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아름다움 -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열한 갈래의 길 통섭원 총서 3
김병종 외 지음 / 이음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통섭을 강의하는 최재천 선생님은 뭐하시는 분이지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알고 보니 분의 이야기는 아니고 그분이 아는 분들이 글인데, 그러니까 기획자인 건데, 그래도 좋다. 그래서 챕터별로 화장실에서 보기 좋겠다 해서 화장실에 뒀다가, 갖다줘야 때인데, 김혜순 선생님의 글이 좋아서 이것만 보고 갖다줘야지 하고 놔두고 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도망와서 읽기 좋은 글이다. 나는 지금 도망와있거든. 짐을 싸들고 도망왔고, 거기 책도 몇백권인가 있고 읽은 책도 많은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고 있는 거다. 여기 가장 좋은 변명은 누가 읽을 책을 사느냐는 유명 작가님의 말인가… 어쨌든 . 어떤 책에는 영혼이 조금 깃들어 있고, 나는 그런 책을 좋아한다. 영혼이 뭔데 물으면 나도 대답을 수는 없겠지만, 그게 보일 , ㄱㄴㄷㄹ ㅏㅑㅓㅕ 조합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책이 좋다. 내가 여기 도망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혼을 돌보고 싶어서. 책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 각각의 영혼들이. 그래서 계속 읽고 있다.


20210504

80퍼센트의 슬픔과 20퍼센트의 대책 없는 약동. 이 사이에 우리의 삶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건용 - P27

부처님 눈으로 보면 삼라만상이 다 부처라고 한다. 다만, 우리는 부처가 아니기에 삶의 아주 작은 순간에만 그 눈을 갖게 되는가 싶다. 세속의 관성에서 깨어난 그 짧은 순간에 본 그것을 나는 애써 붙들고, 그것을 음악(또는 시 혹은 다른 무엇)으로 그려 이 일상의 공간에 남겨보려 하는 것이다. 그 순간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순간을 포착하는 모범답안 같은 것은 없다. 타고나는 것일까? 혹은 연습해서 얻는 것일까? 그보다는 좀 더 다른 차원의 ‘느닷없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건용 - P29

나는 시인은 귀로 시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말이 그친 곳에서 씁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말할 줄 모르는 두 귀로 말 아닌 말을 씁니다. 귀가 하는 말, 그것이 시입니다. 시는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어서 신음, 한숨, 노래, 비명과 비슷합니다. 이형관도 비슷합니다. 김수현의 시론으로 하면 기침, 가래, 침과 비슷합니다. 시인은 귀로 들어온 것을 구축해서 귀로 씁니다. 육안으론 보이지도 않는 이미지를 실제의 내 귀로는 들을 수도 없는 ‘귀말’로 씁니다. 지금 여기에서 지금 여기의 사후를 씁니다. 시인은 마치 번개 뒤의 천둥처럼 번개 속에서 천둥을 씁니다. 이런 것 때문에 플라톤이 시인을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데아를 두 번씩이나 모방해서 겨우 하는 짓이 다른 세계, 아무것도 아닌 세계, 부재의 세계를 읊어대는 자들. 그러니 추방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귀로 두 번 걸렀으니 얼마나 국가에 위해한 말이었을까요? -김혜순

- P92

귀는 눈에 비해 그저 구멍입니다. ‘오늘 나는 이 구멍으로 무엇을 들었나. 오늘 내 귀에 들어온 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나. 소리가 내 팔이 되었나. 내 머리가 되었나. 내 꿈이 되었나. 아니면 저 들판이 되었나. 저 파도가 되었나. 그러나 이 두 구멍은 나선형으로 구부러진 채 수동적으로 ‘있었을 뿐’입니다. ‘너와 내가 말하고 있을 때 귀는 무엇하고 있었나.’ 그러면 귀가 대답합니다. ‘나에게 붙어서 나 아닌 것인 것처럼, 침묵처럼 가만히 있었지.’ 나는 또 질문합니다. ‘너와 내가 마주 서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들었나. 그때 누가 와서 말했나.’ 그러면 귀가 대답합니다. ‘우리 사이의 침묵처럼 귀가 와서 말했지.’-김혜순 - P93

귀는 어두운 방입니다. 과거의 우물입니다. 구멍입니다. 내가 이승의 마지막에 도착하는 구덩이의 현현입니다. 귀로 말한다는 말은 내 구멍을 뒤집어 영혼으로 말하기라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귓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어두움이 차 있을 뿐. 노자의 ‘현, 곡, 빈’처럼 그저 비어 있을 뿐, 그저 깊을 뿐입니다. 이 깊고 텅 빈 것에 대한 내밀한 몰입이 귀가 하는 말, 시 쓰기입니다. 귀는 어머니의 자궁 속의 산도처럼 나선 달팽이형으로 구부러져 있습니다. 시는 그 깊은 것, 안으로 무한한 것이 말을 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서는 더 집중되고, 감정은 더 짙어지고, 이미지는 더 높은 곳으로 상승합니다. 그것이 공기 중에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몸이 반응하게 됩니다. -김혜순 - P95

시인에게 귀는 몸의 축소판이자, 몸 자체입니다. 시인은 귓구멍처럼 텅 빈 자이지만, 귀처럼 열려 있는 자입니다. 귀의 말은 그것이 퍼지고 공명하는 하나의 파장, 하나의 움직임, 공기 중에 퍼뜨린 생멸의 밀도입니다. 그러기에 한의학에서는 귀에는 우리의 발바닥이나 손바닥처럼 신체 전체의 혈 자리가 모여 있다고도 합니다. -김혜순 - P95

귀는 코와 입처럼 하나가 아니라 들입니다. 입이 둘이라면 두 개의 입이 떠드는 말을 누가 알아듣겠습니까. 눈과 귀는 왼쪽과 오른쪽의 공간적, 시간적 불일치로 입체를 감각합니다. 귀는 맥박 치듯 진동으로 듣고, 진동으로 말합니다. 그리하여 귓속에는 3차원적 소리의 건축이 들어섭니다. 그 건축을 따라 귓속 서방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오솔길을 지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꽃밭이 나옵니다. 꽃나무가 흔들리고, 부엌 문이 열리면서 엄마가 나오고, 장지문이 열리면서 아빠가 기침을 하며 내다보는 옛집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기와지붕에 내리비치는 햇살과 바람, 저녁의 빛깔이 돋아나옵니다. 귀는 부피를 듣느라 두 개입니다. 안팎이 있고, 칸칸이 방이 있는 집, 그 따스한 건축물 속에 귀는 태아처럼 벌거벗은 채 맥박 치는 나를 안치하고 있습니다. 귓속에는 은밀한 익사체처럼 3차원의 내가 숨어 있고, 내 속에는 귀가 또 열려 있습니다. -김혜순 - P96

눈은 눈꺼풀이 있어 자의적으로 열고 닫을 수 있지만 귀는 닫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김혜순 - P96

귀는 태아처럼 생겼습니다. 태아로 태어나 태아로 죽는 기관. 오죽하면 태아 가르강튀아가 정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가 귀에서 탄생한다고 했겠습니까. 태아는 물속에 잠긴 고래처럼 듣습니다. 나는 나의 쌍생아를 두 손으로 덮어옵니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참 시끄러웠습니다. 살수차가 한 대 지나가자, 유람선이 붕붕 기적을 울리고, 그리고 출근 전동차가 힘겹게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의 뱃속은 몇 개의 전동차가 엇갈려 지나가는 철로 같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한 번도 쉬지 않는 엄마의 맥박은 소리로 만든 나의 둥우리였을 것입니다. 나는 귀처럼 몸을 웅크리고 그 소리들을 오로지 듣고 또 들었을 것입니다. 몸 전체가 하나의 귀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의 그 소리들이 심장을 하나 만들었을 것입니다. 쿵쿵 울리는 소리의 근원을 말입니다. 나의 첫 태동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팔에서 뻗어 나와 갈라져 각각 이름이 다른 손가락 열 개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김혜순
- P97

시인의 귀는 엄마 뱃속의 태아처럼 그렇게 ‘있습니다.’ 토끼 굴속의 아기 토끼처럼 그렇게 ‘있습니다.’ 깊은 바위 속의 물고기처럼 그렇게 ‘있습니다.’ 그리고 소리도 언어도 아닌 침묵과 같은 자신의 정체를 듣고 ‘있습니다.’ 언어에 의미가 붙기 전, 그 박동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소리를 듣고 있지만, 난 이미 그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김혜순
- P97

고래의 노래는 귀로 들리지 않고, 몸을 진동시키면 들려옵니다. 고래의 노래는 귀의. 노래처럼 몸으로 직접 옵니다. 뼛속으로 직접 옵니다. 폭풍처럼, 번개처럼, 죽음처럼. 그 소리를 오래 듣고 있으면 두 손이 모아집니다. 태아처럼. 눈이 감기고 몸이 웅크려집니다. 태아처럼 자폐아는 사람보다 고래와 더 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습니다. - P98

마음은 귀입니다. 귀처럼 고요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귀는 마음처럼 존재가 아니라 경험이며, 실체가 아니라 요체입니다. 나는 지금 ‘귀’라고 불리는 존재, 실체에서 ‘귀로 쓴다’라고 말해지는 어떤 경험을, 그 경험 속에 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귀처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휘어진 파이프입니다. 이 마음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우리의 곁에서 ‘소리’라 불리는 것이, 공기 분자를 흔드는 사건이 매 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파동이 일어납니다. 소리의 파동은 물결처럼 흔들려 고막을 진동시킵니다. 몸속의 가장 작은 뼈들로 보이지도 않는 털들이 수초처럼 귓속 어두운 곳에서 흔들립니다. 파이프 속은 텅 비었지만 그것이 울리면서 요체인 마음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텅빈 파이프로 소릿결이 몰려들어라 귀의 수면을 진동시키지 눈, 코, 입, 귀 같은 여러 구멍을 둘러싸고 있는 내 얼굴, 그 가면에 표정이 떠돕니다.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립니다. -김혜순 - P98

내 목소리가 내 얼굴과 가슴의 리듬에 반응해 시시각각 음색을 달리합니다. 이 발화의 순간들이 있기에, 그 소리가 순간적으로 사라지기에 ‘귀’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혜순 - P98

귀, 검은 구멍은 일평생 들어온 소리를 내부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몸을 흔들던 진동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부르던 노래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진동이 마음이 됩니다. 마음이 말을 하는 순간,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소리가 올라옵니다. 귀가 연주를 시작합니다. 시인이 그것을 받아 적습니다. 시는 마음의 리드미컬한 연주를, 음악을 받아 적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시는 귀가 연주하는 음악에 실려 떠오릅니다. 한 시인이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감각했다 마음이 종이를 두드립니다. 검은 글씨가 리드미컬한 언어 속에서 행진합니다. 의미를 짓뭉개고 전진해야 이미지가 박동합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도 좋을, 박동하는 언어가 펄떡입니다. 들리는 생각이 그림을 그립니다. -김혜순
- P98

귀는 눈보다 코보다 입술보다 ‘빚어졌다’고 말하기 좋습니다. 귀는 꼭 손으로 빚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귀만은 아주 오래도록 이곳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라져버린 없는 세상을 들을 것 같습니다. -김혜순
- P99

귀의 부속 기관들은 매우 작습니다. 귓속에 들어있는 뼈들은 인간을 만들고 남은 뼈들을 주워다가, 장인의 골방에서 세공했을 법한 작은 것들입니다. 그 작은 것이 크고 깊은 곳을 향합니다. 그 작은 주머니 속에 집채보다 큰 소리가 깃듭니다. 약한 것 속에 엄청난 소리들이 깃듭니다. 속삭이는 소리, 꽃이 피는 소리, 꽃이 시대는 소리, 먼 곳에서 눈꺼풀을 닫는 소리, 붉은 소리, 푸른 소리 같은 그 작은 기미가 우주의 세밀화를 우리 앞에 현현하게 됩니다. -김혜순
- P99

귀는 견디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귀 안으로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습니다. 거기 그 머나먼 내부의 여러 갈래 길들 속에 메아리의 집이 있습니다. 거기로 스며들어간 소리들이 혈거인들처럼 입을 다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귓바퀴를 울리며 쏟아져 나갈 날을, 메아리가 돌아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혜순
- P106

귀로 글쓰기는 ‘당신의 없음’ 속에서 시작됩니다. 귀는 항상 사후에 ‘씁니다.’ 내가 지금 목련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목련은 지금 여기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움이 목련을 쓰게 합니다. 나는 목련을 노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목련을 다시 불러내려는 귀의 애타는 목마름, 그 깊은 구멍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귀는 목련과 나 사이, 그 사이, 목련의 신기루, 그 나라를 운행합니다. -김혜순
- P106

내 목소리가 죽고, 내면의 소리마저 죽고, 잡음마저 사라져 침묵이 도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해야 했기에 침묵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입을 열면 지금, 여기, 나에 있고, 침묵하면 지금, 여기, 나를 떠나 멀리 가기에, 그렇게 깊어져가기에 침묵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김혜순
- P107

나 떠난 세상에 귀 하나가 떨어져 내가 살던 세상을, 그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귀는 축적이 아니라 삭제의 기관입니다. 귀는 침묵의 입술, 그 귀가 입을 열어 말하면 세상은 침묵의 파동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므로 귀로 말한다는 것은 언어의 뒷면, 관념의 뒤편, 목소리와 잡음이 사라져버린 그 뒷면으로 말한다와 유사한 말일 것입니다. 마치 외계인과 만났을 때처럼, 입 없이 통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김혜순
- P107

귀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귀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는 없지만, 귀를 가지고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을 할 순 없지만 귀는 여기 있습니다. 여기 우주로 열린 커다란 귀가 하나 있습니다. 그 귓속에 들려오는 언어 뒤편의 세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 언어 뒤편의 세상은 내 귀의 어두운 구멍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 둘은 서로 접속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 귀로 소음을 내고 있는 삼라만상의 그 무상함을 말해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헤치고 나온 그 태초, 용암이 흘러 다니던 그 태초의 별의 세상을 말해봅니다. 그 광활을 말해봅니다. 세상 이전의 고독한 침묵을 맞이해봅니다. 이름 거창한 것들에게서 이름을 빼앗아봅니다. 내 이명과 난청으로 망가진 귀를 솜처럼 둘러싼 이 침묵, 망가진 귀가 찾은 사물들의 침묵과 저 먼 곳의 굉음, 그 선율들의 시작을, 그 선율이 지은 무언의 음악적 건축을 순간적으로 현현해봅니다. 거대한 침묵으로부터 지금, 여기 불현듯 현현해옵니다. -김혜순 - P108

그럴 때 내 귀는 혼돈 이후의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다 들어온 침묵처럼 그저 텅 비어 온전하게 있을 뿐입니다. -김혜순 - P108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없다. 변화하는 것만이 진실로 아름답고, 변화해야 생기를 얻을 수 있다.
-김현자 - P123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슬퍼 몸부림칠 때, 그것이 곧 춤이다. 기쁨에 겨워 뛰며 서로 껴안을 때, 그것이 춤이다. 삶과 춤은 결코 둘이 아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그냥 아름다워서만 되는 것은 아니라 진정성과 참됨과 진실함이 깃들어야 하며, 그것이 다른 사람의 행복으로 다가갈 때,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이런 마음자리가 없으면 그건 춤이라 할 수 없다.
-김현자 - P127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할 때, 합의된 혹은 안정화된 정답이란 그렇게 쉽게 도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연계에서 오관을 통해 감지되는 대칭성은 꽃이 벌을 모으고, 미인이 남자들을 이끄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자연계의 그 밑바닥에선 편향된, 즉 대칭성이 깨진 상태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정두수 - P143

루이스 칸은 이렇게 대답했다.
"건물의 벽에 햇살이 드리우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집이 항상 새로운 경이에 가득 차 있음을 압니다. 매일매일 빛의 질에 따라 한날의 푸른빛은 그날만큼 푸른빛이며, 다음 날의 푸른빛은 또 다른 날의 푸른빛입니다. 아무것도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의 질료를 가진 전깃불은 단지 하나의 느낌만을 당신에게 줄 것이지만, 햇빛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집은 우리가 맞닥뜨리는 시간의 순간순간만큼이나 그때그때의 새로운 분위기를 가질 것입니다. 이 집이 건물로 남아 있을 날까지 매일매일의 날들은 다른 날과는 다른 새로운 날이 될 것입니다.
-민현식 - P184

조선의 선비들이 만든 공간에 주목해봐. 그들은 공간을 비워두었다. 이렇게 비움을 구축한다는 것은, 그 공간의 성격을 미리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 공간은 가치 중립적이다. 단지, 점유되기를, 햇빛과 바람과 어우러지길 기다리는 공간이다. 이 ‘비움’은 이렇게 설명된다.
-민현식 - P186

"여기서 의도하는 비어 있음은 상실과 외로움의 골이 깊은 허무, 배고픔의 고통이 아니라 고요함, 명료함, 투명성이다. 비어 있음은 소리 없이 반향을 일으키며, 충만해지려는 잠재력으로 완성을 향해 열려 있다. 비어 있음은 순간(시간), 장소, 상황의 사이에 존재한다. 비어 있음은 징검다리의 돌과 돌 사이와 같지만, 우리는 사뿐히 건널 수 있다. 음표 사이의 침묵과도 같으나 우리는 레가토로 부드럽게 연주할 수 있다. 비어 있음은 흔들리는 시계추가 정점에 도달해 멈춤 아닌 멈춤을 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민현식 - P186

아무래도 조금 모자라는 것이 아름다움의 본질이 아닐까, 땅의 아픈 곳, 그것을 고치려는 시도가 자생풍수의 기본 사상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아름답다고 느끼는 정감 뒤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뭔가 부족한 것을 채워가려는 정성, 뭐, 이런 연민의 정이 뒤에 깔린 게 아니냐, 감춰져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창조 - P204

거대하면 거룩하고 작으면 아름답다. 크면 숭고이고, 작아야 눈부시다. 작은 것들이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다 바람결에 흔들릴 때 사람의 마음도 흔들린다. 그때 빛이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액센트를 만든다. 그 광채가 숭고와 신화보다 순간의 눈부심을 만들고, 그 눈부심을 우주의 미소다.
-배병우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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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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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머릿 속에 있던 이야기의 씨앗이 인물을 통해 발현되기 시작하고 힘을 얻고 탄탄해지고 줄기가 커가고 잎을 달고 꽃도 피우고. 나는 그렇게 해봤던가.

 

6편으로 이루어진 넷플릭스 드라마를 먼저 보고 책을 보는 . 드라마는 철저히 정세랑 작가의 이야기를 영상화한다. 순서나 배치는 달라지지만 대부분의 장면을 거의 가져왔다. 작가는 기분이 어떨까. 머릿속에 있던 씨앗을 정유미가 연기하고 이야기를 보고 환호하고. 그런 것을 보는 기분.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학원물. 만화 같은 구석도 있고 무엇보다 설정이 다했다 수도 있는 작품. 응축된 무언가를 젤리라 보고, 보호막이 있는 남자교사 홍인표로부터 에너지를 충전하는.

 

드라마가 없었다면… 


20210609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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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과 날줄이 엮여서 천이 된다. 씨줄 하나에 모든 날줄이 걸리고, 날줄 하나에 모든 씨줄이 걸린다. 실들은서로를 묶고 서로에게 묶인다. 그렇게 모든 부분이 전체가된다. 오직 방향만 있던 1차원의 실이 면적을 가진 2차원의천이 된다. 어부의 그물도, 범선의 돛도, 화가의 캔버스도,
혁명의 깃발도 모두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러니 손수건 한장도 하찮은 것은 없다. 어떤 간절함이 아니라면 이렇게서로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또 서로를 놓아주지 않는 것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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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의 도중
호시노 미치오 지음, 박재영 옮김 / 엘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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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책을 봤던억이 난다. 오래전이라고 해봤 5 전쯤. 세종시에서 일하고 있을였다. 자연이라고는 없는 척박한 도시에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봤었다. 알래스카에 반해 엽서 쓰고 답장을 받고렇게 알래스카로 본인. 그 알래스카에 정착했고 마지 유고집을 남기고 곰에게 물려 상을났다.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빌려왔는데, 책을 읽게 , 뭐였을까. 이제 나 알래스카가럽지 않은름다운 속에 있게 되어, 젠가 가보 좋겠다 싶으면서도 뭔가 생각하게 된다. 생각은 물론 사라 것이다. 어떤, 나중에는 책으로부터롯된 줄도 모르 어떤적을 남긴 .

 

속에 깊이 있던람의 사유 엿볼 있다.


(20210518)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서 있어도 각기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은 각자의 인생이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12

성인이 되고 우리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 한창 빠져 있던 놀이일까? 지금은 사라져버린 공터일까? 아니면 소꿉친구?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 가장 그리운 것은 그 시절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시간 감각이 아닐까? 과거도 미래도 없이 그저 그 순간순간을 살아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 과거나 미래는 우리가 마음대로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며 사실 그런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 환상에서 애처로울 정도로 벗어날 수 없다. 여기에는 분명 어떤 종류의 훌륭함과 그와 비슷한 정도의 싱싱함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를 볼 때, 또 모든 동물들을 볼 때, 나는 그들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신기함에 속절없이 끌리고 만다.
- P15

분명 사람은, 언제나 각자의 빛을 찾아다니는 긴 여행의 도중일 것이다. - P45

나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일상에 쫓길 때에도 다른 곳에서는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것을 유구한 자연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다면, 아니 마음 한구석에서라도 상상할 수 있다면 어쩐지 살아가는 힘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P91

사람은 언제나 무의식중에 자신의 마음을 통해 풍경을 본다. 오로라의 신비한 빛이 말해주는 것은 그 빛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속 풍경 안에 이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21

누군가가 ‘바람은 믿은 수 없이 부드러운 진짜 화석이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를 둘러싼 대기는 아득히 먼 옛날부터 수많은 생물들이 내쉰 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숨은 ‘말’로 바꿔도 좋을 것이다. 바람에 휩싸여있을 때, 그것은 오래된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불어온 것이라고 한다.
- P148

인간을 포함해 눈앞에 있는 모든 존재는 머나먼 시간을 넘어서 지금 이곳에 있다. 생물의 씨앗에 숨겨진 세계를 상상할 때, 먼 옛날 사람들이 살던 곳에 텐트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면, 잊고 있던 어떤 연속성을 깨닫게 된다. 희미한 바람이 불어올 때도 그러하다.
- P152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본다. 어둠이 아니라 빛을 보려고 한다. 잔뜩 긴장된 엄동설한 속의 눈 덮인 세계, 달빛 어린 밤, 하늘에서 춤추는 오로라…… 그리고 무엇보다 가혹한 계절이 품고 있는 희미한 봄의 기운. 그것은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또 겨울을 넘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 P154

어린 시절에 본 풍경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 다양한 인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언젠가 본 풍경에게 위로를 받거나 용기를 얻는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 P193

자연의 색은 우리에게 한 번뿐인 인생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 P208

나는 혹독한 자연조건 속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 살아가려고 하는 알래스카 생명의 모습을 좋아한다. 그것은 강인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 긴장감 있는 자연이다. - P258

약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으면 때로 강자와의 입장을 뒤바꿔버린다. 그것이 죽을 각오로 덤비는 행동이 지닌 힘이 아닐까?
- P312

"미치오, 지금 있는 것으로 충분해. 내일은 어떻게된 될 거야. 어제는 이미 지나갔다고." - P320

인간이나 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자연이 숨 쉬고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아는 것이 언제나 놀라웠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항상 생각하게 만들었다. 알래스카의 자연은 그 사실을 매우 알기 쉽게, 끊임없이 알려주는 듯하다.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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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그림책 Dear 그림책
하이케 팔러 지음,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김서정 옮김 / 사계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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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 와서 바로 읽었다. (20210522) 예전에 람의림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었는데(100인생그림책), 기록이 없다. 그림과 사이 관계 것을 공부하기 좋은 책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도람의 인생의 어떤 면을 보여주며 그림 사이 간극이 다. 

람이 만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있다. 친구들 사주 좋을 같다.

 

정이야말로 맺을 있는 최고 관계가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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