자살해서 장사를 치룰 때 젊은 문상객이 문상하고 육개장 앞에 놓고 호상이야, 호상 하며 쐬주 한 잔 마시다가 이순재한테 “이 사람들아 뭐가 어쩌고 어째? 세상에 호상이 어딨어, 호상이.”하는 장면 기억하시나? 나는 그 영화에서 송지효라는 여배우를 처음 보고 참하구나, 라고 여긴 적 있었다. 물론 나중에 <쌍화점>에서 조인성하고 러브 씬 하는 걸 보고 워, 워 했지만.
  왜 난데없이 로맨스그레이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언급하느냐 하면, “세상에 호상은 없다”, 이게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의 주제라서 그랬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63년 10월 24일, 이 당시 대한민국의 국경일이었던 국제연합의 날, 속칭 유엔 데이UN Day에 로마에 있는 미네르바 호텔방에 묵고 있었다가 오후 네 시에 어머니가 욕실에서 넘어져 대퇴부 경부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었다는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혼자 살다가 대퇴부 골절을 당했으니 이걸 어쩌나. 욕실에서 전화기까지 온몸을 끌고 기어가는데 만 두 시간이 걸린 보부아르 여사는 급한 대로 친구 타르디외 부인에게 전화를 해서 119 불러 현관을 부수고 자기를 좀 구해달라고 연락을 한다. 딸만 둘 있는 보부아르 여사. 큰 딸 시몬은 로마에 행사차 가셨고, 작은 딸 푸페트는 결혼해서 알자스 지방에 살고 있으니 결국 친구에게 전화를 한 것. 그래 부시코 병원 응급실을 거쳐 B교수가 집도의로 있는 최고급 C병원으로 이송한다.
  노인네들한테 가장 위험한 사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대퇴부 경부골절이다. 그럼 몇 달 동안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고 이 동안 많은 노인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삶을 놓아버린다. 그러나 보부아르 여사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을 받는데, 대신 위암으로 추측할 수 있는 소화기 암 말기인 것이 발견된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곧 죽고, 하면 한 달 정도의 삶을 더 살 수 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결정한 두 딸. 결정인지 의사의 드라이브에 창졸간에 결정한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수술을 했고, 어머니에게는 복막염 수술이라 거짓말로 알렸고, 진짜 복막염이라고 믿기로 결정한 어머니는 삶의 연속을 강력하게 꿈꾸다가, 죽음에 이르고, 초상을 치룰 때기까지의 과정을 적은 책이다.
  독후감은 이 정도면 됐다. 난 부모의 하해와 같은 사랑과 하늘이 무너지는 죽음, 뭐 이런 거 가지고 지지고 볶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년에 시몬 드 보부아르의 <레 맹다랭>을 읽을 예정이라 부담이 되지 않으면 눈에 띄는 대로 읽고 있다. 이 책은 그 일환이기도 하고, 믿고 사서 읽는 을유문화사의 신간이라 주저하지 않고 골라 읽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기를, 내가 기대했던 딱 그 수준의 작품, 그 정도의 내용. 별점? 네 개. 다섯은 기대했던 정도를 능가해야 주는 거니까.

 

  이렇게 독후감을 끝내려고 하니까 좀 섭섭하다. 그래서 내 어머니 정여사의 죽음의 침상에 대해 한 번 써보자.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 부모의 사랑과 죽음 가지고 지지고 볶는 거 싫어하는 인간이니까 심각해질 이유가 없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되겠다.
  2007년 음력 시월 열 사흗날. 정여사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특별하게 아픈 곳은 없고 그냥 시름시름 온 몸에 기운이 없으시다 하시어 입원하신지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다. 그래 처자식은 다 집에 두고 나 혼자 둘러본다고 가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 이러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한 두어 시간 지났을 무렵 정여사의 아주 오랜 동무님 두 분이 문병을 오셨다. 종로구 경운동에서 같은 소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동무님들이셨다. 일흔 네 살의 여성 세 분이니 나이를 합치면 222세. 내 예비고사 수험번호가 222888, 망통. 정여사는 222888, 번호 보시고 나서 한참 후, 얘, 예비고사 망쳤을 거 같더라니까, 라고 본고사까지 치룬 다음에 얘기하셨다.
  아침에 학교를 가면 집이 먼 순서대로 나서서 한 동무네 문 밖에서 ㅇㅇ아, 학교가자! 하고 외쳤다가 합세하고, 두 꼬마숙녀들이 정여사 집 앞에서 또 △△야, 학교가자! 해서 세 명이 서로 손 잡고 흔들면서 소학교 다닌 기억이 아직도, 무려 222세가 됐음에도 생생하단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자주는 만나지 못했다. 정여사는 여대 국문과에 가고, 한 분은 여대 가정과에 가고, 다른 한 분은 서울대로 가 산부인과 의사가 됐다. 정여사가 의사 선생한테 실실 눈웃음을 치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얘!”
  연세가 일흔 넷인데 정말로 호칭이 “얘!”였다, “얘!”
  또 피식 웃으면서, “아무것도 아냐.” 하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근데 정말.”
  “그래 물어봐.” 의사 선생이 웃으면서 받았다.
  “그게, 진짜 여자마다 아래 생긴 게 다 다르니?”
  정여사는 평생 궁금해 하시던 걸 기어코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은
  “얘는 별 걸 다 묻는다. 다 큰 아들 옆에 놓고.”
  “쟤는 괜찮아. 알 거 다 아는 나이잖아.”
  의사 선생은 잠시 묵묵부답. 정여사 싱긋 한 번 더 웃으시더니,
  “곤란하면 얘기 안 해도 되고.”
  “응.”
  “응? 뭐가 응이야?”
  “다 다르다고.”
  “아, 그렇구나.”
  조금 후 동무 두 분은 병원을 나섰고, 이후 어릴 적 동무들은 다시는 서로를 볼 수 없었다.
  나도 화들짝. 불과 삼십 분 전까지만 해도 이제 자신에게 죽음의 손이 다가온 것을 직감하셨는지, 비록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았지만, 하필이면 왜 이런 건 나한테 먼저 오느냐는 말이야, 라고 한탄하시던 정여사께서는 그게 그리도 궁금하셨나보다. 나도 곧 병원을 나섰고, 여사께선 그날 밤 갑작스레 혼수상태로 떨어지셔서 시월 보름날 새벽, 마지막 숨을 쉬셨다.
  이 날이 내가 마지막으로 정여사와 이야기를 나눈 날이고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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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21 09: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 님은 별 다섯개를 ‘기대했던 정도를 능가해야‘ 주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암튼 이 책은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니, 안 읽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부모의 하해와 같은 사랑과 하늘이 무너지는 죽음, 이런 걸로 지지고 볶는 내용을 그다지 안 좋아해서요; 암튼 감사합니다-

Falstaff 2021-05-21 10:13   좋아요 6 | URL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지난 시절에 자신(과 아이들)을 희생하고 남편에게만 헌신하는 여성의 삶에 깊은 회의를 던집니다.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지난 세대의 여성을 바라보는 일하고, 죽어가는 어머니를 그나마 객관적인 시각으로 관찰하며 죽음에 관한 철학자의 개념을 쓰고 있습지요.
ㅎㅎㅎ 저도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레이스 2021-05-21 09: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죽음을 쓴 퀴블러로스와는 또다른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예요.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것이라면, 이 책은 옆에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시선과 당황스러움, 죽음의 폭력성에 대한 무력감 ... 그런 내용이었어요.
엄마의 죽음을 옆에서 보고 있지만 객관적인 시선이 있어서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때는 지지고 볶는 내용은 없었는데...^^
사실 그래서 더 좋았는데.

Falstaff 2021-05-21 10:17   좋아요 4 | URL
옙. 지지고 볶는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딸의 시각으로는 조금 냉정하다고 할 수 있겠고요.
사람마다 한 가지씩은 특별하게 언짢아 하는 게 있는 법인데, 저는 그게 하필이면 부모의 죽음이라서요. ;;;
걍 이번 건은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주심이....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5-21 10:17   좋아요 3 | URL
예~^^

청아 2021-05-21 10: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지고 볶는 것도 좀 좋아하고 써주신 느낌의 글은 더더 좋아함요. ^^* 역시 어머님이 국문과DNA를 넘겨주셨네요.

Falstaff 2021-05-21 10:22   좋아요 4 | URL
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저만 알고 있어야 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입죠.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5-21 10: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 어머님 얘기를 읽다보니 죽음도 결국 일상이구나. 억울해하고 비극적인양만 하지 않으면 그렇게 일상으로 죽음을 대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어머님이 지혜로우셨던것 같아요.

Falstaff 2021-05-21 10:55   좋아요 4 | URL
헨리 제임스가 쓴 <한 여인의 초상>에서 주인공 이사벨 아처가 이모부한테 거액 7만 달러, 지금 원화가치로 250억 원 정도를 상속 받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이모부겠어요. 근데 아파서 곧 죽을 거 같더랍니다. 이사벨이 이모부한테 가서,
˝이모부 님, 얼른 완쾌하셔야지요.˝
이모부는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싫다. 그럼 나중에 이런 고통을 한 번 더 겪어야 하잖아.˝

저도 마지막엔 이렇게 절묘한 농담 한 번 해보고 싶은데, 현대 의학이 너무 발달해서 가능할 거 같지 않네요. ^^

붕붕툐툐 2021-05-21 11: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기억이 밝고 유머러스해서 참 좋네요~ 정여사님 완전 멋진 분이셨을 거 같습니다. 세상에 호상은 없죠, 암요~

Falstaff 2021-05-21 12:1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재미있는 분이었습니다.

coolcat329 2021-05-21 1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다음 달에 읽으려고 사뒀어요~~~^^

Falstaff 2021-05-21 12:1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쿨캣님하고 합이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1-05-21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 어머님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호상이란 말은 그냥 유족 위로하느라 하는 말 같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3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60도 안 되셨죠.
근데 그걸 두고 호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생전에 사업을 하셨던 관계로 사람들을 많이 알아
북적거리니까 그러는 거 같더라구요.
우리 할머니대는 80만 되도 호상이라고 했지만
저의 어머니대는 90은 넘어야 호상이라고 할 겁니다.
저의 대는 못해도 100살은 넘어야할 것 같구요.
근데 몇 살에 죽던 호상이 어딨겠습니까?
세상 떠나는 본인이 만족해야 호상 아닐까요?ㅎ

책을 참 규모있게 잘 읽으시는 것 같아요.
벌써 내년 독서계획도 세워놓으시고.
저는 좀 그때그때 두서가 없죠.ㅠㅋㅋ

Falstaff 2021-05-21 13:34   좋아요 4 | URL
어차피 처음과 끝까지가 모두 다 삶이잖아요. 호상이냐 아니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ㅎㅎㅎ

내년에 읽을 책은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6권 세트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시몬 드 보부아르, 레 망다랭
발자크, 잃어버린 환상
스티븐 핑거,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티머시 스나이더, 피에 젖은 땅
서보 머그더, 프레스코
국립극단 희곡우체통 희곡집 2018, 2019 / 서울연극제 희곡집 2016~2020
소병국, 동남아시아사
에인 랜드, 파운틴 헤드

현재까지는 이렇게 잡아 놓았습니다. 희곡집은 이번에 읽을 희곡우체통이 좋으면 계획대로 가고, 아니면 반 정도만 읽으려 하고요.

책 말고 바릴리 현악사중주단의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CD도 사서 들어볼 예정입니다. (이건 비밀인데요, 알라딘엔 없고 응24에만 재고가 있는 품목이예요. ㅋㅋ) 제가 듣는 바릴리-베토벤은 소위 빽판이라서 말입죠. ^^;;;

그레이스 2021-05-22 11:56   좋아요 1 | URL
기번 읽다 중도 포기한 1인 입니다
쏟아져들어오는 정보들을 외면해야 끝까지 읽어낼수 있는 책이란 생각하면서. 잠시 접었어요.
다시 시도해보고픈 마음이 드네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 파네스는 다행히 읽었네요.^^

Falstaff 2021-05-22 12:59   좋아요 1 | URL
기번은 벼르고 별렀다가 내년으로 콱 찍었습니다.
이렇게 공표를 해놓으면 지가 끝까지 읽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ㅋㅋㅋㅋ

2021-05-21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21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1-05-22 0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Falstaff을 새대가리라고 부르셨던 정여사님 이야기네요 ㅎㅎㅎ 왠지 아는 분 같습니다 ㅋ

Falstaff 2021-05-22 13:17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우리말을 많이 알고 계셨습지요. 비밀인데, 여사님 부부가 다 그랬습니다. ㅋㅋㅋ

아기바다새 2021-06-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담해서 더 슬프네요.

Falstaff 2021-06-18 12:19   좋아요 0 | URL
슬프면 안 됩니다. 다 사는 게 그렇지요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