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신부 1
말리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바리데기는 한국 고유의 무속 신앙 설화 중에서 파낼 게 많은 작품이다. 공주로 태어난 아이가 딸이란 이유로 버려지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다시 나타나 무장승의 아내가 되고 여러 고난을 뚫고 결국 무당(저승 세계와 이승 세계의 연결자) 역할을 하게 된다는 내용은 환상적 리얼리즘의 한국판 저장고라 할 수 있다.

말리의 『도깨비 신부』는 바리데기의 현대판 만화다. 무당의 손녀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 받고 아이들에게 놀림 받던 아이가 도시로 와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며 바리데기와 같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이음줄로 자립한다는 내용은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다.

게다가 이런 탄탄한 서사적 맥락을 끌고가는 힘도 있다. 무당의 손녀로 태어난 아이는 바닷가 마을의 용을 본다. 우리 고유의 신화와 일맥상통하는 스토리의 시작이 흥미를 자극하는가 하면 자기 운명을 제대로 잇지 못해 죽어버린 엄마가 있는 그녀의 운명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왠일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어린 시절의 외롭고 쓸쓸한 구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아마 그 구멍이 기억의 조작에 의해 점점 확대된 것일 테지만)

주인공은 점점 무당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도깨비의 도움을 받으며 정신적 성장을 이루고 아픈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게 된다. 이는 정확한 영웅 설화의 구조다. 남 다르게 태어난 주인공이 고난을 겪지만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이를 극복하고 영웅이 된다는 이 구조는 헐리웃 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헐리웃 영화들이 구조적 안정성을 추구하지만 알맹이는 텅 비어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비해 도깨비 신부는 알맹이가 꽉 차 있다. 주인공이 현실과 마주하는 장면들이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5권에서 폭력 아버지를 피해 동생을 두고 도망쳐 나온 남자의 이야기나 7권에서 정신 지체 어머니에 대한 피해 의식과 애정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여자 이야기는 바로 우리 주변의 상투성(상투적이라 피하고 싶은) 자체이기 때문에 힘을 얻는다. 작가는 이런 상투성이란 이름으로 덥혀버린 현실을 귀신, 도깨비와 같은 환상의 영역과 버무리며 채색하고 윤을 낸다.

게다가 단순히 무당에 대한 감각만을 그리는 게 아니라 조사를 바탕으로 한 듯한 전문적인 설명들과 용어들, 비현실 영역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소개하며 이야기의 몸피를 불려나간다. 지방 덩어리가 아니라 탄탄한 근육으로.

어서 다음 권이 나와서 이 작품이 어떻게 하나의 생명체로 멋지게 자기를 완성해 가는가 보고 싶다. 그동안 한국 만화는 잘 보지 않았는데,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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