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데부 - 이 광막한 우주에서 너와 내가 만나
김선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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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귀엽고 밝은데 유치하지 않아. 깊이가 있어.

 

전시를 같이 보러 가자고 하면서 말이다. 그림이 갖고 싶어서 책도 샀다. 원화는 가격이 비싸서 부담스럽지만, 책에도 그림이 있을 테니까. 그림에 대한 기억을 계속 갖고 있고 싶어서 였을 수도 있다. 도도새와 , ,  그림에 대한 기억들 말이다.

 

전시회는 우연히 갔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가자는 친구의 권유를 따라나선 거였다. 전시 제목이 길어서 지금도 기억하지 못해 다시 봤다. '춤, 흐르는 물결, 일렁이는 마음, 꿈꾸는 표류'. 실내에서 하는 음악회는 예상보다 붐벼 안에 있기 불편해 자연스레 전시회를 관람하게 됐다. 그림이 좋아서, 사진을 여러 찍었다. 기대하지 않은 수확이었다. 그림마다 도도새가 등장했다. 그림 그리기와 삶에 대한 사유들이 간간히 적혀 있었다. 그도 좋았다. 미술관에서 컬러링 엽서를 색칠하다 깨달았다. 그림 정말 그리기 힘들었겠구나.

 

멸종한 도도새. 거대한 육체, 날지 못하는 날개, 바보스럽게도 사람을 따랐다는… 바보의 대명사격 도도새, 멸종될 때까지… 멸종이라는 말이 주는 아스라함… 실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임…

처음 그림을 감상할 때만 해도 도도새는 메타포로서 흔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런 사유로 잠깐 도용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했으나 . 전시회의 모든 그림에 도도새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림과 제목의 찬란한 조합에 감탄했다. 이제 보니 전시 주제가 춤이었다.

 

'작가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자신만의 춤을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각자의 춤을 추며 살아가는 인생을 지극히 예술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그 안에는 현실과의 타협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춤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격려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강릉시립미술관 전시 소개

 

일현미술관에서 열리는 트래블그랜트에 당선돼 모리셔스 섬에 동안 도도새를 추적한 것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도도새를 그렸다고 한다.

 

예술가로 살아가며 고민하는 내용이 책의 주를 이룬다. 5시에 작업실에 출근하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달리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별이나 여행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에 대한 글들도 많다.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제게 작업이란 별을 좇는 일입니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그의 글에 나오듯 예술대학을 나온 99%가 취직이라는 길을 걷는다. 마음 속에 이룰 없는 하나를 간직한 채(?). 나도 99% 하나인 셈이다. 잊고 살곤 하지만, 언젠가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뜬구름 잡다가 다시 현실로 오듯, 다시 어느 직장을 다니고 그러다가 글쓰기를 생각한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나로부터 나온 실타래가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돼 공명음을 얻는다는 것, 나만 아는 실타래를 계속 붙잡아내 실타래로 무언가, 실재하지만 당위적 가치는 누군가 매겨주지 않으면 매겨지지 않는, 이상한 예술의 세계를 헤매다 나와 밥벌이에 위안하다 힘들어하다, 그렇게 사는 내게, 좋은 책이다.

 

 

그렇기에 제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일입니다.

그 무수한 연습의 나날들 속에서, 언젠가 어느 날엔가 예고도 없이 캔버스 위로 떠오른 사랑의 형상을 발견했던 기쁨은 오늘의 연습을 위한 용기가 됩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더없이 연습이 필요한 일입니다.

매 순간 매 숨처럼. 언제나 - P65

 

누구나 꿈을 꾸지. 꿈을 실현시키거나 말거나, 누구나 꿈을 꾸긴 . 사실도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제게 그림을 그리는 일, 글을 쓰는 일은 이처럼 먼 풍경을 꿈꾸는 일입니다.

끝없이 그리운 마음으로 하루와 한 달, 그리고 계절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 P131

 

그의 그림이 깊은 울림을 이유는, 그가 매달린 숭고 때문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지극한 애틋함이 그림 속에 담겨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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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는 건 그 일이 더 이상 개인적인 취미의 영역에 머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정의하는 ‘직업‘이란, 좋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무수한 평가 속에서 납득 가능하고 타당한 책임을 담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인정받는 것, 직업인으로서 예술가의 딜레마는 꽤나 복잡합니다. - P158

꿈을 깨면 죽는다고 해서, 그 꿈이 꼭 대단한 것일 필요는 없겠지요. 단지, 우리 삶에서 지켜야 할,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단어만은 마음속에 품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 P176

제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삶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방어기제입니다. 물리적, 정신적 죽음과의 싸움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저만의 생존 수단이자 삶을 살아내는 철학인 것입니다. 그러한 종류의 일이라면, 부족한 재능을 원망할 겨를 없이 매일, 온 힘을 다해, 조금씩, 확실하게 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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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쩌면 캄캄한 바닷속으로 던져지는 것과 다름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표류하고 방황하게 되지만, 바로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을 대하는 목적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게 아닐까요. 삶의 비극 앞에서 당당하게 대적했던 니체의 한마디처럼요.
"이것이 삶이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 P127

제게 그림을 그리는 일, 글을 쓰는 일은 이처럼 먼 풍경을 꿈꾸는 일입니다.
끝없이 그리운 마음으로 하루와 한 달, 그리고 계절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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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시절의 우리가 무작정 두려워했던 ‘보통의 삶‘이란, 여쩌면 남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별함을 좇는 일이 아닌, 결국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만의 ‘보통‘을 찾아가기 위한 단 하나의 특별한 여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 그 보통의 균형을 찾아가는 삶의 고단한 여정을 지속하는 데에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지만,
결국 나의 보통 속에서 가장 반짝이는 무언가를 알아차려주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비로소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를 이 세상 속에서 함께 존재하게 하는 일,
서로에게 무해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일지 모릅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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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제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일입니다.
그 무수한 연습의 나날들 속에서, 언젠가 어느 날엔가 예고도 없이 캔버스 위로 떠오른 사랑의 형상을 발견했던 기쁨은 오늘의 연습을 위한 용기가 됩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더없이 연습이 필요한 일입니다.
매 순간 매 숨처럼. 언제나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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