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 솔
(2011.12.31.)
옛사람의 눈은 이러한 마음자리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위대한 인간 또는 자연의 형상도 그 자체가 영원하다고는 보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렇게 그리지도 않았다. 현상은 변화하는 것이고 위대한 것은 오직 거기에 깃들었던 인간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그래서 사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보았다. 마음을 그리는 것이었으므로 눈에 보이는 형태 그 자체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며, 특히 현상 속에 드러나는 색채 효과에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 풍토는 결국 점차 샐까을 재제하고 ‘수묵으로 그린 작품(수묵화(水墨畵))’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게 되었다. 눈보다는 마음으로 보고 사물의 외양보다는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정신이 바로 수묵의 마음이다.
(p. 26)
흑색은 참으로 신비롭다. 그것은 다채로운 유채색들이 그 화려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노년의 원숙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무채색은 지극히 순수하고 검소해서 내면의 정신적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승려의 장삼빛이 회색이고 신부와 수녀 복장이 무채색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한편 검정은 역설적으로 색 사운데서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기도 한다. 현대 패션의 거장들이 단일 색상 가운데 가장 즐겨 사용하는 색이 다름 아닌 검정이라는 통계가 있다.
(p. 28)
수묵화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가능케 한다. 수묵화는 회화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양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명상을 낳기 때문이다.
수묵화의 화면은 전체적으로 회색조를 이룸으로써 항상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고 안정감을 준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동양의 수묵화가 들은 대체로 장수를 누렸다.
(p. 29)
수묵화는 점잖아서 보는 이를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감상자가 평정한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그림 속의 세계로 스스로 들어올 것을 요구한다. 수묵화의 감상은 감각되는 형상에 수동적으로 지배되고 압도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보는 이가 사전에 풍부한 시각 경험을 쌓고 또 다양한 인생의 체험을 겪은 후에, 그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은근하게 작품이 암시하는 격조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p. 30)
우리 옛 그림에는 서양화에 없는 여백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림 바탕을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현상적으로는 ‘나머지 흰 부분’, 화면의 ‘빈 부분’이다. 그러나 여백은 정말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백에는 그려진 형상보다 더 심오한 것이 더 많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최상이 화가는 형상을 위하여 여백을 이용한다기보다 오히려 여백을 음미하기 위하여 형상을 그린다. 김홍도의 <주상관매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p. 131)
옛분들은 자연을 겉태로 보지 않고 그 마음으로 보았다. 특히 하늘은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하늘은 지극히 큰 것으로 온갖 생명과 도덕의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양화법이 도입된 이래 푸른 하늘이 화폭에 그려지게 된 것은 회화 기법의 발전이 아니라 회화 정신의 쇠퇴였다. 진정한 하늘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오히려 하늘의 가장 큰 특징은 ‘비어 있다는 점’에 있으니, 그저 화면에 하늘을 위한 여백을 남겨두는 행위야말로 진정 하늘을 잘 그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p. 133)
오늘날 우리는 서양식 가로쓰기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읽는다. 이때 시선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진행한다. 그림 보는 사람의 잠재적 시선은 먼저 좌상(左上)으로 갔다가 대각선을 따라 우하右下로 흘러내린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시선이 닿는 곳은 왼편 상단이다. 그 다음은 알파벳 X를 쓰듯이 왼쪽 획의 흐름을 따라서 보고 이어서 오른 획의 방향을 따라 보는 것이다.
옛 그림은 이와 달리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눈길을 옮겨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즉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이어지는 대각선의 흐름을 따라 보는 것이다. 조상들은 한문이건 한글이건 그렇게 쓰고 읽었으며, 그러므로 옛 그림에서 중요한 자리는 오른쪽 상단이고, 왼쪽 하단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우상右上에 제목을 적고 좌하左下에 작가의 관지(款識)를 넣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작품을 ‘읽는’ 동서양의 방식 차이는 아주 작은 듯하나,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이처럼 예상 밖으로 엄청나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애초 가로쓰기식으로 보면 그림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옛 화가들에게는 세로로 읽고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으므로, 보는 이도 당연히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 쪽으로 감상해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구도를 잡고 세부를 조정하고 또 필획(筆劃)의 강약까지도 조절했기 때문이다.
(p. 174-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