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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ㅣ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평점 :
‘안락의자 탐정’
탐문수사를 펼치고 용의자를 심문하는 형사와 달리 오로지 두뇌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을 뜻한다. 다소 허황되고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등장인물의 천재성 그리고 추리력을 선보이기에 좋은 장치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탐정 미스 마플이 대표적이고, 에르퀼 포와로와 셜록 홈즈 또한 일부 사건에서 안락의자 탐정의 면모를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는 스릴러 · 서스펜스물이 대세가 되면서 보기 드문 장르가 되었지만, 스릴러 소설의 대가 제프리 디버가 창조한 전신마비 탐정 <링컨 라임 시리즈>처럼 매력적인 작품도 간간이 등장한다.
일본은 본격 미스터리라는 엘러리 퀸의 영향을 받은 퍼즐 추리 소설이 유행하고 있어 해당 장르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국내에선 『알리바이를 깨드립니다』(소미미디어, 2019),와 『왓슨력』(한즈미디어, 2022)로 잘 알려진 작가 또한 관련 작품을 출간했다.

『붉은 박물관』은 2016년 일본에서 방영된 「범죄 자료관 스칼라 사코 시리즈 "붉은 박물관"」의 원작으로 미결 또는 종결된 형사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자료가 마지막으로 보관되는 통칭 ‘붉은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냉미녀 관장 히이로 사에코와 큰 실수를 저질러 수사 1과에서 좌천된 데라다 사토시가 등장하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다.
총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번 작품은 '빵의 몸값 · 복수 일기 ·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 불길 · 죽음에 이르는 질문'이 시간순으로 실려있다.

<어디서 본 듯한 그래서 친근한 맛>
추리 소설 혹은 미스터리 드라마를 자주 본 사람이라면 기시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미인이지만 의사소통 능력은 떨어지는 상사와 얼빵하지만 재능이 아주 없지 않는 부하. 그리고 미결된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이야기는 추리 장르에서 흔한 설정이다.
이러한 익숙함을 벗어나기 위해 최근에는 다양한 변종 장르가 등장하고 있는데 간혹 설정이 너무 과해서 헛웃음이 나오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그런 점에서 『붉은 박물관』은 익숙한 재료를 가지고 기본에 충실한 맛을 낸 작품이다. 앨러리 퀸과 본격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작가와 펼치는 공정한 추리 대결을 좋아할 텐데, 이 작품은 그런 유희를 즐기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본격 미스터리에 도전하세요>
유명 제빵 회사의 빵에서 바늘이 발견된다. 그것도 한 건이 아니라 다수다. 공장 직원과 배달 업체 그리고 매장 직원까지 수색했지만 범인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거액을 요구하는 협박 편지가 회사에 도착한다. 사장은 결국 범인에게 1억 엔을 전달하기로 하고 경찰과 함께 약속 장소로 항햐는데 폐건물에서 범인에게 돈을 전달하기 위해 들어간 사장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며칠 뒤 시체로 발견된다. 건물 주변은 경찰이 모두 감시하고 있었는데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붉은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는 <빵의 몸값> 에피소드의 줄거리다. 이외에도 소개되는 이야기는 모두 현재가 아닌 과거의 어느 사건들인데 본격 미스터리답게 힌트가 충분히 제시되기에 사건을 직접 풀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의 끝부분에 실린 이이키 유산 미스터리 평론가의 문고본 해설에도 나와 있듯이 쓸데없는 가짜 힌트는 배제한 공정한 작품이다. 범인 찾기를 즐기는 추리소설 독자라면 분명 만족하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본격 미스터리 입문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원작 설정 혹은 번역 문제인지 주인공 말투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점이 있지만, 그러한 부분을 상쇄할 만큼 공정한 퍼즐이 준비된 추리소설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2편이 출간되었고 드라마도 방영되었는데, 한국 또한 리드비 출판사에서 2편을 연이어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든 독자에게 선뜻 권할 작품은 아니지만 취향이 맞다면 분명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일독을 권해본다.
<리드비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