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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9월
평점 :
당신은 지금 가고 있다.
나 역시 지금 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당신은 나를 스쳐 가는 것이다.
그래도, 당신은 지금 가고 있다.
어떤 대가를 치루어도 내가 당신 길을 가줄 수 없고, 당신이 내 길을 가줄 수는 없다.
‘우리’라는 말이 있다.
앞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라는 말은 한없이 공허해진다. 아무래도, 사람은 각자 한 대씩의 자전거만을 인생에 부여받아 그 자전거를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공동체란 참,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다. 수풀로 덮여 가기 힘든 길이 있는가 하면, 잘 닦인 아스팔트 길도 있다. 공동체의 법칙이란 아마 아스팔트 길을 닦는 것과 유사한 의미일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행인』은, ‘나’라는 존재와 ‘우리’라는 존재 사이에 덩어리진 어떤 분위기를 풀어낸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는 종종 가족 안에서 ‘우리’가 되고, 친구와 함께 ‘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우리’안에서도 늘 ‘나’인 채이다. 이러한 심리적 갈등은 어느 공동체에든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 갈등은 어떤 현실적 갈등 양식-언쟁, 몸싸움과 같은-을 갖지 않은 채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갈등이 현실화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이 번거로움 대신 어색함(‘나’가 ‘우리’가 되지 못해 속으로 아우성치는 꼴)을 잠시 참고 견딤을 택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소설 『행인』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중심 인물은 동생인 지로이지만, 지로는 주인공인 동시에 주인공이 아니다. 소설의 대부분이 그가 겪게 되는 여러 에피소드들에 할애되지만, 이 소설이 소설로써 매력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지로의 형 이치로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치로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학자 타입의, 자기 중심적 성격이 강한 인물로 지로에 의해 묘사된다. 그러나 소설을 읽고 보면, 이치로는 ‘나’가 ‘우리’가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라는 공동체에 존재하는 어색함을 풀어내 표면화시키고 이를 분석해 완벽한 이해를 꾀하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모순된 이 세계 자체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이다. 사건은 특히, 지로와 아내 사이에 존재하는 애매한 분위기를 형이 풀어내려 함으로써 구체화된다. 어찌보면 소설 속에서 가장 순수한 인물인 이치로는 세계로부터 괴리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세계에 접근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폭로하고, 표면화시킴으로써 해결을 꾀하려는 그의 방식은 곧 고독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나’에서 ‘우리’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치로는 늘 ‘나’인 채로 세계에 남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족으로부터 조차.
그러나 소설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인 이런 이치로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은 결미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이전까지 소설은, 어떤 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어색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중심을 둔다. ‘나’가 부딪치는 모든 인물은 그들끼리 형성한 ‘우리’속에서 삐그덕대지만, 결코 그 갈등을 표면화시키지 않는다. (첫 단락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따님’이 갈등을 표면화시킨다는 말은 형님의 해석이다. 그는 마지막에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은 미치거나 죽거나 종교를 택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형으로 인해 그 갈등은 집안에서 숨겨지지 않고 폭로당하고 모든 가족 구성원은 이를 못마땅해하게 되는 것이다.
아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그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다. 지로, 부디 내가 믿을 수 있게 해다오.
인간은 당연히 타인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 ‘우리’로 존재하는 시간은 섬광처럼 짧고 희미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삶을 위해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다. 모든 공동체는 이 각자의 포기된 부분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형은 이 공동체의 비논리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함으로 해서 괴리를 겪는다. 이는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의 고백에 대한 친구 H의 감정으로 소설은 결말을 맞는다. 친구의 이 모순적인 고백을 통해, 문제가 형에서 인간 전체로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생을 살아내야 하는 피로와 생을 살아야만 하는 인간적인 책무 사이에서, 늘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연하게도 형님이 자고 있을 때 쓰기 시작하여, 우연하게도 형님이 자고 있을 때 글을 마치는 나를 묘하게 생각합니다. 형님이 이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면 왠지 무척 행복할 거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동시에 만약 이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면 왠지 한층 슬플 거라는 느낌 또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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