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책이오?"
"예, 그럴 겁니다." 내가 대답했다.
"반전 책을 쓴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뭐라는지 아시오?"
"아니요. 뭐라고 하시는데요?"
"'차라리 반빙하(反氷河) 책을 쓰지 그래요?' 그럽니다."
물론, 그의 말은 전쟁은 항상 있는 거고, 빙하만큼이나 막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동감이다.
그리고 전쟁이 빙하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밀려오지 않더라도, 그 흔해빠진 죽음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 <제 5도살장> 中
그럼에도 반전 영화를 보러 갔다. 정초부터.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간 종의 잔인함에 대해 깨달아 가는 일인 것 같다. 인간이란 동물은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엔 그렇지 않다. 순수하게 슬퍼하고 순수하게 아파하고 순수하게 즐긴다. 그런 건 다 끝인 걸까? 송년회가 끝나면 남는 음식물 쓰레기들을 보며 자기 종에 대해 역겨워하는 일까지 함께 해야 한다니. 인생이란 그런 건가?
지금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는 전쟁 중이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 하며 거리를 돌아다니고 새해를 축하한다. 대체 뭘해야 할까? 기관총을 들고 왈츠를 추는 병사를 보며 눈물을 찔끔대는 일말고 대체 뭘 할 수 있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