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 시선 16
김경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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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문단의 공길'이라 할만큼 이목구비가 수려한 시인이라...
뒷 표지 권혁웅의 평은 좀 거슬린다 걸긴 뭘 걸어 우습다

 어찌되었든 발바닥으로 읽든 배때기로 읽든 그의 첫 시집을 들여다보았다
시집을 바라보니 하던대로 여기저기 책장모서리가 제법 접혀져 있다
그 가운데 몇 편을 옮겨적어봐야 겠으나 그러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그러하지 않기로 한다 다분히 지금 순간의 기분에 좌지우지 된 영향이다
시인 강정이 쓴 작품해설까지 붙잡고 읽어보았으나 뭔소리를 했는지 기억에 없다
단 한 편의 시로 김경주를 읽고 싶다면 「 비정성시(非情聖市)」한 편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고 감히 말한다
어떤 한 편의 한 행들은 곳곳에 박혀 빛을 발한다 그런데 그 행들이 가로와 세로로 얽혀
탄탄하게 삽입되어 있는 편편들을 기억하기란 왜 희미한지
한 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보다 한 편 송곳으로 푹푹 찌르는 그의 말들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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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한 상자 랜덤 시선 17
성미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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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십여 편이 조금 넘는 편들 가운데 시라고 읽히는 것은 열 편이 넘지 않는다
행갈이만 짧게 한다고 시는 아니잖은가
아무 여과 없이 써내려간 지은이(시인이라 하지 않겠다)의 소소한 일상들을
읽자고 이걸 펼쳐들었나?
「시인 실격」이라는 제목처럼 이제 '성미정'은 시인으로써 실격인 것 같다
주부로써 육아와 생활에 몰두하는 편이 나을것 같다 그냥 담담하게 수필을
써달라 하고 싶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참아가며 마지막 편까지 읽을 때까지는 시집을 집어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주부로써 생활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살이를 생각하다
그냥 내려 놓는다 그냥 착찹할 뿐이다 비단 성미정뿐만이 아니라 많은 작가.시인
들이 생계에 치여 졸작과 잡글을 써대야 하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옹호나
용납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간극에 서 있는 것이고 간극을 넘는 이들도 있는게
분명한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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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에게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9
최영미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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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번에 실천문학사에서 출간 된 최영미의 시집은 8천원이다
6~7천원 선인 시집의 가격대에서 무슨 똥뱃짱이길래 8천원 씩이나 처매겼는지
최영미가 무슨 용가리 통뼈냐 출판사가 똥뱃짱이냐
시집 제목처럼 이것들도 돼지들이구마이 마이 받아 처무라
<양장본 100쪽> 이 씨바 이게 결정타인것 같다
159번 양장본 100쪽 8천원 출간일 : 2005-11-25
158번 반양장본 159쪽 7천원 출간일 : 2005-11-25
157번 반양장본 127쪽 6천원 출간일 : 2005-09-26
다음은 9천원이고 그 다음은 세종대왕님 납시겠네? 신발새끼들
서른잔치 같은거 하나 낚였을것 같아 미리 고가전략인가? 좆같은 새끼들

교보 알라딘 그래24 안의공원 은 10% 할인+10% 적립금에다가 즉시할인쿠폰 500원 까지 얹어 주는구마이
나머지 서점들 역시 10+10은 기본 다만 영풍만 5% 적립금 --; 얘넨 뭐냐 도대체
여하튼 8000-(800+500)=6700 (적립금 720을 제외하면 5980원)
씨발놈들 이렇게 팔거면 그냥 6-7천원으로 매기지 이거 무슨 개지랄이냐 도대체
문학동네 시집들 양장판이라고 7천5백원 씩이나 하는 것들도 웃겨 아주
그건 매번 다르게 껍데기 디자인 하는 디자인 비냐? 자체 사내 디자이너 제작아닌가?
그럼 월급주고 이것저것 막 시킬거 아닌가? 문지가 싼건 그나마 고릿짝 디자인 그대로 라서 싼가?
어쨌든 문지 ?오 물론 개판인 시집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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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 푸르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133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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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승자 그가 펴낸 '이 時代의 사랑', '즐거운 日記',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이상 네 권의 시집을 펼쳐들고 있는 내내 드는 생각 느낌 그림 그러한 것들이 그리 유쾌한 독자는 없으리라 본다. 그러나 나는 통쾌함을 엿본다. 그래서 그의 시가 좋기도 하다.
관, 죽음, 밤, 무덤, 공포, 비극, 절망, 고통, 좌절, 절망 ... 그의 시집을 온통 뒤덮고 있는 낱말 몇 가지를 추려보았다. 어디에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로 시작하는 유행가처럼 명랑도 발랄함도 찾아 볼 수 없다. 하기사 그런 것들을 읊어대는 시가 어디있겠는가만은.
너무나 뻔뻔하게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푸른 초원 위의 풍경이 아닌 그 너머 보이지 않는 곳 그 어둡고 깊은 골짜기를 파헤치고 돌아다니며 은근슬쩍 감추고 속이는 세상의 검은 속내를 낱낱이 파헤쳐 보여주기 때문에 통쾌한 것 같기도 하다.  
문학이 읽는 이에게 위로는 될 수 있어도 구원은 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최승자의 시를 읽어나갈 때 어느 정도의 위무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고통 그의 현실 그의 시일 뿐. 책을 탁 덮어 하얗고 까만 책장만 보여지던 내 시선이 다시 내 앞의 현실을 바라볼 때 좀 전 내 앞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던 그의 외침과 힘찬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다. 잠시 그의 시를 통해 내 안에서 응어리져 분탕질을 치던 것들이 한눈을 팔아 고요해 지는 것처럼 느꼈을 뿐 난장판은 여전할 뿐이다.
그가 그의 시를 통하여 그의 절망과 고통을 어느 정도 퍼 올렸는지는 알 수 없고 그것이 다시 파고들었다고 하여도 조심스러이 짐작한다면 시를 쓸 때만큼은, 최소한 시를 쓰겠다고 뭣이든지 다잡고 앉았을 그 어떤 밤 아니면 어느 날 만큼은 기쁘지 않았을까 하는. 비록 기쁨의 시간은 짧았겠지만.
그는 그의 수필집 '어떤 나무들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무엇을 쓰는가' 라는 질문 이였는데, 나는 정말로 이런 유의 질문을 싫어한다. 나는 왜 쓰지도 않고 나는 무엇을 쓰지도 않는다. 나는 나를 쓸 뿐이다. 그게 왜가 되고 그게 무엇이 된다면 좋고 안되도 할 수 없다.

위에서 말한 네 권의 시집들은 한결같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 듯하다. 한번쯤 아니 너무 자주 들을 수 있고 또 꼭 묻고 싶은 질문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겠지만.
그의 시를 붙잡고 '너는 왜 절망과 고통을 그렇게 지독스럽게도 몰고 가느냐'고 묻는다면 그의 말대로 거기엔 '왜'도 '무엇'도 없을 것이다. 그냥 쓸 뿐이다, 그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냥 쓰는 것 그것이 '그' 일 테니까. 그의 시집 속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있을 뿐 무슨 이유를 달고 어떻게 따질 수가 있을까.   
그의 시를 읽을 때 어느 정도의 위무를 받는다고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어느 정도의 '동병상련'은 아닐까. 하지만 '읽고' '보는' 입장인 나로서는 그의 시들이 어떤 때는 참 쉽게, 빨리 읽혀진다. 물론 쓰는 사람의 심정을 감히 짐작이야 하겠느냐만은. 그의 '절망의 시'가 주는 위로는 어떤 때는 나를 더 깊은 절망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가 밑으로 등 떠밀기도 한다. 아직 그처럼 능수 능란하게 '비명'을 질러대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그의 비명과 내 비명은 소리도 크기도 다르고 각자의 비명은 각자의 목과 입으로 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다만 앞서 걷고 있는 한 사람의 시인과 그의 시를 계속 관찰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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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60
김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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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블레이드러너 영화를 보면서 정말 우리들의 미래는 암담함으로 치닷고 있는거구나 했다. 수 십억 년의 지구 나이에 비하면 우리들의 나이는 고작, 아니 나이랄 것까지도 없을, 학창시절 생물 시간에 배우던 착상이나 수정 뭐 그런 단계라고 말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한때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보다 우리가 지구 위에 살아온 시간은 짧다. 그런데도 우리는 벌써 우리의 미래를 감히 암울함으로 그려내고 있다.  
온 시집 곳곳에 그러한 암담함과 절망이 넘쳐흐르고 있다.

끝없는 "중력과 부력이 어깨를 대고 싸우는"(자유부동) 대립만이 세상을 활개치고 있다. 공존할 수 없는 대립 속에서 결국에 찾아올 것은 소비의 극으로 치달음이 가져다줄 파국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거미는 실을 잣고 돼지는 밥을 먹네/돼지는 도착하고 거미는 떠나네"(새벽,호텔,창가) 라고 시인은 말한다. 실 잣는 거미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고 밥만 먹는 미련한 돼지만이 도착한다. 이른 아침 거미줄을 치고 있던 거미와 그 거미줄에 맺힌 이슬방울을 더 이상 쉬이 볼 수 없는 우리의 환경과 갈수록 증가 일로에 있는 육식주의 때문에 무참히 사육되고 도축되어 가는 생명들의 핏값에 대한 보상을 어쩌면 우리 인간의 종말로 보상해야 한다고 본다면 너무 억측일까? 그리고, 시집의 제목 "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음이다.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다시 내 집 앞에서 거미줄 치는 거미를 쉽게 볼 수 있게 돌이켜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과학에 대한 터무니없는 맹신일 뿐이리라.
암담한 오늘의 끝을 보고있는 시인에게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징그럽고 징그러움은 아름다워라"(향연) 라고, 사랑마저도 미추의 가면을 벗겨내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더 이상 정상이 아닌 현실뿐이다.
"저 반투명의 벽을 찢고 나오는/태아는 얼마나 기괴한가?/실수로 혹은 일부러 떨어뜨려도/
너는 부서지지 않고 야멸차게 우는"(향연) 아이가 자라나서 다시 "돋보기로 지렁이를 태워 죽이며 논다/강아지 목을 매달고 몽둥이로 때리며"(피아노) 노는 현실 앞에서 "旣生이 未生이고 未生이 旣生이라. 슬프고도 기뻐라. 旣生이 未生이라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蛙傳
라고 허탈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시인에게 이 세상은 온통 기괴함 투성이다.
"잘린 팔로 구걸하는 자의 손목이 다시 돋아나"(산책), "허공의 門을열고 해골이 천천히 걸어나왔다"(난초), "천사가 늙은이를 벼랑으로 떠"(겨울비)미는 세상에서 "꿈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寄生現實)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을 만큼 "마비된 곳, 슬픈 곳."(희생)이다.
"나비가 나는 곳은 나비를 위하여 아무것도 날지 않는 곳."(희생)에서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희망하며 살 수 있겠는가?
다행히 시인은 우리에게 한자락 희망을 남겨두었다.
"시를 읽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세바스토폴 거리의 추억)라며 시인의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삶, 곧 詩에 대한 욕망을 내비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시는 곧 삶 아니겠는가.
"새 한 마리 육중하게 웅크리고 알을 품"(힘)었다. 나비를 위해 아무것도 날지 않는 곳에서 시인은 날지 않는 새가 되어 절망의 알을 품어 안았다. 하지만, 그것은 깨어져서 희망이 부활할 알이다. 이렇듯 우리는 시인을 통해 희망의 부활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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