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둥이 생각


 
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 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 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날 아침 멀리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히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

 

중 1 교과서에 이 시가 나왔다. 요즘 공부하는 데서 같이 본 손택수 시인이라니, 와 반갑다 하면서 애들하고 이야기를 하며 "정말 귀엽지 않아 " 말했다.

아이들이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이물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 넌 어떤데 하면서 애들에게 묻기 시작하니

애들은 슬프다고 이야기 했다.

왜?

그럼 너라도 이 흰둥이를 풀어줬을 거야?



아이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들 그렇게 대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