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갔다가 커피 내려주시는 분 소개로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누군가 그분께 반납한 DVD를 바로 빌려 주셔서 즉석으로 봤다.

처음엔 혼자 노트북으로 이어폰 끼고 보다가 점점 그분과 다른 손님 한 분과 같이 보게 됐다. 물론 이어폰은 빼고.

엄청난 굿타이밍이라고 느꼈던 건 영화 시청 도중 온 손님들은 테이크아웃만 해가는 센스를 발휘해주신 것. 그리하여 끝까지 주인장님과 다른 손님분과 즐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엔딩으로 들려오는 뇌태풍의 ‘첫사랑이 생각나는 이 밤’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들었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여서인지 내내 흥겨웠다. 영화가 끝나자 마치 기다렸던 듯 커피 마시러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과 침묵 사이에 대한 영화일까 생각해봤지만-당연히 대조되는 의미로서- 이 영화는 침묵을 이용하지 않는다. 말과 의미의 전달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간극에 대해서 영화는 이야기하는가? 글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영화 내에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출연하고 그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겪게 되는 과정 속에서 의미 전달이 비틀리게 되며 실제 의미가 달아나는 구조를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말의 게임, 언어의 게임을 풀어나가지만 영화는 결코 무겁고 침체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즐겁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언어가 의미 전달에 실패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지시키기 위해 영화 내에서 엄청나게 많은 말이 오간다는 것이다. 대화뿐 아니라 복화술 하는 배우,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이 음악을 내뱉으면 그것을 통역해주는 과정, 채팅 등의 다양한 언어 형식을 빌려가며 대화가 오가고 이 사이에 연애의 과정이 뒤섞이며 누구나 겪을법한 소소한 에피소드가 삽입된다. 결국 주인공이 은하와 헤어진 뒤 만나게 되는 것은 벙어리 소녀.

말과 말이 오가며 욕망이 욕망과 만나는 과정. 결국 점점 의미는 사라지고 태도만 남게 되는.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 위해 과감하게 취하고 자기 자리를 바라보면서도 무거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벼움으로 끝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찍을 영화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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