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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사주명리 - 삶의 방향이 보이는 천년의 운명 공부 ㅣ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조경숙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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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북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사주 명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며 이런저런 일을 겪어 보니 내 생각보다 세상은 훨씬 다양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일도 수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굴곡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기질과 시기를 해석하는 오래된 체계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습니다.


요즘 언론 매체에서 종종 보이는 표현이 '백세시대'입니다. 실제로 백세까지 사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만큼 우리의 기대수명이 늘었다는 뜻입니다. 살아갈 시간이 길어진 만큼 오십 대는 은퇴 후 여생을 보내는 시기가 아니라 삶의 후반전을 다시 기획해야 하는 반환점이 되었습니다. 사주명리학에서도 오십 대는 10년 주기로 바뀌는 '대운'이 여섯 번째에 이르러 그동안 익숙했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재점검해야 하는 전환기에 해당합니다.


조경숙 저자의 『오십에 읽는 사주 명리』는 이 전환기에 선 독자가 자신의 기질과 삶의 태도를 살피도록 돕는 명리 입문서입니다. 일본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경북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학술연구교수를 지낸 저자는 『적천수』, 『자평진전』, 『궁통보감』 등 명리 고전을 토대로 여덟 글자를 읽는 법을 해설합니다.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예언에서 벗어나 오행, 십천간, 십이지지, 육신이라는 틀로 중년 이후의 인간관계와 행동 습관을 교정하도록 이끄는 인문 교양서입니다.


이 책의 핵심 가치는 명리학을 길흉을 점치는 도구가 아닌 자기 탐구의 언어로 해석한 데 있습니다. 저자는 선천적 조건인 '명'이나 시기적 환경인 '운'보다 주체의 태도인 '심'을 가장 앞자리에 놓습니다. 독자가 직접 만세력 앱을 활용해 사주 원국을 세우고 자신의 중심 기운인 '일간'을 확인하는 절차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오행과 십천간에 담긴 개인의 기질을 분석하고 일상에서 반복되는 행동 양식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합니다.


개운은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주술이 아닙니다. 저자는 특정 오행의 치우침을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특성으로 해석합니다. 유명 음악 그룹 구성원들이 각자의 평범한 사주를 서로의 강점으로 보완해 큰 성취를 이루었다는 분석 사례가 이를 잘 뒷받침합니다.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의 성질을 파악하고 삶의 태도를 다듬어 나가는 실천이 명리학에서 말하는 '개운'입니다.


중년기에 겪는 내외면의 변화를 '대운'의 원리로 해설한 구성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대운은 갑작스러운 행운을 뜻하지 않습니다. 10년마다 개인을 둘러싼 외부 환경과 삶의 과제가 교체되는 장기적인 주기를 의미합니다. 특히 오십 대에 진입하는 여섯 번째 대운은 출생 월의 기운과 정반대 흐름이 찾아오는 시기입니다. 전반전의 성장을 견인했던 성취욕과 책임감이 후반전에는 오히려 심신을 소모시키므로 에너지를 쓰는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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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기질의 활용법은 연령대에 맞춰 달라집니다. 저자는 화기가 과도하면 토기가 수분을 잃는 '화다토조'의 원리를 들어 과열된 욕망을 덜어내는 '중화'를 강조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에게 맞추는 데만 급급해 자기 주관을 상실하는 '탐합망극'을 경계하며 적절한 거리 두기를 권합니다. 더불어 보상과 무관하게 오랫동안 지속해 온 일에서 자신의 '천명'을 발견하고 축적된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성숙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신간 도서 『오십에 읽는 사주 명리』는 『연해자평』과 『삼명통회』 등 오랜 동양 고전의 통찰을 현대의 일상 언어로 정돈한 결과물입니다. 윤오명리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청소년 진로 탐색부터 기업 인문학 특강까지 폭넓게 소통해 온 저자의 현장 경험이 장마다 반영되어 있습니다. 말미에 수록된 30가지 핵심 용어 부록은 초보자가 낯선 개념을 빠르게 찾아보도록 돕는 실용적인 사전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을 출발점 삼아 일 년 단위로 찾아오는 '세운'의 변화와 사주 원국의 세부 글자들을 더 깊이 공부해 볼 계획입니다. 정년을 앞두고 상실감을 겪던 임원이 지난 삼십 년의 경력을 살려 강의를 시작했듯 그동안 쌓아 온 시간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고자 하는 독자에게 권합니다. 나아가 동양 사상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어 가고 싶은 이들에게 든든한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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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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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솔직합니다.


어떤 제목을 지었는지, 주로 쓰는 단어가 무엇인지, 사물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등을 통해 저자의 성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러한 요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많은 작가가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그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이 헤르만 헤세입니다.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분에 대해 제가 감히 평가하는 게 우습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건 소설만큼이나 에세이도 잘 쓴다는 점입니다.


『싯다르타』,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 유희』 등은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추천하는 책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삶을 견디는 기쁨』,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입니다. 오늘은 이 중 에세이 추천도서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좋은 글귀 모음을 다섯 부로 엮었습니다. 각 부의 주제는 자연, 향수, 인간, 예술, 여행입니다. 글 길이는 편마다 달라서 짧은 글은 한두 쪽이고 긴 글은 스무 쪽이 넘습니다. 이번 개정판은 구판에서 빠졌던 글이 다시 실렸고 필사 노트가 추가되었습니다.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도 수록되어 있어 느낌이 색다릅니다.


<행복과 동경>

헤세는 시인이 되었고 집을 지었고 가정도 꾸렸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룬 것마다 흥미를 잃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에 설득력이 있는 건 헤세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망했던 많은 것들이 삶에서 이루어졌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시인이 되었으며 집을 한 채 가지고 싶었는데 결국 집을 지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가지고 싶었던 소망도 이루어졌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던 꿈들도 이루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모든 소망은 너무도 쉽게 싫증이 났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조차 내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집은 너무나 좁게 느껴졌고, 내가 이룬 목표들은 어느 것도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가던 모든 길에서 되돌아와야 했으며 모든 휴식의 끝에는 또 다른 동경이 남을 뿐이었다. (중략) 나에게는 아직도 환하게 불타오르는 빛이 있다. 꿈꾸고 소망하는 것을 바라보며 강한 애착을 간직한 별들이 발산하는 찬란한 빛이.

184~185쪽



그에게 동경은 해소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5부를 여행으로 채운 구성도 이 동경에서 나왔다고 짐작해 봅니다. 이룬 것이 없다고 조급해하는 독자가 이 글을 읽으면 부담을 덜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복이 무언가를 이룬 뒤에 받는 보상이 아니라는 점을 헤세는 자기 경험으로 보여줍니다.



<아마추어 화가의 자부심>

헤세는 자신을 대단한 화가가 아니라고 규정합니다. 이 말을 겸손을 내세운 과시로 읽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문장까지 읽으면 그 의심은 줄어듭니다. 자부심의 근거가 기법이나 경력이 아니라 관심, 시간, 경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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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단한 화가는 아니다. 그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드넓은 골짜기 안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을, 지나간 날들과 시간들의 얼굴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다리 난간이 가진 주름의 모습을, 강기슭의 모양과 녹음 속에 뻗어 있는 다정한 길들을 나만큼 잘 알고 사랑하며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29쪽


그 범위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앎입니다. 사람들의 얼굴부터 난간의 주름, 강기슭의 모양까지 크기가 다른 대상을 같은 무게로 나열합니다. 이어서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거듭 단언합니다. 이 말은 작가가 확신하는 것이 그림 실력이 아니라 대상을 알고 사랑해 온 시간이라는 점을 알려 줍니다. 자연스럽게 힐링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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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나 『데미안』 같은 저자의 소설만 읽어본 분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리지 않고 작가 본인의 목소리로 쓴 글이라 헤세의 관심사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정원, 나비, 구름, 음악, 수채화처럼 다루는 대상도 다양합니다. 어느 쪽을 펼쳐도 좋은 글귀가 많아서 필사를 즐기는 독자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이 책은 관찰과 사색이 중심이어서 빨리 읽기 어렵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습니다. 뭐든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는 느림의 미학을 알려줍니다. 각 글은 연속성이 많지 않기에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을 읽으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에세이 추천 도서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를 읽으며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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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면 팔 만큼 1
코지마 아오 지음, 장혜영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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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읽다가 울어 본 게 얼마 만일까요. 책을 너무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 저도 모르게 감정 이입했습니다. 가급적 만화책은 전자책으로 모르려고 했는데 이 작품만큼은 종이책으로 모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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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법 -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단 한 권의 안내서
데이비드 리코 지음, 이은경 옮김 / 두시의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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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도서


나는 종종 스스로를 의심한다.

데이비드 리코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어른다움은 세월이 저절로 안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어루만지고,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조금씩 어른에 가까워진다. 『어른이 되는 법』은 꼰대스러운 제목과 달리 얇고 가벼웠다. 그런데 완독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좋은 신호였다.

저자는 융 심리학, 신화를 한 줄에 꿰어 어른다움을 설명한다. 신경증적 자아에서 기능적 자아를 거쳐 영적 자기로 나아가는 이 구조는 조지프 캠벨이 말한 영웅의 여정과 정확히 포개진다. 출발하고, 분투하고, 귀환하는 이야기. 저 멀리 신화 속 영웅의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진행 중인 이야기다.


<세월이 검증한 책>
『어른이 되는 법』의 원서 제목은 『How to Be an Adult』이고 부제는 'A Handbook for Psychological and Spiritual Integration'이다. 직역하면 『어른이 되는 법: 심리적·영적 통합을 위한 지침서』다. 제목만 보면 자기계발서의 전형처럼 읽힌다. 그래서 책을 펼치기 전에 저자부터 확인했다. 데이비드 리코는 1962년 세인트존스 신학교에서 심리학 학사를 받은 뒤 1969년 페어필드 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 석사를, 1984년 시에라 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6년부터 공인 결혼·가족치료사 면허를 유지하며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해온 정통 임상가다. 사이비 자기계발 저자들과는 결이 달랐다.


책의 이력도 따져봤다. 1991년 초판 이후 11개국에서 번역 출간됐고, 아마존과 굿리즈에서 1,000명이 넘는 독자가 4점 이상을 줬다. 자기계발서, 심리학 책 시장에서 30년 이상 살아남는 책은 드물다. 대부분의 책은 출간 직후 반짝 팔리다가 절판된다.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세월이라는 냉혹한 독자 앞에서 『어른이 되는 법』은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유행을 타지 않는 질문>

출판 시장은 전 세계 어느 나라 건 빠르게 돌아간다. 뇌과학이 내년에는 행동경제학으로 교체되고, 그 이듬해에는 또 다른 키워드가 서점을 메운다. 많은 책이 검증된 연구를 내세우며 등장하고, 데이터와 임상 사례로 내용을 채운다. 그런데 데이비드 리코는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명확한 통계 대신 융 심리학과 신화를 가져왔다. 과학적 근거를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스테디셀러가 된 비결은 여기에 있다.


저자가 제목에서 말하듯이 강조하는 질문은 하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1991년에도 유효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뇌과학이 발전하고 심리치료 기법이 정교해져도, 이 질문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은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뒤바뀌지 않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이 책을 아주 함축적으로 썼다. 그래서 한 번에 조금씩, 문장과 인용구를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사색하며 읽기를 추천한다." 나 또한 저자의 조언을 충실히 지켰다. 하루에 조금씩 나눠서 읽었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읽었다면 얻는 것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밑줄 친 문장 앞에 머물렀기에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다.


다만 이 책에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치료제가 아니다. 『어른이 되는 법』은 어디까지나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점검하는 용도로 써야 한다. 끝으로 부록 '진실성과 따뜻한 친절을 보이는 법'에 실린 일부를 전한다.


  • 나는 상대방의 절박함, 나에 대한 집착, 불운, 경제 형편을 이유로 그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다.
  • 나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고마워한다. 또한 내가 어떤 점에서 배려, 관용, 개방성이 부족했는지를 알려주는 선의의 비판 역시 환영한다.
  • 아무리 조금이더라도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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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살인사건 -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
백승만 지음 / 해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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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미스터리를 오래 읽어온 독자라면 '독살'이라는 키워드가 익숙할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부터 히가시노 게이고까지, 약병 하나면 트릭은 완성된다. 그런데 그 약병 안에 실제로 무엇이 들었고 인체에서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저자 백승만은 경상국립대 약대 학장이자 약화학자. 분자 단위에서 약을 설계해온 전문가가, 이번에는 그 분자가 인간을 죽이러 갔던 실제 사건들을 추적한다. 프로포폴·케타민·스코폴라민·비타민A·보톡스·엑스터시. 약국 진열대와 병원 처방전에 있던 이름들이 어떻게 부검대로 옮겨졌는지 약학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범죄 실화·과학 교양서·미스터리 비평, 세 장르의 교집합에서만 가능한 글쓰기다.


마취유도제 프로포폴은 매년 전 세계 3천만에서 5천만 명의 환자에게 투여된다. 수술실 안에서는 환자의 의식을 가라앉히는 약이지만, 그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사람을 죽이는 물질이 된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 그랬고, 한국 연예계를 주기적으로 흔든 사건들도 그랬다. 같은 분자가 정해진 용량을 벗어났을 뿐인데 결과는 정반대로 갈린다. 한국이 프로포폴을 세계 최초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한 것도, 그 뒤로 10년이 지나도록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타민A로 사망한 사례 또한 책의 시야가 어디까지 닿는지 보여준다. 1974년 영국의 건강식품 애호가 배질 브라운은 열흘간 매일 당근주스 4리터와 비타민A 700만 IU를 섭취하다 사망했다. 일일 권장량의 2000배가 넘는 양이다. 마취제부터 화학무기까지, 모든 분자는 농도와 조건과 의도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에서는 졸피뎀 처방전이 위조되어 거래되고 펜타닐이 청소년 사이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의료용 마약류 처방 건수는 매년 갱신되며, 의료 접근성이라는 자랑은 약물 오남용이라는 그늘과 한 몸으로 자란다. 백승만이 이 책을 펴낸 시점이 절묘하다. 프로포폴은 이미 익숙한 이름이고, 케타민은 우울증 치료제로 부활했으며, 합성 마약은 단속망보다 빠르게 회피한다. 외국 사례들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의료인의 안일함, 자본의 탐욕, 법망의 허술함이 만나는 자리마다 사람들은 더 큰 위험에 빠질 것이다. 약학과 화학과 법독성학의 언어를 갖춘 사람만이 그 자리를 미리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언어를 대중의 귀에 들리도록 옮긴 작업이 이 책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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