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도미니크 보나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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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관심을 끌 만한 인생을 살다 갔다. 30여 권에 달하는 소설을 써낸 작가로서 이 아시아 촌구석까지 그 이름이 알려졌다. 이 정도면. 남성으로서 두 번 결혼한 동안 한 여자는 영국 귀부인으로 자신보다 7살 연상의 여인이었고 자신만큼 재능이 있었기에 베스트셀러 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진 시버그라는 잊을 수 없는 배우, 20살 가까운 연하의 여자와 두번째 재혼을 한다. 그둘의 사진이 여기저기 아직까지 돌아다닌다.
그런가하면 군인 출신으로 외무성에서 일했다. 야망을 가진 한 인간으로도 성공한 셈이다. 미국 토크쇼에 프랑스 공보관으로 활약하며 유럽의 정치적 입지, 프랑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은 충분한 영향력이 있었다. 토크쇼, 유명 잡지들이 그를 인터뷰하고 초대했다. 그가 외무성에서 활동하던 시절.
돈도 벌 만큼 벌어 나이가 들자 지중해에 별장을 마련해 거기서 지내기도 한다.

그는 실은 순수 프랑스인이 아닌 동유럽 출신(러시아)이며 프랑스로 10대에 어머니와 함께 망명한다. 그의 세련된 이름조차 그가 지어낸 가명이다. 스스로 기획한 이름이다. 그가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등등은 그를 따라다닌 이방인의 감각의 증거이기도 하다.

자신의 기획에 자신을 밀어붙인 이 남자의 마지막 걸작은, 에밀 아자르라는 가상 인물에 대한 연극이다. 프랑스 문학계에 대한 똥칠이기도 한 이 연극에서 그는 자신의 조카를 대타로 내세우고 우리나라에는 <가면의 생>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작품을 통해 조카의 심리(삼촌에 대한, 실은 자신에 대한 어떤 미칠 듯한 괴로움-자기가 내세운 대타에 대해 세계가 기대하고 있을 심리이기도 한)를 묘사하며 즐긴다. 갈리마르 출판사나 르몽드 지가 여기에 진심으로 응답한다. 그는 늘 딴청을 피우며 뒤에서 연극을 준비하고 즐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연출하고 등장인물을 분석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그들이 떠벌리고 흥분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권총 자살한다.

이 정도면 흥미로운 인생이다. 어디 흥미롭지 않은 인생이 있겠는가 대꾸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 화려하게 살기는 쉽지 않다. 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태어나 세계의 흐름에 응답해야 할 말을 준비하고 그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 인간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남자의 전기다. 도미니크 보나의 입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사실에 기초했다. 때로 낭만적인 문장이나 번역의 실패라 할만한 여러 문장이 걸리긴 한다. 그러나 거짓과 진실 사이의 게임에서 혼돈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이란 관점에서 흥미롭다. 그것을 끊임없이 밀어붙이며, 자기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뒤채고 아무래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을 지우기 위해 덧붙이기를 하는.


누구나 최대한 산다.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 어떤 면에서 다 촌년이고 촌놈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왕이고 영주다. 스펙트럼이 다를 뿐이다. 로맹 가리는 밀어붙일 수 있을 만큼 자기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세상을 조소한다. 그게 그의 사랑의 방식이라고 도미니크 보나는 말한다. <자기 앞의 생>에 나온 마지막 문장 '사랑해야 한다'는 아름다운 울림을 넘어선다. 슬프다. 그 문장은 실은 강박이며 조소이다. 그러나 내실한 고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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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둥이 생각


 
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 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히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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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1 교과서에 이 시가 나왔다. 요즘 공부하는 데서 같이 본 손택수 시인이라니, 와 반갑다 하면서 애들하고 이야기를 하며 "정말 귀엽지 않아 " 말했다.

아이들이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이물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 넌 어떤데 하면서 애들에게 묻기 시작하니

애들은 슬프다고 이야기 했다.

왜?

그럼 너라도 이 흰둥이를 풀어줬을 거야?



아이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들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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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엔 싸움이 많다


건너뛰면 가닿을 것 같은 집집마다


형광등 눈밑이 검고 핼쓱하다


누군가는 죽여달라고 외쳤고 또 누구는 실제로 칼로 목을 긋기도 한다


 

 

밤이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유체이탈한 영혼들처럼 기다란 복도에 나와


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

 

여자들은 남자처럼 힘이 세어지고 눈빛에선 쇳소리가 울린다


대개는 이유도 없는 적개심으로 술을 마시고


까닭도 없이 제 마누라와 애들을 팬다


 

아침에는 십팔평 칸칸의 집들이 밤새 욕설처럼 뱉어낸


악몽을 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화단의 꽃들은 표정이 없다


 

동네를 떠나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전보다 조금 더 살림을 말아먹은 아내와


그들을 자식으로 두고 죽은 노인들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교과서를 족보책처럼 싸짊어지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아파트는 서서히 눈에 불을 켠다


이빨이 가려운 잡견처럼 무언가를 갉아먹고 싶은 아이들을 곁에 세워놓고


잘사는 법과 싸움의 엉성한 방어자세를 가르치는 젊은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밤이면 아파트가 울고, 울음소리는


근처 으슥한 공원으로 기어나가 흉흉한 소문들을 갈기처럼 세우고 돌아온다


새벽까지 으르렁거린다


 

십팔, 십팔평 임대아파트에 평생을 건 사람들을 품고


아파트가 앓는다, 아파트가 운다


 

아프다고 콘크리트 벽을 쾅쾅 주먹으로 머리로 받으면서 사람들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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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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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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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자신이 문학도(이런 고리타분한 이름이 이젠 좀 싫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라고 자처한다면 누구나 이 소설의 제목과 저자를 접하자마자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애너벨 리라는 에드가 앨런 포의 시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책의 작가인 (소설 속 화자이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것이다.

애너벨 리라는 시가 지닌 기묘한 아름다움, it was many and many years ago, in a kingdom by the sea 로 시작하는, 흡수력을 가진 시를 처음 영문으로 들었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처음 입학하고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이 시를 칠판에 적었다. 바닷가 어느 마을, 친척들, 그런 단어가 막연히 불러일으키던 묘한 감각.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 체험은 대학에 들어간 뒤 읽었다. 몇 학년 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0대 초반이었고 도서관이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그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이 시간을 모두 흡수해 버렸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로는 두 번째다. 허당 문학도다운 독서다. 며칠 전 산 에드가 앨런 포 전집이 펼쳐진 적 없이 뒹굴고 있는 상태.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오간다. 소설 속 화자는 노벨 문학상을 탄 노년의 작가이며 현실적인 많은 여건은 작품이 소설이라기보다는 픽션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개인적 체험』과 마찬가지로 흡입력이 엄청나다. 이 흡입력의 정체는 뭘까? 문장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인지 중심 사건에 대한 흥미(미하일 콜하스 영화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때문이지 기묘하지만, 어쨌든 소설은 초반부터 독자를 빨아들인다. 게다가 픽션과 같은 여러 정황(간질을 앓는 아들 히카리를 보살피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곧 오에 겐자부로의 삶의 한 단면일 것 같다)은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가속도를 끊임없이 높인다. 이 형식은 끝까지 유지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소설의 중심에는 사쿠라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패전 후 일본의 고아 소녀였으나 미군 장교의 손에 길러지다 그와 결혼한 배우이다.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활약한 바 있으며 ‘나’는 어린 시절 그녀를 애너벨 리라는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그녀의 삶의 숨겨진 뿌리가 소설의 핵심인 셈이다. 간략한 몇 줄의 소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 사쿠라(벚꽃)라는 여성이 소녀 시절 겪은 상흔이 소설의 중심에 자리한다. 그리고 현재로부터 약 30년 전 기획된 미하일 콜하스 프로젝트에서 ‘나’의 어머니 이야기에 매료되어 미하일 콜하스라는 봉건 시대 반란 장군(?)을 여성으로 대체해 영화를 찍고자 하는 사이, ‘나’의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소설에 개입한다.

사실 모든 여성은 소녀의 시절을 지나 어머니의 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여성이란 약자의 위치는 자칫 상처로 남을 수 있지만 이 상처를 위무하며 어머니라는 강인한 존재(내게도 역시)가 된다. 세계의 모든 상처 입은 자들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어 그녀의 품에서 자라났다는 몹시 단순하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놀라운 깨달음이 이 소설 안에 담겨 있다. 한 고아 소녀(애너벨 리 시에 어울릴 법한, 만지면 부서질 듯 위태로운)가 전쟁의 상흔 속에서 미군의 놀이개로 전락한 시절을 모든 밤 악몽 속에 재현해내고 있으나 그녀가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발견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승화한다는, 정리해보면 뻔하지만 거기 담긴 생의 무언가가 아찔하다. 연약한 한 생명체(칼로 베면 피가 나오고 툭 하고 꺾여버리기도 하는)가 지닌 거대한 힘의 발견(봉건 시대 반란을 이끈 자의 어머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자의 어머니, 시대(전쟁 등)의 모든 아픔을 감내하며 자식들(다음 세대)들의 생을 감싸안는 어머니)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미하일 콜하스 영화 프로젝트는 30년 전 좌절된다. 그러나 일흔이 넘은 나와 친구 고모리는 그 세월 속에서 누군가가 드리운 세월의 그늘을 껴안고 노인이 되어 사쿠라의 상흔을 위무하기 위한 기획을 계속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 기획의 말미일지도 모른다는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 지점에서 소설이 끝난다.

연약한 것에 대한 지독한 애착이 담긴 시 애너벨 리는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울 무렵 배운 시이다. 말하자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이들은 대부분 이 시를 접하게 된다. 이 시에는 무언가 마력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연약한 것에 대한 한없는 애정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추악하게 발휘될 수도 있고 아름답게 발휘될 수도 있지만, 인류에게는 그런 연약함에서 부드러운 힘을 발견하는 내면이 있는 게 아닐까. 모든 문학은 인간이란 존재의 연약함에서 부드러운 힘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노년의 작품은 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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