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재밌었다는 말을 해야겠다. 유쾌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습성 때문일까. 처음 단 편 두 개는 특히 재밌었다. 라디오 기능이 있는 선풍기를 수집하는 사람의 외로운 구매 어쩌고도, 있지도 않은 롤러코스터(플라잉 롤러코스터)에 대해 쓴 것도 모두 즐겁게 읽었다. 또한 나의 글 쓰기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느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단순한 유쾌함이 아닌 나름의 철학이 있어서였겠지. 아마 레포트를 쓴다면 시대와 세대 어쩌고 과거의 유물과 90년대의 관계, 이데올로기의 지배 어쩌고 그런 소리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레포트가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면 어떤 둥물들은 멸종하고 어떤 동물들은 자신을 보호하던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버리고 다른 시간 속으로 유영해간다.'
-오징어와 암모나이트가 같은 류의 동물이라는 얘기에서 이 말이 나왔다. 과연 나는 멸종할까, 이 껍질을 버릴까. 유영한다는 말도 좋았다. 시간 속으로 유영할 수밖에 없는 것들. 도저히 그 궤도를 이탈할 수 없는 것들.

'모든 것들은 가까이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면 더욱더 잘 들리는 법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좀더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
-단편 '스무 살'에 나온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지도 않으면서 어른이 되야 한다는 부채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저 시간에 이끌려, 하지만 만일 그런 시간마저 없다면 아무도 어른이 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힘겨운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김연수의 소설은 변화해가는 시대와 스스로를 되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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