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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참새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7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역사 추리소설은 좋은 의미에선 현실감이 넘치지만, 관련 지식이 부족하면 조금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자의 필력과 자료 조사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한국 사람에겐 비교적 낯선 12세기 중세 영국이 배경이지만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부분이 많은데 시리즈의 7편은 어떤 역사 지식도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추리소설이다.
『성소의 참새』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소소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다고 재미가 반감되었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건 보다 인물에 초점을 맞췄고 훨씬 감성적인 부분을 다루기에 캐드펠 수사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범인이 생각보다 일찍 공개되는 부분도 놀라운데, 추리소설의 핵심 플롯을 포기하고도 흥미진진함을 유지하는 데서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성소의 참새』줄거리(스포 없음)>
1140년 봄, 조용하던 수도원에 한 남자가 불쑥 찾아온다. 피투성이가 된 채 나타난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뒤이어 성난 사람들이 등장해서는 그가 범죄자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지목당한 그 릴리원은 이를 극구 부인하는데, 캐드펠 수사는 무언가 비밀을 안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백해 보이는 그를 위해 사건 조사에 나선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2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서 처음 등장한 '휴 베링어'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어딘가 음흉한 듯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 인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해당 소설의 후반부에서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이후 시리즈에서도 꾸준히 등장하며 캐드펠 수사만큼이나 중요한 인물로 자리했다.
시리즈 7편 『성소의 참새』에서도 휴 베링어는 맹활약하는데, 자칫 정형화되고 딱딱하게 보일 수도 있는 캐드펠 수사와 좋은 궁합을 보여주기에 이야기의 활력소가 된다. 특히 이번 편에서는 인간의 추악한 이면을 다루는데, 인간의 선함을 믿는 캐드펠 수사의 부족한 부분을 휴 베링어가 잘 보완한다.
<중세 유럽에 대한 환상과 현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을 읽으며 많이 반성한 점 중 하나는 '중세 유럽에 대한 환상'이다. 막연하게 그 당시를 낭만이 넘치던 시대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닐 테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신분제도의 불합리함은 분노를 유발했다. 특히 『성소의 참새』는 힘없는 자들인 농노, 환자, 음유시인, 광대, 하녀가 등장하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대학생 때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셜록홈즈 시리즈 전집> 9권을 연달아 읽은 이후 아주 오랜만에 시리즈 정주행 독서를 하고 있다. 보통은 질려서 한 권을 읽고 나면 다른 책을 읽는 게 일상이었는데,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연속성이 있지만 각 편마다 개성이 강해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남은 3권도 즐겁게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