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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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백한 말'이란 소설을 읽었다.


 좀비소설이다. 무려 한국 좀비소설이다. 요즘은 많이 알려진 장르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의 경우고 아직까지 한국 좀비소설은 불모지에 가깝다. 그나마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매년 ZA(zombie apocalypse) 문학 공모전을 주체 해준 덕에 조금씩 발전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은 해당 공모전 최초로 장편 소설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좀비 장르(문학과 영상)의 시작을 어디로 봐야할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꼽는다. 이 소설을 기점으로 최초의 좀비영화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전설'이 만들어졌고 작가 스티븐 킹의 '셀',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 등 수많은 좀비 영화와 소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좀비가 어떤 존재이고 그 기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너무 복잡하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좀비의 이미지에 관해 생각해보자. 일단 한번 죽은 존재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 살아났지만 의지라고는 식욕밖에 없다. 그래서 '식인'을 행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좀비장르에서 느끼는 공포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천적이 없다. 동물들 중에서도 신체능력이 약한 편에 속하지만 도구를 사용할 줄 알기에 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그런데 좀비는 다르다. 같은 인간이고 오로지 인간을 먹기 위해 달려온다. 그리고 물어 뜯는다. 생살이 씹히고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을 겪은 뒤 자신도 그러한 존재가 된다.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이러한 좀비 장르상의 공포에 익숙해졌다. 이에 2000년대 들어 좀비장르는 크게 두 부류로 진화했다. 하나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류의 액션 좀비물이고 하나는 미드 '워킹데드' 류의 심리 좀비물이다. 전자의 경우 좀비가 무척 쎄다. 뛰는 건 기본이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여 인간을 학살해나간다. 그런데 주인공은 더 쎄다. 칼, 총 등을 이용하여 때려잡는다. 스타일리쉬 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좀비영화다.

 후자의 경우 좀비가 퍼진 세계에서 살아남은 인간들끼리 협동하고 배신하는 과정을 그린 인간군상극이다. 좀비 자체가 강하지는 않지만 무리지어 다니기에 인간들도 뭉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 포인트다. 

 창백한 말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심리 좀비물이다. 화려한 액션도, 좀비를 때려잡는 주인공도 없지만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국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은 총 19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장에는 소제목이나 날짜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날짜를 표기하는 장르소설도 많은데 이 책은 그러한 것들을 뺌으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날짜 하나 뺐다고 그런 느낌이 들까 싶지만 날짜가 없음으로 인해서 각 장으로 나뉜 이야기는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 소설이 잘 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플롯은 물론이고 장면묘사와 결말까지 말 그래도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이다. 

 무엇보다 눈길이 갔던 부분은 '면역자'의 존재였다. 많은 좀비 장르에서 인간은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 간혹 백신의 단서가 되는 존재로써 드물게 면역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면역자가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면역자와 면역자 간의 계급이 나뉘고 비면역자는 인도의 수드라, 중세시대의 노예처럼 면역자들을 위해 일하고 생활한다. 거기다 예방약을 먹지 않으면 좀비가 되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일 해야한다. 

 이러한 괴리에서 오는 분노와 억울함이 이 책을 읽게하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다. 좀비문학이라고 단순히 넘어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그 계급이 올바른 것인가, 잘못된 부분은 없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사람이다.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도울 줄 아는 존재이다. 그러한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좀비문학으로도 얼마든지 순문학 못지않은 생각거리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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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탐정소설론
김내성 / 온이퍼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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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추리문학소론>을 검색하면 같은 책을 500원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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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3.봄호 - 77호
염건령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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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의 문학 장르가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가지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필요한 건 신인 작가들을 위한 무대라 생각한다. 경력직 신입 사원을 찾는 사회이지만, 누군가는 신인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려 노력해야 한다. 한국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추리/미스터리 장르의 발전을 위해 그런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 『계간 미스터리』와 『미스테리아』다.


『계간 미스터리』는 올해로 21주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추리/미스터리 전문 잡지이다. 한국에서 작은 시장에 속하는 추리 문학의 명맥을 이어온 계간 미스터리는 꾸준한 신인 발굴과 더불어 양질의 칼럼을 통해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잡지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 추리소설 작가 ‘도진기’, ‘송시우’를 발굴한 계간 미스터리는 정기적으로 원고를 받아 봄 · 여름 · 가을 · 겨울에 걸쳐 신인상을 발표하고 있다.(수준 미달의 작품이 많을 때는 선정작이 없다)

<한국의 교코쿠 나츠히코, 미쓰다 신조의 탄생?>

2023년 봄호의 신인상은 1985년생 고태라님에게 돌아갔다. 일본의 민담, 설화 등을 소재로 추리 소설을 쓰는 ‘교코쿠 나츠히코’와 ‘미쓰다 신조’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설곡야담>은 조금 더 대중적으로 비유하자면,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당 단편은 클로즈드 서클(눈 내리는 산장), 설화, 트릭 등의 사용으로 본격추리소설의 틀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폐쇄된 배경이 지니는 긴장감과 불가사의한 살인 사건, 그리고 해결 파트에서 밝혀지는 트릭은 추리 + 미스터리의 매력을 충분히 담고 있다.

인물 서사와 개연성, 문장의 매끄러움 등은 아쉽지만 본격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를 제대로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높은 점수를 받은 듯싶다. 일본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분에겐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호남 지역의 무속신앙을 토대로 하기에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벌써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저자의 당선 인터뷰를 보며 기대감이 커지는 건 그런 이유 덕분이다.


<수준 높은 범죄 · 미스터리 칼럼>

『계간 미스터리』 2023년 봄 호에는 해당 잡지를 통해 등단한 4명의 작가, 홍선주 · 여실지 · 홍정기 · 김형규의 단편 소설 외에도 다양한 칼럼이 실려있다. 이 중 인상 깊은 건 백휴 작가의 글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깊은 분석을 담은 글이라 술술 읽히진 않지만, 문학 · 철학 · 역사 등의 다양한 관점으로 해당 장르를 조명하기에 의미 있다. 특히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해당 잡지의 한이 편집장도 언급하셨던 부분이다)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범인을 A라고 하고, 용의자 B와 용의자 C가 있다고 합시다. 지능이 평범한 형사가 피살자를 살해한 방법과 주변 행적을 샅샅이 탐문한 결과, 수사 활동으로 모은 자료의 모든 내용이 용의자 B를 가리킬 때 우리는 ‘A는 B다’라고 말합니다. 천재 탐정의 실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전혀 내용(내포)의 수정 없이 같은 자료가 B가 아니라 C를 가리킴을 보여줄 때입니다. 이제 ‘A는 C다’인 것이죠. 통상의 경우 용의자 C는 깰 수 없는 알리바이가 있거나 때로는 살해 수단조차 불분명했기에 천재 탐정에 의한 ‘A=B’에서 ‘A=C’로의 전도는 충격을 줍니다. 이 충격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입니다.


꽤 오랜 기간 『계간 미스터리』를 구독했는데, 올해는 운 좋게도 서포터즈로 선정되었다. 책값이 굳었다는 기쁨과 함께 『계간 미스터리』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봄 · 여름 · 가을 · 겨울에 걸쳐 받게 될 4권의 책 속에 담길 좋은 작품과 함께 잡지의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 하고픈 말이 많지만 조만간 계간 미스터리의 역사를 조사해 포스팅할 생각이기에 오늘은 2023년 봄호의 평만 담으려 노력했다.

한국 추리 소설 문학의 현 위치와 참신함을 느껴보고 싶은 분, 추리/미스터리 관련 칼럼을 찾는 분에게 『계간 미스터리』의 독서를 권해본다.


<나비클럽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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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가이드북 - 한 권으로 살펴보는 미스터리 장르의 모든 것
윤영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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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장 화제가 되었던 <오징어 게임>의 장르는 무엇일까? 구글에 검색해보니 ‘드라마, 스릴러, 공포’로 나온다. 이 중 스릴러와 공포는 비교적 비주류 장르에 속한다. 그런 이유에선지 몰라도 황동혁 감독은 10년 전 각본을 처음 썼을 때, 다들 안된다며 제작을 거절 당했다고 한다.

10년 전엔 제작조차 불가능했던 작품이 흥행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대중이 이러한 장르에 익숙해지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지루해진다. 지루함을 예방하기 좋은 방법이 ‘장르’에 관한 공부다. 물론 그냥 즐겨도 전혀 문제없다. 하지만 연인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더욱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장르문학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그만큼 즐길 요소가 많아진다.


[미스터리 가이드북]은 여러 장르와 궁합이 좋은 ‘미스터리’에 대한 안내서이다. 저자 ‘윤영천’은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전문가로 ‘셜록 홈스 걸작선’, ‘브라운 신부 시리즈’, ‘레이먼드 챈들러 전집’,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엘러리 퀸 컬렉션’ 등을 기획 및 편집했다. 

국내 미스터리 관련 홈페이지 중 가장 유명한 ‘하우 미스터리’리 또한 20년 넘게 운영 중으로 ‘미스터리’ 장르에 있어서 만큼은 국내 최고의 권위자라 할 만하다. 그런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서문에서 밝힌다.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더 깊이 이해하려는 이들을 위해 쓰였다. 한 장르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흐름과 단면을 동시에 살펴봐야 하는데, 그 번거로움을 최대한 덜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9p)


<미스터리의 A부터 Z까지>

크게 다섯 파트로 나눠진 책은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서브 장르 분류, 기법, 정보를 비롯해 국내 미스터리 시장과 추천 미스터리 100선 소개(번역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 소개했던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과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미스터리 입문]이 출간 된 지 오래되었고 번역서라는 한계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미스터리 가이드북]은 그러한 점을 말끔히 해소해준다. 

각 장 별로 미스터리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개념을 설명하며 해당 작품을 언급하는데 번역된 책을 위주로 안내해주기 때문에 찾아보기 쉽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의 유례도 알려주는데,

‘추리소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일본은 이미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영어권 장르 소설이 번안 형태로 유입됐고, 그 성장세도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빨랐다.(중략) <추리소설>이란 명칭은 의사이자 작가인 기기 다카타로의 제안으로 처음 쓰였다는 설이 있는데, 전쟁이 끝나고 범죄가 등장하는 소설의 정부 규제가 풀린 1940년대 후반부터 장르의 확장과 함께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추리소설은 한국, 중국 등을 비롯해 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줬기 때문에, 동아시아권에서는 ‘이 장르’의 총칭으로 대부분 <추리소설>을 사용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링컨 라임 시리즈’로 잘 알려진 미국의 유명 작가 제프리 디버의 북리포터 인터뷰를 통해 ‘스릴러&서스펜스와 미스터리의 차이’를 설명한다.

“스릴러&서스펜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고전적인 미스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죠.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다시 말하면, 미스터리는 독자와 주인공이 풀어가는 퍼즐입니다. 스릴러는 독자와 주인공이 앞자리에 앉아 즐기는 롤러코스터죠.”

우리는 제프리 디버의 이 말을 통해 현재 접하는 모든 매체 속 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장르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있다. 막연하던 것에 대한 정의가 확실해지면 분명 보는 눈이 달라진다. 스쳐 지나갔을 법한 장면과 대사가 새롭게 느껴진다. 저자는 이처럼 유명 작가의 말을 빌림으로써 책의 가치를 높인다. 

                                                                                                  

소설, OTT, 웹툰, 웹소설과 같은 매체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단 하나라도 보는 이에게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된다. 2021년 나온 신간이라 절판 된 책은 쉽게 알 수 있는 점,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전문가가 권하는 100권의 책이 있다는 점 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하다. 100권 중 몇 권만 읽어 보아도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끝으로 저자가 생각한 미스터리가 재미있는 이유를 전하며 미스터리 장르에 빠져보길 바란다.

“미스터리 소설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다. 누구나 범죄를 저질러 질서를 깨뜨리려는 욕망이 있고, 누구나 흐트러진 질서를 되돌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미스터리는 그 세 가지 욕망을 만족 시키는 유일한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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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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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좀비소설이라고 얕본 내가 바보였다. 손에 쥔 순간 끝가지 읽는 것은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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