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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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표지가 이 소설을 다 망쳤다,까진 아니지만 작품이 가진 의미를 상당부분 감추고 축소해버렸다

제목과 표지의 개 그림이 주는 이미지는 아 친구 같은 개에 관한 소설이구나,로 짐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살펴보지도 않고 무관심 영역으로 던져버렸고

그런데 이 책의 한 페이지를 찍어올린 사진에 꽂혀 급히 찾게 되었다
아니, 개에 관한 소설에 이런 문구가 인용될 일이냐고

다시 말해 이 소설은 그레이트데인 이라는 대형견 아폴로가 등장하지만 아폴로를 맡게된 화자가 회상하는 그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것이 주가 아닌가 하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 책으로 보였다면 일전에 누네즈의 #어떻게지내요 를 읽고 곧바로 읽었을지도라는 핑계를 ㅋ

여성 편력이 심한 소설가이자 교수가 자살하고 그의 연인이자 ‘여자사람친구‘인 나 역시 작가이자 교수다
그렇다보니 글쓰기와 강의에 관한 것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자살한 작가들과 작품 속 문장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찾아 읽어보고 싶은 작품들이 또 꼬리를 문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라거나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그리고 르귄의 단편 이름의 법칙 등등

릴케가 정의한 사랑은
고독한 두 사람이 서로 지키고 가까이 있고 반기는 것
161p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아마 누네즈의 교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소설 속 학생들의 생각이 요즘 작가 지망생들의 생각과는 어떨까 궁금키도 했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아폴로 이야기보다 많다(고 본다)보니 과연 이 소설이 반려견이 중심이 되는것일까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질수밖에

마찬가지로 소설의 막바지에 논하고 있는 타자의 비극을 소설화 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의견은 읽어봄직한데 표지를 생각하자면 또 울화통이 터진달까 ㅋ

아폴로의 귀 한쪽 끝이 잘려나가 짝짝이 귀라고 본문에도 설명 되어 있는데 아폴로를 이미지화 했을 표지의 귀는 좀... 그런 디테일도 좀 아쉽다면 아쉽
해외 표지는 어떤가 싶어 찾아보니 거기도 개를 이미지화 하긴했지만 국내와 많이 다르긴 한데 그 역시 좀 생뚱 맞긴하다

소설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분명 ‘친구‘는 아폴로가 맞을듯하지만 화자가 회상하는 자살한 그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연인이었지만 연인이 되지 못하고 결국 친구로 남았다는데서 제목은 중의적으로 볼 수 있는데 또 표지가 참 아쉽다
표지 갈이는 이런 작품을 해야하는게 아니냐 그 말

이 책의 5p, 본문이 시작되는 앞 페이지에 인용된 문구 사진을 보면 표지가 완전 사기 아니냐 싶을 정도 아닌가?

한줄 요약
글쓰기나 작가지망생에 관심 있다면 흥미로울? 소설

교정 누락
43p 술집에서 만취해 감상적인 된 당신은
139p 특정 독자를 염두에 쓰고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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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소년의 정신 - 하루키 읽는 법 세계문학공부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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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읽긴 다 읽었다, 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읽기 전 썼던 호들갑스런 수다에서의 기대와 달랐다는 것

일단 책의 물리적 분량으로 봤을때 차지하는 오이디푸스를 비롯 신화 이야기가 지루했다 굳이 시시콜콜 다 써야했나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 역시 하루키는 안읽어도 되는 작가로 분류한 입장이었으나 번역을 위해 읽어본 해변의 카프카 등 하루키의 문학 속에 내포된 의미에 새삼 놀랐다고 한다

비중 있게 오이디푸스 신화와 하루키 문학의 관계에 대해 다루었지만 딱히 유니크하게 읽히진 않는다 왜냐면 영미문학이든 한국문학이든 신화를 끌어와 문학 비평을 한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르긴해도 가장 흔한 소재가 오이디푸스 아닐까?

저자의 주장이 뭔가 희미한 안개 같았던건 언급된 해변의 카프카를 비롯 세계의 끝과... 등등의 작품을 손에 쥐었던게 너무 오래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쩜쩜쩜
무엇보다 인문학자인 저자와는 비교불가한 얄팍한 식견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일반적인 이미지로 보면 하루키의 작품은 매우 가볍다. ... 하지만 하루키는 복잡한 작가이며 그의 심각함은 표면적인 경쾌함 속에 숨겨져 있다
_248p

저자는 하루키가 숨겨놓은 심각함을 알아차리려면 하루키의 상호텍스트적 단서를 다루는 데 달려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소설을 읽는 태도가 ‘깊이 읽기‘여야 한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 깊이 읽기로 작정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이 말은 하루키 독자들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겠는데, 그렇다면 다른 ‘심각한‘ 소설이나 그런 작가들은 굳이 깊이 읽지 않아도 심각함을 잘 알겠던데 심각함을 감추는건 하루키의 작가적 재능 또는 전략인 것인지 아니면 저자만의 주장인 것인지

어쨌든 하루키 문학에 대해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이런 글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하루키를 읽을것 같지는 않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가나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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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소년의 정신 - 하루키 읽는 법 세계문학공부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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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전 잡썰


야 하루키가 노벨상 받을 일은 절대로 없을 걸...


자칭 (사이비)하루키 팬을 자처하는 지인과 어쩌다 하루키 이야기를 꺼낼때 곧잘 내가 하는 말이다 하지만 밥 딜런도 받는데 하루키 라고 못받을게 있겠냐 또한 내가 하는 말이다

트럼프도 윤 머시기도 대통령 되는게 세상인데 난들 알게 뭐야 여하튼 하루키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양쪽 모두 나름의 이유에 대해 할말은 많을 것이다 


야 아직도 하루키를 읽냐?

그렇다 나는 이제 하루키를 읽지 않는다,라고 선언 씩이나 할건 아니지만, 그런 말을 할만큼 하루키를 많이 읽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양을 쫓는... 상실의... 노르웨이... 세계의 끝과... 해변의... 색채가 없는... 그리고 에세이 조금 읽었을 뿐이다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된 해는 2010년이다 저자는 그때까지 타이완에서 번역 출간된 하루키의 책은 모두 읽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해변의 카프카를 하루키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내가 해변의... 를 읽었을 땐 어린 남자의 방황과 자살의 등장(맞나?) 등 하루키는 또 자기복제를 하고 있나 아 지겨워... 했던 기억만 남아 있는데 역시나 아는만큼 보는 법이라고 중화권 대표적 인문학자가 본 작품과는 천지차이였던 것이다 일단 가방끈은 길고 봐야...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노르웨이 숲에 대해 '이렇게 슬픈 소설이 왜 슬픔을 회피하는 이 시대에 이토록 인기가 있는 걸까?' 하는 물음에 뒤이어 노르웨이 숲 초반의 문장을 가져온다 


우물은 초원이 끝나고 잡목 숲이 시작되는 바로 그 경계선에 있다. 땅 밑으로 빠끔히 열린, 지름 1미터 가량의 어두운 구멍을 풀들이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둘레에는 목책도, 높다란 돌담도 없다. 다만 그 구멍만이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위 문장은 내가 읽었던 '상실의 시대'(유유정 번역)에서 같은 문장을 옮긴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진정한 발단이면서 소설 전체의 핵심적인 메타포' 라 한다 그러고보니 초원과 숲, 경계선, 목책도 돌담도 없어 빠지기 쉬운 우물 등의 이미지가 소설 전체를 나타내고 있구나 했다 역시 많이 배운 사람은 다르구나 그렇다고 지금 다시 상실의 시대를 집어들 마음은 일지 않는다 상실의 시대를 읽던 그 무방향 시절의 나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저자는 우물과 나오코 레이코 그리고 등장인물들 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예외적인 인물로 지목된 미도리가 가진 의미를 와타나베의 독백을 통해 나타낸다

그것을 저자는 '책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임을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주제로 한 작품이 해변의 카프카라는 것이다


양자오는 30년간 소설을 써온 하루키를 가리켜 '시종일관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서 배회하면서 정식으로 성인의 영역에 발 디디기를 거부해 온 하루키는 용감하고 터프한 삶에 사로잡힌 영원한 소년'으로 정의하며 들어가는 말을 맺었다


인문학자 답게 또 그 깊은 조예에서 나올 수 있는 평이다 한편으로 나같은 소설의 '재미'를 좇는 얄팍한 독자 입장에서는 '영원한 소년'이 쓰는 영원한 소년이 매번 등장하는 변주만 되는 소설이 자기복제의 반복이라 느껴 '이제는 하루키를 읽지 않아요'라고 해버리는 것이다


저자가 극찬한 해변의 카프카 그 어떤 점이 훌륭한지 그리고 다른 주장들에 대해 나는 그것에 수긍할지 아닐지 이제 본문을 읽어볼 차례다 인문학자님의 '말빨'에 넘어가 하루키를 가볍다한 내 얄팍함이 부끄러울지 어떨지 흥미롭다


라떼는 말이야 라고 불리울 시절의 어떤 cf에는 당시 대세 여배우?였을 한 여성이 상실의 시대를 손에 들고 읽는 장면도 있었다

이제 그 시절 만큼의 하루키 파워는 아닌지 예전만큼 하루키를 읽지 않는것 같다 당장 이 책의 인스타 피드 량만봐도 에게? 겨우 이것밖에 안되네 싶을 정도다 거대 출판사가 보여준 하루키 신작 소설의 홍보같은게 있었더라면 또 어땠을까 (나 역시 출간된지 1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 책을 알게 되었으니)

하루키 마니아라고 모두 이런 책에 관심이 있을까는 다른 문제긴 하다 내 짐작에 하루키를 못마땅해 하고 뭔가 까대야 속이 시원한 나같은 승질머리라면 환장?하고 볼 책이 아닐까 한다 (역시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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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8-1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춘수씨의 팬은 아니지만
꾸역꾸역 새로운 책이 나오면
읽고 있답니다 그것 참 신기하
지요.

확실히 이제 춘수씨가 끗발날
리던 시절은 지나갔지요.
뭐 그래도 호기심 가는 작가긴
하니 또 읽게 됩니다.

얄븐독자 2022-08-11 15:41   좋아요 2 | URL
궁금하긴 할것 같습니다 ㅋ 스을쩍 들춰는 보다가 말겠지만요 꾸준히 써낸다는건 진짜 인정할 부분이구요 :)

scott 2022-08-1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이완에서 하루키 옹의 인기가 엄청납니다
무슨 무슨 독서 클럽에 단골 낭독 작가이고
북카페 마다 하루키옹 책으로 도배가 ㅎㅎㅎ

저는 개인적으로 하루키옹의 진짜 재능은
초기 중기 단편들
그리고 수 많은 번역서라고 생각 합니다
실제로 하루키옹이 번역한 작품들
일본의 영문학자들도
비판을 못할 정도 입니다 ^^

얄븐독자 2022-08-12 00:13   좋아요 1 | URL
한국에도 한번쯤은 왔을 법한데... 어마무시한 계약금도 안겨주기도 했거늘. 뭔가 부담스러웠을까요.
남은 여생을 창작보다 번역을 하려나요 ㅋ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지음, 존 말루프 엮음, 박여진 옮김, 하워드 그린버그 해제, 로라 립먼 서 / 윌북아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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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사진‘에 관심 있다면 한번은 봤을 사진을 찍은 사람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9년 사망할 때까지 15만 장이 넘는 이미지를 남길 만큼 사진을 찍었지만 생전에 그 사진은 공개된 적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예술가로써 누렸을거라 짐작할 수 있는 생활과는 거리가 먼 보모, 가정부, 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남의 집을 전전했다
2007년 임대료를 내지 못해 경매에 부쳐진 필름이 2년후 대중들에게 소개되면서 그가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
살아 생전 한 점의 그림도 팔리지 않았다는 고호나 사후에 아웃사이더 아트 작가로 알려진 헨리 다거와 같은 비운의 예술가들과 그 빌어먹을 예술이 뭔가 하는 생각이...



마이어는 왜 공개하지도 않을 사진들을 그토록 오래 많이 찍었을까 하긴 팔리지 않는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는 화가들 어디 한둘일까를 생각해보면 예술을 돈으로 보는 내가 그른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마이어는 노년의 어느날 넘어지게 되고 요양원에서 사망하게 된다 마이어에게는 사진의 인화나 공개 여부는 중요한게 아니었을것 같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까지 프레임 구석구석 구도를 살피고 대상의 한 순간을 잡기까지의 몰입감이나 긴장감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쉼없이 흐르는 순간을 얼음처럼 얼려 한겹 떠내는 영원의 한 찰나에 대한 작업이 사진이고 타인과 교류 없이 할 수 있는 작업 그리고 비교적 간단한 사진 찍기라는 작업을 생각해보면 마이어에게 어울려 보인다

마이어의 손에 25년 이상 쥐어져 있던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는 정사각형 사진을 만들어내는데 만일 마이어가 현재 생존해 있다면 인스타의 정사각형 형식에 흡족해하며 엄청난 사진들을 올리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자니 요양원 침상에서 혼자 눈 감았을 그가 더욱 쓸쓸해보인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에다 사진사 라는 말 하나도 더해본다

사진사 라는 말을 단박에 알아챈다면 당신은 나같은 ‘노땅‘인 확률이 높다 요즘 애들?이 과연 ‘사진사‘라는 말을 알까
소풍을 가거나 가을 운동회 때면 어김 없이 목에 커다랗고 검은 카메라를 매고 나타나 가족 사진이나 친구들 사진을 찍어주는 아저씨. 인화된 사진은 (아마)집으로 부쳐주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에 카메라가 있는 집은 그야말로 ‘부자‘였던 것이다 우리집에 처음 카메라가 들어온건 중동 건설 노동자로 나갔던 아버지가 보내온 자동 필름 카메라였다
막상 카메라가 집에 있어도 필름값과 현상비를 생각하면 공짜로 막 찍어대는 스마트폰 카메라처럼 찍을수는 없었다

그때의 사람들이 뭘 하든 일단 ‘찍고‘ 보는 요즘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기괴하다 하거나 놀라지 않을까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다못해 식상하기 까지한 인증샷이나 셀카의 사진들. 어쨌든 사진은 사진이 맞는데 그 옛날의 그 사진과는 다른것 같은... 이러니까 노땅인 것이겠지

어떤 사진이 담고 있는 피사체나 구도 등 모든 사진에는 찍은 사람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는 이가 그 의도를 전달받는지는 알 수 없다 때론 의도를 숨기고 싶은 사진도 있을테고

한장한장 마이어의 사진집을 넘기며 사진 속의 사람들은 지금 뭘 할까 하는 생각이나 사진을 찍은 마이어의 의도나 생각들은 또 뭘까 싶기도 하다

인스타를 비롯한 sns 상에서 우리는 사진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인위적으로 철저하게 셋팅된 모습일지언정 우리는 오히려 그런 ‘셋팅‘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서 어떤 위안을 얻으려하는건 아닐까

사진 찍는건 좋아하지만 찍히는건 죽어라 싫어하는 나는 그래서 얼굴 위주의 셀카로 도배하다시피 하는 사람은 어떤 심리일까 싶다 똑같은 자기 얼굴을 왜 자꾸 찍어대는지

그럴듯한 폰카 사진이 찍히면서 내가 사진에 취미가 있나 싶어 제대로된 디카를 사봤는데 뜻밖으로 좋은 취미였고 프레임을 통해 보는 또다른 세상이 신기하기만 했다 결국 데세랄까지 가서 찍어보기도 했지만 들고나가본지가... 내 수준에선 굳이 카메라로 찍지 않아도 찍고 싶은건 충분히 폰카도 넘치니까

오늘도 뭔가를 찍는다
일단 찍고 본다
남는게 사진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또 남긴다는 것도 웃긴것이 여간해선 아니 거의 100% 인화되는건 없고 오로지 디지털 신호로 저장되어 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삭제된다는 것이다

찍기도 쉽고 삭제도 쉬우니 그야말로 진공묘유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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쿳시의 자전소설 3부작 가운데 서머타임 을 읽다가 상관없는 잡썰

처음 존 쿳시라는 이름을 듣고 그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재빨리 도서관으로 가 그의 소설을 읽은건 쿳시가 노벨상을 받기 전이니 꽤나 세월이 흐름을 느낀다
쿳시를 소개하던 선생은 요즘 주목하고 있는 작가라고 했는데 과연 선생의 안목이 대단했음은 그의 노벨상 수상과 그에 따라 국내에 출간된 쿳시의 작품들을 보면 알수 있겠다 물론 이전에 벌써 부커상 2회 수상자라는 타이틀이 있었지만 한강 작가가 부커상을 수상하기 전에는 생소한 상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그렇게 비교적 초기에 쿳시라는 작가의 작품을 맛보기 식으로 접했지만 딱히 흥미를 끌만한 작가는 아니었다 그의 작품이 호락호락한 것도 아닐 뿐더러,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쿳시의 작품은 그 옛날 읽은 그 하나밖에 없다, 처음 읽었던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짜증스럽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코맨트가 여기 어딘가에 있긴 하다
이후 쿳시가 나름 국내에서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넖혀가고 출간되는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많은 독자들이 읽고 리뷰가 넘쳐나는 와중에도 첫 작품 때문에 손이 가지는 않았다 다만 늘 관심 영역권 안에는 있었고 언젠가는 쿳시를 읽어야 할텐데 하며 신간들을 체크하고만 있었다
비교적 최근 서점 매대에서 이 자전소설 삼부작의 출간을 확인할 당시에도 아 또 쿳시 책이 나왔네 하고 시큰둥했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는 건 상투적 표현이지만 그만큼 틀린 말도 아니란 것이다 인스타나 북플에서 누가 읽으면 따라읽게 되거나 일단 지르고보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이 그렇다
좋은게 좋다 식의 리뷰와 그 리뷰어는 그닥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나름 믿고 보는 리뷰어의 리뷰에 쿳시 바람이 불었달까



자서전과 자전‘소설‘은 당연하게도 완전 다른 것 아니던가
쿳시는 이 자전 소설 속에서 더는 생존 작가가 아니다 일단 그 설정이 흥미로웠다 인터뷰로 진행되는 것도 좋은 설정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가상의 인물들이지만 그것 역시 살아있는 쿳시가 써내려가는 것이니 그 인물들을 내세워 쿳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하면 빨리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은 것이다 작가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작품과 자신에 대한 평판을 써나갈 때 좀 낯 간지럽거나 하진 않을까 그리고 타인이 생각하는 쿳시가 아닌 자기자신이 본인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역시 이 책을 거침없이 집어들게 했다

옮긴이도 언급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백프로 ‘뻥‘은 아닌것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대개의 문학작품 독자들은 작품에 빠지게되면 작가의 시시콜콜한 사적인 영역에 까지 관심이 넓어지기도 하는데 대중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는 작가가 자전소설을 썼다면 그 관심사가 어느 정도는 충족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참고로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영어본에는 삼부작과 삼부작을 묶은 ˝시골생활의 풍경들˝ 까지 네 권이라고 한다 쿳시는 통합본을 낼때 원고의 상당부분을 고쳤다고 하는데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영어본을 봐야 한다
국내 번역본은 작가의 요청에 따라 영어 통합본에 따랐다고 한다

원서 볼 능력이 안되는 입장이다보니 도대체 어디에 무엇을 뜯어 고쳤나 하는 호기심이 더더욱 강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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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8-03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교수님 입니다!
저는 쿳시라는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 하지 않았다면
읽을 생각을 안했을 겁니다

쿳시 새 번역본은 어디가 추가 되고 고쳐 졌는지 저도 궁금!^^

전 Youth가 가장 좋았습니다 ^^

얄븐독자 2022-08-03 06:59   좋아요 0 | URL
일반적 독자층에선 쉬운 작가는 아닌것 같긴합니다 저 역시 그나마 노벨상 후광이나 추천이 있어 관심이 있었구요 섬머타임만 읽고 말려고 했는데 청년시절 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