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륜을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어른들은 악마가 씌었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리고 눈에 뭐가 씌인 것처럼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악마가 씌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악마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이다.

여기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진 한 아름답고 순수한 소년이 있다. 이름은 오스칼.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사는 왕따 소년 오스칼은 나무에 칼을 휘두르며 살인을 흉내내던 도중, 옆집으로 이사온 이엘리란 여자아이와 친해진다.

이엘리는 겉에서 보기에 아빠로 보이는 남자와 살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여자애가 뱀파이어라는 것. 입가에 피를 질질 묻히고 나타나는가 하면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 장소에 가면 온몸이 터져나가며 피범벅이 되기까지 하는 진짜 뱀파이어. 게다가 이엘리에게 피를 먹이기 위해 아빠 같은 남자는 살인을 저지르고 현행범으로 잡힌 뒤 결국 이엘리에게 마지막 피를 주고 죽는다.

오스칼은 이엘리가 뱀파이어임을 안 뒤 입을 삐죽거리며 넌 사람을 죽이잖아 라고 비난해보기도 하지만 이 비난은 도덕적 비난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기대했던 여자친구가 될 수 없는 데서 오는 열두 살 소년의 심술에 가깝다. 이엘리가 뱀파이어임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엘리와 관계를 지속하며 오스칼은 이엘리를 죽이러 온 남자를 말리는 과정에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는가 하면 오스칼이 위기의 순간에 처해있을 때 이엘리가 나타나 오스카를 괴롭히던 남자아이들을 처참하게 죽인다. 뎅그렁 잘려나가는 목, 팔. 수영장에서 혼자 남아 우는 오스칼.

마지막 장면은 오스칼과 이엘리가 모스무선전신부호로 대화를 나누며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햇빛을 보지 못하는 이엘리는 상자 속에 들어간 채. 결국 둘은 오스칼이 칼로 손을 그어 맺자는 것보다는 훨씬 농도가 짙은 피의 계약을 맺은 셈이다. 타인의 피를 뒤집어쓴 계약.

몹시 아름다운 열두살 소년 오스칼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영영 나이를 먹지 않는 이엘리에게 피를 먹이기 위해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며 늙어갈 것이다. 이엘리의 제 2의 (어쩌면 제 3, 제 4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되어서.

이엘리가 자신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에게 막 대하는 장면이나, 오스칼이 연쇄살인범 파일을 몰래 모으던 장면이 왠지 더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것이 곧 오스칼의 미래일지도 모르므로.

훗날 오스칼이 연쇄살인범으로 잡히게 되면 동성애자인 아버지, 괴롭히던 아이들 모두가 피범벅이 되었던 외로운 어린 시절 등등이 그의 범죄에 동기를 부여했다고 신문에 날 것이다. 피의 계약의 대가로 결국 자신의 피를 바치며.

눈이 쌓인 주변환경과 오스칼의 파란 이미지, 이엘리의 붉은 이미지가 대비되며 아름다운 영상을 연출한다. 게다가 이엘리란 소녀는 회색 눈빛을 빛내며 고혹적인 매력을 내뿜고 오스칼은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오스칼이 살인의 충동을 흉내낸 순간 나타난 뱀파이어 소녀라는 설정 자체가 어쩌면 이엘리란 소녀는 오스칼의 환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암시로 읽힐 수 있다. 어린 소년 오스칼이 자신의 살인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대체물로 만들어낸 환상. 물론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많은 사건들이 이엘리와의 관계, 이엘리의 존재에 사실성을 부여하지만 영화이니까.

특히 이 영화는 생각할수록 무섭다. 살인자의 논리에 근접해있기 때문. 헤어나기 힘든 첫사랑이 악마라면, 어쩔 수 없다. 몸도 마음도 바치게 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물론 이것은 자신에게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구조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고 그 대상이 악마가 안 되라는 법은 없다. 결국 누구나 자기 자신의 어떤 면과 사랑에 빠지고 누구나 악마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분노나 미움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을 때, 악마에게 들어와 라고 말하면 들어와서 친구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게다가 이 악마는 죽지도 않는다.


 

연쇄살인범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불행한 과거를 보낸다.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에 고통을 주는 것으로 대신 보상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연쇄 살인범의 정신세계에 씌워놓은 가설이다. 하지만 <렛미인>은 이 논리를 약간 뒤집는다. 어쩌면 살인범이 살인을 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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