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세계사 시인선 15
이연주 지음 / 세계사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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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의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은 자아와 자아가 뿌리내린 세계를 거부하는 몸짓의 극명한 표현이다. 시 「인큐베이터에서의 휴일」중 '왜 나는 부정하는 것만이 아름다울까'라는 구절은 이와 같은 시인의 인식을 집약하고 있다. 시인에게 현존하는 삶이란 부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시어 역시 부정적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시의 형식 역시 마지막 구절의 부정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길이 있었던가? 절벽길/ 또 가야 한다면/ 삶의, 어디/ 사람이 별처럼 모여 반짝이는/ 마을 앞에 서게 될지, 글쎄/ 아니라 해도……', 「길」中

'멍든 곳을 훤히 드러낸 나무들 몸통은/ 어떤 힘으로 겨울을 버티는 걸까./ 어머니 이 손톱 끝을 좀 보세요, 아직도 가시에 찔린 자죽이 시퍼런걸요.', 「지리한 대화」中

시집에는 '삶'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삶은 생동감 있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삶의 반대편인 죽음의 어둡고 축축한 이미지는 오히려 삶을 뒤덮게 된다. 또한 이러한 삶에 대한 부정은 시인만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이와 같은 징조를 시인의 곁에서 자주 발견한다.(어차피 시선의 주목은 생각을 따라가기 마련이므로)'검푸레한 곰팡이 냄새', '때 절은 벽지', '박쥐의 검은 옷' 등으로 대변되는 '삼촌'의 삶(「삼촌 편지」), 가는 곳곳에서 '썩어가는 냄새'를 맡는 '오인환씨'(「외로운 한 증상」), '소주', '습관성 약물', '니켈에 도금된 육신' 등의 이미지로 제시되는 '윤씨'(「윤씨」등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시인의 부정성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어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신생아실 노트」, 「구덩이 속 아이들의 희미한 느낌」을 통해서 시인은 아이들에게 삶이란 혹은 사랑이란 쓸모없는 것이며 죽음을 위한 과정이며 전쟁과 같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이와 같은 지독한 부정은 어차피 시집 제목에서도 이미 예고된 바이지만 실제로 접하게 되면 읽는 이는 곤혹스럽다. 시인의 을씨년스러운 은유는 매력적이지만 그 매력에 빠져들면서 독자는 점차 몸 속에 약물을 투약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자신마저 축처지게 되고 이 삶의 어려운 부분들이 속속들이 일어서서 달려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들이 세계를 부정할망정 자신의 의식은 명료한 곳에 놓아두는 반면, 이연주는 자신에 대한 부정이 세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원동력인 듯한 인상을 준다. 따라서 「네거티브」와 같은 시들은 충격적인 양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시인 이연주는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을 출간한 바로 일 년 후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한 번쯤은 부정해본다. 그러나 쉽게 죽을 힘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은 이처럼 삶의 반대양상에 놓여서 우리를 괴롭힌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그래서 영원한 매력을 품고 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만을 주는 곳. 사실 죽음은 삶이 있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연주의 시집에서의 삶은 철저히 유린당한 것이기에 죽음의 언어가 이토록 능수능란하게 구사될 수 있는 것 같다. 왜 그 삶이 유린당했는가, 왜 희망의 조각은 발견되지 않고 추억조차 더럽게만 느껴지는가, 아니 어떤 힘으로 그와 같은 부정을 지속해나가는가를 안다는 것은 사실 겁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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