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영원히 돌아가는 회전열차

 

내가 한 번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하나 있어.

그건 바로 너야.

네가 거리에서 돌아다녀도, 네가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걸어다녀도, 나는 널 죽이지 않을 거야.

겁낼 거 없어. 그 도시는 위험하지 않아. 그 도시의 유일한 위험은 바로 나야.

나는 거리를 계속해서 걷고 또 걸으면서 사람을 죽이지.

그러나 너, 너만은 겁낼 거 없어.

내가 너인 것은 네 걸음걸이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너는 비틀거리며 걸어. 그게 아름답다는 거야. 사람들은 네가 다리를 전다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네가 꼽추라고도 하지. 사실 넌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이따금 너는 허리를 펴고 똑바로 걷기도 하지. 그러나 난 말이야, 밤늦은 시간에 지쳐서 허리가 구부정한 채 비틀거리며 걷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야, 넌 떨고 있어. 추워서인지 두려워서인지. 아무튼 날씨는 더워.

한 번도, 거의 한 번도, 어쩌면 한 번도, 우리 도시에서는 날씨가 그렇게까지 더웠던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넌 뭘 두려워하는 거지?

내가 두려운 거야?

난 너의 적이 아니야, 널 사랑한다구.

다른 아무도 널 해칠 수 없을 거야.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내가 널 보호해줄게. 하지만 나도 괴로워.

굵은 빗방울 같은 눈물이 내 얼굴 위로 흘러내리고 있어. 밤은 나를 감싸주지. 달빛은 나를 밝혀주고 구름은 날 감춰주고. 바람은 나를 찧어놓는군. 나는 너에게 일종의 애정 같은 것을 느껴. 내게는 왜 하필이면 그 대상이 너냐구? 글쎄 나도 모르지.

나는 너를 어디라도 아주 멀리까지라도 오랫동안 쫓아가고 싶어.

나는 네가 좀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나는 네가 다른 모든 것에 싫증내기를 바래.

나는 네가 내게 와서 안아달라고 애원하기를 바라지.

나는 네가 나를 원하길 바래. 네가 나를 갖고 싶어 하고, 나를 사랑하고, 내게 전화해주기를 바래.

그러면, 나는 널 두 팔 벌려 맞아줄 것이고, 내 품에 꼭 끌어안을 거야. 너는 나의 아이, 나의 연인, 나의 사랑이니까.

나는 널 데려갈 거야.

넌 태어나기를 두려워했고 이제는 죽기를 두려워하고 있어.

넌 뭐든지 두려워해.

두려워할 필요 없어.

돌아가는 회전열차가 있을 뿐이야. 그것은 '영원'이라고도 하는 거야.

회전열차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나야.

넌 나를 두려워해서는 안 돼.

회전열차도 두려워하지 마.

너를 두렵게 하고 너를 해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인생이라는 것,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감미롭고 날카로운 영상과 이야기.

인간의 마음의 반전, 공간의 반전, 운명의 반전.

그러나 놀라움으로 문장이 채색되지는 않는다. 그저 담담한 어조, 그래서 더 날카로운.

그래, 뭐, 그런 거지라는 식으로 끝맺지만 실은 오~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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