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시선 3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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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 웃을 일이 별로 없다. 하하호호도 아니고 풀썩도 아니고 빙그레 웃을 . 어제 밤에 시집을 보다 오랜만에 빙그레 웃었다. 어떤 시집은 괴로워서 읽겠더니 이번 시집은 빙그레~. 그래서 좋았다.

정보력이 뒤지는 나는 장석남 시집이 나왔단 얘기도 어느 술자리에서 주워 들었다. 달쯤 됐을 . 그래? 내일 사봐야지. 했지만 실지로 내일 사보기란 얼마나 힘든가. 책장에 쌓인 책들, 도서관에서 빌려다놓고 보지 못한 책들을 두고 무슨 사치를 부리냐 싶어 되도록이면 사기를 미루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실행력은 얼마나 없는지. 내일이 모래 되고 모래가 글피 되기 일쑤인데, 시집은 바로 술자라기 파한 다음날 사봤다.

그래, 샀으니, 버스에서도 읽고 방에서도 읽었다. 시집 읽는 노처녀가 되었어도, 요새 볕은 시집 읽기 좋다. 그리고 밤새 빙그레 웃었다.

오래전 그날들도 생각했다. 그와 같이 콩국수를 먹던 지나치게 허름한 식당은 사라졌다. 그런가하면 그의 시집 뒤편에 나온 성북동 과메기 집에서 술도 마셨는데. 그날은 취했던가? 이례적으로 자주 취하던 날들이었다. .
그때는 무어 그리 적대적이었나, 그런 생각들. 이제 나도 그와 같이 나이 들었나.

 

그의 시집을 보고 있노라면 흙밭에 쭈그려앉은 남자의 뒷모습의 떠오른다. 그는 일도 없이 흙밭에 쭈그려앉아 꽃이나 보고 흙이나 되짚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싸고 뜨겁고 언제나 비린 사랑' 맛을 알아 '포대기' 크기와 '골짜기' 첩첩에 대해 가을 하늘에 이마 대고 말하는 같다. 사람이 아주 깊이 베면 피맛밖에 나지만 그는 후시딘 바르고 밴드도 붙여 이제 아문 상처 같은 것을 지니고서 하늘에 이마 대고 서서 여러 꽃이름 외고 나르고 변기도 닦고 바람소리도 듣고  

그러나 맑게.  

맑다.

 

제대로 식물도감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 잠깐

시월 말엔 간송미술관 뒤뜰의 파초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 잠깐

 

생일인 사람 있으면 시집이나 떠밀어야지. 책을 누군가에게 떠민지도 오래된 같은데, 생일인 사람 있으면 시집 떠밀며 당신도 혼자 빙그레 웃는 시간을 가져보라 해야지 하는 철없이 좋은 생각을 잠시간 했다.

  

 


 

 

 

물맛 

 

 

물맛을 차차 알아간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다 싫고 냉수나 한 사발 마시고 싶은 때 

잦다 

 

오르막 끝나 땀 훔치고 이제 

내리닫이,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손뼉 치며 감탄할 것 없이 그저 

속에서 훤칠하게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그 걸음걸이 

 

내 것으로도 몰래 익혀서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써먹어야 할 

 

훤칠한  

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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