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어스 / 두행숙 / 들녘 / 406쪽​
(2018. 6. 2.)




  “그럼 오름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격한 감정이 불쑥 솟구쳐 올라와 좀 당황해서 물었다.
  골고는 마치 별을 바라보듯이 터널의 천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우주 속에는 하나의 오름이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적 착상들은 모두가 그것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 마찰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납니다.”
  그는 이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의 창조적 밀도는 엄청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음악의 바다와 순수한 영감의 강물들. 그리고 번뜩이는 정신들에 둘러싸여 움찔거리면서 생각들을 분출하는 화산들로 가득찬 보이지 않는 천체입니다. 그것이 오름입니다. 거대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힘의 장(場)입니다. 그러나 모두한테 내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선택된 이들에게만 보여줍니다.”
(P.42)



  나는 부흐링 족의 왕국으로 들어와 들어와 살게 된 날짜 세는 일을 중단했다. 왜냐하면 수를 센다는 것은 결코 내 장기가 아니었을 뿐더러, 여기 에서는 시계는 물론, 원래 날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오,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내가 그동안 몇 가지 배운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해서 뽐내는 것은 아니다. 그 난쟁이들이 하는 말들을 주의 깊게 인내심을 갖고 들어준 것만으로도 내 어휘력은 대단히 늘어났으 며, 이제 수도 없이 많은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희곡, 시, 신문, 그리고 편지들의 줄거리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잠에 빠질 때까지 쉴 새 없이 경구들을 암송할 수 있었고, 또 무수한 풍경들에 대한 묘사도 능숙해져서 어느 대륙 전체를 그런 묘사 문장들로 장식할 수도 있었다. 플롯의 틀, 클라이맥스의 곡선, 등장인물의 성격, 놀라운 반전, 호흡이 긴 이야기의 전개, 극적인 열쇠 등, 부호링 족은 내가 평생이 걸려도 읽어내지 못했을 아주 많은 문학 자료와 기술을 나한테 전수해주었다. 나는 이제 좋은 대화란 어떤 소리로 울려야 하는지 알았으며. 책을 쓸 때 어떻게 시작하면 독지들을 순식간에 빨아 들일 수 있고, 또 어떻게 하면 수천 명이나 되는 소설 속 인물들을 서사적인 호흡에 따라 체계적으로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도 많은 시를 들어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시어로 말을 했으며, 눈(雪)에 해당되는 단어는 레타 델 브라트피스트만큼이나 많이 알게 되었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혹시나 부흐링 족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마치 낙원에서 사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늘 조회롭지만도 않았다. 비록 나는 이 작은 외눈박이들을 아주 좋아했지만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정말 대단히 신경에 거슬리기도 했다. 사실 내가 그들 누구와도 문학적인 취향을 완전히 같이할 수는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게다가 작기들의 작품을 무조건 암송하고 있는 부흐링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기 어려웠다. 
(P.97)



  오, 내 충실한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늦은 저녁 막 촛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안식을 취하려 하는데, 문득 어둠 속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되는 그런 느낌을 아는가? 그럴 개연성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방 안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그런 느낌을? 문도 열리지 않았고 창문도 굳게 닫혀 있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데도 나를 위협하는 존재를 느낄 수 있다면. 불을 켜보면 물론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불안했던 느낌은 사라지고 어린아이처럼 두려워했던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불을 끈다. 그러자 다시 거기에 뭔가 있다. 무언가 어둠 속에서 엿보고 있는 섬뜩한 느낌이 든다. 이제는 심지어 숨소리도 들린다. 그것이 가까이 다가와 침대 주위를 슬그머니 돌아다닌다. 그러고는 그대들의 목덜미에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숨결을 내뿜는다.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그대들은 눈을 뜨고 공포에 떨며 벌떡 일어난다. 다시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어둠과 더불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당혹스런 의심은 남는다. 불빛이 꺼지면 빛을 두려워하는. 우리가 숨쉬기 위해 공기가 필요하듯 어둠이 필요한 보이지 않는 족속의 마법의 영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들은 남은 밤을 촛불을 켜놓은 채 몸에 안 좋은 반수면 상태로 보낸다. 안 그런가?
(P.155)



  "내 친구는 절망했다. 많이 쓰면 쓸수록 그의 글은 할 말이 더욱 적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었다. 며칠, 몇 주, 몇 달을 텅 빈 종이 앞에 앉아서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그러자 눈물의 여관으로 가서 꿈의 실에다 목을 매달 생각까지 했다. 바로 그때, 전혀 뜻밖에도 그는 그의 생애에서 아마 가장 결정적이면서도 가장 행복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출판업자를 찾았겠지요?"
  내가 반문했다.
  그림자 제왕이 상당히 오랫동안 침묵하자. 나는 내가 어리석은 말을 한 데 대해 창피함을 느꼈다.
  “그의 몸속에 오름이 관통했다.”
  마침내 그가 말을 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레 집중적으로, 그래서 그는 처음에 자신이 죽는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림자 제왕이 오름을 믿고 있단 말인가? 보니까 이 대륙 안에서는, 아무리 지하 깊은 곳까지 헤집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이런 신화를 더 이상 믿지 않는 장소를 찾기가 힘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시건방진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아주 갑작스럽게 그를 관통했다. 오름은 그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주었고 그를 우주의 아주 먼 곳으로, 모든 예술적 착상들이 서로 만나 결합되는 장소로 높이 인도해갔다. 그곳은 물체도 생명도 없고 단 한 개의 원자도 없었지만. 너무도 간결한 상상력들로 가득 차 있는 천체여서 별들이 춤추면서 그 가까이로 다가올 수 있도록 유도했다. 거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가도 불가능한 순수한 상상과 힘 속으로 젖어들 수 있었다. 그 힘의 영역에 단 한순간만 머물러 있어도 한 편의 소설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자연의 법칙들이 효력을 잃은 듯이 보였으며. 일, 이, 삼차원들은 정리 안 된 원고들처럼 서로 마구 겹쳐졌다. 죽음이라는 것도 그냥 시시한 농담처럼 보였고. 영원조차도 마치 눈 깜박할 사이처럼 여겨지는 터무니없는 장소였다.  그가 그 장소로부터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의 머릿속은 낱말들, 문장들, 착상들로 가득차서 터질 지경이었다. 그것들은 이미 모두 갈고 닦아 정제되었기 때문에 그는 그냥 글로 써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펜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느끼면서 행복했지만, 동시에 지신이 실제로 그 훌륭함에 기여한 것이 얼마나 적은지 깨닫고는 당황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성취하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이 오름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도 이상할 게 없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냥 펜대를 잡고 마치 저절로 써가듯이 글을 쓰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게으른 시인의 꿈이었다. 아무렴 그랬다.
(P.207)
​​​


  “아니다. 문학은 영원한 것이 아니야!"
  호문콜로스가 외쳤다.
  "순간적인 것이다. 아무리 쇠로 책을 만들고 다이아몬드로 글자를 새긴다 해도 언젠가는 이 지구와 함께 태양에 부딪치면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영원한 것이란 없는 법이다. 예술에는 전혀 없다. 한 작가가 죽은후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희미한 램프처럼 서서히 꺼져 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가다.
  "그건 성공적인 작가의 좌우명이겠지요.”
  내가 반박횠다
 “살아 있는 동안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  말입니다."
  “나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문콜로스가 말했다.
  "어떤 책이 얼마나 간 팔리고 팔리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혹은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한 작가를 인지하는가 안 하는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런 것이 규범이 되기에는 너무 많은 우연과 부당함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내 말은, 네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네 안에서 얼마나 환하게 오름이 타오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당신은 오름을 믿습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는 음울하게 말했다.
  "다만 오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전부다."
(P.252)

​​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그가 말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글을 잘 쓸 수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작가라고 부르지. 그리고 작가들보다 좀더 글을 잘 쓸 수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 다음에 다른 시인들보다 좀더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이 있다. 그들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들은 오름에 도달할 수 있는 자들이다."
  오 이런, 또다시 오름이라니! 내가 아직도 오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빌어먹게도 고집스럽게 내 발치에 붙어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외딴 구석까지도 나를 쫓아다녔고 지하 수 킬로 미터 아래 살아 있는 책들의 도서실까지 쫓아와 나를 찾아낸 것이다.
  "오름이 지니고 있는 장조적인 힘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다.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지 그 방법만 안다면 말이다."
(P.266)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만약 네가 무엇을 체험하려면 해적이나 책 사냥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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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어스 / 두행숙 / 들녘 / 350
(2018. 5. 29.) 



  나는 독서 행위를 광기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어느 장소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책들이 상처를 주고, 중독시키고,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을 수도 있는 곳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그 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내 이야기에 동참하겠다는 각오가 진정 되어 있는 사람만이 나를 따라 이 이야기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밖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비겁하지만 몸의 안전을 위해 뒤로 물러서 있기로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나는 축하를 보낸다. 잘 있어라, 겁쟁이들아! 나는 너희들이 오래오래 죽을 때까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기 바라며 이 말을 끝으로 작별을 고한다!
(P.13)



  나는 밖으로 나가서 린트부름 요새 안의 어느 성벽으로 올라가 앉아 그 원고를 하늘 아래 탁 트인 데서 읽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단첼로트 대부가 직접 만든 딸기잼을 빵에 발라 그것을 챙겨 길을 떠났다.
  나는 바로 이 날을 내 생애에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태양은 이미 오래전에 하늘 한가운데를 지났지만 여전히 햇살이 따사로웠다. 그래서 린트부름 요새의 대다수 주민들은 야외에 나와 있었다. 길가에는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요새의 성벽 위에는 햇볕을 목말라하던 공룡들이 씩씩거리면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근래의 심경들을 서로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곳곳에 퍼졌다. 그 요새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늦여름의 풍경이었다. 조용한 장소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좁은 길들을 지나가다가 결국 걸으면서 그 원고를 훑어보기 시작쭸다.
  내게 처음 떠오른 생각은 낱말 하나하나가 모두 적절한 위치에 쓰여 있다는 것이있다. 사실 그런 인상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원고든 처음 훑어보면 그런 인상을 받기 마련이니까. 그러다 자세히 읽어가게 되면 비로소 여기저기 무언가 맞지 않고 구두점들이 잘못 찍혀 있고, 오자도 있으며. 적절하지 못한 비유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낱말들이 너무 자주 중복되는가 하면, 글을 써가는 동안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실수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고의 첫 장은 달랐다. 내용을 알지 않고도 흠잡을 데 없는 예술작품이라는 인상을 내게 주었다. 마치 첫눈에 바라보고도 그것이 천박한 작품인지 대가의 작품인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회화나 조각과도 같았다. 원고의 첫 장을 전혀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원고는 마치 화가의 손으로 그리진 것 같았다. 글자 하나하나가 탁월한 예술품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기호들 은 종이 위에서 마치 발레를 하듯 매혹적인 윤무를 필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마음을 휘어잡는 이 전체적인 인상으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읽어가기 시작했다.
(P.35)



  우리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연뿐이다. 거의 본능적으로 우리는 실외로, 바깥의 정원으로 발을 옮긴다. 나무들이 소슬거리는 데서 그리고 별들 아래서 우리는 더욱 자유롭게 호흡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마음은 더욱 가벼워진다.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그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P.75)



  “저희 같은 직업에서는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 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성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P.117)



  나는 음악이 되어 있었다.
  나 자신이 해체되는 것으로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아마 수증기도 끓는 액체의 몸에서 빠져나와 차가운 공기 속으로 상승할 때 그런 느낌 일 것이다.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나는 자유로워졌다 정말로 모든 세속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내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나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자 나는 음향이 되었다. 음향이 된 자는 파동이 된다. 음향의  파동이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누가 알겠는가마는. 그는 우주의 비밀에 이미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거라고 나는 감히 주장하겠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것을, 음악의 비밀을 이해했다. 음악이 왜 다른 예술들보다 월등히 뛰어난지를 이해했다. 그것은 음악이 지닌 무형성 때문이다. 음악은 한 번 그 악기로부터 벗어나면 완전히 그 자체가 되고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피조물인 음향이 된다. 무게도, 형체도 없고 완전히 순수하며 우주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나 자신이 그렇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음악이 되어. 활활 타 오르는 원과 더불어 모는 것을 넘어서서 높이 춤추고 있었다. 저 아래 어딘가에 세상이 있고, 내 몸이 있고, 내 근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완전히 부차적으로 보였다. 그러자 그것은 불의 수레바퀴가 되었고. 오직 현존재만이 가치를 지녔다. 그것은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돌고 또 돌다가 마침내 여러 색의 빛은 다시 그 내부로 홀러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세 개의 굽은 궤도가 중앙의 한 곳으로 모아졌다.
  그러자 나는 그것을 보았다. 바로 삼원이었다.
  삼원, 그 비밀스러운 기호는 바로 키비처와 이나제아 아나자지의 고 서점에 걸려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내 내면의 눈앞에 이제 더 큰 소리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트럼나팔 음악의 힘으로 불려나와 빛나고 있 었다. 이 활활 타오르는 원은 내가 지금껏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고 가장 흠 없고 가장 찬란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위해 일하고 그것에 복종하고 싶었다. 오직 그것만이 내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때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했다. 음악이 중단되었고, 기호도 사라졌고 나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래로 깊이, 깊이 추락했다. 세상 속으로, 차모니아로, 내 몸속으로 다시-착! 하고-되돌아가 지금까지 그렇게 속박에서 벗어나 있던 영혼이 다시 가차 없이 내 몸속으 로 들어와 원자들 속으로 갇히고 말았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네벨하임 악사들은 트럼나팔을 내려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청중은 일어섰다. 아무 갈채도 없었다. 당황해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처럼 대단했던 콘서트가 어쩌면 이리도 이상 야릇하게 끝난단 말인가! 나는 옆자리에 앉은 난쟁이한테 몇 가지를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자 역시 이미 사라진 후였다. 키비처와 슈렉스가 군중들과 함께 자리에서 급히 도망치는 모습도 보였다. 청중은 그들이 앉아 있던 열에서 벗어나려다 부딪쳐 비틀거리곤 했다. 오직 나 혼자만이 마비된 듯이 부흐하임 시립공원의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P.202)



  “저는 책을 사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사들이는 것은 고서점 전체 입니다. 저는 엄청난 양의 책들을 밀매합니다. 시장을 덤핑 책들로 넘쳐나게 해서 주위의 경쟁자들을 몰락시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파산하면 그들의 서점을 헐값에 사들입니다. 저는 부흐하임 전역의 집세 동향을 결정합니다. 이 도시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제 소유입니다, 거의 모든 종이공장들과 인쇄소들도 마찬가지고요. 부흐하임의 문학 낭송가들 모두가 저의 봉급 목록에 올라 있으며 독이 있는 골목에 거주 하는 자들도 거의 모두 그렇습니다. 저는 종이 가격을 결정합니다. 책의 출판부수도 결정합니다, 어떤 책이 성공을 거둬야 하고, 어떤 책이 그래서는 안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저는 성공적인 작가를 만들어냅니 다. 그리고 제 마음대로 그들을 파열시키기도 합니다. 저는 부호하임의 지배자입니다. 제가 바로 차모니아의 문학입니다”
(P.226)



  “어떻게 오늘 제가 한 질문들의 대답이 이런 오래된 책 속에 들어 있다는 겁니까?"
  “오늘날의 거의 모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이미 오래된 책들 속 에 쓰여 있습니다.” 스마이크가 대꾸했다.
  “만약 당신이 직접 체험하고 싶다면 책들에서 찾아보십시오. 만약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냥 그대로 두시고요.”
(P.232)​



  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던 한기가 팔 위로 퍼져 올라가면서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나면서 눈 앞이 흐려졌다. 그때 스마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모든 대답들이 책 속에 쓰여 있다고 믿는 몽상가였군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책들이란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좋지도 않습니다. 그것들은 심지어 아주 사악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책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중에는 살짝 만져도 죽음을 불러오는 것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자 내 눈앞이함깜해졌다.
(P.236)

​​

  수백 가지의 착상들이 내 머릿속에서 마구 소용돌이쳤다. 소설, 시, 에세이, 단편소설, 희곡작품들을 위한 착상들로 내 분노와 저항심에서 솟구쳐 나은 것들이었다. 그것은 전집 하나를 완성할 기초가 될 만했고, 글을 쓴다면 서가 하나를 온통 작가 미텐메츠의 책들로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것들이 지금 여기서, 하필이면 정말이지 그 무엇 하나도 메모할 수 없는 이 순간에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착상들을 붙들어매 머릿속 기억의 방에 못박아 두려고 애썼지만 그것들은 마치 미끄러운 물고기들처럼 내게서 다시 빠져나갔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글을 쓸 도구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슬프고도 우스광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웃다가 이따금 욕도 퍼부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 토해내는 저주의 말들조차 숨이 막힐 듯이 독창적이었다!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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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불쾌한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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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정신현상학

 

번역본 정본을 읽을 생각은 없다

(워낙 어렵기로 소문난 책...)

 

관련 입문서 몇 권과

네이버 열린연단의 강의를 통해서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정도로만 진행해 보고 있다.

 

일단 시작은

삼성출판사의 <진리를 향한 의식의 모험 헤겔의 정신현상학>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획된 책이라 전체적인 내용의 이해가 좀 수월하다

 

첫번째,

<진리를 향한 의식의 모험 헤겔의 정신현상학>

강순전 지음, 김양수 그림 / 삼성출판사

 

 

 

 

 

 

 

 

 

 

 

 

 

 

 

동시에 같이 진행하는 책으로는

 

두번째

헤겔 <정신현상학>

(Phaenomeologie des Geistest)(1807)
(철학사상 별책 제3권 제17호)
강성화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http://audio.dn.naver.com/audio/ncr/0850_1/20111213164105574_DX9WXB5FN.pdf

 

 

그리고 세번째

<정신현상학>

랄프 루드비히 / 이학사

 

랄프 루드비히의 책은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기 쉽지 않다

책 첫부분에 나오는 관념론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이

헤겔의 거대한 관념론의 시작에 앞서 이해에 도움을 준다.

 

네번째는

좀더 수월한 이해를 위해서

 

- 열린연단 강연 (고전 23강) 헤겔 <정신현상학> (강순전 / 명지대 철학과 교수)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79143&rid=2890&lectureType=classic

 

  (강의 동영상)

http://tvcast.naver.com/v/464274

 

  (토론 동영상)

http://tvcast.naver.com/v/464274

 

를 찾아서 들어 보았다.

아주 조금 정신현상학의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정신의 현상학, 의식의 경험학이기도 한 이 책은

정신(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의식의 성장기에 대한 책이다.

 

감각적 확신 - 지각 - 오성 - 자기의식 - 이성- 정신

 

기나긴 의식의 여정 끝에 위치한 절대정신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가 많이 부족한것 같다.

 

끝으로

독자들 리뷰에서 아주 쉬고 자세한 설명으로

입문서의 필독서로 꼽히는

<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

한자경 / 서광사

 

읽음으로써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대한 여행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그 밖의 정신현상학 들>

 

<정신현상학 1>

임석진 옮김 / 한길사

 

<정신현상학 2>

임석진 옮김 / 한길사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

하세가와 히로시 / 도서출판b

 

<정신현상학>

김은주 옮김 / 풀빛

 

 

 

 

 

 

 

 

 

 

 

 

<정신현상학>

최신한 / 살림

 

 

 

 

 

 

 

 

 

 

 

 

<헤겔>

김준수 / 한길사

 

<헤겔>

찰스 테일러 /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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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정신현상학과 정신현상학 관련 입문서들

 

- 헤겔 <정신현상학>

(Phaenomeologie des Geistest)(1807)
(철학사상 별책 제3권 제17호)
강성화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http://audio.dn.naver.com/audio/ncr/0850_1/20111213164105574_DX9WXB5FN.pdf

 

- 열린연단 강연 (고전 23강) 헤겔 <정신현상학> (강순전 / 명지대 철학과 교수)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79143&rid=2890&lectureType=classic

 

  (강의 동영상)

http://tvcast.naver.com/v/464274

 

  (토론 동영상)

http://tvcast.naver.com/v/464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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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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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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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 입문
하세가와 히로시 지음, 이신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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