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운명을 유혹하지 말고, 완전히 무시해 버려라.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종종 아니 어쩌면 인지하지 못하는 그 모든 순간에도 끊임없이 운명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가며 살기 십상이라는 것.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치러야할 숱한 자기 고백과 직시, 상심, 주문 같은 통증에 대한 책.

그리고 존재를 꿰뚫는 문장. 무수하게 꾸불꾸불한 그 존재의 막다른 곳까지 타고 들어가는, 거기에 대해 쓴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거기.

균열에 대한 직설, 명확하게 꼭 알맞은 수만큼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


정체성을 찾기 위한 치열한 전투 과정을 그린 한 편의 연애소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하며 거기서 고통 받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낭만과 싸워야 하는가.





 


-그녀는 한 단어씩 나아갔다. 모든 글자에는 경계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크고 풍만한 입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입은 어두운 집을 돌아다니며 불을 켤 수 있는 지점들을 점점이 또는 줄줄이 완벽하게 짚어내는 사람처럼 자신의 문장들 속을 휩쓸고 다녔다.

어떤 엄격함을 갖춘 관능.



-손가락이 굵은 땅의 사람들, 인간 잡초들, 단단하고, 서럽고, 늘 지진 같은 감정 폭발로 그들 삶의 칙칙한 껍질을 부수고 나올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



-그녀는 아마 평생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여 다니는 것처럼, 당당하게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보니, 갑자기 그녀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삶 앞에 제대로 서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이미 그녀가 죽을 때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버지가 그 나름의 말로 할 수 없는 그늘진 방식으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침묵이라는 그릇된 명예에 너무 자주 의존하고,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것을 남용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릴리아에게 잘 보여주었다. 때로는 잔인하게 나의 얼굴을 비길 데 없는 가면으로, 가장 둔한 도구로 사용하면서. 재니스의 존 김, 절묘하게 입을 다물었던 존 김은 단층에 시달리는 땅덩이와 같아 흔들거리면서 격렬하게 폭발할 것 같지만 그러다가 스스로 꺼져 버린다. 자기 자신의 갈라진 틈 저 아래로 부드럽고 균일하게 폭포처럼 내려앉았다가 다시 빽빽하게 살이 차 올라온다.


-죽어 가는 사람은 약간 위에서 자신이 죽은 현장을 내려다보며, 그가 어떤 사람이든 나이가 몇이든 그 마지막 광경으로부터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좁은 것이고 부서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길고 넓은 군도에 흩어져 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를 부를 수 없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를 볼 수도 없다.


-내가 밋이라는 것, 이어 그녀가 밋이라는 것, 포개쌓은 우리 둘의 몸이 이제는 성장한 그 아이들 모두의 무게를 견디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입술과 눈이 부풀어오르도록 서로를 거의 죽을 때까지 압박하면서, 눈물이 떨어지기를, 그 위대하고 자유로운 분노가, 그 크고 무겁고 살찐 우울이 떨어져 내리기를 우리 자신에게 빌었다. 분노와 우울이 순식간에 충분하게 겹쳐 쌓이면, 가끔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를 악물고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럴 때면 우리는 먼저 씨팔하고 욕부터 해야만 진실의 맨 첫 부분이라도 말할 수 있었다. 침대에서는, 우리 사이의 공간에서는, 그것이 모든 육체- 살아 있건, 죽었건 아니면 삶과 죽음 사이에 걸려 있건-가 나아가는 슬픈 길이었다. 결합의 가장 진실한 순간을 영원히 상실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침이면 말짱한 희망이 찾아왔다. 이어 늘 찾아오는 명령들. 릴리아를 찾아라. 자, 이제 생각해라. 영원히 생각을 해라. 그런 뒤에 그 애의 죽음에서 불가사의한 것들, 진귀한 것들을 분리해 내라. 그래야 그것들이 네가 제대로 보도록 도와줄 것이다. 감상을 털어 버려라. 운명과 사랑에 빠지는 짓거리를 그만두어라. 가능하다면, 죽은 자의 마지막 거처에서 살아라.


-피에 대한 믿음, 아들이나 딸에게 네 인생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다독거려 주는, 깰 수 없는 연계.


-만일 내가 평생 가족의 배고픔을 느껴왔다 하더라도, 이제 그것이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될 것 같았다.


-밋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네 번 했다. 릴리아는 세 번 했다.

나는 이 말들을 그녀가 똑같은 말을 하던 다른 순간의 기억들 몇 가지와 비교했다. 우리가 함께 살기로 결정한 날 밤, alt이 태어난 날 아침, 내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여 바에서 술에 취했던 날.

나는 그 말에 편안함을 느꼈던 적이 없다. 늘 곤혹스러울 뿐이었다. 그 말을 하는 모든 방식에. 그 말은 축제를 기념하는 의미로도 할 수 있다. 확인을 해주기 위해서도. 감사의 뜻으로도. 요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연인에게 죄책감을 주기 위해서도, 자신을 방어하기 우해서도. 한참을 숙고한 끝에 그 말을 할 수도 있고, 무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할 수 있다. 진심으로 말할 때도 있고, 가끔은 진심이 아닐 때 말할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늘 해야 할 때만 그 말을 한다.


-“말이야, 나는 모든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 다 내 인생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였지. 내 인생으로 돌아오라고. 마치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는 것처럼.”


-평소처럼 나는 그녀의 속도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같은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안해, 헨리, 나도 재미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지만, 당신이 내 밤 한가운데로 들어와서 우리 역사를 고쳐 쓰는 것을 그냥 놔두지는 않을 생각이야.”


-“나에 대해, 당신에 대해, 실제로 어느 날인가는 당신 머리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가 하나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 때로는 당신이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러니까 말이야, 참여하고 있는 것,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


-“당신은 정말 그럴 수는 없어, 그런 식으로 켰다 껐다 할 수는 없어. 영원히 그럴 수는 없어.”


-릴리아는 나를 만나기에 앞서 일련의 남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그녀에게 늘 미안함과 혼란과 강도질당한 것 같은 느낌을 남겼다.


-이런 말을 해도 좋다면, 나는 늘 초대를 받은 곳, 아니면 초대 없이 가도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혀와 심장과 마음이 담긴 모든 범주의 침묵을 기념한다. 나는 현장의 언어학자다. 당신 역시 그 곤혹스럽고 전문적인 위력을 알지 모르겠다. 그 위력은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단단한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 그 얼굴을 보라. 당신이 보는 것은 언젠가는 모두 희미해질 것이다. 싸늘한 냉기만 남기고.


-“진실하게 말을 해도 악마나 배반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을 자네도 알아야 하네.”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해야겠죠.”

나는 그에게 나의 삶의 일관된 답을 제시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만.”


-좋은 첩자는 모든 절박한 순간의 은밀한 기록자에 불과하다.


-나는 굶주린 개처럼 모든 개인적 정서의 내장들을 쫓아다녀야 한다. 나는 작전 대상이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드러내야 하고 자극해야 한다. 마음의 매너리즘. 그의 삶의 상습적 경련.


-말하는 사람은 딱 어느 만큼만 어둠 속에 얼굴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는 그가 나오기를, 빛 속으로 들어서기를, 자신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는 이런 식이다.


-인간의 사건과 시간을 망라하는 우리의 불가결한 허구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더 큰 진실을 알기 때문에, 그냥 한 인물 안에 손전등을 들이대지 못하고, 강과 같은 인물을 덧없는 언어로 그려내지 못하는 것일까?


-나를 그렇게 가까이 두는 사람을 어떻게 추적할까? 내가 알 필요가 있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쓸까? 어디서 시작하며, 어디서 끝을 낼 수 있을까?


-“당신은 한 번에 조금씩만 살려고 해. 당신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만 살려고 해.”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지금 내가 모든 것을 목록의 형태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생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기억의 줄을 타고 내게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내로부터 나를 끌어내 이곳으로, 우리의 유령들의 장소로 돌아오게 하는 길고 서정적인 행렬.


-그러나 나는 두려움을 견딜 수 있다. 숙련된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단단하게 굳히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정반대의 일을 한다. 그냥 자신을 놓아버린다. 완전하게.


-사람이 시베리아처럼 고요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늘 뿌리째 뽑아 버리려 하면서도 늘 이용하게 되는 유서 깊은 형제간의 약한 마음.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 그래야만 아이의 반은 노란색인 넓적한 얼굴로는 얻을 수 없는 귄위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동화주의적 감성이며, 나 자신과 이 땅의 추하고 또 반은 맹목적인 로맨스의 일부이기도 하다.


“자아에 대한 아주 분명하고 강렬한 느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자기 맨머리를 두드리게 할 수 없어. 모든 것이 거기에서 시작되지. 모든 것이. 무슨 일이 있어도 허리를 낮추어라. 최대한 자신을 보호하라. 그리고 그 자리에 서게 된 이유에 집중하라.”


-거리와 고개를 숙이는 절로 이루어진 우리의 말쑥한 언어로. 그 언어라면 진짜 비밀들을 천천히 불러낼 수도 있도, 천천히 드러낼 수도 있다.


-당신 요구의 살이 있는 형체를 보고 싶다. 당신이 잃은, 또는 누군가가 훔쳐간, 또는 사기쳐간 피를 알고 싶다.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간절히 돌려받고 싶어 하는 그 피를 알고 싶다.


-나는 아이가 너무 선선하게 헌신하고 존중하는 태도, 싸늘한 피, 그리고 한때 쓸모없다고 생각하여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고 절대 살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타오르는 언어 같은 것들을 물려받았을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 또는 내가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 다른 친구를 갖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어떤 침로를 따라 항해할 때에도, 그 침로가 변덕을 부릴 가능성이 많다고 예상을 하고 있어야 한다.


-계시들은 나무들 속에 어둡게 감추어진 먼 강굽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야만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요구와 관심을 가지고 천사도 만들고 악마도 만든다. 길을 가면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즉흥적으로 만들어낸다.


-나에게 가장 고귀한 것은 침묵이라는 고상한 재능이라는 것. 나의 고요와 평정의 가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라는 이민자의 추한 진실은 내가 나 자신을, 그리고 착취 가능한 다른 사람들을 착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나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우리는 억양과 관용어를 모조리 배울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이 유지하는 모든 허세와 관례를 고상한 것이든 황폐한 것이든, 모조리 벗겨낼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눈과 귀로부터 어떤 것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이것은 당신들 자신의 역사다. 우리는 가장 위험하고 충실한 당신 형제들이다. 우리 가슴에서 나오는 노래는 사나운 동시에 서글프다. 오직 당신들만이 나에게 이런 서정적인 양식들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양식들을 통해 당신에게 대꾸한다. 이것이 내가 감히 키워올 수 있었던 유일한 재능이다. 이것이 내가 받은 미국식 교육의 전부다.


-안아 주려고 반쯤 들어 올리면, 아이들은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바로 그 크기, 나에게는 너무나 경이로운 그리고 끔찍한 바로 그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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