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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개정판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전거를 타러 갔다. 날씨는 화창, 그래, 캐치볼을 해도 좋을 날씨, 그래서 성산대교 북단에 사람들은 넘쳐나고 그들은 각자 뭔가 생각을 할 것이고 나는 도대체 그 생각은 알 수 없고 그저 성산대교 북단에 앉아 이 책을 읽다 들어왔다. ‘사랑의 스타디움’ 부분이었다. 말 그래도 사랑의 스타디움에서 사랑의 스타디움을 읽은 셈. 옆에는 두, 세 쌍의 연인이 수건돌리기라도 하듯 오갔고 내 눈에는 그들이 모두 그저 ‘연인’이지만 필시 각자 다른 연인일 듯. 기간 상으로도 일주일 된 연인이 있는가 하면 어제 키스한 연인, 이제 섹스가 지겹기 시작한 연인 등등이 있을 것이며 어쩌면 삼각관계에 빠진 연인, 한 쪽이 바람 피는 연인, 두 쪽 다 바람 피는 연인 등등이 있을 테지만 그건 대체 내 알 바가 아닌 셈이다. 내 알 바는 얼굴이 조금 탔고 팔뚝도 조금 탔다는 것, 아무래도 선크림을 좀 더 바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란 말인지.
어제도 그제도 밥 말리를 듣는 중, 좋아서라기 보다는 그저, 한번 다 들어볼까 하는 그런 생각의 발현, 적어도 지겹지 않으면 계속 들을 수 있으니까,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적어도 지겹지 않았다는 점에서 밥 말리는 대단하다.
책을 왜 읽지 생각해보면 겸손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문장의 속도는 적어도 생각의 속도보다는 느리기 때문에 그런 속도를 맞추다 보면 조금은 겸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음. 게다가 책을 읽다보면 조금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많이 말고 조금만. 이것은 좋은 점. 책을 읽다 보면 대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아니라, 착각일지라도.
책을 읽다 박민규에 대한 생각 조금, 하지만 구차하니까 이에 대해서 더는 쓰지 말자.
생각해보면 할 수 있는 말 같은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을 가진 유기체(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유명한 화가의 작품 제목, 하지만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니까 말을 해야 하고 말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놈이 되고 급기야 이상한 년이 되며 급기야 싸가지 없는 놈/년이 되며 그러므로 말을 하지만 실은 할 수 있는 말 같은 것은 거의 없고 그것은 실은 이 작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진짜 야구를 찾아 돌고 돌다 보면 야구 같은 것은 없어지고 야구 비슷한 것만 남고 무엇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진짜 무엇 같은 것을 생각하다 보면 꿈에서도 무엇을 하는 것 같고 그러다보면 내가 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 비슷한 것인지 헷갈리고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고 결국 세계는 음부와 페니스뿐인가 싶을 즈음(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겐지와 겐이치로’ 중 한 단편에 나온 말) 그렇다고 말할 수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되고 역시 할 말이란 없는 채로 계속 말을 지껄여대며 사랑의 스타디움을 꿈꾸다가 치매에 걸리거나 정신병원에 가거나 어쨌든 마지막으로 가게 될 구멍은 하나, 이것은 다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